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25. 월요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이사7,10-14;8,10ㄷ 히브10,4-10 루카1,26-3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경청敬聽과 순종順從의 사람, 동정 마리아-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예전에는 ‘성모 영보 대축일’이라 불리었습니다. ‘영보領報’란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천사에게서 들었다는 뜻입니다. 마침 오늘은 성모 영보 수녀회의 주보 축일이자 수녀회 과천 본원에서는 인 마리아 수녀와 동료 수녀들의 서원 25주년 은경축 미사가 있어 축하하는 마음 가득합니다.
-자리는 문제가 아니다/어디든 뿌리내리면 거기가 자리다
하늘만 볼 수 있으면 된다
작고 낮은 자리/하늘 사랑 가득 담아
샛노랗게 피어난 수선화/감동이다-
얼마전 인용했던 시입니다. 지금도 거기 그 자리에 여전히 피어있는 감동의 수선화입니다. 흡사 오늘 복음의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의 마리아를 상징하는 듯한 수선화입니다. 하느님께 장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가 어디에 살든 충실한 당신 종들을 한 눈에 환히 보시며 찾아 주시고 늘 함께 하십니다. 어제 수도원을 찾았던 분에게서도 성모님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자매님은 되는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하나 없네요. 영원히 현재진행형의 어려움이시네요. 삶은 순종입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사세요. 주님께서 성모님과 함께 하셨듯 자매님과도 함께 하십니다.”
말씀드린후 부부가 함께 “성령께 바치는 기도”,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행복기도”를 낭송토록 한 후, 사순시기 매일 하루 한번 함께 낭송하도록 당부드렸습니다. 복음의 마리아뿐 아니라 참으로 어려운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믿음의 삶을 사는 이들을 향한 주님 천사의 전갈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나자렛 작은 고을의 마리아를 찾은 주님 천사의 복음입니다. 얼마나 존귀한 품위의 마리아의 삶인지 확인시켜 주는 주님의 천사입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성실한 순종의 삶을 사는 이들과 늘 함께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어제도 고백성사를 본 네 분 수녀님에게도 보속으로 위 말씀을 처방전으로 써드렸습니다. 언젠가 이 말씀을 보속으로 어느 수녀님에게 써드렸을 때 “보속이 아니라 보석이네요!” 찬탄의 말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동정 마리아는 누구입니까?
첫째, 마리아는 경청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 천사의 인사말을 듣는 순간 마리아는 몹시 놀랐지만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참으로 침묵중에 귀기울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경청하는 마리아임을 깨닫습니다. 영성생활의 기초가 경청의 들음입니다.
분도 규칙서 맨 처음 나오는 말마디도 “들어라! 아들아”로 시작되며 성서의 예언자들이 끊임없이 강조하는 바 역시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도와 직결되는 경청입니다. 잘 들을 때 비로소 주님과의 대화이자 소통인 기도가 시작됩니다. 참으로 주님의 총애를 받는 경청의 사람, 마리아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이어 주님의 천사는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속내를 낱낱이 전달해 줍니다. 요셉과 더불어 주님께 지극한 신뢰를 받았던 마리아임을 깨닫습니다. 평상시 주님과 깊은 관계에 있었던, 참으로 경청의 사람이자 기도의 사람인 마리아임을 봅니다.
둘째, 마리아는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경청에 이은 지체없는 순종입니다. 사랑의 순종, 순종의 믿음입니다. 믿음은 개방이자 위탁입니다. 다음 마리아의 말이 나오기전 온 우주가 죽은 듯이 고요한 긴장중에 싸여 있었다는 아오스팅 성인의 주석도 어디선가 본적이 있습니다. 마리아의 응답에 전 인류의 구원이 달린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복음의 절정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참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자신의 신원을 정확히, 분명히 파악한 마리아입니다. 주님을 향해 마음 활짝 열어 믿음과 사랑으로 응답한 마리아입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마리아가 고마웠을 것입니다. 마침내 마리아의 순종의 응답으로, 순종의 믿음으로 주님의 구원역사는 차질없이 실행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마리아처럼 사는 이들과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모저자전, 그 어머니에 그 아들입니다. 히브리서 예수님 역시 순종에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바로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하여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한 성화은총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를 거룩한 순종의 사람,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우리 또한 주님의 종이며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우리가 세상에 온 존재이유임을 깨닫습니다. 좌우간 마리아의 거룩한 순종으로 이사야의 예언이 실현되었습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지극한 순종의 믿음 덕분에 참 좋은 임마누엘 예수님을 선물로 받은 우리들입니다. ‘보라, 세상 끝 날 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약속하신 임마누엘 예수님이십니다. 바로 우리의 영원한 사랑이자 도반이신 주님께서 우리 모두 당신의 종으로서 순종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오늘 화답송 후렴입니다. 시편을 통한 예수님의 고백은 우리 모두의 고백입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려 세상에 온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주님의 뜻을 찾아 실행해야 하겠습니다. 이래야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은총과 기쁨이 가득한 삶입니다. 아멘.
3월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마리아 스타일>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 여러 형태의 초대를 받게 됩니다.
어찌 보면 우리네 삶이란 것이 초대의 연속입니다.
