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 이야기
(호두 이야기 1)
소녀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소년은 혼잣속으로 소녀가 이사를 간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어 보았다. 무어 그리 안타까울 것도 서러울 것도 없었다. 그렇건만 소년은 지금 자기가 씹고 있는 대추알의 단맛을 모르고 있었다.
이 날 밤 소년은 몰래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 밭으로 갔다. 낮에 봐 두었던 나무로 올라갔다. 그리고 봐 두었던 가지를 향해 작대기를 내리쳤다. 호두송이 떨어지는 소리가 별나게 크게 들렸다. 가슴이 선뜩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굵은 호두야 많이 떨어져라 많이 떨어져라 저도 모를 힘에 이끌려 마구 작대기를 내리치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열이틀 달이 지우는 그늘만 골라 디뎠다. 그늘의 고마움을 처음 느꼈다.
불룩한 주머니를 어루만졌다. 호두송이를 맨손으로 깠다가는 옴이 오르기 쉽다는 말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근동에서 제일가는 이 덕쇠 할아버지네 호두를 어서 소녀에게 맛보여야 한다는 생각만이 앞섰다.
그러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더러 병이 좀 낫거들랑 이사 가기 전에 한 번 개울가로 나와 달라는 말을 못해 둔 것이었다. 바보 같은 것 바보 같은 것.
(황순원 단편소설 ‘소나기’ 부분)
(호두 이야기 2)
천안의 명물인 호두로 만든 호두과자는 현재 여러 곳에서 생산되고 있지만 향토 지적 재산鄕土知的財産으로서 천안의 자긍심이며 천안의 자랑거리로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호두에는 많은 양의 지방과 질 좋은 단백질, 그리고 비타민 B1, 인, 칼슘이 들어 있다. 천안 주변에서 생산되는 흰 팥은 향미가 매우 독특한데, 이것의 껍질을 여러 번 벗기고 곱게 앙금을 내어 사용한다.호두과자는 고소하고 은은한 호두의 향과 맛이 두드러지는 식품이다. 과거에는 철도 이용객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애용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국민 간식으로 인정받아 왔다. 최근에는 고속도로와 국도 등 천안과 연결되는 곳곳의 통로 주변에서 천안의 대표하는 특산물로서 천안의 맛을 알리고 있다.천안 호두과자는 할머니 호두과자로 불리기도 하는 원조 학화 호도 과자의 본포에서 출발한다. 1934년 당시 주위 사람들한테서 제과 기술이 탁월하다는 평을 듣던 조귀금과 그의 처 심복순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두 사람은 예로부터 차와 과자를 즐기던 조상의 풍속을 생각하고 이를 우리 생활 속에 되살려 보고자 하는 뜻에서, 여러 종류의 재료 중 특히 천안의 유서 깊은 특산물인 호두가 영양분이 풍부하고 맛이 좋으며 열매의 형상도 독특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과자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그것이 오늘날 호두과자의 탄생 유래가 되었다. 이처럼 호두과자는 단순히 호두와 같은 견과류를 이용한 간식으로 탄생된 것이 아니라 깊은 역사와 기능인의 장인 정신이 만들어 낸 특별한 과자이다.
(호두 이야기 3)
우리나라에 호두나무를 처음 심은 시배지始培地라고 알려진 천안 광덕사廣德寺와 살아 있는 호두나무 중에서 가장 오래된 호두나무인 광덕사 호두나무는 현재 천안의 대표적인 자랑거리이다. 광덕사에는 호두나무 전래비도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두나무도 있다.
천안시 광덕면 일대에는 고려시대 재상이던 유청신의 후손과 지역민의 노력으로 현재 26만여 그루의 호두나무가 재배되고 있다. 호두나무의 특성상 이곳 광덕의 토양과 기후가 최적의 재배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호두는 껍데기가 얇고 알이 꽉 차서 우리나라 호두 중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고 있으며 천안의 대표 특산물로 손꼽히고 있다.
세계적으로 호두를 재배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중국·터키·이란 등이며, 원산지는 페르시아로서 실크로드를 통하여 중국으로 전해졌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경기도를 기준으로 그 남쪽 지역 중 표고 400m 아래에서 잘 자란다. 광덕사 호두나무는 대웅전 정면에 있는 보화루普化樓 입구에 서 있다. 20여m의 높이에 둘레가 약 3m 정도 되는 고목으로, 오랜 세월 지역민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살아온 나무이다. 특히 이 호두나무는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커서 천연기념물 제39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호두 이야기 4)
호두와 관련된 민속으로는 '부럼'이 있다. 정월 대보름날 새벽 일찍 잣 · 밤과 함께 호두를 이빨로 깨서 까먹고 그 깍지를 밖에 내다 버리면 그 한 해 동안 부스럼을 앓지 않는다는 민속이다.
