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장 구속사 강해
야곱의 집을 세우신 하나님
1. 역사적 사명을 수행한 야곱
라반의 계략으로 레아와 혼인한 야곱은 마음으로 연모하던 라헬을 아내로 얻었으나 그 대가로 라반을 위하여 7년 간을 더 봉사해야 했다. 야곱은 레아에게서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등 6명의 아들과 딸 디나를, 빌하에게서 단과 납달리 등 2명의 아들을, 실바에게서 갓과 아셀 등 2명의 아들을, 라헬에게서 요셉을 얻어 모두 11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얻게 되었다.
야곱의 나이 91세 가량에 요셉이 탄생하였음을 볼 때(BC 1915년경) 가나안에서 밧단아람으로 온지 14년 만에 야곱은 큰 식구를 이루게 된 것이다. 라헬을 위해 봉사한 처음 7년 간을 제하면, 나머지 7년 동안 12명의 자녀를 생산한 것이다. 이렇게 짧은 기간동안 그처럼 많은 자녀를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라헬과 레아의 질투심이 크게 작용했지만, 아들을 낳고 안 낳고는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음을 볼 때(창 29:31, 30:2, 17, 22 참조) 야곱이 7년 간의 기간에 11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어떤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록 라헬과 레아의 치졸한 투기심이 작동하여 야곱은 네 명의 아내를 거느리게 되고 12명의 자녀를 얻게 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투기심에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야곱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신 일을 차근차근 이루어 나가시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삭이 야곱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족속을 이루라’고 한 축복(창 28:3)을 기억하셨고,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창 28:14)고 약속하신 언약을 성취해 나가시고 계셨던 것이다.
야곱 역시 역사상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큰 힘을 바라보고 묵묵히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는 일에 전심을 다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야곱은 단 기간 안에 많은 자녀를 생산하여야 한다는 목적으로 여러 아내를 얻은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이삭의 축복을 마음에 두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언젠가는 가나안으로 돌아가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여야 한다는 자신의 시대적 사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일에 늘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이러한 야곱의 신앙은 후에 하나님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볼 때, 야곱이 교활한 방법으로 네 명의 아내를 얻은 것처럼 해석하고 야곱의 태도를 비난하는 것은 결코 정당한 해석이라 할 수 없다. 야곱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질투나 투기심에 관심을 갖거나 혹은 그들의 질투심을 이용하거나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낭비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존재 의미를 따라 살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뿐이다. 이것이 야곱의 위대한 신앙의 자태이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안하고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다. 하나님은 야곱을 인정하셨고 야곱에게 많은 자손이 태어나는 것을 기뻐하셨던 것이다.
2.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야곱
매사를 판단하는 야곱의 생각이 매우 정상적이었음은 품삯에 대한 라반과의 계약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야곱은 요셉을 얻은 후 라헬을 얻기 위해 라반과 약정한 7년이 지나자 라반에게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내 본토로 가게 하시되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께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창 30:25-26)고 하며 가나안으로 돌아가겠다는 계획을 말했다.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은 지난 14년 동안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시며 큰 가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이제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하여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확신하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야곱은 이삭의 축복과 벧엘에서의 하나님의 약속을 늘 의지하고 있었으며 그 약속의 성취를 위하여 자신의 인생을 경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야곱이 가나안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들게 된 라반은 야곱을 놓치기가 아쉬웠다. 라반은 라헬을 야곱에게 주는 조건으로 지난 14년 동안 야곱의 봉사를 통해 큰 부자가 되었다(창 30:30 참고). 야곱이 아니었으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진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라반으로서는 조금이라도 야곱을 잡아두고 싶었던 것이다. 라반은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창 30:27)고 유도한 후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창 30:28)고 하며 야곱을 회유하였다. 야곱은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때를 이루었나이다 나의 공력을 따라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창 30:30) 하며 지난 14년 간 라반을 위해 봉사하였으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품삯을 받지 못한 것을 항의하면서 그 사실을 라반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이 말을 듣고 라반은 야곱의 품삯을 정하자고 제의를 해왔다. 야곱은 자기의 품삯으로 양과 염소에게서 아롱지거나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를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라반은 짐승들 떼 중에서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들을 분리시켜 자기의 아들들에게 주고 나머지 짐승들만 야곱에게 맡겨 기르게 하였다. 야곱은 라반의 속셈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라반이 맡긴 짐승들을 먹이기 위해 길을 떠났다. 야곱은 6년 간 열심히 라반의 양을 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야곱이 라반에게서 받기로 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양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라반은 야곱이 양떼 중에서 아롱지거나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를 달라고 하였기 때문에 야곱에게는 하얀 양들만을 맡김으로서 야곱의 품삯을 최소화하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야곱의 의를 아시기 때문에 특별한 방법으로 야곱에게 아롱지고 점 있는 자와 검은 양들을 주시기로 하신 것이다. 야곱은 아롱지거나 점 있는 자와 검은 양들을 얻을 욕심으로 나뭇가지를 사용하는 방법을 고안해 내었으나 야곱의 소원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어 주신 것이다. 라반의 불의함을 익히 아시고 보신 하나님께서 야곱의 의를 드러내시기 위해 특별한 은혜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곁에서 6년 간을 지키시고 보호하여주신 결과 야곱은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야곱은 많은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가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야곱에게 나타나시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고 약속한 내용이 성취된 것이다. 야곱이 가나안을 떠나 밧단아람에 도착하여 지난 20여 년을 지내는 동안 아내를 얻고 12자녀를 생산하고 큰 부자가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다. 야곱이 그 동안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일한 결과도 있지만, 언제나 곁에서 지키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큰 능력이 야곱으로 하여금 그와 같은 결과를 얻게 한 것이다. 야곱은 하나님의 실존을 늘 경험하며 자신이 가야할 길을 묵묵히 나갈 수 있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새 나라를 건설하여야 한다는 인생 본연의 삶의 목표가 분명하였기 때문에 외지에서의 20여 년의 생활동안 오히려 더 풍부한 인생을 경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야곱이 밧단아람에 온 목적은 성취되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이삭의 축복이 성취된 것이다. 이제 가나안에 돌아가 조부 아브라함이 건설하고자 한 나라를 성취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사실 그동안 야곱이 묵묵히 자신의 인생을 경영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여야 한다는 인생의 목표를 완성하기 위함이었다. 그동안 생육하고 번성하였다는 것은 야곱이 자신의 인생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가 다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야곱은 머지않아 가나안에 돌아가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가 나타나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꿈에 부풀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점을 볼 때 밧단아람에서의 야곱의 생활은 전 인생을 바르게 경영하고자 하는 야곱의 의지가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비록 라헬과 레아가 투기함으로 두 몸종을 받아들여 12자녀를 생산하였으나 언제나 야곱은 가나안에 돌아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자신이 목적을 늘 새롭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야곱이기에 하나님은 늘 야곱의 인생을 돌보시고 지켜보아 주신 것이다. 야곱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를 바르게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야곱의 단면을 보고 그것을 해석하고자 하는 것은 언제나 무리가 된다는 것을 이런 점에서 알 수 있다.
출처: 예장 서울노회 원문보기 글쓴이: 최정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