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소리 / 김덕조
또르르 목탁 소리가 들린다. 다 왔다 싶은데 오르막이 또 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땀을 닦는다. 예전에는 비탈길도 참 쉽게 올랐는데, 지금은 단숨에 못 간다. 두어 번 쉬고서야 절 마당에 들어선다. 일 년 중 제일 덥다는 칠월 백중이다.
불교에서는 이날을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 하여 절마다 큰 행사를 한다. 불제자 목련존자目蓮尊者가 지옥에서 괴로움을 겪는 어머니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오미백과五味百果를 공양하고 부처님께 간절히 빌어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해 냈다는 날이다. 이날은 워낙 더워서 모든 지옥의 문이 활짝 열린다고 한다. 이때를 기다린 후손들은 면죄부를 받지 못한 조상을 대신해서 부처님께 용서를 빌고, 조상께는 음식을 대접하며 위로한다는 효孝의 의미가 있는 날이다.
그해 백중, 어머님이 나를 돌아보며 ‘옷 갈아입고 따라나서거라.’고 했다. 나는 매번 그랬듯이, ‘어머님 잘 다녀오세요.’ 하고 들어가려 했다. 몇 번이나 절에 가자고 했지만, 그냥저냥 잘 넘겼는데, 이날은 좀 달랐다. 어머님이 화난 얼굴로 도로 방으로 들어가셨다. ‘오늘부터 나는 없는 사람이다.’ 하며 시위를 시작했다. 한여름인데 방문을 꼭 닫고 들앉아 끼니도 마다하고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어깨를 치는 죽비처럼 나를 움츠리게 했다.
내가 신경성 위염으로 바로 눕지도 못할 만큼 아팠을 때였다. 벽에 기대어 선잠이 들었을까, 아직 어두운 새벽인데 어디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이 새벽에 울고 있을까, 나는 살그머니 대문을 나서서 소리를 따라갔다. 집 가까이에 교회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가보기는 처음이다. 교회 문은 열려 있었다. 나는 기도하는 사람의 맨 뒤에 앉았다가 가만히 돌아왔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새벽이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교회로 가고 있었다. 그 사람 입말이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의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이 조금씩 맑아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새벽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잠든 새벽에 아무도 본 사람 없을 줄 알았는데, 일요일에 교회에서 사람이 나왔다. 새벽기도만 하지 말고 교회로 나가자고, 한 시간이면 된다고 내 손을 잡아끌었다. 잠시라는데, 나는 그를 따라나섰다.
그날, 우리 집에 난리가 났다. 일요일이라 마침 집에 있던 남편이 내가 교회 갔다는 소식을 듣고, 가게 안에 있던 금고를 내동댕이쳤다. 온 바닥에 돈이 굴러다니고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그는 세간살이를 다 부술 기세였다. 어머님은 한 집에 두 종교는 안된다며 돌아앉았다. 눈물범벅이 된 아이들이 무서워 떨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이런 상황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나도 놀랐다. 내 아이들을 울리면서 교회에 나가야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교회도 가지 않겠지만, 절에도 절대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때를 하마 어머님도 잊지 않았을 텐데, 다시 백중이라 절에 가자고 졸랐다. 당신 뜻을 밀고 나가겠다며 시위를 시작했다. 효자 아들이 모른 체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머님은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님 당신은 평생 자식을 위해 닦은 불자의 길을 며느리인 내가 이어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님의 믿음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뒷산의 우람한 바위도, 맑은 강물도, 관장하는 신이 따로 있다고 믿는 토착 신앙인가 싶다가도 토테미즘이란 생각도 했다.
어머님이 미신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첫돌을 갓 넘긴 어린아이를 몹쓸 전염병으로 허망하게 잃어버렸다 했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원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네 번째 아이는 말도 잘해서 자주 형아! 하고 부르던 모습을 내 남편은 기억한다는데. 그 아픈 세월을 가슴에 다 묻은 어머님, 그 심정을 모아 오로지 자식의 안위를 산천山川에 빌었을 것이다.
내 남편은 아명이 명命바우다. 어머님의 큰아들은 수壽바우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바위를 이름 대신 불렀는데, 절에 가면 어머님은 무릎이 아프도록 절을 했다. ‘전생에 지은 내 업을 다 닦아야 하는데.’ 하신 어머님의 바람은, 내가 어서 불자가 되기를 바랐던 것이리라.
칠월 백중은 한여름이라 언제나 더웠다. 법당에서 선풍기 곁을 맴도는 내게 어머님은 ‘염불에 집중하면 땀도 나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깔깔한 모시 적삼에 참빗으로 곱게 다듬어 잔머리 한 올 흐트러짐 없었던 어머님. 솔방울만 한 머리를 틀어 파란 비녀를 꽂은 이는 어머님뿐이었다. 어머님은 관세음보살전이 제일 좋다며 내게도 꼭 여기 앉거라 하셨다. 이제 어머님이 좋아하던 그 자리는 다른 사람 차지가 된 지 오래다. 어머님은 좋은 날, 당신이 찾던 부처님 곁으로 떠나셨기 때문이다.
신도들이 절을 한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한다. 알고도 모른 체 무심했던 양심에 사죄한다. 무심코 뱉은 말에 마음 다쳤을 그에게 사과한다. 너는 절을 많이 해야 한다, 하던 어머님이 생각나면 나는 백팔배를 했다.
손때 묻어 매끄러운 내 염주는, 율무가 가지런히 손을 맞잡듯 이어졌다. 모주母珠로 시작한 염주가 한 바퀴 돌아 제자리에서 만날 때 땀방울이 방석에 얼룩진다.
촛불이 일렁인다. 향불이 발갛게 타고 있는 법당, 많은 사람 중에 어머님은 용케 당신 며느리를 알아보시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