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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에전에 월성스님에 관해 본연스님께서 간략하게 올려주신 적이 있습니다...
아래 글에서 다시 한번 언급되어, 월성스님의 말씀을 찾아 정리하여 올려드립니다...
읽으시고 공부에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까이서 뵌 큰스님 월성스님: 장수 성관사 대각선원장
“수행의 가장 큰 장애 명예욕”
“밭에 씨앗 뿌리고 김 매지 않으면 잡초만 무성할 뿐”
◇“절 하기와 염불 등 기초수행을 통해 득력하면 화두 참구가 훨씬 빠르다”는 월성스님은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이 뭣고’ 화두를 놓는 법이 없다.
◇점심 공양을 마친 후 상좌인 성진스님과 함께 포행에 나선 월성스님. 사제지간의 애틋한 정이 엿보인다.
전북 장수군 장계면 금덕리 산 32-2번지. 장계면의 넓은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아늑한 산자락에 성관사는 서 있었다.
원래 성관사 주변에는 금덕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주지가 여러 차례 바뀌면서 관리 부실로 8·15 해방을 전후해 폐사가 되었는데, 1993년 월성 스님과 제자 삼진스님이 현 사찰 건물을 새로 짓고 이름을 성관사라 한 것이다.
성관사의 주변 지형은 백학이 나는 형국으로, 남덕유산 지맥인 깃대봉에서 수많은 학 떼가 날아와 모이를 쪼아 먹는 곳에 성관사가 들어서 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헤치고 도착한 성관사는 후원채와 일주문 건립불사가 한창이었다. 그러나 수백 미터 윗쪽에 자리잡은 대각선원은 지난해 요사채와 함께 완공되어, 이미 30명의 수좌들이 하안거 정진에 들어간 상태였다.
공양간에서 점심공양을 한 후 대각선원장 월성스님의 상좌인 주지 성진스님을 기다렸다. 마침 신도를 위한 재(齋)가 있어 주지 스님은 목청껏 청아한 염불을 정성껏 외운 후 공양을 마치고 기자를 만났다.
“큰스님께서는 ‘염불은 남의 염불, 내 염불이 따로 없다. 나를 위한 것도,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중생제도와 상구보리를 위해 스스로 신심을 내는 것이다. 스님들이 신도를 위해 재를 지낼 때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시죠.”
성진스님에 따르면 월성 스님은 석가모니 정근을 할 때면 목이 갈라질 정도로 열심히 하신다고 한다. 그래서 오래 기도하기 위해서는 천수경 등은 크게 소리 내기보다는 자신이 알아들을 정도면 된다고 한다.
성진 스님은 염불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참선과 연결시켰다.
“큰스님은 절 하기와 염불을 통해 스스로 망상을 정리한 후 화두를 잡으면 7일이면 화두가 타파된다고 하세요. 만약 스스로 준비 되어 있지 않다면 세월만 낭비할 뿐 화두 타파는 쉽지 않다고 하십니다.”
배추 씨앗을 밭에 뿌려 놓되 김을 매주지 않으면 잡초만이 무성하고 배추가 자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란다. 절 하기와 염불정진을 잡초 즉, 번뇌와 업장을 녹이는 김매기에 비유한 것이다.
배추 밭에 잡초가 없다면 배추는 잘 자라게 된다. 이 때 배추 씨앗은 자성불(自性佛)이다. 다겁의 윤회를 통해 자란 잡초들을 정리하지 못한다면 힘든 고행도 소용이 없다. 수많은 전생의 수행을 통해 득력(得力)한 상태가 아니라면, 몸과 마음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득력해야 한다. 득력이 되면 자성불은 저절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그 때 화두는 타파된다. 참선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스스로 지치고, 가르침도 받을 수 없다.
