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란 설레임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추측의 선입견과 희망사항으로 콩깍지를 씌워두고 자기 멋대로 의미와 기대심리를 부여한다. 그러다가 하나 둘 베일이 벗기면 실망감과 배신감으로 허탈해하는 경우가 우리네 삶 속에는 허다하다. 그래서인지 베일속에 가려진 얼굴과 보일듯 말듯한 나상이 더 애간장을 녹이 듯이 고진감래길의 깔딱재와 돼지코에는 재미나는 이야기가 묻혀 있었을 같았다. 일기예보는 폭염경보를 알리는 삼복더위에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싸준 김밥을 둘고 팔공산 왕건길 탐방길에 합류를 했다.
평광동 시내버스종점에서 매여동 시내버스종점까지 이여지는 팔공산왕건길 호연지기길은 일부구간이 사유지를 통과해야 하는데 지주가 철조망으로 패쇄하여 오늘 일정을 변경했다는 집행부의 안내가 있었다. 아마 지각없는 행인과 등산객들에 의해 농가의 피해가 있었나 보다.
팔공산왕건길 보존회 유 회장님은 부인의 수술일정으로 불참하게 되었다며 신임 공산동 오 동장님을 소개하는 이대근 전임 동장님의 인사말로 팔공산왕건길 제5구간 고진감래길 탐방을 시작했다.
걷기운동본부 회장님의 스트레칭 지도에 따라 몸을 푸는 왕보히 회원43명
이 삼복더위 폭염에 무엇이 팔공산왕건길보존회 회원들을 불러냈을까? 팔공산왕건길보존회 임원진(집행부)의 열성일까? 아니면 성현들의 가르침처럼 왕보회 회원님의 열정이 이열치열로 지글거리는 폭염을 녹이고 여름산행을 이끌어 냈을까? 의외로 43명이라는 많은 회원님들이 참여를 했다.
왕건임도을 걸어며 평광지와 샛터마을을 지날 때까지 왕보회 회원이며 문화해설사인 채 선생의 설명으로 평산신씨 모영재 그리고 동수전투에서 패전하고 ?기던 왕과 나무꾼의 주먹밥 설화가 있는 그 곳, 왕을 잃었다여 실왕리라 불리던 마을이 이조에 이르러 험오스럽다하여 실량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마을의 유래와 위치를 들을 수 있었다. 평광동은 100년된 홍옥나무와 깊은 골짜기사이로 펼쳐진 사과밭이 대구능금의 명맥을 있고 있었다.
패전한 왕의 도주로를 따라 형성된 올레길 이다. 왕건은 동수전투의 참혹한 패전을 극복하고 훗 날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태조로 추왕을 받게 되었고 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렇다면 팔공산왕건길은 이러한 일화에 서린 전망대 또는 표지석을 만들어 잠시 휴식과 역사를 배우는 재미를 보태주면 좋지 않을까?
첫 시작은 가파른 등산로 헐떡거리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구슬땀을 흘려야 했다. 그렇게 한바탕 땀을 쏟으며 능선을 따라 오르자 솔밭이 끝나고 참나무 숲이 완만한 경사를 만들며 산들바람을 안겨 주었다. 초년고생은 사서도 한다더니 활엽수림에서 뿜어지는 신선한 산소가 가슴을 뻥 뚤어 놓았다.
그리고 또 다시 이어지는 아카시아 숲이 돼지코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오월 아카시꽃이 피엇을 때를 생각하니 벌써 아카시향기가 진동을 하는 것 같았다. 팔공산왕건길 5구간은 아카시꽃 필무렵이 올레길로 제격인 참다운 고진감래길이 될 것 같았다.
떡갈나무의 큰 그늘을 자랑하며 올레객이 쉴 수 있는 통나무 의자라도 있었으면 좋지 않겠느냐며 왕보회 회원님들이 팔공산왕건길을 탐방하고 많은 아이디어와 건의사항 발굴을 독려하시는 고문님.
무전기 세대를 준비하여 선두와 중간, 후미로 나누어 이탈과 낙오에 대한 준비를 했는데도 갈림길에서 산대장의 실수로 깔딱재를 코앞에 두고 선두가 다른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다행이 중간 그룹 걷기운동본부 회장님의 해안으로 깔딱재를 찾았기에 더 이상의 이탈을 막을 수 있었다. 그래서 갈림길 길목에는 이정표가 있었야 하는가 보다.