이때 "부스럼 깨문다"고 외치며 깨야 하는데 그 깨어지는 소리에 부스럼귀신이 쫓겨간다는 주술적 뜻에서다. 이것은 지방질을 공급하여 거친 피부에서 피부병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한 선조의 예지이며 한편 딱딱한 것을 깨물어 치아를 튼튼케 한다는 복합된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호두나무는 흠이 나지 않는 훌륭한 목재로서 가구, 집기류 등에 쓰이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온 역사가 오랜 것에 비하여 노거수老巨樹는 별로 없다. 조사된 바로는 200년 된 높이 20m 흉고둘레 2.3m의 거목巨木이 경북 봉화군 상운면 문촌동에 있는데 가뭄이 심하여 식수가 떨어질 때는 이 호두나무 밑을 파면 우물에 물이 난다는 신기한 전설이 전해지는 나무다.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민속식食에는 호도당糖이라 하여 호도엿도 만들었고, 호도장醬이라 하여 속껍질을 벗긴 호도 속살을 볶아서 간장에 넣는 음식이 있었는가 하면, 호도장아찌라 하여 호도속살에 진간장을 묻힌 다음 실고추와 깨소금을 뿌린 음식도 만들었다고 하며, 호도속살을 짓이겨 호도술도 빚었다고 한다.
(호두 이야기 5)
호두나무는 맛있는 호두가 열리는 나무로서, 유실수로 유용하며 목재로도 쓴다. ‘타감작용’을 하는 물질 주글론(juglone)을 뿜는다. 따라서 다양한 식물을 심는 곳인 정원과는 궁합이 맞지 않다. (타감작용 : 식물 혹은 미생물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다른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성질을 뜻하는 말.)
호두나무를 영어로는 월넛(Walnut Tree) 학명은 Juglans regia 이다. 호두나무 품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는데, 목재와 열매를 모두 이용하는 품종( J. regia)과 목재로만 이용하는 품종( J. nigra)이 있다.
목재로서의 호두나무는 ①불규칙하고 아름다운 줄무늬와 ②특유의 광택, ③가공 및 접착의 용이성 및 ④증기 처리에 의한 휨 가공의 용이함으로 인하여 목재로서의 유용성도 아주 높다. 보통 산림 관리가 잘되는 북미산 나무들은 가격들이 저렴한데, 호두나무는 북미산도 고가에 속한다.
특히 고급 가구나 사무실이나 매장 등의 내부 장식 마감재, 고급 자동차 계기판 등 인테리어 목적의 고급 목재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고, 스포츠 용품의 소재로도 인기가 높다. 또한 목재로는 조금 어두운 빛의 색이 나는 목재이기도 하다. 나무껍질은 회백색이 돌고 자작나무와 비교했을 때 꽤 어두운 빛깔이다.
대표적인 하드우드 중의 하나로, 습도나 온도에 의한 뒤틀림이나 갈라짐에 강하고 잘 썩지 않지만 곤충에게는 약하다. 알레르기 반응을 유발할 때도 아주 가끔 있다. 단단하고 잘 썩지 않기 때문에 엽총이나 옛날 소총의 목제 개머리판과 총몸을 만드는데도 최상의 재료로 선호되었다.
호두나무를 때리는 것은 삭정이를 떨어뜨려 새순 내는 것을 촉진하기 위해서이며, 열매를 딸 때 치기도 한다. 이솝 우화 같은 대중매체에선 어째선지 많이 당하는 역 정도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호두나무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호두를 주지만, 사람들은 호두나무의 호두를 따 먹으려고 돌을 집어 던지거나, 막대기로 찔러서 호두나무가 상했다는 이야기이다.
(호두 이야기 6)
수령 300년 된 호두나무에서 희귀한 7각 호두 한쌍(사진)이 나와 화제다.
(2018년 10월) 17일 전남 장흥귀족호도박물관에 따르면 2015년 한 호두나무에서 7각 호두 한 알이 나온 이후 최근에 같은 호두나무에서 7각 호두 한 알이 나왔다.
지압용으로 쓰이는 호두 알은 두 알이 한 쌍이 되어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어 이번에 비로소 짝을 맞추게 됐다.
‘호두’가 표준말이지만 장흥에서는 한자에서 유래한 ‘귀족호도’를 상표 등록해 사용하고 있다.
귀족호도는 식용 호두와 한국산 토종 호두인 ‘가래’가 자연 교배돼 만들어진 특이한 품종이다.알맹이가 들어있지 않아 껍질이 망치로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 지압용으로 그만이다. 귀족호도는 보통 두 조각으로 갈라진 양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처럼 7조각으로 갈라진 7각 호두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7각 호두는 높이 4.5㎝, 좌우 길이가 4.3㎝로 두 알이 한 손에 알맞게 들어온다.
