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기기묘묘한 바위가 사천왕처럼 보이는 대암산 | | ⓒ2004 이종찬 | | 영국 최고의 등반가 조지 말로리(1886~1924)는 "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른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지구촌의 용머리 에베레스트에 올랐다가 그대로 산이 되었다.
말로리는 세 번에 걸쳐 에베레스트에 도전을 했다. 그 세 번째 도전에서 그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사실, 그때 그가 사람으로서는 가장 먼저 에베레스트 꼭대기를 밟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거기 있어 나를 오른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내 심상의 산꼭대기 아스라한 절벽을 딛고 우뚝 서 있는 바위마다 그 말을 새겨놓고 싶다. 그 바위에 올망졸망 붙어 긴 세월을 씨줄 날줄로 바느질하고 있는 돌꽃처럼. 왜냐하면 저마다 애써 오르는 그 산꼭대기를 처음 밟는 사람은 곧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쁜 숨을 헐떡이며 산을 오를 때마다 문득 문득 내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이 나를 오르고 있다는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곧 내가 이 세상 위에 솟아나 끊임없이 가라앉았다 떠오르는 산이며, 저만치 서 있는 산이 곧 나에게 잠시도 쉴틈없이 '어여와 어여와' 손짓하는 이 세상의 아스라한 길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댔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 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이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 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봐
지구처럼 부동(不動)의 자세로 떠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 좋게 엎대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神)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산은 한 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고산(高山)도 되고 명산(名山)도 된다.
산은 언제나 기슭에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니고 산다.
- 김광섭 '산' 모두
11월 마지막 토요일(27일) 오전 10시, 이산 김광섭(1905∼1977) 시인의 시 '산'을 나즉히 읊조리며 대암산(667m, 창원시 사파동)에 올랐다. 대암산은 내가 어릴 적 겨울방학이 되면 이른 새벽 고구마 도시락을 싸들고 나무를 하러 다니던 산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대암산으로 올라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어린 날의 추억 속에 퐁당퐁당 빠지곤 한다.
| | ▲ 대암산 곳곳에는 아직 가을빛이 묻어 있다 | | ⓒ2004 이종찬 | |
| | ▲ 산마루로 오르기 위해서는 비좁은 바위 틈새를 수없이 지나야 한다. | | ⓒ2004 이종찬 | | 멀리서 바라보면 언제나 긴 그림자로 다가와 사람들의 그림자마저 묻어버리는 산. 가까이 다가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깊은 계곡 속으로 포옥 숨어버리는 산. 가슴에 품으려 땀방울을 훔치며 올라갈수록 자꾸만 저만치 달아나는 산. 네 계절을 가장 먼저 품는 산.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리고 있는 산. 그런 산이 바로 대암산이다.
대암산을 오르는 길은 두 가지다. 산을 즐기면서 느긋하게 오르려면 창원법원 옆 동성아파트 뒤에 펼쳐진 다랑이논과 밭 사이에 쭈욱 뻗은 길을 따라 비음산(486m) 길빗대로 오르다가 산등성에서 오른 편으로 꺾어지면 된다. 마음이 바쁜 사람들은 창원법원을 지나 대방동에서 내려 대방그린빌아파트와 디지탈아파트 뒤에 나 있는 등산길을 따라가는 것이 좋다.
그날 나는 산길 곳곳에 어릴 적 추억이 소롯히 묻어 있는 비음산의 갈빗대를 타고 천천히 대암산으로 올랐다. 느긋하게 산을 즐기고도 싶었지만 무엇보다도 눈앞에 '별똥'(보리수 열매)이 어른거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들은 나무를 하러 오갈 때마디 그곳에 지게를 벗어놓고 가쁜 숨을 고르며 보리수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빠알간 '별똥'을 참으로 많이 따먹었다.
지난 해 이맘때 작은딸 빛나를 데리고 그곳에 갔을 때에도 동굴을 이룬 보리수 나무 가지에는 빠알간 '별똥'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때 처음 '별똥'맛을 본 빛나는 일요일만 되면 내게 비음산에 별똥 따먹으러 가자고 졸라대기도 했다. 그때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별똥'을 따고 있는 내게 다가와 눈빛을 번득이며 '그것도 먹는 거냐?"고 묻기도 했었다.
"그게 뭐죠?"
"별똥이랍니다."
"별똥요?"
"그럼요. 맛도 달착지근하고 좋지만 몸에도 아주 좋답니다. 장이 안 좋은 사람들은 이 열매를 따서 술을 담궈먹어도 좋고, 설사와 기침에도 그만이랍니다."
비음산으로 오르는 산길 곳곳에도 초겨울 내음이 물씬 풍겨난다. 나뭇잎을 거의 다 떨군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새파란 하늘이 바람처럼 숭숭 새어나오고 있다. 갈빛 낙엽이 수북히 쌓인 계곡에서는 등에 까만 줄이 그인 다람쥐 한 마리가 입을 옹송거리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카메라를 슬며시 꺼내들고 사진을 찍으려 하자 이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 | ▲ 기기묘묘한 형상의 한 바위에 촘촘촘 붙은 부처손 | | ⓒ2004 이종찬 | |
| | ▲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문 | | ⓒ2004 이종찬 | | 비음산 가슴팍에 오르자 이마를 스치는 바람이 제법 차다. 땀방울을 훔치며 조금 더 오르자 저만치 빼곡한 보리수 나무가 자연동굴을 만들어놓고 있다. 근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빠알간 '별똥'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콩알보다 더 작은 새파란 열매조차도 하나 없다. 어찌된 셈일까. 올해는 태풍도 불지 않았는데.