어떤 초대는 얼마나 우리들 마음을 설레게 하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의 같이 연극 보러가자는 초대, 행운권 추첨에 1등으로 당첨되었으니 경품 찾아가라는 초대, 해외에 사는 죽마고우로부터 놀러오라는 초대...
더 나아가서 생명에로의 초대, 그리스도인에로의 초대, 영원한 행복에로의 초대가 있습니다.
반면에 부담스런 초대도 많습니다.
이제 나이가 되었으니 군입대하라는 초대, 법정에 출두하라는 초대, 한번 회의 시작했다 하면 다섯 시간 여섯 시간은 기본인 이사회 초대...
더 나아가서 병고에로의 초대, 시련에로의 초대, 감당하기 힘겨운 십자가에로의 초대, 죽음에로의 초대가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하느님의 초대!
분명 행복한 초대이고 감지덕지한 초대가 맞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자렛의 소녀 마리아에게는 엄청나게 부담스런 초대였습니다.
동시에 ‘예!’라고 순명함으로 인한 고초가 상상을 초월할 초대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즉각적으로 응답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복음 1장 38절)
이걸 줄여서 우리는 Fiat!이라고 말합니다.
마리아의 Fiat과 우리의 Fiat 사이에는 꽤 큰 간격이 있는 듯합니다.
우리의 ‘예’는 많은 경우 선택적인 ‘예’입니다.
‘예’라고 대답하기에 앞서 먼저 앞뒤좌우를 살펴봅니다.
손익계산을 먼저 따집니다.
이 ‘예’를 통해서 내가 유리할 것인지, 불리할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성모님의 Fiat은 우리들의 Fiat과는 사뭇 다릅니다.
고통스러운 길, 정말 가기 싫은 가시밭길이 뻔한 것을 알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 주님을 위한 길이기에 기꺼이 길 떠나겠다는 의미에서의 Fiat입니다.
뱀의 유혹을 따랐던 하와의 불순종으로 시작된 죽음의 역사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응답한 마리아의 순종으로 인해 죽음의 역사가 다시금 생명의 역사로 환원되었습니다.
나자렛의 마리아가 지니고 있었던 가장 큰 강점은 순명과 겸손이었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인간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진리를 마리아는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영역 밖의 일,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모두 하느님 손에 맡겼습니다.
사람들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여쭈었습니다.
교황직 수행에 가장 큰 힘이 되는 원천은 무엇입니까?
교황님께서는 지체 없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마리아 방식입니다.
마리아의 순종과 온유와 마리아의 인내,
마리아가 선택한 작은 길이 곧 제 스타일입니다.”
성모님은 대단한 혁명가였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인간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세상의 논리, 인간의 힘이 아니라 위에서 오는 능력에 모든 것을 맡긴 순명의 덕 때문이었습니다.
이 땅에 찾아온 구원이 권력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순명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3월25일 [주님의 탄생 예고 대축일]
오늘은 주님의 탄생 예고 대축일이다. 하느님께서 마리아의 응답을 통해 사람이 되시는 위대한 사실을 오늘 복음은 전해주고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다는 것은 곧 인간의 차원이 하느님의 차원으로 들어 올려졌다는 것이다. 즉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과 같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이다. 마리아의 하느님의 뜻에 대한 응답은 이제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이룰 수 있게 하였고, 그 마리아의 자세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이 되었다.
복음: 루가 1,26-38: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가 이어지고 있다. 복음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등장하는데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이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28절) 이런 인사는 남자가 들은 것이 아니라 오직 마리아에게만 주어진 인사였다. 주님께서는 그냥 마리아를 보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의 새로운 신비를 통해 마리아에게로 내려오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28절) 주님께서는 그냥 마리아를 보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의 신비를 통해 마리아에게로 내려오시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천사를 바라보던 그 자리에서 하늘의 심판관을 몸에 받아 모시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느님께서는 한 처녀를 당신의 어머니로 만드셨고, 당신 여종을 어머니로 삼으셨다. 온 세상도 하느님을 품지 못하지만 하느님은 온전히 그 품에 오시어 사람이 되셨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31절) 천사는 마리아에게 하느님께서 그녀 안에서 행하시는 거룩한 신비를 드러내 줄 아기에 대하여 말한다. 마리아는 처녀로서 어머니가 될 것이다. 그 아기는 하느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이 되실 분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분이 하시는 일을 의미한다.그분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세상을 다시 창조하실 분이시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34절)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 이 물음은 동정 잉태라는 신비에 대한 깊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천사는 성령께서 마리아에게 내려오시어 잉태하리라고 한다. 마리아가 열매를 맺게 하신 분은 성령이시다. 물위를 감돌며 창조를 이루신 분도 성령이시다.(창세 1,2 참조)
마리아에게 내려와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하신 성령께서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의 양식인 빵과 포도주에 내리시어,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거룩한 성찬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믿는 이들의 몸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마리아의 잉태는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요한 1,13) 성령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그래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 마리아는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하와의 불복종을 되돌려 놓는다. 그리하여 한 천사였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첫 번째 처녀의 타락이 다른 천사의 말을 받아들인 이 처녀 마리아의 믿음으로 극복되고 있다.
마리아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리아는 평범한 한 시골 처녀였다.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이고 평범한 삶을 사는 인간이었다. 그 마리아가 그렇게 하느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다면, 우리도 마리아와 같이 고백하고 실천해야 한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