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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하 20장 31-34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승리를 맛보라10-온전치 못한 신앙의 결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행하면서 완전하게 살고 계십니까? 예수님 외에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산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대로 그대로 옮기자면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완전하게 될 수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인해서는 완전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해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시는 여러분들은 이런 의문이 드실 것입니다. ‘아니 사람이 완벽한 존재도 아닌데 어떻게 완전하라고 하시지?’ 하나님께서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완전을 넘어 완벽을 요구하신다면 그것은 분명 무리한 요구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의지하는 믿음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주신 믿음과 행위가 완전히 하나가 되라’는 의미입니다.
예전에 한 집사님이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 있었는데 그는 매우 젊고 큰 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집사님의 가정을 두고 자신의 큰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작스럽게 죽고 말았습니다. 고혈압으로 알고 있는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장례를 치루고 얼마 안있다가 그 집사님 가정이 우리 교회에 놀러 왔습니다.
그때 그 집사님은 목사님이 자신은 세계적인 부흥강사가 될거라고 선포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런데 그렇게 돌아가셨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 집사님 가족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꿈과 비전은 목사님에게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것일까?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이루어 주지도 않으시고 불러가실 수도 있는 것인가?’
하지만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은 무려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전혀 아이가 태어날 가능성이 없는 노인들에게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하시면서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하나님의 약속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주어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약속의 말씀을 주의 종을 통해서 선포하셔도 들을때는 좋아하다가 금방 시들어버리고 완전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매일 제자리 걸음만 하다가 세월이 다 흘러갑니다. 그리고 후회만 남습니다. 그들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말합니다. “그때는 목사님 말씀을 들었어야 했는데”
결국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울법적으로 완전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대하여 완전하게 믿고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믿음은 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신명기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신명기 18장 13절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여러분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명하시면 누가 뭐래도 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십니까? 시편 101편 6절을 보면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완전한 자는 충성된 자를 말씀하고 있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함이라는 것은 지금 완전하게 행동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계속해서 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완전하게 행하는 대로 나아가는 점진적인 명령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주신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은 충성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충성된 사람들을 통하여 자신이 하고자 하시는 일들을 다 이루십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완전함으로 요구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아브라함은 말씀을 받을 때 아내를 통해 아들을 주실 것을 믿었으면서도, 산에서 내려와 아내와 만났을 때는 아내의 말을 듣고서 마음이 흔들려서 여종 하갈을 첩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갈은 임신을 했지만 가정 불화의 원인이 되어 집에서 내쫓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첩인 하갈이 아니라 본처인 사라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하게 행하려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시행착오가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듯이 여호사밧 왕 역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행한 행동에 대하여 역대하 20장 32절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길로 행하여 돌이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서 끝나면 좋았겠지만 여호사밧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절인 3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산당만은 철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마음을 정하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사밧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했고 믿음으로 살았지만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하기 위해 절하는 산당을 제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25년 동안 살면서 자기의 믿음은 간직했고 백성들도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기를 바랬지만 백성들의 마음을 너무나 몰랐습니다. 