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진 궤변, 궤변
"저들 고관대작들의 법정 진술을 기자는 '국무 보고'라며 이죽거렸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버전 업 되는 것일까.
혼란의 제2 공화국 시기는 한국사에서 보기 드물게 자유가 많았고 민주주의가 정치-사회 전반적으로 폭넓게 시행되었다 . “해방 직후를 제외한다면” 이란 단서가 붙어야겠지만. 박정희 정권은 집권 기간 내내 장면 정권 집권기가 혼란이 심했고 치안이 부재했다고 선전했는데, ‘정상적인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던 사회 재조정 과정이었다.
그러나 통일 면에서는 이승만 정권과 이렇다 할 차이가 없었다. 통일 운동이나 진보적 사회 운동을 “북괴의 흉계”와 연결했을 정도였으니. 최근 강력한 기운으로 통일에의 열망이 솟아오르고 있는 현실에 비추었을 때 상대적 자율이 도드라졌던 그때, 하나의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후세에 커다란 궤휼로 다가온다. 아니 오히려, 4월혁명 정신과 역행하는 2대 악법(반공법, 데모규제법) 제정을 시도해 반대 투쟁을 초래하는 등 반동적 상황마저 야기되었던 것이다.
당시 큰 문제로 대두되었던 공소시효 완성론은 여전히 이 시대에 큰 울림을 갖는다. ‘7월 재판’이 점차 본격화됨에 따라 법원이 갚아야 할 너무나 중요한 법률적 해석 문제가 대두했다. 선거법을 어긴 자들에 대한 공소 시효 완료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대통령·부통령 선거법’에 명시되어 있는 공소 시효 완성범죄를 완료한 날로부터 가산돼야 한다는 변호인 측 주장이 파문을 던지게 된 것이다.
곧 ‘민의원-참의원 선거법’에는 “선거일로부터 3개월로 공소 시효가 완성된다”고 되어 있으나 ‘대통령-부통령 선거법’에는 “본 장에 규정한 죄의 시효는 3개월을 경과함으로써 완성된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시효는 범죄 행위가 종료한 때로부터 진행한다“는 형사소송법 규정(252조)에 따라 범죄가 끝난 때로부터 공소 시효를 가산해야 옳다는 것이 변호인 측의 해석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먼저 제정된 ‘대통령-부통령 선거법’의 이 같은 미비 점검을 시정키 위해 후일에 제정된 참의원 민의원 선거법에는 “선거일 후”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이러한 입법 취지로 보아 공소 시효가 경과되었다는 해석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혁명입법’을 마련하지 못한 ’혁명법정‘의 고민은 드디어 싹트기 시작한 셈이었다.
법조계에 큰 파문을 던진 ’면소론‘도 빈 독에 돌멩이 떨어뜨렸을 때처럼, 이 날따라 한산한 혁명법정에서 공허하게 메아리쳤을 뿐이었다. 문제의 사나이 ‘박 피고’도 잡범들 틈에 끼어 재판부 앞에 머리를 수그리고 진술을 시작했다. 점차 열을 띠기 시작한 그의 진술은 이 박사를 위해 선거 운동을 하게 된 동기에 이르러 ”미국 허티 장관의 구라파 중심 정책을 극동으로 돌릴 수 있는 인물이 이 박사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는 등 ‘탈산’했던 것이다. 방청석에는 박 피고의 부하였던 사람도 몇 명 끼어있었으나 그들의 표정도 어처구니없어 보였다.
야구 투수였다고 취미를 자랑한 그는 농은 총재가 된 후 농업은행에서 영어 독해 하는 사람이 200명으로 늘어났다고 지절댔고 선거 운동이 “나의 출세가 아니라 농은의 발전을 위해 부득이했다”는 괴상한 변명도 했다. 최후 진술에서 제법 ‘금융의 중립’을 역설하다가 얘기가 자식에 미치자 “아비가 부정 선거 원흉이 된 것을 자식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고 흐느껴 울면서 잡범 틈에 돌아가야 했다.
