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 1일 안스테르담도 진짜 맑음.
내 나이 서른이 되기전 어릴적 소망인 유럽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이런 배낭 여행은 가지 못할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이가 더들어 인격이라는 배가 나와서 편안히 갈수 있는 여행은 할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생각 났을때 떠나자. 잘 다니던 회사를 혼자 관두지는 않았다.히히히. 처음 부터 마음이 맞아 여행을 가기로 약속한 내 직장 매니저 정남이와 여행가자고 열라 꼬드겨 놓아서 뒤늦게 합류하게된 된 짱주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치만 나는 아줌마라는 본분을 망각한 괘씸죄에 걸려 결국은 둘만 먼저 떠나 보내는 슬픔을 겪어야 했으니...이 무슨 험난하고도 슬픈 운명의 주인공 이란 말인~가. 쑈 하네.
오늘 암스테르담에 짱주랑 정내미가 나를 마중 나오기로 했겄다. 그야말로 40말만의 눈물의 상봉인 셈인데 어떤 근사한 말로 이것들을 감동시켜줄까? 입국심사나 제대로 하셔요.
맞다. 나를 기다리는 것은 친구들 뿐만이 아니라 그 무섭기로 소문난 입국심사관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걱정마 까다롭기로 소문난 영국 입국심사관 만큼 물어 보겠어. 그리고 어차피 물어보는건 똑같은데 머리속에 달달 외워 버렸거든. 화이팅!
입국 심사 받기전 그 짧은 시간에도 내 머리속은 지금 싸우고 있는 중이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의 햄릿이 아니라 착하게 보이는 첫번째 심사관한테로 갈것인가, 아님 한성깔 하게 생겼지만 조각같이 생긴 맨 오른쪽 저 사람한테로 갈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줄이야 어느쪽이 길건 말건 내 알바 아니다. 꽃미남한테 가. 어 어디선가 천사님의 목소리가 나를 인도 해주고 있어요. ㅎㅎㅎ
내 차례가 되었다. 아싸 가까이서 속눈썹을 볼수 있겠네. 으메 좋은거.자신있게 웃으며 여권을 내밀었다. 젠장 그럼 그렇지. 외운다고 외웠는데 내가 외운 순서대로 안물어보고 이것저것 섞어 가며 그것도 빠른 영어로 물어보니 머리속 회로들이 제다 감겨 버렸다. 지지지직. 아니 저렇게 잘생긴 얼굴로 찡그리다니...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모두가 힘들잖아요. 겉으로 웃고는 있지만 나도 힘들다고요. 답답한 심사관이 한마디 한다. 그 한마디만 똑바로 들을수 있었다. "돌아갈 비행기표 보여주세요. " 비행기표 보여주고 무사통과. 무시하는것 같지만 상관없다. 오늘 부터 나의 여행은 그렇게 찬란하게 시작될텐데 이깟일로 기죽을 필요 없다. 살다보면 이보다 심한 일이 얼마나 더 많은데 음하하하.
배낭 찾는 곳에서 어제 그 노부부 두쌍을 보았다. 혹시 나처럼 게이트 잘못알고 못 타신건 아닌지 그렇다면 안되는 영어로 얼마나 힘들게 사정을 얘기하실까 속으로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여기서 보게 되니까 괜한 걱정이었나 싶다. 근데 나는 왜 저분들이 영어를 못할꺼라 생각하지. 바보.
"선영언니~" "정내마~" 근사한 말,근사한 말을 찾아. "짱주 요년은 어디가고 너 혼자 마중이야?" 이게 아닌데. 내 입은 내 정신과는 따로 노는게 불가항력적인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게 분명하다. 화장실에서 나온 짱주랑 셋이 부등켜 안고 상봉한 우리는 우선 유스호스텔부터 가기로 했다. 공항에서 중앙역까지 가는 차비 3.1유로는 나를 환영하는 의미로 둘이 알아서 반반씩 내라고 나는 막가파로 우겨 버렸다.
이놈의 배낭이 또 문제다. 벌써부터 중앙역에서 조르단 지구에 있는 쉴터 유스호스텔까지 가는 길이 멀고 힘들다. 말도 안되지만 나에게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신 그 길보다 내 배낭과 유스호스텔까지 걸어갈 이 거리가 더 힘들게만 보인다. 그럴리가...
