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순
근래 산자락을 오르지 못한 지 제법 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초여름이면 이런저런 산과를 따 소주에 담그기도 하고 설탕에 절여 효소를 만들기도 했다. 뽕나무에 달린 오디는 익으면 새까맣다. 산딸기군락지를 찾아가 산딸기를 따기도 했다. 복사꽃 흐드러진 산기슭을 두어 달 뒤 찾아가면 야생복숭아도 딸 수 있다. 야생복숭아는 매실처럼 동글동글하게 생겼고 크기도 비슷하다.
올해는 절로 자란 산중 열매를 채집하지 못한 채 철이 지나고 있다. 장마가 오는 즈음이면 이런 산과 말고도 특이한 제철 식품이 죽순이다. 조선시대 시조문학의 대가 윤선도가 ‘오우가’에서 읊은 바 있듯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다. 그것은 바로 속이 빈 대나무로 늘 푸르며 곧은 성정을 지녔다. 여린 죽순이 돋아 점차 시간이 지나면 단단해지는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다.
옛적부터 대나무는 시인 묵객들의 글이나 그림 소재로 자주 등장했다. 죽림 우거진 곳은 숨어 지낸 선비의 본향이고, 대나무는 사군자의 하나로 곧은 절개를 상징한다. 대나무라면 담양 죽녹원이 널리 알려졌다. 내 어릴 적 대나무는 전통 생활용품 재질로 많이 쓰였다. 소쿠리를 비롯한 바구니는 대나무로 만들었다. 곡식을 저장했던 광이나 햇병아리를 키우던 어리도 대나무로 만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촌의 비닐하우스 골조는 대나무를 휘어 썼다. 이제 플라스틱과 철골에 밀려 대나무 쓰임새 크게 줄었다. 이런 대체재는 용기의 수명은 연장했을지 모르겠으나 위생이나 운치로는 대나무를 따를 수 없다. 요즘 대나무는 죽순 반찬으로 명맥을 이어가는 정도다. 대나무는 죽염 가공이나 대통밥을 짓는 재료로 쓰이는 경우가 있긴 해도 대나무 소비에 한계가 있다.
거제 하청에 맹종죽테마공원이 있다. 해방 전 한 독림가가 일본에서 들여와 심은 맹종죽 세 그루가 시초다. 세월이 흘러 드넓은 죽림을 이루어 대나무욕장으로 개장했다. 맹종죽 원산은 양쯔강 이남으로 아주 굵다. 오나라 때 효성 지극한 맹종이 병환으로 누워 있던 어머니가 죽순이 먹고 싶다고 하자, 그가 추운 겨울날 대나무 밭에 나가 지성으로 기도했더니 눈 속에 돋아난 죽순이다.
언젠가 반송시장에서 죽순을 삶아 와 파는 할머니를 보았다. 그날 할머니에게 다가가 몇 개 살까 망설이다 그냥 스친 적 있다. 그 뒤로 시장골목을 지나다 간간이 죽순을 보았다. 백화점이나 대형할인매장에도 제철 죽순이 나올 때가 있을 것이다. 요즘은 냉동시설에 저온저장하면 철을 가리질 않고 죽순 맛을 볼 수 있다. 대나무 고장 담양에서도 죽순요리는 사철 맛보는 향토음식이다.
학교는 칠월 첫 주 정기고사를 치루고 있다. 오전은 고사관리를 하느라 바쁘게 보낸다만 오후엔 여유가 생긴다. 학생들은 시험을 보고 일찍 귀가하는지라 급식소는 며칠 문을 닫았다. 교사들은 모둠끼리 학교 밖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첫날은 담임시간을 가져 난 집으로 와 점심을 먹었다. 그간 한 달여 아내 간병으로 집에만 지냈는데 바깥세상은 어떤지 궁금해 바람을 쐬러 나섰다.
무척 오랜만에 신어 본 등산화다. 장마전선 강우대가 일시 물러난 흐린 하늘이었다. 날씨가 좀 무덥긴 해도 바깥으로 나가니 가깝고 먼 산들은 온통 녹색 세상이었다. 동정동에서 마금산 온천장 가는 농어촌버스로 갈아탔다. 굴현고개를 넘어 화천리에서 내렸다. 신도시로 조성 중인 감계지구는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예전 풍광이 아니었다. 중방마을을 지나 군부대 종합훈련장으로 올랐다.
대나무밭은 대개 사유지라 주인이 있다. 그러기에 아무나 함부로 들어가 죽순을 마구 채집해서는 안 된다. 내가 오른 산자락은 군사시설지역으로 국가가 관리하는 임야다. 가끔 인근 군부대 장병들이 와 사격훈련을 하고 가는 곳이다. 그 산기슭 골짝으로 가면 대나무밭이 있다. 제철이 살짝 지나고 있었지만 쇠지 않은 죽순만 골라 꺾어 배낭에 담았다. 집으로 오다 지인에게도 좀 보냈다. 12.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