귀족호도박물관에서 전시중인 귀족호도 가운데 가장 비싼 것은 6각 호두로 1억원에 달한다. 김재원(59) 관장은 “2012년 태풍 볼라벤에 쓰러진 300년 된 나무가 힘겹게 귀한 선물을 내줘 감사할 따름”이라며 “평범한 자연 상태에서는 이런 일이 잘 생기지 않는데 아마 수정될 때 좋은 자연조건이 형성되면서 변화를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귀족호도박물관은 11월 4일 귀족호도의 날에 7각 호두를 일반에 공개하기로 했다. 지난 2002년 김 관장이 사비를 털어 문을 연 귀족호도박물관에는 500여점의 다양한 귀족호도가 선보이고 있으며 해마다 3만5000여명이 찾고 있다. (세계일보 기사)
(호두 이야기 7)
‘호두’가 맞느냐 ‘호도’가 맞느냐. 결론적으로 우리말 표준어는 ‘호두’가 맞다.
어원語源은 한자어 호도胡桃 로서 ‘오랑캐 복숭아’란 뜻인데, 우리나라에서도 근세까지는 ‘호도’라고 표기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 2음절의 ㅗ 가 ㅜ 로 변화하여 ‘호두’로 굳어지게 되어, 2003년에 개정된 표준어 규정에서 ‘호두’를 표준어로 정하게 되었다, 자두 앵두도 마찬가지이다.
2003년 이전에 고유명사로 사용해 오던 이름들은 그대로 사용 중인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표준어규정 예시]
‘호도 → 호두’처럼 양성 모음이 음성 모음으로 바뀌어 굳어진 단어는 음성 모음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
‘자두’의 의미로 ‘자도’를 쓰는 경우가 있으나 ‘자두’만 표준어로 삼는다.
‘앵두’의 의미로 ‘앵도’를 쓰는 경우가 있으나 ‘앵두’만 표준어로 삼는다.
[우리말 샘 역사정보]
호도(17세기~19세기) → 호두(20세기~현재)
현대 국어 ‘호두’의 옛말인 ‘호도’는 17세기 문헌에서부터 확인된다. 20세기에 제2음절 모음 ‘ㅗ’가 ‘ㅜ’로 바뀌면서 현대 국어의 ‘호두’가 되었다.
(호두 이야기 8)
호두까기 인형 [ TheNutcrackerandtheMouseKing ]
독일작가 E.T.A 호프만이 친구의 아이들을 위해 쓴 이야기로, 등장인물인 프리츠와 마리도 실제 그 남매의 이름이다. 호프만은 이 작품을 1816년 《어린이 동화(Kinder-Märchen)》에 담아 출간했다가, 1819년 다시 그의 단편집 《세라피온 형제들(DieSerapions-Brüder)》에 실었다.
본래 제목은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NussknackerundMausekönig)》이나, 이를 모티브로 한 표트르 차이콥스키(PyotrIlyichTchaikovsky)의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щелкунчик)》이 유명해지면서, '호두까기 인형'이라는 제목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어느 크리스마스, 소녀 마리는 드로셀마이어 아저씨로 부터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 받는다. 하지만 오빠 프리츠가 인형을 망가뜨리고, 마리는 다친 인형을 정성껏 돌봐준다. 모두가 잠든 시간, 시계 종소리가 울리자 갑자기 생쥐 떼가 나타나 마리에게 달려들고, 호두까기 인형과 장난감들이 생쥐 떼와 전투를 벌인다. 마리가 간밤에 벌어진 일을 이야기하자 드로셀마이어 아저씨는 호두까기 인형의 전설을 들려주기로 한다.
옛날 어느 왕의 잔치에 생쥐들이 나타나 음식을 모두 먹어치우자, 왕은 그 생쥐들을 모두 없애버린다. 이에 화가 난 생쥐 여왕은 공주의 얼굴을 물어 흉측하게 만들고, 크라카툭 호두를 먹어야 저주가 풀리도록 하였다. 한 청년이 그 호두를 깨물어 공주에게 건네자 공주는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고, 그 저주는 생쥐 여왕에게로 옮겨가게 된다. 이를 본 생쥐 왕은 그 청년을 못생긴 호두까기 인형으로 만들어 버리고, 진심어린 사랑을 받아야만 저주에서 풀리도록 했다는 것이다. 며칠 뒤, 호두까기 인형은 마리가 준 칼로 머리 일곱 달린 생쥐 왕을 물리치고 마리를 인형의 나라로 초대한다. 그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리는 호두까기 인형을 사랑하게 되었으나, 정신을 차려보니 마리가 있는 곳은 인형의 나라가 아닌 그녀의 방이었다.
그 순간 드로셀마이어 아저씨가 조카와 함께 그녀를 찾아오고, 조카는 마리에게 그녀의 사랑이 자신의 저주를 풀어주었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바로 못생긴 호두까기 인형의 모습으로 있었던 인형 나라의 왕자였던 것이다. 마리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인형의 나라에서 왕자와 함께 행복하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