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만난 사람
조미경
영어 공부는 아무리 오랫동안 공부를 해도 시간이 흐르고 사용하지 않으면 금방 기억에서 사라진다. 아마도 그것은 생활 속에서 필요한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것을, 뇌는 기억 하기 바쁜 것이다.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려면 영어로 말하고 생각하고 우리가 하루, 세끼 밥을 먹는 것처럼 생활화가 필요한 것 같다. 이번 일본 여행에서 영어의 중요성을 새삼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공부를 스스로 했다. 하지만 지금은 외국어에 관심이 없다. 그만큼 바쁘기도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 한국어에 대한 지식을 더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교에서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웠다. 하지만 일본어를 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교실 외에는. 그리고 일본어를 써먹을 일이 딱 한 차례 있었다. 그것은 고3 졸업여행 때였다.
철부지 고교 시절 우리의 졸업 여행지는 경주였다. 경주 첨성대와 불국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장소가 기억 나지 않지만, 경주 어느 곳에서 일본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수학여행을 단체로 온 것을 보고 우리들은 학교에서 배운 일본어를 사용하기 위해 그들 앞에 나셨다. 당시 부끄러움은 쓰레기통에 버린 것 같다. 덧니가 삐죽하고 단정한 교복 차림의 학생들에게 다가가 무조건 인사를 했다. 곤니찌와, 간꼬꾸데스네 라고... 헤어질 때 사요나라까지. 그 시절 담임선생님께서는 나라 망신시켰다고 야단을 치셨지만, 당시에는 즐거웠던 추억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터지던 시절의 이야기다. 천둥벌거숭이들의 철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영어를 배우면서 일어난 사연이 있다. 영어를 말하고 싶어 하던 치기 어린 지하철 사연까지. 매일 5분 생활영어를 스피커로 듣고 시험을 봤던 고교 시절에 배운 영어를 ‘어떡하면 말할까’라고 깔깔거리던 시절이었다. 우연히 지하철에서 만난 미군에게 다가가 말을 걸던 촌스러운 여학생이 바로 나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영어 학원 강사 면담 때 간단한 영어를 못해서
부끄러웠던 나가 있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아이들을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다닌 영어 아카데미. 지금 생각하면 여러 곳에서 영어를 배웠다. 집 근처부터 멀리는 카톨릭대 평생 교육원, 그리고 삼육어학원까지. 그렇게 배운 영어 실력은 나중에는 외국인을 만나도 쭈뼛거리지 않고 더듬더듬 말할 정도가 되었다. 당시 자동차 운전을 하면서 테이프를 들으면서 영어 회화를 외우다시피 하면서 어린 딸, 아들과 간단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영어로 대화했다.
딸아이의 영어 선생님을 집으로 초빙, 다과를 나누면서 매주 5분씩 영어를 공부했다.
당시 미친 듯이 영어 회화를 배운 것 같다. 당시 오로지 영어를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하루를 보냈다. 당시에는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엄마가 되기 싫어,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나중에는 영어 학원 다닌 보람으로 퍼블릭 골프장에서 함께 라운딩 하게 된 독일인과 약 3시간을 영어로 수다를 떨었다. 그 후 영어에 대한 자신감은 과대망상이 되었지만
아마도 그때가 영어 스피킹을 가장 잘하던 전성기였던 것 같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사업을 하다 보니 영어를 배울 기회와 암기하는 시기를 놓쳤다. 글을 본격적으로 쓰다 보니 영어 단어 하나 암기하는 게 버거웠다. 일하기도 바빠 영어를 잊었다. 그리고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원 졸업을 위해 대학원에서 영어 시험을 위해 교재를 샀다. 단어가 너무 어려워 외워도 외워도 금방 잊었다. 대학원 시험용 영어는 생활에서 필요하지 않은 젓가락의 역사, 포춘쿠키 자동차의 역사가 있었다. 아무리 외우려 해도 단어가 외워지지 않아 나중에는 문장을 통째로 외웠다.
오래전 매일 외우던 영어는 기억이 흐릿하고,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 듯 생각 나지 않았다.
강의실에서도 영어 단어가 생각 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외국어를 익힌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지금도 영어 울렁증은 없지만 아는 것이 기억 나지 않는다.
한동안 잊었던 영어를 쓰게. 될 일이 생겼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일본 여행을 했다.
자유여행이라 가이드가 없으니, 일본어를 하는 아들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날이었다.
전철을 타거나 어느 곳을 방문했을 때, 일어는 모르겠고 영어에 눈길이 가고 그것을 조금이나마 이해 하니 영어가 왠지 낯설지 않고 편안했다.
여행 3일째 우리는 닌텐도 건물에 갔다. 포켓몬과 피카츄로 유명한 빌딩은
만화 속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곳은 휴일이라 관광객들과
포켓몬을 좋아하는 열혈 팬들이 진열된 물건을 쇼핑하고 있었다. 나는 포켓몬 빌딩에서 팬덤이라는 문화를 형성한 일본인들의 정신을 배우게 되었다. 가는 곳마다 운집한 사람들은 모양도 색도 다양한 만화 캐릭터에 흠뻑 빠져 있었다. 우리나라도 저런 만화 캐릭터를 창작 세계에 이름을 널리 알렸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비행기 탐승 시간이 남아 8층 로비에 앉아 도쿄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행에 지친 나와 남편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때였다. 70대 초로의 남자가 우리들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가 물었다. 중국인이냐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그가 영어로 물었다.
나중에는 일본어로 물었는데 일본어가 짧은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일본어를 못하니 짧은 영어로 소통했다. 남자는 말했다. 자신은 빌딩 엔지니어며 오후 4시에 다시 일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휴식 시간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여행 중이며 아이가 둘 있다는 상투적인 말이 오고 갔다. 그의 영어는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혼자라 외롭다 했다. 그리고 자식이 4명이라는 말까지. 그리고 도쿄 디즈니 랜드 씨에 다녀온 이야기 끝에 한국에는 없는 시설이냐고 물었다. 비슷한 시설인 서울랜드와 에버랜드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인은 우리에게 부자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 여행을 하는 여유가 부럽다고 했다. 약 30분 정도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록 소통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나의 직업을 말해 주니 깜짝 놀란다.아들이 잠깐 우리에게 왔는데 어려 보인다는 말까지. 비행기 탑승 시간이 되어 우리는 자리를 떴다. 공항으로 가는 전철에서 짧게 나눈 대화의 여운이 남았다. 영어를 오래 공부 했지만, 세월의 흐름 탓에 기억이 나지 않는 요즘의 나 자신을 생각하니, 뭐든지 열심히 연마하지 않으면 쇠가 녹이 슬 듯이, 녹이 슨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기억하고 노력하면서 뇌를 회전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무엇이든 기억하려고 노력하면서 아는 것을, 입 밖으로 내보내면 뇌도 자꾸 기억하려고 할 것이다. 앞으로 나는 무엇에 심취해서 더 많은 것을 담으려 노력하려 한다. 꼭 영어나 일본어가 아니어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성실히 임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인간의 기억이라는 회로에 대해서 좀더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