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종 주교 삶과 신앙
| ▲ 1978년 세례식 후 기념사진. 앞줄 오른쪽 세 번째가 문희종 주교다. 문희종 주교 제공 |
| ▲ 1994년 1월 사제서품식에서 문희종 주교가 초를 들고 있다. 문희종 주교 제공 |
| ▲ 고교 시절 성모의 밤 행사를 하고 있는 문희종 주교 모습(맨 오른쪽). |
| ▲ 7월 24일 수원교구청에서 사진촬영 중 이성효 주교가 문 주교의 주케토를 매만져주고 있다. 임영선 기자 |
| ▲ 7월 26일 교중미사 후 문희종 주교가 본오동본당 신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임영선 기자 |
“희종이는 이다음에 신부님이 되면 참 좋을 것 같아.”
1979년 어느 날, 당시 평택 효명중ㆍ고등학교에서 교목을 담당했던 장명희(콘솔시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는 평소 눈여겨보던 문희종 학생에게 넌지시 마음을 내비쳤다. 장 수녀의 권유에 그는 두말없이 “네. 그렇게 할게요”하고 사제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중학교 2학년 되던 해였다. 그때 장 수녀가 사제의 길을 권했던 또 한 명의 학생도 사제(예수고난회 신동호 신부)가 됐다.
가톨릭학생회 활동 열심히 하며 성소 키워
효명고에 진학한 그는 가톨릭학생회에서 활동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사제의 꿈을 접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문 주교는 “그때 수녀님의 한 마디가 사제의 꿈을 키우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장 수녀는 “학교 생활, 종교부 활동을 워낙 성실하게 열심히 해서 신부님이 되라고 권했다”고 말했다.
문 주교는 1966년 평택에서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문 주교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천주교 신자였던 큰할아버지의 권유로 온 가족이 입교했다. 가장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던 할머니(정언년 로사, 선종)는 매일 저녁 온 가족을 모아 놓고 기도를 이끌었다. 묵주기도 5단, 성인 호칭 기도, 가정을 위한 기도 등 갖가지 기도를 다 바치면 1시간 30분이 훌쩍 넘었다.
저녁기도를 바친 다음 날이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용돈을 쥐여줬다. 기도에 지친 문 주교가 가끔 저녁기도를 빼먹으면 할머니는 “쟤는 저녁기도도 안 하는 녀석”이라고 온종일 들볶았다. 기도를 안 하고는 못 배길 상황이었다. 그렇게 매일 기도를 바치면서 서서히 신앙이 스며들었다.
어머니 김유식(헬레나, 2010년 선종)씨는 문 주교에게 항상 “거만하게 행동하지 말고 겸손해라. 동네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잘하라”고 이야기하며 인성을 길러줬다.
고교 시절에는 가톨릭학생회에서 활동했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친구 이기태(대건 안드레아)씨는 “항상 반듯하고, 얌전하고, 공부 잘하고, 바른 생활을 하는 모습만 보여서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이 ‘색시’, ‘문 신부님’이었다”고 말했다. 중3ㆍ고1 때 담임교사였던 이향환(율리아나)씨는 “겸손하고 맑고 예의 바른 아이였지만 조용한 카리스마로 학생들을 통솔해 아이들이 잘 따랐다”고 기억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가족들에게 “신학교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할머니는 예상했던 대로 대찬성이었다. 아버지 문두식(스테파노, 2007년 선종)씨는 드러내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은근히 ‘반대’의 뜻을 내비쳤고, 어머니는 “네가 알아서 잘 판단하라”며 문 주교에게 맡겼다. 결국, 할머니의 적극적인 지지에 힘입어 1984년에 개교한 수원가톨릭대의 첫 입학생이 됐다.
신학교에서도 ‘바른 생활’은 계속됐다. 특히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 평판이 좋았다. 서품 동기 이근덕(수원교구 복음화국장) 신부는 “동기ㆍ선후배들을 하도 꼼꼼하게 잘 챙겨서 별명이 ‘성모회장님’이었다”고 말했다.
1994년 사제품을 받은 후 3년 만에 팽성본당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2년간 사목을 하면서 장 수녀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성소 발굴에 힘썼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최광호(상현동 보좌)ㆍ임재혁(중앙 보좌)ㆍ이규성(분당성요한 제2보좌) 신부에게 “나중에 신부님이 돼라”고 권유하며 각별한 관심을 쏟았고, 세 사람은 2013년 함께 사제품을 받았다.
화내는 법이 없어
2001년 교황청 성 안셀모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전례학 석사 학위를 받고 2006년 귀국해 교구 복음화국장으로 부임했다. 교구청 사제ㆍ직원들은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화를 내신 적이 없고, 기쁘게 맡은 역할을 해내셨다”고 입을 모았다. 교구 총대리 이성효 주교는 “문 주교는 어떤 사람이라도 짜증이 날법한 상황에서도 짜증을 내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을 보듬어준다”고 말했다.
지난해 본오동본당 부임 후에는 청소년과 어르신들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었다. 미사가 끝나면 성당 앞에서 신자들을 배웅하며 아이들에게는 간식을 선물했다. 거의 모든 청소년 이름을 외우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몇 달 전에는 자살을 결심했던 노숙인의 마음을 돌린 일도 있다. 고해성사를 마친 후 한 노숙인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고해하고 싶어 신부님을 찾아왔다”고 말했고, 문 주교는 약간의 돈을 쥐여주며 “이 돈으로 일단 밥을 사 먹고, 머리를 자르고, 목욕하고 내일 아침 다시 만나자”며 노숙인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그날 저녁 백방으로 직업훈련소를 알아본 문 주교는 다시 찾아온 노숙인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줬다. 문 주교의 설득에 마음을 돌리고 새 삶을 살고 있는 그 노숙인은 지금도 매달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 “신부님은 나를 살려주신 은인”이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약력 1966년 8월 26일 경기도 평택 출생 1994년 1월 21일 사제 수품 1993~1997년 수원교구 비산동ㆍ철산·호계동 보좌 1997~1999년 팽성 주임 1999~2001년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2001~2006년 교황청 성 안셀모 대학 (전례학 석사) 2006~2014년 수원교구 복음화국장 2006~현재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2014~현재 수원교구 본오동 주임 2015년 7월 23일 수원 보좌 주교 임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