무위사 경내를 부랴부랴 둘러보고나니 벌써 저녁 6시가까이 되어 버렸다.
얼른 강진시내를 거쳐 귤동 정약용선생의 초당으로 가야하는데,,시간이 빠듯했다.
강진을 왼쪽으로 끼고 포구를 보며 가는길은 평지 시골 논밭길이다. 예전엔 포장이
안되어 진흙탕길이라는 바로 그길이다. 백련사라는 간판을 우측으로 보며 조금더 가니
자그마한 동네가 나온다. 여기가 그 귤동 이란데구나.
차 한대만 겨우 들어가는 마을길을 조금더 올라가니 주차장도 아닌 겨우 차 몇대 세울수
있는 공간이 막다른 끝이다. 무슨 매표소같은거라도 있나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다. 여기서
걸어서 몇백미터만 가면 초당이 나온단다.
참고로 정약용선생은 정재원(丁載遠)의 넷째아들로 이승훈의 처남이기도 하며
선생님의 모친이 공재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손녀이고 또한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의 증손이된다.고산 윤선도라~~ 어쩐지,,

( 귤동 끝에 자리잡은 아담한 집 한채..벛나무가 고목이 되어 있다)
이 집을 끼고 위로 천천히 올라가본다. 그냥 산 초입은 여느 동네의 야산과 다르지 않다. 몇발자국 올라가자
나무등걸이 얼키고 설킨 산길이 나온다. 정호승 시인이 이길을 오르며 쓴 싯귀가 옆에 걸려있다.


앙상하게 뿌리가 드러난 산길을 보는 시인의 마음은 저러했다. 다산이 유배지인 이곳 산길을 오르내리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지는 짐작도 안간다. 고속도로 자동차로 오는데도 허리가 휠것같이 먼 그길을 조선
시대 말을 타거나 유배가는길이니 걸어서 왔을지도 모를일이니 당시 뭘 얼마나 대접을 해주었을런지,,
조금더 오르자 대나무와 삼나무가 곧고 길게 자라오른 틈새에 동백이 간간이 섞여 무성한 숲을 이루기
시작한다. 바닷가 근처 야산치고는 울창한 수목이다.

나무등걸에 떨어진 동백꽃이 보이시나요?
조금더 올라가니 초막 한채가 눈에 띈다.차성각 이라고 하는 서암 이란 곳으로 초당의 주인인 윤단과
그의 아들들및 제자들이 거처하든 곳이란다.바로 옆에
약간 우측으로 비로서 다산초당이라하는 집이 보인다.

초의선사의 다산초당도 옛모습 그림
저 초당위로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백련사가 나옵니다.

원래 다산 유배시절에는 이보다 작은 초당이었는데 후세에 조금 규모를 키워 지었다고도 하는데...
아...이것이 다산초당이구나^^* 초가지붕이 아니고 기와지붕이다.

약천이라 불리우는 약수터가 바로 집옆에 있었다. 옆에 바가지로 시원하게 한모금 마셨다. 아마도 다산도 이물을
마시며 여러 책을 집필하고 제자들을 가르치셨을게다.

초당 모서리 방위에 쓰여진 관어제..바로 옆에 자그마한 연못이 있었고 여기에 붕어 잉어등 물고기를
키우던 곳이란다. 이 방 툇마루에 앉아 노니는 고기들을 바라보는 곳이었단 얘기 같다.

이 글씨가 다산초당 바로 옆에 지어진 다산동암에 걸려있는 것인데,,다산보다 24년 밑인 추사 김정희가 나중에 써보낸
거란 얘기가 있는 바로 그 글씨이다. 寶丁山房 !!

같은 건물 옆방에 걸려있는 다산동암..다산이 직접 쓴 글씨로 알려져 있다. 이 글씨에 대해선 일찌기 유홍준 교수의
나의문화유산 답사기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어 흥미롭게 본적이 있다. 이곳에 유배당시 2000 여 권의 장서를 가져다
놓고 후학들을 가르쳤다니..참으로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다.

원래 다산의 유배시절엔 없던 정자인데,,,이 부근에 올라 멀리 강진 포구를 바라보며 흑산도인가에 유배를
당해있던 형 정약종을 기리며 상념에 젖던 곳이라하니..이제 이곳을 올라보며 당시의 그 말할수 없는 다산의
회포를 조금이라도 느껴보고자 했다. 저 멀리 바다건너 가 칠량땅이고 그 너머가 마량이란 항구가 있는곳이다.
그리고 고려청자 도요지가 그곳가는길에 있었다.
이렇게 해서 다산초당은 다 돌아보았고 산너머 800미터지점에 위치하는 백련사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을 넘어 고갯길까지 겨우 올라갔으나 거기서 내려다 보는 백련사 까지 내려갔다 다시 되돌아
오려니 날은 저물어가고,,그냥 여기까지 온걸로 만족하기로 하고 다산초당으로 다시 길을 되돌
렸다.내려오는길에 한 여행객으로 부터 [백련사의 동백숲을 못보면 후회하실것]이란 말을 듣고
부랴부랴 백련사로 차를 몰았는데^^위의 사진이 바로 동백숲의 동백나무군락이다.

