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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_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이 왜 중요한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인성을 쓰셨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그 사실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1) 예수님의 인성과 마지막 백성과의 함수관계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가르침은 오랫동안 사탄의 공격 목표가 되어 왔다. 왜 그런가? 예수님의 인성에 대한 가르침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세 천사의 복음”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교훈이기 때문이다. 이 진리로 마지막 백성이 준비되며, 그들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 완비된다. 만일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가지셨다는 사실을 믿게 되면, 같은 인성을 가지고 죄를 승리하신 예수님처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믿음으로 그것을 믿고 주님의 능력을 받아들일 때에 예수님의 성품,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계 14:7) 성품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인성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예수 믿음”(계 14:12)을 가진 성도들이 생기게 되고, 결국 그 믿음은 사람들로 하나님의 인을 받는 성품을 준비하게 하고, 그리하여 마지막 하나님의 참 백성인 십사만 사천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인성에 대한 바른 진리가 가르쳐질 때에 마지막 백성들을 준비시킬 마지막 현대진리가 탄생되어 전해질 것을 알기 때문에, 사탄은 역사를 통해 예수님의 인성에 대하여 맹렬한 공격을 가해온 것이다. 이 부분은 다음 기사에서 더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어렵고 혼돈되는 교리로 인식되고 있으며, 많은 그리스도인이 별로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주제이다. 그러나 이 주제는 그리스도인들이 꼭 알아야 할 중대한 주제로서,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게 되는가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 다시 한 번 설명하자면,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인성은 타락한 우리 인간의 본성과는 다른,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의 본성, 곧 천사 같은 본성을 취하셨다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우리도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를 승리할 수 있다는 성화의 가르침을 거절하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와 다르므로 그분께서는 죄를 승리하실 수 있어도 우리는 죄를 승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와 같은, 즉 아담이 타락한 이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죄에 대하여 승리하셨으므로 우리도 승리할 수 있다는 성화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되고, 또한 그러한 가르침에 일치하는 생애, 곧 죄를 승리하는 생애를 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참고로, 죄의 본성이란 죄로 기울어지는 연약성이지 죄의 본성 자체가 죄가 아님을 주지하자. 사실 죄된 본성이란 단어가 좀 거룩하지 않게 들리지만, 그 말의 뜻은 실제로 우리가 조상들로부터 유전법칙을 통하여 타고나는 육신적, 정신적, 도덕적 연약성들(inherent propensities)을 가진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께는 “악한 성향”(evil propensity), 곧 죄를 많이 지어본 경험에서 후천적으로 배양된 “악한 성향”이 없으셨다. 그러나 선천적인 경향을 유전적으로 받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한 번도 죄를 지어 본 일이 없으셨다.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그러나 한 가지, 예수님께서 잉태되실 때부터 성령에 의하여 잉태되시고 출생하셨다. 주님께서는 태어나실 때부터 거듭나신 분으로 태어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본이 되시는 것이지 거듭난 경험이 없는 모든 사람의 표준은 아니다. 왜냐하면,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룰 수 없는 타락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은혜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갈 때에, 우리도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본으로 보여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우리는 모본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할 수 있다.
2)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
인성을 쓰신 예수님으로 하여금 모든 사탄의 유혹과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그것은 인류에 대한 크고 위대한 사랑과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사명감이 아니었을까?