물론 염불정진으로 나타나는 경지인 염불삼매는 참선정진으로 드러나는 화두삼매와는 비교가 안된다는 것이 월성 스님의 설명이다. 3천대천 세계를 체험하고 화신불 응신불 법신불을 친견할 수 있는 염불삼매는 탐진치가 멸한 선정삼매에 결코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염불삼매는 이른바 팔지보살의 세계이다. 이와 같은 선정삼매의 경지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세계이니, 말로써 설명할 수 있다면 어찌 대도의 경지이겠는가.
대각선원에서는 결제에 들어가면 수좌들은 산문 밖을 나가지 못하며, 가까운 산으로의 등산조차 금지될 정도로 계율이 엄격하다. 초코렛, 우유, 빵도 함부로 먹을 수 없다. 불살생계를 지키기 위해 채식을 함은 물론 정진에 필요한, 칼로리가 적은 음식으로만 공양을 한다. 지나친 음식은 음욕을 생기게 하고, 이것이 폭력의 형태로 발산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사사로운 음식에서 나오는 인연법도 수행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되다며 규제할 정도로 대각선원의 청규는 서릿발 같다.
그래서 대각선원에서 3년만 공부하면 많은 악습이 떨어지고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된다. “스님네들이 한평생 공부하고서 얻은 바가 없다면 도둑놈이나 진배가 없다. 수행하면서 남의 살 먹고(육식하고) 욕망을 짊어지고 몸뚱이 위주로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을 불태우면서도 타는 줄 모르고 산다. 인욕하고 화합하면서 한 점 부끄럼 없는 수행자가 돼야 한다”는 평소 월성 스님의 가르침 덕택이다.
주지 스님과의 대화가 끝난 후 중화당에서 휴식을 취하시던 월성스님이 직접 주지실로 나오셨다. 스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목숨을 내건 정진을 강조하셨다.
“옛날에는 조계 가풍에서도 염불은 기초수행에 들어갔습니다. 업연(業緣) 많은 중생은 머리를 깎아도 망상이 많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죠. 스스로의 아만심이 수행을 방해하기에, 잠 줄이며, 절하고 참회하면서 계행을 철저히 닦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근기를 갖추어 나가야 합니다.”
스님의 경험에 따르면 절은 망상을 제어하기에 좋다. 수천배를 하다보면 힘이 들어 망상이 들어올 여지가 없고, 저절로 하심(下心)이 된다. 월성 스님은 잠 안자기 위해 절을 했다고 할 정도로 수면욕을 굴복시키는데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잠만 들면 음욕이 발동하기 때문에 늘 깨어있으려는 마음에서 수마를 극복하고자 했다.
월성 스님이 19세 때에 수마(睡魔)를 조복시킨 인연담은 이러했다.
6·25 한국전쟁이 끝난 얼마 뒤, 18세의 나이에 군에 입대한 월성스님은 당시 훈련소에서 야간 근무 때 잠을 안 재우던 것이 습이 돼 잠을 자지 않게 되었다. 잠을 자면 북한군이 몰래 쳐들어와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긴박한 상황이었다. 참을 수 없이 졸음이 와 눈을 감을라치면 교관들이 입에 개구리를 물려 개구리가 오줌을 싸는 기압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93일간 훈련을 받으니 잠이 저절로 사라졌다고 한다.
“내가 3천배를 처음 시작할 때는 그래도 상(相)이 남아 못된 스님의 도포자락만 보아도 싫을 때가 있었지만, 1만2,000배 정진에 들어갔을 때는 무아지경에서 업장이 녹아내리는 걸 느꼈습니다. 눈은 아래를 보고 있어도, 등 뒤에서 엄청난 용광로와도 같은 불덩어리가 내 몸을 관통하더군요. 이 불구덩이가 지나갈 때 탐·진·치 삼독과 일체의 번뇌가 사라지고 평온한 마음이 찾아드는 걸 체험합니다. 여기서 혜안(慧眼)과 식(識)이 열리는 것이지요.”