백성들은 조금만 자기들의 뜻대로 안되면 순식간에 마음이 변해서 다른 신을 찾아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호사밧은 알아야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신앙뿐 아니라 우상에게로 돌아가기 쉽게 만드는 산당을 부숴버려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제사장들을 세우고 또 성경을 가르치는 장소를 지어주어야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힘을 썼어야 했지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쩌면 ‘백성들이 알아서 하나님을 잘 섬기겠지’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백성들의 마음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온전한 신앙을 가지려면 마음 속에 있는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상은 항상 우상을 숭배하는 장소가 있기 마련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그 우상 숭배를 해도 자기 집에다 산당을 차리거나 아니면 동네의 산당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지역을 대표하는 산당을 차립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곳으로 가서 자기들이 믿는 우상을 섬깁니다. 그런 산당의 특징이 있음을 알면서도 여호사밧은 그 산당을 헐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마음을 작정하고 거기서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마음을 정하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들이 산당에서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겼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며서도 자기가 끊지 못하는 어떤 것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마음에 우상으로 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는 열심히 다니는데 집안에서 불신자가 주장하는 대로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몸으로 봉사는 잘하지만 헌금에는 인색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헌금은 잘 드리지만 몸으로 봉사하는 것은 잘 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배는 빠지지 않고 꼭꼭 참석하지만 스스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 만하고 행하지는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고 남을 판단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은 충만하지만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는 막혀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이 교회 조금 다니다가 조금 지나면 저 교회로 옮겨서 온 도시에 있는 교회를 다 가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마음의 산당을 철거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치 산당을 헐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러한 산당을 철거하지 않았던 여호사밧은 자신의 신앙을 자기의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도 역시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자녀들이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지지 않아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벗어나서 세상으로 가서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다하면서 삽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는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아들의 신앙을 중요시 여기지 않았던 여호사밧은 이웃나라 이스라엘 왕인 아합의 딸과 자기 아들을 결혼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며느리가 자기 친정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골수 우상숭배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사밧은 자기 아들과 결혼시켰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엄격히 금하셨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7장 3-4절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잘 살라고 시킨 결혼이 결국 멸망을 당하는 가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누가요? 아버지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를 하는 며느리나 사위를 얻느니 차라리 결혼을 시키지 마십시오. 우상숭배하는 사람과의 결과는 아주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신자 가운데 나오미의 며느리인 룻처럼 하나님을 잘 섬기는 며느리를 만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자녀들의 결혼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가정과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복을 가져올 며느리나 사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여호사밧의 가정에 임하게 하였습니다. 우상숭배를 하는 며느리는 여호사밧의 아들인 여호람을 꾀어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만들었으며 갖은 악을 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역대하 21장 11절을 보면 “여호람이 또 유다 여러 산에 산당을 세워 예루살렘 주민으로 음행하게 하고 또 유다를 미혹하게 하였으므로”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때는 산당을 철거하지 않았는데 그 아들 여호람 때에는 더 많은 산당을 온 국토의 산 위에 세웠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호람은 자기의 정권이 안정되자 자기 형제들을 다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사밧왕의 아들 여호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자 다른 나라로 하여금 유다를 침공하게 하여 모든 가지고 있는 보화와 보물들을 다 빼앗아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웃나라 선지자였던 엘리야를 통해 창자가 배밖으로 빠져나와서 앓다가 죽게 될 거라고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여호람은 그 말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역대하 21장 18-20절입니다. “이 모든 일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람을 치사 능히 고치지 못할 병이 그 창자에 들게 하셨으므로 여러 날 후 이 년 만에 그의 창자가 그 병으로 말미암아 빠져나오매 그가 그 심한 병으로 죽으니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에게 분향하던 것 같이 그에게 분향하지 아니하였으며 여호람이 삼십이 세에 즉위하고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다스리다가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 무리가 그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두지 아니하였더라”
유다 백성들은 오직 자기 밖에 몰랐던 여호람왕이 죽었을 때 아무도 그를 위해 애통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생전에 아끼는 자가 없었던 것처럼 사람들도 역시 그를 떠난 것입니다. 결국 여호사밧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신실했지만 그가 소홀히 여겼던 백성들과 자식에 대한 신앙으로 인하여 백성들과 그의 후손들이 비극에 빠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따라 여러분들의 자녀들과 가족들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열어줘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살수 있도록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이 시간 마음에 결단하시기 바랍니다.그러면 그들을 어떻게 인도해야 할까요?