이것은 백련사 법당 정면에 자리잡은 목백일홍 나무인데,,참으로 크고 오래된 신비에 가까운
모습이다. 저것이 8월초순이면 활짝 피어오르는데,,,그 모습은 정말 장관일거 같네요~
따로 저 나무 꽃만 보러 백련사에 와도 족할거 같단 생각이 든다.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잠잘곳도 정해둔바없어 얼른 갈길을 재촉해 내려간다.

강진만으로 난 해안도로저편에 벛꽃이 화사하게 줄줄이 피어있는게 백련사에서도,다산초당에서도
보였든바..어둑해진 도로를 따라 나서보니,,인적도없는 저 멀리 마량 포구 쪽이 감감하게 다가
온다. 차를 길옆에 세워두고 강진포구의 저녁 적막을 한동안 느껴본다.
아! 얼마만인가,,이렇듯 적막함에 물들어 가는 포구를 바라보는것이^^*

(저 멀리 강진쪽을 바라본 모습)
다산 정약용이 다산 동암에서 썻다는 작품 하나를 소개해 올리면서 일단 여기서 글을 맺기로 한다.
9월 12일밤, 나는 다산의 동암에 있었다. 우러러보니 하늘은 적막하고 드넓으며, 조각달이 외롭고
맑았다. 떠 있는 별은 여덟 아홉에 지나지않고 앞뜰엔 나무 그림자가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었다.
옷을 주워입고 일어나 걸으며 동자로 하여금 퉁소를 불게하니 그 음향이 구름 끝까지 뚫고 나갔다.
이때 더러운 세상에서 찌든 창자를 말끔히 씻어버리니 이것은 인간 세상의 광경이 아니었다.(원문생략)
---유홍준저
첫댓글 남도 기행 두번째..다산초당편입니다. 주마간산격으로 얼른 돌아본거이니..뭐,,
로 없었읍니다. 초당하나 보러 그 먼길을 올 이유가 없어서였는지^^*
그날이 토요일 인데도 실상 사람들이
강진 다산초당 사진과 더불어 해설까지 자세히 올려주셔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감하고 조용히 퇴청하옵니다


이렇게 사진을 보면서 강진에가면 청자도 보고 다산초당도 들러볼 계획입니다
마로니에님 감사드립니다
아...오늘 가시나요

다산 초당..김영랑 생가^^ 청자마을....다 좋은 곳입니다.
청자박물관 댕겨서 마량포구에 가시면 자연산 감성돔,,우럭,,
아주 죽여주게 맛있읍니다. 꼭 드시고 가세요^^*
다산초당이...


깊은사연이 숨어져있군요..
옛선조들의 발자취 숨결이 담겨있군요
다신 정양용
아주 유명한 선조님이시지요
형님도 유배를 당하셨으니..
그 슬픔을 이겨내시고
오늘날 지금도 서적이 남고있는데..
그분의 위대한 업적은 길이길이 보존될것입니다
그분이 계신곳 유적지를 접하니..
만감이 교차되는군요...
마로니에님 설명과 함께
구석구석 유적지를 담아 선보여 주셔서
다산 정양용님의 발자취를 그려봅니다..
아주 좋은 작품에 한참 쉬었다 갑니다...
넵,,감사합니다.

강진..남도 기행은 총 6편으로 작성되어잇읍니다.
천천히 기회되면 올리지요
넘 멀어서 그렇지 참 좋은 곳입니다. 언제 기회되시면
가보시길 권해봅니다^^
자세한 설명과 함께 곳곳을 잘 담아주신 작품 감상 잘 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덩더궁님,,,

로 없고 한적합니다. 순박함이 절절이 묻어 나오고요

강진,,,남도,,,사실 멀어서 웬만큼 해서는 댕겨오기가 쉽지않더군요
사람도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멋진 작품........그리고, 해박한 마론님의 지식의 샘물까지....들이키니



감했답니다^^*
그래요...하나라도 얻어가는 것이 있어야 올 재미도 생기지요....
에구...해박이라니요

이거이 유홍준선생의 남도 기행 편 읽고 또 읽어도

느낌의 기행문정도지요. 울나라 유적지만 볼려해도 한평생이
자꾸 잊어버리고.. 전문가적 눈으로 본 기행이 전혀 못됩니다.
모자랄듯싶어요^^
멋집니다



음악또한 압권이구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