일제강정기 때 장터마을에서 시장을 보고 돌아가던 가파른 고개길로 평광사람들에 의해 생겼을 법한 깔딱고개는 이름만큼이나 숨이 넘어갈 듯 한데 깔딱고개의 설화는 알수 없었다. 하지만 양파껍질처럼 깊이를 알면 알 수록 매력이 넘치는 고진감래길은 설화와 긴 활엽수길에 간편한 쉼터를 만들어 올레객들에게 여유를 나누어 주면 더 할 수 없이 좋은 올레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동화천 바람개비길을 따라 펼쳐진 팔공산왕건길 제4구간 문화예술길은 돌 그리고(돌공원)과 방짜유기박물관으로 이여지고 있었다. 한 여름의 정오를 지난 태양은 시멘트 바닥을 달구는데 충분했다. 시멘트 길에서 뿜는 복사열은 연신 흐르는 땀을 훔치기에 바쁘게 했다.
개울을 따라 내려온 골바람을 맞는 바람개비의 낭만도 돌에 새겨진 시 한구절도 음미하고 느낄 여유를 잃고 있었다. 복사열이 불러온 더위가 감성에 젖을 틈을 주지 않고 땀으로 심신을 젖셔주었다.
방짜유기박물관 앞에서 점심을 먹고 지난밤의 과로와 체력에 무리를 느끼는 왕보회 일부 회원이 빠진 나머지 회원 26명으로 팔공산왕건길 제3구간 묵연체험길에 오르기로 했다.
땀 한방울이라도 나누어 주고 싶은 갈증으로 애원하는 밭두렁을 지날 때는 하늘의 구름도 비껴 앉아 강한 자외선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물넘재에 대한 궁금증은 증폭되기만 했다. 물이 넘어 가는 재여서 물넘재 일까? 아니면 물을 지고 넘어야 하는 재라서 물넘재 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물넘재에는 어떤 설화를 지니고 있을까?
물넘재에서 능선을 타고 가는 묵연체험길은 소나무와 깔비가 융단처럼 펼쳐 있는 솔밭으로 이여지면서 피톤치드를 무한정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가파른 언덕길을 돌아서니 완만한 경사의 오솔길이 자연 선풍기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솔바람은 우리들에게 산림욕을 즐기고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을 감소시켜 심신을 안정시켜 주는 피톤치드로 14km의 여름산행에서 쏟은 땀 만큼이나 행복을 채워주고 있었다.
우리 행열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고 다리에도 피로가 쌓여가고 있을 무렵 발목을 잡는 발바닥 바위가 있었다. 여기 쯤에서 발마사지라도 하면서 쉬어가라는 뜻인지? 누군가 긴 여로에 지쳐서 이 길을 걸어오다가 발이 하도 무거워 두고 갔는데 바위로 굳어 발다닥 바위가 되었을까? 혼자의 망상으로 피식 웃음까지 흘리면서 즐거운데
이대근 전임 동장이 왼쪽 장단지를 쥐고 주저 앉았다. 체력에 무리가 간 듯 다리에 쥐가 난 것 이었다. 산에서 응급처치는 무조건 구강호흡 뿐이라고 하던 농담은 사라지고 긴장감이 도는 순간 고문님의 응급처지로 이 전동장님은 일어날 수 있었다.
통시바위 라는 특별한 이름을 가진 바위에서 거시기 자세를 취해 보려했는데 가랭이가 짧아서 포기를 했다.
그리고 만난 한폭의 동양화 같은 자연의 침목으로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는 S형 솔밭길이 펼쳐지는 묵연체험의 길로 접어 들었다.
사실 묵연체험의 길을 걸으며 감탄을 거듭하면서도 그동안의 쌓인 피로 때문에 자아성찰의 시간보다는 무념으로 걷고 있었다. 묵연의 길이 끝나고 묵연이라는 돌 비석 앞에 와서야 침묵하는 자연으로 오늘 하루 흘린 땀방울이 아름다운 여름산행의 추억과 왕보회의 행복을 충전하고 있었다.
7월 20일 현경의 팔공산왕건길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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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랑채 원문보기 글쓴이: 팔촌상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