처음으로 유스호스텔이란걸 겪어봐서 인지 나는 너무 신기하기만 하다. 그런 나에게 몇 번 겪어본 짱주는 촌스럽다고 한다. 한국의 콘도라고 해야하나.뭐 별반 다를것도 없지만 기냥 설레인다. 거기다 리셉션에 있는 남자애가 팀로빈슨을 살짝 눌러 놓으것 같은 모습이라 더욱더 설레인다.
제일 먼저 가기로 한곳은 역시 반고흐 박물관. 쩌~억 그림을 잘 못그리는 난 사실 미술관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반 고흐라는 참 평범하지 않은 그 인물에게는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다. 모르겠으면 눈을 감고 그냥 느껴 보는거야. 나에게 말을 해보지만 자꾸 실눈이 떠진다. 하하 나에게는 오히려 고흐의 많은 미술작품보다는 동생 테오에게 썼다는 그 편지의 문구들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미술관에서 나와서 바로 입구에 있는 핫도그 가게에서 핫도그와 음료수를 사먹었다. 3유로 치곤 꽤 먹을만 했다. 단 겨자소스를 너무 많이 넣어 버리는 바람에 많이 매웠다.
하이네켄 하이네켄 하이네켄 가자. 점심에 가려고 했지만 혹시 낮술 먹으면 애미 애비도 몰라본다는 그 낮술의 위력에 눌릴까봐 오후에 가기로 했다. 이제 오후니까 가버리자. 셋다 술이라면 양잿물도 먹어버릴 정도로 좋아한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자체 맥주인 하이네켄의 양조 과정이며 맥주의 원료, 병의 모양등 역시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군. 그리고 그곳에서 먹는 맥주 맛도 가히 환상적이다. 세잔으로 모자라. ㅠ.ㅠ. 홀작홀짝 아껴먹고 있는데 패키지로 놀러온 한국 여행객 애들이 착하게시리 자기들은 술을 잘 먹지 못한다며 쿠폰을 주고 갔다. 아~ 뵹 정으로 뭉친 대한민국 만만세.
술 먹었으니 섹스 박물관 가자고 애덜을 살살 구슬렸다. 여행 준비하면서 나는 섹스 박물관이 제일 궁금했다. 그려 나 아줌마 맞어. 그래서 암스테르담에 오면 꼭 가자고 지대한 관심을 보였지만 둘은 별 반응이 없다. 막상 오고 나니까 왠지 내가 더 들어가기가 뻘줌하다. 성큼 들어가는 둘을 따라 들어 갔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 인지 유치하다. 어렸을때라면 있는 호들갑 다 떨었겠지만 아줌마인 내 눈에 별 다르게 보일건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처음에 내키지 않아 했던 짱주는 사뭇 신기한가 보다. 큭큭큭 어린것.
내일은 독일로 가야되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하기 위해 우리는 중앙역으로 간다. 인포에서 번호표 뽑고 밖의 벤취에 앉아 있는데 인포에 있는 잘생긴 외국남자애랑 자꾸 눈이 마주친다. 오잉 남자애가 들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정내미는 책을 보느라 짱주는 눈감고 자고 있는데 그럼 나한테 그런는건가. 아직은 준비가...ㅋㅋㅋ 정내미가 들어 가더니 갑자기 괴성을 질렀다. 짱주랑 나는 무슨일이 생겼을까봐 놀라서 뛰어 들어갔다. 정내미 말로는 인포의 남자애가 한국말을 한다는 거다. 정말 정말 우리 셋은 난리가 났다. 신기하게 한국책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그남자에의 이름은 스바시티안 우리나라 발음으로는 나가있어의 주인공 세바스찬이다. 거기다 싸이홈피도 적어 줬다. 나중에 여행 끝나면 들어와보라고... 꼭 그렇겠노라고 다짐하고 우리는 중앙역을 나왔다.
