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약간 엽기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 영화의 특이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줄곧 봐온터라,
이번에도 <수취인 불명>을 비디오로나마 보았습니다.
최근 엽기적인 신종 테러인 미국 테러 사건을 보며
개인이 아닌 나라간의 정치 이데올러기의
왜곡성에 한숨을 내쉬었는데,
그 영화에서는 여러 캐릭터들이
약자와 강자의 구도로 그려져 있습니다.
한국에 비해 강국인 미국의 상비군,
그 미군 중에서도 군인으로 착출됨에 따라 넓은 미국에 비해
좁고 산으로 막힌 한국 땅에
절망하며 부적응하는 미국 군인이
마약과 여자에 탐닉하고,
마침내 죽음으로 내 닫고,
어려서 강하고 사나운 친오빠의 장난감 총에 눈을 맞아
한 눈동자위가 허옇게 외꾸가 된 여고생은
그 눈을 운명의 표징으로 알다가
맘에도 없는 그 미군에게
눈수술의 댓가로 자신을 던지다가
마침내 위기의 순간에 다시금 칼로
자신의 수술한 눈을 찔러서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찾고,
그 여고생을 짓밟은
동네 청년 두명은 그녀가 진짜 사랑하는
순한 청년을 툭하면 갈취하고,
그 동네 건달 2명은 또 다시
창국이라는 수취인 불명의 편지에 목멘 어미의
아들에게 절절 매고,
그 아들은 다시금 그 어미의 애인인
개장수에게 꼼짝을 못 하며,
그 개장수는 다시 그 어미에게 순한 양이 된다는 식의.....
그 어미, 그 여주인공의 삶은
흑인 병사와의 한 때 흔적으로서 그 아들 창국을 낳고,
그녀는, 그 미국에 가서 감감 무소식인
그 흑인 병사에게, 매일 수취인 불명의 편지를 돌려 받고,
그리고,그녀가 피흘려 낳은 그녀의 아들에게
자신들을 버린 아비를 잊으라 하여
그 사랑하는 분신 아들에게 몹시 약해진다.
2가지의 약해짐....
하나는 물리적 힘의 폭력에 의한 약함,
하나는 진짜 소중하고, 사랑하는 본질에 의한 약해짐,
폭력에 의해 눈치 보고 약한 것은
결국은 무의식의 또다른 폭력을 낳고,
급기야는 그 강자는 물론,
약자 그 자신마저 파멸시키는 것이다.
트기라 놀림받고 비아냥거림 받던
창국의 상처받은 무의식은
툭하면 얻어 맞던 개장수를 급기야는 죽이고,(순식간이다.)
여고생의 연인인 순하디 순한 사진관 청년은
그 건달 2명을 엽기적으로 죽인다.
그리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늘 헤피엔드란 없다는 듯이
그들 역시 처참하게 비극적 종말을 맞이한다.
특히 인상적인 그 어미의 집인 빨간 버스는
불안과 비극의 상징처럼 보인다.
예전 영화 파란 대문이 해방의 공간이라 느껴 진데 반해.....
모든게 막힌 그 어미 스스로의 방화에 의한 종말...
씁쓸하다.
6.25 시절의 훈장에 의해 상징 되는 늙은 노인의 명예라는 것도
사진관 청년인 아들의 무의식의 표출로
무너지는 목숨앞에서는 한낱 허수아비 같다.
거대한 국가안에 존재하는 개인들 역시
국가 이데올러기 안에 원치 않아도 정치 이데올러기라는 폭력앞에서
죽어 갈 수 있고,
인간의 삶의 모습을 거울로 들여다 보면,
약육 강식의 순환 고리가
적나라하게, 때로는 음울하게 피드백을 형성한다.
이번 미 테러 사건의 희생자가 단순히 미국이고, 미국의
국민들일까?
그건 아니라 본다.
역사는 도나우강물처럼 도도히 홀로 돌수만은 없다.
수백년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미국,
그들의 보이고, 보이지 않는 이익 관계와
자국의 문제로 인해,
이번 테러 같이 대형 참사는 없었다 하더라도,
심지어 테러를 범한 사람이 있는 그 나라의
죄없는 개인들 마저 원치 않아도
적이 될 수 있고, 목숨을 저당잡혀야 한다.
인과 응보식의 사고와 행동은
누구든지 진정한 용기 있는 자가
그 악의 고리를 먼저 끊지 않는한
역사는 또 다른 잔인한 테러나,
전 세계로의 전쟁의 악순환을
만들지 말라는 법이 없음을 왜 그들은 모를까?
간만에 주말이라
허접한 소리만 내다가 가는군요....ㅠㅠㅠㅠ
남들은 다 그 영화 싫다고 하는데,
전 줄곧 주먹을 쥐며 봐씀다.......
제가 엽기적인가 봐여...헝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