1만2000배 기도는 5∼6년씩 3번에 걸쳐 했다. 100일씩 나눠 300일씩 하는 1만2000배 기도를 통해 망상을 제거하고 참회를 통해 업장을 소멸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1만2,000배 기도는 반야심경 222편, 천수경 121편 독송, 참회의 절 3천배, 신도를 위한 절 3천배로 진행되었다. 이 때 죽을 것처럼 수행하던 모습을 지켜본 신도들도 따라 열심히 수행했다 한다. 지금은 노인이 다 된 성관사의 신심 깊은 우바새·우바이들이다.
진리의 말씀을 믿고 행하며 깨닫는 참된 ‘기도’는 그대로 스스로를 정화시키고, 주변환경을 진리공덕으로 장엄하게 한다. 즉 제불보살에게 구하여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원만구족한 불·보살님의 마음으로 회복시키는 수행방편이다. 스님들이 용맹정진에 들기 전에 기한을 정해 기도에 드는 것도 이런 간절한 서원을 담고 있다. 재가자들도 매 순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무슨 일인들 못 이루랴.
월성 스님은 요즘도 깊은 잠에 들지 않는다. 20여분씩 잠깐 귀잠을 잘 뿐이다. 행·주·좌·와 어·묵·동·정은 물론 누워서도 숨소리를 들으며, 화두를 놓지 않는다. 이른바 보림의 과정이다. 옛 스님네들은 견성 이후에도 수행을 늦추지 않았다. 오랫동안 중생으로 살아온 습이 한 순간에 떨어져 나가긴 힘들기 때문이리라.
스님은 산사에 주석하면서 수좌들이 더많이 찾아와 배우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결국 배우는 일은 스스로 하는 것이기에, 애써 세간에 나서길 원치 않는다. 원력을 배워가는 것도 인연법이요, 스쳐가는 것도 인연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님에겐 동국대 불교학과 출신 10명 등 촉망받는 상좌들이 23명이나 있다. 스님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고 흐뭇해 하신다. 하지만 전생에 닦은 그러한 공덕으로 인해 행여 게으른 마음을 품을까 노심초사하고, 옛날 당신이 하신 것처럼 목숨을 내놓고 정진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스님은 최근 몇 년전까지 벌어진 조계종 분규와 스님들의 비리에 대해서 의외로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하셨다.
“조선조 500년의 암흑기를 지나 온 불교는 사회적으로 다시 걸음마 단계의 과도기를 겪고 있다. 그러나 끊임없는 법난과 종단 분규가 있었어도 한 생각 일으켜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도인들의 서원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 겉으로 잘 드러나진 않지만, 땅에서 받은 각자 인연법에 맞게 중생제도를 하고 있다. 이제는 출가하는 스님네들이 사회에서 대학교육까지 받고 들어오기 때문에 사회화는 앞으로 더욱 활발할 것이다. 지금 젊은 스님들이 중진급이 되는 10년후면 불교의 미래는 더욱 밝을 것이며, 종교간의 벽도 허물어질 것이다.”
스님은 불교를 제대로 알지 못하던 어릴 때부터 이웃을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요즘도 제자들에게 기도후에 세계평화와 인류평화, 조국평화통일, 국가재난 소멸, 국가 안녕과 태평, 육도중생의 성불을 발원할 것을 꼭 당부하고 있다. 평소 ‘중은 공인(公人)이다’고 강조해 온, 그 이유 때문이다.
남을 위한 기도는 결국 자신을 위한 기도요 수행이다. 이런 발원이 쌓여야만 보다 큰 그릇이 될 뿐만 아니라, 성취도 빠르다. 생전에 조국의 평화통일을 보는 것이 월성 스님의 서원이다.
“큰 공부 하느냐, 못하느냐 그건 자기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한 생을 던져서 해도 될까말까 한데 말입니다. 명예욕이 가장 큰 장애입니다. 자신 위해 살면 인간 마음 못 벗어납니다. 세계평화와 조국통일, 7,500만명이 삼세업장을 소멸하고 왕생극락하길 발원하는 것은 큰 공부를 하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 하나를 위해 산다면 나라는 누가 건집니까. 나를 위해 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불자들만이라도 남을 위해 살고 아상을 극복하도록 노력해 줬으면 해요.”
