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30. 주일 큐티
누가복음 23:26 ~ 31
구레네 사람 시몬
관찰 :
1) 구네레 사람 시몬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들고 가다
- 26절.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모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 마가 역시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들고 가는 이 사람을 자세히 설명했다.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구레네는 현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이다. 이 사람의 이름을 왜 이렇게 자식 이름까지 들먹이면서 장황하게 자세히 설명했을까? 또 누가 역시 놓치지 않고 이 기록을 왜 남겼을까? 그가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고 그 이후에 잊혀진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 알렉산더와 루포는 이후에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인물로 자라게 된다. 속사도들로서 교회의 교부로 자라게 된 것이다. 만일 그 아비 시몬이 본 예수가 죄수에 불과한 인물이었다면 그렇게 자녀들을 키웠을 리가 만무하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그가 대신 져 준 십자가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메시야이심을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분명히 알게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 구레네 사람 시몬은 오늘 본문의 이 모든 사정을 보았고 알았던 사람이다. 그가 십자가 상에서 강도들과 더불어 참혹하게 죽어간 예수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증인으로서, 그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를 대신 지고 옮긴 산 증인으로서 예수를 믿고 그 자식들을 주님의 종으로 키웠다는 것이 이 모든 말씀이 사실임을 증명한다고 할 것이다. 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자신이 짊어진 십자가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알렉산더와 루포를 주님의 사람으로 키워낸 것이다.
2) 예수님을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
- 27절.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 남자들은? 제자들은? 참 당황스러운 말씀이다. 결정적인 상황에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용감하고 결단력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유대인 뿐만이 아니라 우리 한민족도 그렇지 않은가 싶다.
- 28절.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 주님은 이러한 여인들에 대해 “예루살렘의 딸들아”라고 하시면서 위로하시고 있다.
- 주님의 위로의 말씀은 오히려 자신을 위하여 울지 말고 자신들과 자신들의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임할 진노의 날,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으로 말미암아 임하게 될 심판의 날, 그리고 예루살렘이 역사 속에서 이후에 17번 무너지며 파괴되며 이어지게 될 환란의 역사를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슬픔에 잠긴 이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 29절.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 이 때의 환란이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것이기 때문에 아이를 가진 자들은 더욱 고통을 당할 것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은 저주와 같은 수치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것을 다행으로 여기라고 까지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 30절.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 무섭기에 차라리 자연 재해로 죽음을 당하는 것이 낳겠다는 표현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6장 16절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는 외침을 외치는 것에 대한 동일한 장면이다.
3)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에 대해서
- 31절.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 "푸른 나무"는 의로우신 구주 메시야를 가리키고, "마른 나무"는 악한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의로우신 메시야께서 이렇게 환난을 받아 십자가를 지시거든 하물며 악인들은 장차 얼마나 무서운 환난을 받을 것인가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 여기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의 대조는, 열매가 있고 없는 분변을 뜻함이 아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시고 죽음의 고통을 당하셨는데, 그 예수님을 반역한 유대인들은 반드시 망하리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것이 기독교인이 유대인을 핍박하는 것의 정당성을 지지해 주는 것이 되는 것이 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 그 누가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우리는 그럴 수 있는 권이 없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의 사역을 부정하는 이들이 받게 될 엄격한 심판의 심각성을 강조하시는 말씀이라 할 것이다.
가르침 :
1) 구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예수님이 강도들과 더불어 나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상황만 염두에 보게 되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시몬은 자신이 대신 진 십자가의 주인을 믿었고, 그 주인을 위하여 두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를 주저 없이 내 놓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바로 알면 그런 결단과 헌신이 가능하다. 예수님을 똑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2) 예수님의 수난을 슬퍼하는 여인들은 용감한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로마 병정들, 그리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제사장 무리들의 징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지막까지 보고자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여인들이 겪게 될 고통을 더 불쌍히 여기셨다. 자신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자기 백성의 아픔을 더 안타까워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보게 된다.
3) 예수님을 핍박하는 이들에게는 더 큰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백보좌 심판이 있게 될 때, 예수님의 의인으로서 받은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심판 즉, 지옥의 심판이 있게 될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때 차라리 산이 무너져 거기에 깔려 죽는 것이 더 낳다는 외침을 외칠 정도로 무서운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다.
적용 :
1)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정말로 만나게 되고, 알게 된다면, 나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이 가장 합당함을 알게 된다. 나의 모든 재능, 물질, 아내와 자녀들, 나의 생명 이 모든 것이 주님께 드려지는 것이 가장 합당한 것이다. 주님을 바로 알아야 그런 태도가 나오게 된다. 주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그런 태도가 자발적으로 나오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아는 것, 주님을 아는 지식에 더욱 깊어지고 풍성해지기를 소원하고 또 소원한다. 그렇기에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2)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계시는 이 상황에서 없다. 십자가 밑으로 감히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여인들은 따라갔다. 그렇게 주님의 제자들은 비겁하고 나약했지만, 결국 성령의 역사로 순교의 자리에 나아감을 주저하지 않게 된다. 성령의 충만함이 나약한 믿음, 비겁한 믿음도 바뀌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주님께서 자신의 극심한 고통 중에도 여인들의, 예루살렘의 비참한 핍박에 대해 안타까워 하시는 목자의 마음도 제자들이 배우게 되고, 목자로서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목자로 세워진 나 역시 주님의 은혜로 그렇게 주님이 맡겨주신 양들을 향하여 나의 형편과 상황을 넘어서서 그들의 아픔과 필요에 더 민감할 수 있는 주님의 종이 될 수 있기를 간구하게 된다.
3) 코로나의 상황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본질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 그 모든 상황에서도 일하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주님이 일하시기에 나도 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부족해도 성령께서 주시는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시는 은혜를 찬양한다.
4) 오늘 오후에 있을 GIS Yangon 회의를 위해서 중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