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법사?
2012-10-30 지효 손영주 법사
군법사로 있으면서 듣는 질문 가운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법사와 스님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것이다.
본래 법사는 법의 스승을 뜻하는 말로, 스님들 가운데서도 법이 높은 큰 스승을 뜻하는 용어다. 군대에서 군장병들을 대상으로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군인 스님’을 ‘일반 스님’과 구별하기 위해서 용어를 찾다가 법을 전하는 스님들이기에 법사로 호칭하게 된 것이 그 유래라고나 할까.
어찌됐든 법사의 호칭은 과거 경.율.론 삼장에 통달한 삼장법사처럼 훌륭한 스승을 통칭하는 것이며, 또한 군사찰에서 복무하는 스님들을 통칭하여 군법사라고 한다.
호칭과 관련해 웃지 못할 사연 하나를 전하고자 한다. 나는 군에 들어오기 전에 8년 이상을 스님으로 있다가 법사로 임관을 했다. 그래서인지 처음 군대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법사라고 불리는 것이 너무 어색했다.
‘스님’에 익숙했던 입대 초기 ‘법사’ 호칭이 거슬렀지만
어느 새 ‘스님’ 호칭이 낯설은 모습 발견하고 ‘我相’ 깨달아
스님이란 말 대신 법사라 불리면 왠지 스님으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괜히 더 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기때문이다. 지금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동기법사님에게도 그 당시에는 누구스님 누구스님으로만 불렀으니 어떤 마음이었을까. 여하튼 법사라는 단어는 귀에 거슬렀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흘러, 강원도 전방부대의 법사로서 민간인들의 접촉없이 거진 6개월이 지날 때였다.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법사가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회의에 가도 법사, 행사를 가도 법사. 교육을 가도 법사. 이렇게 법사라고만 불려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법사가 된 것이다.
사건은 소리없이 그때쯤 다가왔다. 어느날 군에 입대 전부터 알던 신도님이 멀리서 얼굴을 보겠다고 찾아온 것이 아닌가. 당연히 반갑게 인사를 하며 그를 맞이했다. 내가 먼저 “안녕하셨어요”라고 인사를 하니 그 신도분이 “지효스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라고 인사를 했다.
아니 그런데 그 순간 ‘스님’이란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 깨닫길 ‘아! 내가 나를 구속하고 있었구나’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금강경>에 보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괴로운 이유는 우리 스스로 ‘나는 이렇다’라는 상(틀)에 묶여 살고 있기 때문이며, 상에서 벗어나야 괴로움에서 벗어날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금 다시 그때를 돌이켜보면 스스로 상에 구속되어 괴로웠지만, 상을 직면하게 된 순간 해방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아프고 부끄럽지만 시원한 느낌이랄까?
여하튼 그 후로 4년 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군 생활이 사회생활과 다를 바 없기에, 때론 모욕적인 일도 당하고, 화나는 일도 겪게 된다. 하지만 화가 나려는 그 순간마다 과거 상에 집착했던 못난 나의 모습이 떠오르며 하심하고 받아들이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부처님께서 무아(無我)라고 말씀하신 것은 진리 자체로써의 무아도 있지만, 그것이 바로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기 때문에 가르쳐 주신 것이다. 결국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무아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추신 : 최근에 법사와 스님이랑 용어에서 오는 혼란을 잠재울 호칭을 찾았습니다. 여러분들도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저는 사단에 봉사를 오는 포교사님들 덕분에 듣게 되었는데 엄밀히 따지면 조금 이상한 호칭이지만, 저에게는 완전히 소중하게 다가왔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법사스님’. 둘 다 들어있네요. 과거에 들었으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을텐데…. 모든 이들이 ‘상’에서 벗어나 해탈의 기쁨을 경험하시길.
[불교신문 2860호/ 10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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