자녀들이나 다른 가족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한다는 것이 꼭 교회부터 다니게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자녀들을 위해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모습을 살며 자녀들에게 경건한 부모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로 그들이 신앙을 가지게 되면 권고하지 않아도 교회에 다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사랑하사는 하나님을 알게 되어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매일같이 자신들을 찾아오셔서 하루 하루를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로인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나 기도나 찬송은 최고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맛을 안 자녀들이 얼마다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에서 갖게 되는 많은 사람들과의 교제를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시듯이 사랑하시는 형제자매들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그런 그들이 나누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인해 얻게된 진리의 지식과 간증들이 얼마나 서로에게 용기를 주며 서로를 격려하며 붙들어 주겠습니까? 그런 그들이 세상에 나가서 살 때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하겠습니까? 그로인해 교회의 소중함을 몸으로 체득하면서 배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주신 천국을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도 주기를 원하시며, 또한 여러분들의 가족들과 이웃들에게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복음의 증인으로 삼으시며 복음을 들려주신 것입니다. 복음을 받고서도 자기가 무슨 복을 얻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복음보다 땅에서 얻어지는 것들에 사로잡혀서 기도하면서 그런 것들만 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들은 다 공급해줄테니 너희는 나의 나라와 나의 의를 구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오래전 한 할머니가 젊은 날에 루마니아 남동쪽의 마을인 콜티의 개울에 갖다가 물 속에 있는 붉은 빛을 띤 예쁜 돌을 발견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이 돌이 예뻐서 자기 집으로 가져와 수십 년 동안 단순히 문을 열면 닫히지 말라고 문 받침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1991년 할머니가 사망하며 집을 물려받은 유족은 특이한 색깔을 지닌 이 돌이 특별한 것이라 느껴 따로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이 돌의 이름은 호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가격이 무려 14억 6,000만원짜리의 매우 특별한 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 돌을 루마니아 정부에 매각했습니다. 3.5kg의 이 돌은 송진이 화석처럼 굳어져 생긴 돌인데 수십만 년 전에 생긴 것이라고 사람들은 감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구의 나이를 하나님만이 정확하게 아시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후에 그 어떤 날에 생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전에 이 할머니 집에 강도가 들었었는데 강도들조차도 이 돌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줄을 알지 못해서 다른 것은 많이 훔쳐갔지만 문지방에 있는 이 돌은 무시하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눈 앞에 있는 진짜 보물을 몰라 본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주신 그 복음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복중의 복인 이 복음을 소홀히 여기며 이 복음으로 주신 하나님의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밖에 사람들이야 복음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만 문제는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조차 복음보다 잠시 누리는 눈에 보이는 복을 더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귀중한 복음을 자녀들에게 전해주지도 못하고 영적인 유산으로 남겨주지도 못합니다. 그저 땅의 것이 귀하다고 생각해서 땅의 것을 남겨주고자 애를 씁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이 그렇게 자녀들에게 남겨준 것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악한 며느리 아달랴가 다 죽이고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훈손들은 물론 재산과 나라까지 다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여호사밧이 이룬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유산이 아닌 재산과 눈에 보이는 것을 물려준 결과입니다.
여러분들은 복음의 가치를 알고 계십니까? 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갖는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교인들이 땅의 복을 받지 못하면 복을 못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참으로 보물의 가치를 모르는 이 할머니나 강도들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풍요로운 삶을 살았던 여호사밧의 후손들은 풍비박산이 납니다. 여호사밧이 많은 아내를 두고 많은 자녀들을 낳았는데 그 중에 맏아들인 여호람이 아합왕의 아내인 이세벨이 낳은 아달랴를 여호람과 결혼시킴으로 인해 엄청난 비극이 그 가정에 일어나게 됩니다. 이 아달랴가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들을 통해 낳은 아이들을 다 죽입니다. 그 뿐 아니라 자기의 자식이 낳은 아이들도 다 죽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다윗왕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여호사밧의 증손자들 갓난아기인 요하스 만은 살려두십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왕의 씨가 보존되고 다윗의 왕국을 보존하게 하신 것입니다. 다윗과 하신 약속이 아니었다면 요하스 역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에 대하여 신실하십니다.
여러분 여러분만 복을 받으면 끝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하면서 자식들의 앞날을 내팽개치는 지 모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번 돈을 자녀들에게 주기만 하면 자녀들이 잘될 줄로 생각합니다. 또한 자기가 일평생 모은 많은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면 자기가 해야할 도리는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죽은 자신을 기억해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복음의 가치를 알지못한 자녀들은 아무리 많은 것을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다 할지라도 그들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귀함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음의 곤고함에서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영원한 기쁨과 평화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주님과 동햏하는 사람들 만이 이 땅과 영원한 나라에서 주시는 복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온전한 신앙으로 주님을 구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충성하십시오. 그리고 자녀들과 가족들에게 여러분들과 동행하시는 주님을 알려주십시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영원하고 놀라운 가치를 들려주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와 의와 영광을 위해 살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나만 잘 믿고 복받으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을 만나주신 것처럼 그들도 찾아가서 만나주시고 동햏하시면서 많은 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인생이 주님으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하며 온 세상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면서 사는 복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세상이 그들을 복된 가정에서 태어난 복된 사람들이라고 부러워할 것입니다. 이 놀라운 복이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정에 넘치게 되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