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신앙길 (4) 하우현성당과 성 서 루도비꼬 성지
굽이굽이 산길… 숨어있는 십자가 찾기
여정 : 하우현성당 - 버스로 이동 - 한국학연구원 앞 정류장 - 성 서 루도비꼬 동굴 안내표지판 - 숲길 - 십자가의 길 - 성 서 루도비꼬 동굴(약 6km, 1시간 소요)
- 하우현성당의 사제관.
길은 수풀을 지나 산으로 뻗어 있었다. 수원교구 하우현성당을 출발, 청계산자락을 타고 서 루도비꼬 성인이 있는 둔토리 성지로 향하는 길. 지쳐가는 무릎을 디디며 땀으로 올라서는 그 길에서 산자락을 타고 쏜살같이 내려오는 바람을 만났다.
하우현성당의 안락함
걸음 걸음이 푸르다. 청계산 자락에 내려앉은듯한 하우현성당은 널따란 마당을 앞에 두고 높게 서 있다. 파란 지붕에 하얀 성당은 오래됐지만 고즈넉한 분위기와 역사를 두 손으로 안고 있는 듯하다.
성당 옆 한옥으로 지어진 사제관은 경기도 지정기념물 제176호다. 사제관 앞에는 “청계산과 광교산맥을 잇는 골짜기에 자리 잡은 하우현성당은 19세기 초반 천주교의 피난처로서 교우촌이 형성됐다가 1894년 왕림본당 2대 주임인 알릭스 신부와 하우현 교우들이 모금한 1500냥으로 초가 목조 강당 10칸으로 건축됐다”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사제관 뒤로 올라가는 산길을 통해 서 루도비꼬 성인 동굴에 당도할 수 있지만 산세가 험하고 2시간가량 걸리는 등산로이므로 성당 맞은편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한국학연구원 앞 정류장에 내린다.
서 루도비꼬 성인 동굴을 향해
- 성 서 루도비꼬 성지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
정류장을 건너면 부동산 사무실과 음식점이 있다. 그 길을 따라 왼쪽으로 올라가다보면 왼쪽으로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고 ‘성 서 루도비꼬 성지(국사봉 방향으로 등산로를 따라)’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표지판을 따라 접어들면 산으로 향하는 길이 펼쳐지는데 왼쪽으로는 물이 흐르고, 오른쪽으로는 돌이 무너질까 철망으로 꼭 묶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야트막한 짧은 콘크리트 다리를 지나 얼기설기 마련된 계단을 오르면 나무다리가 나타난다.
기분 좋은 산내음이 산자락을 타고 코끝을 탄다. 이번에는 세로로 묶인 통나무 계단을 만난다. 계단을 오르면 시원한 지하 통로가 나오는데 통로의 끝에는 ‘빛’이 보인다.
외곽순환도로를 달리는 차 소리가 씽씽 난다. 시멘트 계단을 오르고 다시 동그란 나무 계단을 오른다. 이 길을 걷다보면 저마다 다른 모양의 계단을 밟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계단들을 오르고 나면 이제 조금씩 가파른 등산로가 시작된다.
묘지를 왼쪽에 두고 계속해서 직진한다. 숲으로 들어갈수록 차 소리와 멀어진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도시에서 벗어나는 묘미가 이 맛이 아닌가 싶다. 등산을 처음 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힘든 길이다. 한참을 오르다보니 숨이 찰 때를 대비해 쉬어가라고 오른편에 어머니들이 ‘헛헛’소리를 내며 허리를 돌리는 운동기구와 의자, 평상 등이 놓여 있다.
사실 이 길은 뻗어있는 등산로를 향해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다만 경사가 높아 등산 초보자라면 자주 쉬어가야 한다.
- 산길에 있는 ‘십자가의 길’.
‘희망’이라는 이름의 십자가의 길
포기하고 싶을 때 ‘희망’은 나타난다. 길을 올라 지쳐갈 때쯤 ‘십자가의 길’이 나타난다.
한줄기 빛이다. 아멘.
사람의 인적이 드문 이 산길에 십자가가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따뜻한 위로와 함께 군데군데 박혀있다. 그동안 힘들게 디뎌 지친 무릎이 산자락의 경사와 맞물려 자연스럽게 십자가 앞에서 몸을 낮추게 한다.
경사 높은 산길에서 예수가 걸어간 ‘십자가의 길’은 대단한 위로와 용기가 된다. 예수가 넘어짐을 묵상하며, 베로니카가 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닦았음을 기억하며 한 걸음씩 성큼성큼 나아간다.
십자가의 길이 시작된다는 십자가와 14처, 길의 마지막을 알리는 십자가. 총 16개의 십자가를 지나치면 왼쪽으로는 국사봉을, 오른쪽으로는 서들산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만난다. 표지판에는 오른쪽으로 50m 걸어가 내리막길로 향하면 성 서 루도비꼬의 동굴이 나온다는 표지도 함께 세워져 있다.
- ‘서 루도비꼬 성인의 동굴’ 내부.
표지를 바라본 상태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좁은 내리막길이 나온다. 이때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조심하며, 옆에 묶인 흰 밧줄의 매듭을 잘 잡고 조심해서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면 작은 동굴 안 성모상과 예수상, 십자가, 촛대와 꽃 등이 놓인 작은 바위를 발견한다.
이곳이 ‘서 루도비꼬 성인의 동굴’이다. 1864년 고국 프랑스를 떠난 루도비꼬 신부는 1866년 2월 27일 이곳 둔토리에서 체포돼 3월 새남터에서 참수 당한다. 동굴은 서슬퍼런 박해를 피해 성인이 몸을 웅크렸던 은신처다.
죽음을 무릅쓰고 조선 땅에 들어와 복음의 씨앗을 떨어뜨리기 위해 열정을 바치고, 2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체포돼 극한의 공포를 느꼈을 그의 모습이 동굴 안에서 교차한다.
오른쪽으로는 동굴을 뿌리째 잡고 있는 단풍나무가 자라고 있고, 루도비꼬 성인을 기념하는 비석과 작은 표지가 함께 놓여 있다. 동굴 앞에는 제대처럼 평평한 바위가 등을 대고 누워 있다. 기도를 하고, 다시 돌아간다.
[가톨릭신문, 2010년 5월 30일, 오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