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은 꽃씨와 같은 것”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 소장 … 조선족아리랑을 말하다
8월 2일 정선군 방제1리에 위치한 정선아리랑학교에 방문을 해 진용선 소장과 이야기를 나눈 후 정선아리랑학교 안내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한국인 중에서 중국조선족동포를 잘 아는 인물을 뽑으라 하면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 소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1991년부터 중국 현지 동북3성 지역을 돌면서 조선족동포들이 부르는 아리랑을 연구해 오면서 조선족동포들과의 깊은 교감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진용선 소장은 2001년 「중국 조선족의 아리랑」 첫번째 책을 내고, 2008년 두 번째 판 「중국 조선족 아리랑 연구」을 냈다. 두 번째 낸 책은 472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책으로 첫 번째 낸 책을 대폭 보완하여 만든 책으로 아리랑 전승을 통해 본 조선족의 이주와 정착을 엿볼 수 있으며, 이 책을 쓰기 위해 진 소장은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조선족이 모여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고 아리랑을 채록하였다.
진 소장은 앞으로 조선족 아리랑 전승실태를 담은 책을 낼 계획도 밝혔다.
강원도 정선군 함백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 독문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한 진용선 소장은 대학시절부터 아리랑에 심취해 1988년 고향으로 귀향, 1991년 정선아라리 문화연구소를 창립했다.
고향의 소리 정선아리랑을 찾아 곳곳을 찾아다니다가 그의 발길은 국내를 벗어난 해외로 이어졌다. 1991년 한중수교 되면서부터 중국 땅을 밟은 그는 상해를 거쳐 북경에서 연길까지 아리랑을 찾아 떠났다. 일제강점기에 이주한 조선족 동포들의 아리랑과 분단된 이 땅에서 찾기 어려운 북한의 아리랑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연변땅을 찾은 것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정선아리랑이 연변에서는 진도아리랑과 편곡되어 '아리랑련곡'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깜짝 놀라게 되었고, 중국 조선족이 부르는 정선아리랑의 애절함을 느꼈다고 한다. 또한 '독립군아리랑'은 말로만 듣다가 조선족동포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해오던 '독립군아리랑'을 처음 듣고 채록하게 되었다고 진 소장은 말한다.
그 후 해외로 나간 아리랑의 발자취를 따라 연구활동에 더욱 열중한 진용선 소장은 아리랑을 채록한 문집으로 조선족아리랑연구서, 러시아 고려인아리랑연구서, 재일동포아리랑연구서를 출간했고, 수년째 재미동포아리랑연구서를 내기 위해 집필중이다. 보통 신념을 갖고서는 할 수 없는 역작이라 할 수 있다.
정선아리랑학교를 가다
지난 8월 2일 기자는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방제1리에 위치한 정선아리랑학교를 방문하였다. 이 학교는 정선아리랑의 전승 보존과 교육을 위해 정선아리랑연구소에서 운영하는 학교이다. 진용선 소장은 기자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진용선 소장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조선족동포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 가운데, 2011년 중국정부가 조선족 아리랑을 중국무형문화재로 등재한다는 소식이 한국에 전해지면서, 아리랑이 왜 중국무형문화재로 등재되냐며 예민하게 반응하며 한창 논란이 인 적이 있다.
이런 논란에 대해서 진 소장은 “아리랑은 꽃씨와 같은 것”이라면서 “꽃씨가 옷깃에 묻어 연변땅에 뿌려지면, 연변지형에 맞는 꽃이 피고, 러시아에 떨어지면 러시아 지형에 맞는 꽃이 피듯이, 꽃씨는 같지만 꽃은 지형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용선 소장은 1980년대 말부터 바람결에 흩날리는 꽃씨처럼 정선아라리를 모태로 해서 생겨난 아리랑을 찾아 곳곳을 다녔다. 국내는 물론 중국 러시아에서 일제수탈을 피해 떠나온 해외동포들의 아리랑을 들으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였다. 1997년 8월에 펴낸 <정선아리랑 찾아가세> 책머리에서 당시 젊은 연구가였던 진용선 소장은 "나는 우리나라 아리랑의 모태가 정선아라리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더 이상 정선 땅에 머문 소리가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하고 "어떤 곳에서는 정선아라리가 뿌리내린 아리랑을 보며 가슴 뿌듯하기도 했지만 생활이 급속도로 변하고 도시화 되면서 사라져가는 모습에 못내 아쉽기도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선족의 아리랑은 어디까지나 조선족 아리랑입니다. 우리 아리랑 하고는 역사적, 음악적 정서가 다른 것이죠.”
진 소장은 말한다. 중국이 조선족아리랑을 중국무형문화재로 등재한다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고, 오히려 조선족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실에서 아리랑을 전승 보존하려는 조선족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은 이미 지난 2010년 조선족 아리랑을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에 자극되어 한국에서 아리랑을 지켜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효과도 있었다. 그 결과 2012년 12월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제7차 무형유산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신청한 '아리랑' 등재를 확정하였다.
진용선 소장은“아리랑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는 것은 아리랑이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이라는 의미입니다. 유네스코가 주창하는 ‘경계없는 인류문화유산’이라는 지향점에 딱 들어맞는 노래입니다” 라고 설명했다. 아리랑은 한민족이 모태가 되지만 앞으로는 세계 어느 곳에서 다양하게 불려지고 꽃 피워지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경록 기자
@동포세계신문(友好网報) 제298호 2013년 8월 13일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