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능력으로(사사기 7:1-8)23.07.16.주일낮설교
웃기를 싫어하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결혼을 한 뒤 18년 동안 한 번도 아내를 향해 미소를 보여준 적이 없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사를 하고 그냥 사무실로 출근했고 특별히 대화를 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인생문제 전문가인 D. 카네기의 "웃음에 관한 설문지"를 받게 되었고 웃으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직접 실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식탁에서 아내에게 다가가 「잘 잤소?」하고 웃으며 물었습니다.
아내는 모처럼의 행동에 놀라서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남편은「오늘부터 한 달 동안은 오늘처럼 웃으며 아침 인사를 하기로 했소」라고 말하며 그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갔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한 달 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남자는 잘 웃는 남자로 변하게 되었고 가정은 화목해졌으며
무엇보다 기쁨이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남자는 한 달이 지났지만 그를 보고 좋아하는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놀라운 변화에 감사하며 계속 웃으며 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미소 짓는 생활 태도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사 기드온이 살고 있었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8장 10절의 말씀을 보면 미디안의 군사는 십 삼만 오천 명이라 했습니다. 미디안은 광야를 주름잡는 부족입니다.
싸움에 능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기드온이 300명 군사로 십 삼만 오천 명의 미디안과 싸워 승리했다는 말도 안 되는 승전기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6장 3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땅에 씨를 뿌리고 난 뒤 미디안,
아말렉, 동방사람들이 공격을 시작했다고 했고,
4절을 보면 진을 치고 소산을 짓밟고 식물을 약탈하는가 하면 양, 소, 나귀 등 가축도 모조리 약탈해 갔습니다.
5절을 보면 그들의 수를 메뚜기 떼와 같다고 했습니다.
6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했습니다.
위기는 크고, 싸워 이길 힘은 없는 절대 위기를 맞게 된 것입니다.
이 때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이 기드온입니다.
기드온은 ①농부였습니다(삿6:11). ②겁장이였으며(삿6:14),
③가장 약하고 작은 가문의 사람이었습니다(삿6:15).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 기드온과 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선택하여 위대한 인물로, 성공자로, 이스라엘 민족을 40년 동안 지도하는 사사로 세우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용기와 격려가 됩니다.
기드온은 전쟁이 일어 났을 때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6:6을 보면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고 했고,
6:7 역시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기드온은 약할 때 어려울 때 위기 때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대군이 쳐들어 왔을 때 회개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응답으로 앗수르 산헤립이 이끌고 온 18만 5천명 대군이 죽고 물러가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또한 히스기야 왕이 불치병에 걸려 죽게 됐을 때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를 들으시고 히스기야를 살려 주셨습니다.
시편에만 부르짖는다는 구절이 42번 반복됩니다. 시편 81:7을 보면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위기가 물러가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온은 약할 때 어려울 때 위기 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전쟁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미디안과 싸우기 위해 나선 지원병이 3만 2천명이었습니다(3절). 미디안에 비하면 극히 작은 수입니다.
다시 그들을 추리고 추려 1만 명으로 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골라 작게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7:4을 보면 1만명이 남았을 때 하나님은 "아직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수가 많으면 수가 많아 이긴 줄 알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하나님의 승리는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2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려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약 삼만 이천이라는 많은 숫자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면 그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네 배가 넘는 수의 적을 이겼다고 자기 자랑을 할 것이 뻔 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300명만 남겨두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교만함을 버리고 늘 겸손하게 주님만 바라보아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삼백용사를 통해 승리를 주시기 위해 작전을 펼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작전이란 것이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항아리를 깨뜨리고 나팔을 불며 소리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16절).
우습기도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작전 명령이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볼때 과연 기드온과 삼백용사가 13만 5천을 대상으로 싸워야 하는데 이런 방법으로 하면 전투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이것은 정상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살특공대와 같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작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2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적군으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심으로 도망치고 이길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자기들끼리 싸웠습니다.
300명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습니다.
삼백용사는 그 자리에 서 있고 항아리만 깨뜨렸을 뿐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이 주관하셔서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아무런 수고가 없더라도 항아리를 깨뜨리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삼백 명의 군사들이 항아리를 부수고 나팔을 불 때에 하나님이 움직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시면 복이 임합니다. 승리가 임합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움직이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본문의 말씀처럼 순종해야 합니다. 19,20절...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부수고 소리 지르는 순종이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맹인된 자를 고치실 때 침을 뱉어서 진흙을 이겨서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나아만이 나병에 걸렸을 때 나아만의 종을 통해서 요단강 가서 목욕을 일곱번 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때 나아만이 얼마나 노발대발 했습니까. 내가 누군데 감히 지가 와서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해주던지 해야지 나한테 오지도 않고 요단강 가서 목욕을 하라고 한다며 소리 질렀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가 유치한 것 같지만 순종했을 때 하나님이 낫게 해 주셨습니다.
찬송가 449장‘주를 의지하며 항상 순종하면 주가 사랑해 주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사무엘하 24장에 보면 다윗이 이스라엘 군대 장관 요압에게 명령하기를 "이 나라에 칼을 뺄 수 있는 용사의 숫자를 헤아리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군대 장관 요압이 다윗에게 충고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100배나 더하여 주셨는데 어찌하여 그런 일을 하려고 하십니까?" 하지만 다윗은 그 충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재촉하여 인구 조사를 하라고 요압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장정들이 무려 13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 인구 조사로 인해 하나님은 다윗에게 큰 고난을 주셨습니다.
다윗을 지금까지 인도하신 분, 승리를 주신 분을 하나님이신데 자기 군사를 자랑했던 다윗을 하나님이 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드온과 삼백 명의 용사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쟁을 이긴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는 "믿음"이라는 뜻의 '피스토스'라는 헬라어가 600번이나 들어있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을 빼면 텅 빈 책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서 믿음을 빼면 보통 사람과 똑같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기도온의 300 명 용사에게 힘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힘을 주시면 우리는 세상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만 바라봅시다.
주님만 의지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