이는 철저히 윤회를 꿰뚫은 데서 나오는 말이다. 선정삼매에 들면 ‘나’라는 것을 찾을 길이 없다. 우주를 깰 수 있는 능력이 나온다. 법제자가 나오길 바라는 큰스님의 마음은 그래서 더욱 간절하다.
50세에 월성스님은 통도사 극락선원에서 화두정진에 들었다.
이때 선방에 든지 1주일 만에 첫 소식을, 한 달 하루 만에 화두가 완전 타파된 것이다. 21세부터 해인사로부터 통도사 봉암사 백양사 등 제방의 선원에서 정진한 후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한 지 30년 만에 얻은 감격적인 소식이었다.
월성 스님은 오랫동안 용맹정진을 한 이유를 땅에 말뚝을 박는 데 비유했다.
“말뚝을 땅에 박을 때 계속해서 크게 해머질을 할 수는 없습니다. 몇 번은 살살 두드리고 다시 힘을 모아서 크게 내려칠 때 말뚝은 땅 속으로 깊이 박히게 됩니다. 화두참구도 이와 같아서 평소의 정진에 의해서 얻어진 힘의 바탕 위에 용맹정진을 통하여 선정의 힘이 크게 증장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말뚝 박듯이 온 정성과 힘을 기울인다면 안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후 월성스님은 제방의 선지식들을 찾아가 깨달음의 경지를 나누었다. 후학들을 위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은 자애로운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이렇게 당부하셨다.
“세상은 같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남을 위한 미덕을 쌓고 각계각층이 화합하며 살아가되, 양심을 지키며 살면 됩니다. 부귀영화가 무슨 소용있습니까. 어떤 때 법문을 할 때 보면 지옥으로 끌려가는 중생들이 눈에 보여 눈시울이 뜨거울 때가 있습니다. 죄 짓지 말고, 자성을 밝히는 공부하며 사는 것이 인생을 가장 값지게 사는 일입니다.”
김재경 기자 jgkim@buddhapia.com
성관사 월성스님은?
20여년간 매일 3천배
후학양성 남다른 열정
1935년 충북 보은군 회북면에서 출생한 월성 스님은 53년 성운 노사를 은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오랜 기간의 염불선 정진을 기초로, 화두선 수행을 멋지게 마무리 한 선사이면서도 일반 신도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스님이다.
신도들에게는 자상하기만 한 할아버지 같은 월성스님은 24세부터 45세까지 매일 3천배 기도·염불 및 절하기로 용맹정진해 ‘득력하면 화두는 일주일만에 타파된다’는 수좌계의 정설을 몸으로 입증했다.
스님은 젊은 시절 전강 대선사로부터 ‘이 뭣고’ 화두를 받았지만, 본격적인 화두 참구는 염불선으로 득력한 후인 46세부터 본격화됐다. 스님의 ‘이 뭣고’ 화두 참구는 51세 때 통도사 극락선원에서 큰 결실을 맺었다. 이후 스님은 제자 양성을 위한 도량 건립 불사에 운력을 마다않고 정진하면서도, 잠시도 화두를 놓지 않고 있다.
현재는 서울, 남양주, 평택, 장수 등에 창건한 같은 이름의 사찰 ‘성관사’ 네 곳과 정중선원, 대각선원에서 수좌들을 지도하고 있다. 23명의 상좌가 있으며, 이중 10명이 동국대 불교학과 출신이다.
출처: 월간 <선문화>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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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발보리심 일향전념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 처사시절부터 인연이 잇으신 스님입니다 참 자비로운 스님 성한 번 내는 것을 못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인이 또 계셨군요.
나무아미타불
화심거사님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