예수님께서 지상에 사실 때에 당하신 유혹과 시험은 말처럼 단순하거나 쉬운 것이 아니었다. 우리와 똑같이 느끼시고 고민하시며 시험을 받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를 짓지 않으셨다(히 4:15). 그리고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해보셨기 때문에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지를 알고 계신다(히 2:18). 예수님께서 사탄의 시험을 대항하실 때 우리와는 다른 신성의 능력을 사용하여 이기신 것이 아니었다. 우리와 같은 처지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과 기도로 이기신 것이다. 성경은 인성을 쓰신 예수님께서 당하신 시험과 고난을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다고 표현하고 있으며(벧전 4:1), 육체로 계실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 자주 눈물과 통곡의 기도로 간구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예수님께서 사신 순간순간은 평탄한 시간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추방당한 사탄은 하늘 궁정에서 그가 질투하였던 하나님의 아들을 이기려고 필사적으로 투쟁하였고, 하나님의 아들을 발걸음마다 공격하였다. 특히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 시험받으러 광야로 나가셨을 때는 그분이 40일을 금식하신 후 육신적으로 가장 약해지신 때였다. 하나님의 뜻대로 마련된 희생제물로서의 고난과 희생의 길 대신에, 안일하게 사명을 이루라고 유혹하며, 자신을 경배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보장할 것이니 쉬운 길, 인정받는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사탄의 시험은 연약해진 예수님의 인성과 육신이 당해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자극하며, 하나님 아버지를 의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포기할 것을 종용하는 사탄의 기만은 매우 유혹적이었다. 그 순간은 인간의 운명과 구속에 사활이 걸렸던 무서운 시험의 순간이었다! 만일 예수님께서 실패하신다면 인간의 구원은 수포로 돌아가고 세상에는 영원한 사망의 선고가 내려질 것이었다. 만약 그분이 그 시험과 시련에 실패하였더라면 하나님의 음성에 복종치 않으셨을 것이며, 세계는 잃어버림을 당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과 하나님을 강하게 의지하는 믿음으로 그 시험을 이기셨다. 그는 하나님의 보좌를 꼭 붙잡았다. 그는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유혹을 저항하였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인성을 쓰시고 첫 아담이 실패한 시험과 시련을 견디셨다. 그 시험이 얼마나 심하고 맹렬한 것이었던지 기진맥진하여 쓰러진 예수님을 천사가 수종 들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3) 항복할 가능성이 없다면 유혹이 아니다
만약 예수님이 사람과 같은 성정을 갖지 않았다면 그는 우리의 모본이 될 수가 없다. 만약 그분이 우리의 성정에 참여하신 분이 아니라면 그는 사람이 유혹받는 것같이 유혹을 받으실 수가 없다. 만약 그분이 유혹에 굴복하는 일이 불가능하였다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조력자가 되실 수도 없다. 만약 항복할 가능성이 없다면 유혹은 유혹이 아니다. 인간은 나쁜 행동을 하거나 죄를 지으라는 강력한 유혹과 영향을 받을 때 그 유혹에 맞서 고민하고 저항하게 된다. 유혹을 수락하고 나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굳게 붙들고 저항한다. 이것이 주님께서 통과하신 괴로운 체험이었다. 만약 그분이 실패할 가능성이 전혀 없으셨더라면 그는 인간이 시험당하는 것같이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실 수가 없었을 것이다. 주께서 당한 유혹은 무시무시한 현실이었다. 그분도 아담처럼, 그리고 모든 사람처럼 시험대 위에 올려진 자유 행위자였다! 그분은 사탄의 유혹에 굴복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을 할 자유의지를 가진 자유 행위자로서 시험대 위에 놓여 있었다. 만약 타락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더라면 그분은 인간 가족들이 시험을 당하는 것처럼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십자가에 달려있던 그의 마지막 몇 시간 동안 그분은 인간이 죄를 대항해서 싸울 때 경험해야 할 것을 더는 경험할 수 없으리만큼 충분히 경험하셨다. 그분은 인간이 죄에 굴복함으로써 얼마나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실제로 느끼셨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그 끔찍스러운 결과를 실감하셨다. 왜냐하면, 온 세상의 죄가 그분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서 인간을 위하여 싸우러 오셨다는 것은 참으로 엄숙한 사실이다. 그분이 당한 유혹과 승리가 말해주는 것은 우리가 그 모본을 그대로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도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는 가운데 주님의 능력으로 유혹과 시험을 대항하고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서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그리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예수님께서 이기신 것처럼 이기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분의 능력을 굳게 붙잡을 때 꼭 같은 도움을 얻지 못할 남녀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유혹과 시련 중에서 하늘의 도움을 구하지 못할 사람은 땅 위에 단 한 사람도 살고 있지 않다. 인간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승리하게 하도록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분의 모본을 보여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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