“그는 어쩌면 선거 부정의 원흉급 잡범과도 같았다”고 기자는 비아냥댔다. 어쨌거나 그에 의해 공소시효 완성론이 대두됨으로써 ‘7월 재판’의 또 하나의 특별한 역사적 사실로 새겨졌다. 냉소의 시선은 이른바 ‘법정 국무 회의’를 보도한 기사로 이어졌다. 여느 법정 스케치 기사와는 달리해 그 비아냥댐이 유달리 드세다
“경무대에서 열리던 국무회의가 이제는 서울지법 대법정에서 열린다. 다음은 2차 국무회의의 풍경이다. 송인상 재무를 수석으로 여덟 장관이 출석했다. 이들은 모두 전 같으면 이 박사(이승만)가 앉았을 좌석에 자리 잡은 재판장 앞에 한 줄로 국궁하고 서서 재판장의 말이 떨어지면 송은 긴 허리를 한 번 굽신해 보였다.”
김일한은 씩 웃기도 하며 큰 몸을 도사렸다 한다. “뜻밖에 공소 사실을 고분고분 시인하면서 ‘실무는 교통부 차관 등이 감당했고 나는 그 돈을 전달했다’며 싱글벙글. 최재유와 이근직 놀란 토끼 같은 눈으로 파르르 떨었다. 신현확은 겁에 질려 얼빠진 듯한 얼굴을 찌푸렸다. 곽의영은 장사치처럼 애교 있는 소리를 냈다. 손창환은 꾸지람 듣는 어린애처럼 재판장을 치켜뜨며 비굴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렇게 그들은 전날 그들이 우상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던 비굴한 모습을 다시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들의 말투는 전과는 달랐다. “지당하십니다”가 아니라 “아닙니다” “모릅니다”를 제창할 뿐이었다.“
저들 고관대작들의 법정 진술을 기자는 ‘국무 보고’라며 조롱했다. 선거 같은 데는 관심 없이 나라 살림만 열심히 했다니. 재판장이 3-15 선거를 앞두고 부하 국장들을 지방에 보내어 선거 운동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송인상 재무의 보고는 “징세를 독려하러 부하들을 지방에 내보냈을 뿐”이라고. “보통 때보다 잦기는 했지만.”
4-19 혁명 1주년을 맞던 날, 여고생들은 거리로 나가 시민들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었다. “잊지 마세요.”
방역 관계나 주택 관계 시찰을 위해 각 과장을 지방에 풀어놨었다는 것이 손창환 보사의 말인데 보낼 때 연고지를 찾아 보낸 것은 사실이라고…… 신현확도 지방에 부하를 보냈었다고 진술했다. 다만 공무원이 선거 운동한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서였다는 것이었다. 그 밖의 사람들은 실적(?)이 없었다. 전에 없던 겸손을 보인 것이다.
재판장의 따짐이 점점 날카로워질수록 이들의 겸손은 모두에게 번져갔다. 개표할 때 이들이 모여 보고를 받고는 감표를 하도록 마련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지나쳤다. 손은 그 대목이 ”기억나기도 하고 기억 안 나기도 합니다“고 주책 떨었다. 부(否)자투성이로 침울하던 ‘법정 국무회의’에 한때 명랑한(?) 웃음이 피기도 했다.
“지당하십니다”라며 판사들의 환심을 사려던 이전의 진술 태도는 법적 힐난이 날카로워지자 “아닙니다” “모릅니다”로 표변했다. 모르쇠 진술로 12시간 이상을 질질 끌어 밤까지 속개되는 일이 이어졌다. 계속된 ‘법정 국무회의’에 지친 일부 피고는 “제발 물 한 모금씩만 주셨으면”이라고 끝내 비명을 질러댔다. 그 말에, 방청석에 숨죽이며 있던 부인이 약을 들고 달려왔으나 형무관들이 뿌리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