잘생겼다. 모두들 아쉬워 하는 눈치다. 하긴 낯선 이국에서 우리말을 하는 외국인을 만난다면 얼마나 신기하겠는가? 누가 먼저라고 할것도 없다. 우린 이렇게 끝나기는 아쉽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로 술 한잔 같이 하자는 말을 하기로 했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짱주년은 스바가 별로 좋지 않다며 자기는 싫다고 한다. 제일 신난 정내미는 갑자기 쑥스럽다고 하고 그러면서 화살은 나에게 날아온다. "언니는 아줌마잖아" 아니 이 잡것들이 아줌마는 무슨 천하무적 인줄 안다. 사실 나도 스바가 싫지는 않고 상당히 좋다. 못 이기는척 내가 희생해주는 셈치고 중앙역으로 다시 들어 갔다. "스바 시간 있어요?" "저 공부하러 가야 돼요. 한국어 공부" "아 그럼" 괜히 말했다. 쑥스럽네. 뒤돌아서 가려고 하는순간 "왜 그러는데요?" "아니 시간 되면 우리랑 술한잔 먹자고요" 두근두근 결정의 시간~ "나 9시 몇분에 끝나는데 역 앞에서 기다릴래요?" "넵" 우린 신이 났다. 스바를 기다리는 시간이 즐겁다. 머리 만지고 화장 고치고 왜 그러는건데? ㅎㅎㅎ
배가 고팠는지 스바는 쇠고기 튀김을 우리것 까지 4개나 사왔다. 짱주랑 나랑은 배가 안고파서 나눠먹기로 했는데 맛이 상당히 특이하다. 한국인 입맛에는 별로인듯 조금 느끼하다. 짱주가 맛없다고 퉤퉤 거렸다. 스바가 알아들었는지 맛이 없냐고 묻는다. 아니 맛이 특이해서 짱주가 저러는 거라고 얼버무렸다. 휴우~ 스바랑 우리 셋은 같이 말로만 듣던 홍등가를 거쳐 바에 들어가서 맥주를 시켰다. 스바에 대해 우리에 대해 너무 너무 즐거웠다. 많은 시간을 같이 하지 않아도 알수 있는 좋은 느낌 그것이 스바가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스바의 차시간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 넷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인지 이밤이 멈춰버렸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초대한 자리라 당연히 술값을 내려고 하는데 스바가 먼저 다 계산을 해버렸다. 미안 스바. 그리고 고마워. 더치라는 말은 네덜란드에서부터 나온 말이라던데 모든 네덜란드인이 다 그런것은 아닌가보다. 여기서 또 알게 된다. 한국에 돌아가면 편견을 버려야지. 모두가 다 그런것은 아니라는 생각 꼭 소중히 싸 놓았다가 가지고 가 클라라 알았지?
왜 영화를 보면 역에서 헤어지는 연인들의 장면이 많은지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친한 친구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뭐라 표현할수 없을정도로 아쉽다. 스바도 우리와 같은 생각인지 멘헤델인 스바네 집에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따라가고 싶은 맘은 굴뚝같은데 우린 내일 일정도 있고 특히 난 유레일도 개시를 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수 없다고 대답했다. 정내미가 두손을 눈으로 갔다 대면서 우는 흉내를 내니까 스바는 그 답례로 기차안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눈,코, 입 스마일 웃는 얼굴을 그려준다.
참 그리고 정내미랑 나는 스바에게 하트를 날렸다.
미친것들~
이상하다. 여행에서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빨리 친해질까? 서로의 있는 진심 모두를 내 비추고 사귀어서 일까? 네덜란드라는 나라가 튜율립으로 안네프랑크로 이어져 히딩크의 나라에서 이제는 내 소중한 친구 스바시티안의 나라로 불려지게 될것 같다. 불교의 윤회설처럼 너랑 우리가 인연이 닿는다면 다시 만날수 있을꺼야. 스바 그때까지 몸건강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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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소설을 읽은 느낌입니다.. 마치 무슨 사건이 일어날지 모르는 절정을 향하여 한걸음씩 내딧는 그 기분입니다.
스바는 저도 만났었죠...기차 시간때문에 많은 얘기도 못하고 추억도 만들지 못했지만 다시 본다면 꼭 친해지고 싶은 친구더군요.. 한국 팬들에게는 바스라고 불려여~~얼마후에 설 온다고 합디다~그럼 아점마 만나실지도 모르겠네요..좋으시겟어요..ㅎㅎ
아..정말 뭔가..뭉클하네요..저도 얼른 가고 싶어요..ㅜ.ㅜ
오~ 네델란드에서 만난 인연을 ㅎ한국에서까지.^^
스바가 유명한가요... 아는 분들이 많으신듯 ㅋㅋㅋㅋ 멋쪄요~쿨라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