아뿔싸! 지난 해에 지나치는 등산객에게 '별똥'이 몸에 좋은 거라고 했더니, 그새 씨알까지 다 훑어버린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어린 열매 하나조차도 보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보리수 가지를 자세히 바라보니 여기저기 긁히고 부러진 흔적이 또렷하다. 누군가 보리수 열매를 가지째 훑어낸 것이 분명하다.
개똥도 약이라고 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겨든다더니. 하여튼 정말 무서운 것이 사람이다. 쯧쯧쯧 소리가 절로 나오면서 갑자기 입이 쓰다. 보리수 나무에서 빠알간 '별똥' 서너 개 따먹으며 잠시나마 어릴 적 추억에 잠겨보려 했는데, 그마저도 어렵게 되고 말았다. 갑자기 서글퍼진다.
비음산과 대암산을 가르는 산마루에 올라서자 두 갈래 길이 부채살처럼 쫘악 펼쳐지면서 김해의 들판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이곳에서 왼쪽이 비음산이며, 오른쪽이 대암산 꼭대기로 올라가는 길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등산길이다. 등산화 끈을 다시 고쳐매고 느슨한 혁대도 다시 조여맨다.
대암산 꼭대기로 올라가는 등산길은 온통 위태로운 바위투성이다. 바위 틈새 곳곳에 휘영청 걸린 하얀 밧줄이 사람의 속된 마음을 말리는 빨랫줄처럼 보인다. 금방이라도 와르르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위태로운 바위 곳곳에는 새파란 부처손이 돌꽃을 피우며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래. 저 부처손도 항암작용에 탁월한 약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함부로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 혹 사진을 찍고 있는 내게 지나치는 등산객이 '저게 무어냐?'고 물어도 '바위에 낀 이끼겠지요'라고만 말해야 한다. 자칫했다간 저 부처손도 보리수 나무의 별똥처럼 씨를 말려버릴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 | ▲ 마치 어마어마한 벅수처럼 산마루에 우뚝 서 있는 바위, 나는 이 바위를 '벅수바위'라고 이름 지었다 | | ⓒ2004 이종찬 | |
| | ▲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을 한 이 바위를 나는 '소원바위'라고 부르기로 했다 | | ⓒ2004 이종찬 | | 아니, 부처손을 채취하기 위해 등산객들이 저 위태로운 바위를 타고 오르다가 자칫 잘못하여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좀더 오래 살려고 발버둥치다가 스스로 제 명을 일찌감치 끊어버리는 슬픈 일이 생기지 않겠는가. 게다가 저 삐쭉뾰쪽 아름다운 바위가 얼마나 몸살을 앓겠는가.
부처손이 촘촘촘 붙어 있는 바위 절벽 사이를 지나자 이번에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틈새처럼 비좁은 하늘을 문 두 개의 바위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 아스라한 바위벽을 지나자 갑자기 바람이 몹시 거세게 불어온다. 여기가 대암산 산마루다. 여기서부터 스모그에 잠겨있는 창원시와 확 트인 김해 들판을 번갈아 바라보며 30여 분 더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대암산 꼭대기에 닿게 된다.
대암산 꼭대기로 가는 산마루 비좁은 산길 곳곳에도 온통 삐쭉뾰쪽한 바위가 마치 사천왕처럼 우뚝우뚝 서 있다. 그 곁에는 손으로 밀면 금세 흔들거릴 것만 같은 동그란 바위가 반듯한 바위 위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모습도 보인다. 아스라한 절벽을 딛고 선 바위에 모진 뿌리를 내린 소나무도 몇 그루 보인다.
저만치 산마루에 우뚝 서서 긴 세월 비와 눈바람에 시달리다 그대로 늙어 죽은 노송 한 그루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저만치 아스라이 바라다 보이는 창원 시가지는 뿌연 스모그에 잠겨 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자 비닐 하우스가 듬성듬성 놓인 텅 빈 김해들판이 겨울맞이를 서두르고 있다.
해와 달을 품고 있는 대암산. 내가 어릴 적에는 대암산 산마루에서 해가 떠올랐다. 대암산에서 떠오른 해가 마산쪽 하늘로 기울고 우리 마을에 어스럼이 깔려올 때면 대암산은 기다렸다는 듯이 호박처럼 누우런 보름달을 밀어올렸다. 마을 어머니들은 이곳 대암산에서 해가 떠오를 때마다 달이 떠오를 때마다 소원을 빌었다. 마을 공동우물에서 금방 떠낸 그 맑은 물 한 대접을 떠놓은 채.
| | ▲ 손으로 밀면 금세 끄떡끄덕 고개 숙이며 흔들릴 듯 | | ⓒ2004 이종찬 | |
| | ▲ 대암산 산마루에 우뚝 선 고사목 | | ⓒ2004 이종찬 | | 그래. 어릴 적 나는 마음이 시릴 때마다 이곳 대암산을 바라보며 해와 달을 품었다. 대암산은 이 세상을 골고루 비추는 해와 달을 떠올리는 산이었다. 이른 새벽이면 밤을 달구던 달이 돌아와 깊은 잠이 드는 산이었다. 노을이 아름답게 깔리는 저녁이면 이 세상을 달구던 해가 이곳 대암산의 품에 안겨 코를 골았다.
나는 대암산 산마루에서 내 몸을 발갛게 달구는 아름다운 해를 보았다. 대암산 깊은 계곡마다 내 마음을 노랗게 달구며 소롯히 잠든 곱디 고운 달을 보았다. 대암산 곳곳에 삐쭉뾰쭉 솟아난 기기묘묘한 바위에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사천왕을 보았다. 그리고 해와 달을 가슴에 품고 사람이 사는 마을로 천천히 내려오는 대암산의 긴 그림자를 오래 오래 바라보았다.
| | ▲ 내가 '미륵 삼존'이라고 이름 붙인 바위 | | ⓒ2004 이종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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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