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는 예수님께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면서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하신 것과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금식하시며 사역을 준비하신 후 제자들을 부르신 사건을 간략하고도 빠르게 소개한 후에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신 후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마침 안식일이어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셨습니다(21절). 회당(會堂, συναγωγή, Synagogue)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고,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져 내렸을 때 유대인들이 있는 곳에 예배와 성경의 가르침 등을 위해 모이는 장소로 만들어진 곳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에서는 회당을 세우고 그곳에서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고, 평일에도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장소로 활용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안식일에 방문하셨으니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가르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서기관들의 가르침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서기관들과는 달리 권위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22절).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는 이들이 모두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모든 성경의 근원이신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가르치시니 서기관들의 가르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이 놀라운 가르치시는 사역을 계속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예수님께 소리 질러 외칩니다(23절, 24절). 24절에 나오는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는 말은 “왜 우리를 귀찮게 하십니까?”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영광스러운 예수님이 임하면 귀신들은 무서워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귀신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24절). 그러자 예수님에게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며 꾸짖으셨고, 더러운 귀신은 그 사람에게서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25절, 26절). 이 사건을 보며 사람들은 모두 놀랍니다. 예수님에게는 권위 있는 가르침만이 아니라, 영적 권위를 가지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능력도 있으셨기 때문입니다(27절). 이 놀라운 사건에 예수님에 대한 소식은 순식간에 온 갈릴리 지역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28절). 놀라운 일을 목격한 자는 이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그러한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을 경험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정말 복음을 경험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셔서 베드로의 장모가 앓고 있던 열병을 고쳐주십니다(29절~31절).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가 앓던 열병을 고쳐주신 것도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아마 베드로의 장모는 꽤 오랫동안 열병으로 인해 고생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를 일으켜 세워서 고쳐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곧바로 예수님의 시중을 들 정도로 회복되었습니다. 권위 있는 놀라운 가르치심,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는 놀라운 영적 능력에 이어, 질병을 고쳐주시는 능력까지 행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을 예수님께 데려와서 베드로의 집 앞에 모여들었습니다(32절, 33절). 예수님은 이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귀신들을 내쫓으시는 사역을 행하셨습니다(34절). 귀신도 영적인 존재이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귀신들이 함부로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34절). 아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야 할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이르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마가는 마가복음의 앞부분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을 대표적으로 짧게 언급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사역은 크게 세 가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가르치심이고, 또 하나는 귀신을 쫓아내신 것으로 표현한 영적인 능력을 행하셔서 영적 권세들을 물리치시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람들의 육신의 질병을 고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구속(救贖)의 사역을 이루실 때까지 이 세 가지 사역을 주로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할 사역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듯이 영적으로 병든 자들, 마음의 상처로 고통받는 자들, 악한 영의 권세에 눌려 있는 자들을 회복하게 하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육신의 고통을 치유하는 사역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육신적 고통을 간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회복을 위해 애쓰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역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사역의 초점을 흩트리지 말고, 주님께서 귀하게 여기셨던 사역들을 우리도 행하며 주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삶과 사역이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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