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들지 않는 땅 위를 각반 찬 농부가 성큼 걷는다. 부풀어 오른 허벅지 근육 때문에 청색 바지가 헐렁하지 않다. 왼 어깨에 씨앗 주머니를 메고, 오른팔을 쭉 뻗어 씨앗을 흩뿌리고 있다. 숨이 가쁜지 농부의 입은 반쯤 벌어졌고 윗입술엔 하얀 버캐가 폈다. 급하고 빠른 걸음으로 내리막 비탈을 걸으며 씨앗을 뿌린 게다.
눈 뭉치듯 씨앗을 뭉쳐 쥐고 어딘가를 향해 투석하듯 파종하는데, 씨앗을 쥔 오른손 위에 까마귀 떼가 점점이 날고 있다. 까마귀 떼가 떨어진 씨앗을 쪼아대며 농부를 따라다니는 성싶다. “뿌릴 새…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마 13:4). 빛도 들지 않고 비탈진데다 까마귀 떼가 날아다니는 땅에 농부가 씨를 뿌린다. ‘좋은 땅’이 아니다.
그림 우측 가운데 멀리엔 환한 빛이 풍성하다. 엉덩이뼈가 단단한 소 두 마리가 쟁기를 끌며 밭을 갈아엎고, 상체를 뒤로 젖힌 농부는 흰 셔츠에 조끼를 입었다. 땅은 평평하고 환한 빛 때문인지, 높이 나는 까마귀들이 접근하지 못한다. 쟁기가 갈아엎은 포실포실한 땅을 뒤따라 걸으면 푹신푹신하겠다. ‘좋은 땅’이다.
밀레(Jean-Franois Millet, 1814-1875)는 빛 들어 환하고 소가 땅을 가는 평평한 땅에 시선을 두지 않고, 빛 들지 않는 비탈진 땅을 주시한다. 그냥 걷기에도 울퉁불퉁하고 듬성듬성 돌부리가 드러난 땅을 걸으며 씨 뿌리는 사람을, 밀레는 당겨 그렸다. 입은 옷을 홍색과 청색으로 칠해 주었다. 도상학(Iconography)에서 홍색은 사도 요한을, 청색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한다. 볕이 들지 않는 내리막 언덕을 걸으며 암울한 표정으로 씨 뿌리는 사람에게 성인과 성모의 지위를 부여한다.
환한 평지에서 밭을 가는 이를 주인공 삼지 않고, 어두운 비탈에서 씨 뿌리는 이를 주인공 삼은 것이다. 밀레에겐 빛 들지 않는 내리막 땅으로 걷는 이가 빛이다. 하얗게 버캐 피도록 내쉬는 가쁜 숨이 척박한 땅과 떨어진 씨앗에 생기가 될 것이다. 어쩌면 까마귀에게 빼앗길 줄 알고도 씨 뿌리는 사람이 성인일 터다.
팔레스티나에선 씨를 뿌릴 때, 땅을 갈아 엎기 전에 그냥 맨땅에다가 먼저 씨를 뿌리고 그 다음에 갈아엎어서 묻는다고 한다. 씨 뿌리기에 ‘좋은 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씨를 뿌린 후 갈아엎으면 ‘좋은 땅’이 된다. ‘좋은 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듯, 좋은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딱딱하고, 가시덤불 가득하고, 돌이 박혀 있는 사람이라도, 그 속에서 말씀이 씨앗 된 후 갈아엎어지면 열매 맺는 사람이 된다.
땅을 갈아엎자면 괭이에 땅이 찍혀야 한다. 딱딱한 게 포실포실해지고 가시덤불을 뽑고 돌을 파내려면, 괭이에 땅이 아파야 한다. 아픈 땅 위로, 초록 줄기가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