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내 운명” 가창면 용계리서 교육나눔·어르신 봉사
[달성을 지킨 사람들] ⑤ ‘해늘공방’ 대표
봉사와 헌신 마음가짐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걸까, 후천적으로 양성된 품성 일까? 듣기로 봉사 정신을 타고난 사람은 사주에 ‘사명’(使命)을 뜻하는 ‘사(使)자’ 기운이 강해 이타(利他) 정신을 잘 받아들인다고 한다.
사주학에서도 봉사, 헌신은 ‘정관’(正官), ‘정인’(正印)과 통해 공무원, 군인, 경찰, 종교인들이 이 운명을 타고 난다.
그런가 하면 봉사 정신이 후천적으로 발현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필자가 10여 년 전에 만났던 대구적십자사의 한 봉사자는 30년 가까이 지역에서 나눔을 실천해 왔다. 재밌는 것은 그 분이 봉사에 나설 때 두 딸이 함께 나서고, 같은 시간 그 딸들의 자녀(외손자)들도 홀몸 어르신 가정에 반찬통을 나르고 있다는 사실. 3대가 사회봉사를 실천하고 있는 셈인데 이들 모두 정관, 정인 사주를 타고난 것이 아니라면 봉사, 헌신은 꼭 선천적인 특성만은 아닌 것 같다.
이번에 소개할 달성군 가창면의 ‘해늘공방’ 김현희 대표는 봉사, 헌신의 DNA가 뚜렷한 여성이다. 직업 봉사자나 열성 회원들처럼 현장에 ‘올인’ 하지는 않지만 생활 속에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실천에 나서고 있다.
가창면 용계리에서 5년째 교육 봉사,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현희 씨를 소개한다.
#. ‘사랑, 나눔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도다’ 영화 ‘울지마 톤즈’에 나오는 타이틀 송이다. 노랫말처럼 김 대표에게 봉사 DNA는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됐다.
천주교 모태 신앙이었던 그에게 신앙은 일상이었고 봉사는 생활이었다. 김천에서 중·고 학창 시절을 보낸 김 대표는 방학 때마다 봉사단체, 복지시설로 바삐 뛰어다녔다.
김 대표의 봉사 활동은 효성여대(지금 대구가톨릭대)에 입학해서도 계속되었다. 그녀가 활동한 가톨릭학생회는 전국 대학 연합동아리였는데 주로 대구지역 동아리와 연대해 지역 사회 봉사 활동을 펼쳤다. 국제재활원, 결핵협회, 요양원 등이 주 활동무대였다. 꿈 많고 하고 싶던 일도 많았던 여대생 시절, 김 대표는 자기의 욕심, 일신의 안일을 내려놓고 소외된 이웃을 찾아 나섰다. 김 대표는 ‘수고와 희생이 따르는 일이었지만 거기에서 얻는 위안이 더 컸기에 기꺼이 그 일을 찾아 나섰다’고 말한다.
#. 대학을 졸업한 김 대표는 잠시 진로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교직, 공무원, 회사원 등 수여러 진로 속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김 대표를 불러 세운 건 ‘신앙’이었다. ‘세상 즐거움’보다 경건, 보람의 길로 이끄는 어떤 힘에 이끌려 다시 봉사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1992년 김 대표는 대구YMCA에 입사하며 사회교육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꼬박 8년간 기독교 단체 봉사, 사회 복지시설 봉사를 했다. 청소년쉼터에서 미혼모, 한부모, 조손(祖孫)가정 등 결손가정을 돌보는 것도 중요 업무였다.
YMCA 시절 김 대표는 한 소녀와 만남을 작은 보람으로 간직하고 있다. 어느 날 청소년쉼터에 한 여학생이 들어왔는데 편부 슬하에 아버지는 술주정, 폭력을 일삼는 무능력자였다.
김 대표는 ‘학교밖 부모’ 경험을 살려 엄마, 이모처럼 이 소녀를 보살폈고 네일숍에 등록을 시켜 자활의 길을 터주었다. 여기서 네일아트, 미용을 배운 학생은 바로 취업이 되었고, 이후 좋은 배우자를 만나 가정까지 꾸렸다.
쉼터에서 만난 인연을 그 학생이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릴 때까지 이어갔기 때문에 이런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 김 대표는 1990년 결혼 후 남편 사업을 따라 가창면 용계리로 이사를 왔다. 캠퍼스, 요양원, 사회복지시설을 넘나들던 김 대표의 봉사 활동은 결혼과 함께 잠시 휴지기로 들어섰다. 가정과 육아에 전념하면서 몇 년 동안은 여유가 없어 성당에서 교리교사, 교육캠프 봉사만 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자라 김 대표는 학부모가 되었고, 다시 부지런히 집, 학교, 성당을 뛰어다녔다.
가창면 용계리는 찐빵골목과 아파트, 주택가가 혼합된 정체성이 애매한 마을구조를 하고 있다. 한편으로 도시 생활과 전원생활을 함께 누리는 장점도 있었지만 자녀들 교육이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학원도 보육시설도 없는 반농반도(半農半都) 지역에서 학부모들의 관심은 교육에 몰려 있었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어 고민만 하고 있었다.
잠자고 있던 김 대표의 봉사 DNA 깨어난 건 바로 그때였다. 김 대표는 2016년부터 가창 ‘우리마을교육나눔’(이하 교육나눔) 사업을 시작했다. 도심에서 떨어져 소홀할 수밖에 없는 교육 핸디캡을 시골 단위 주민자치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극복하자는 취지였다.
‘교육나눔’ 회원들은 주로 지역 주민, 성당에 신도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모임의 취지는 마을공동체를 위한 지역 봉사와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키워보자’는 교육 활동에 초점이 모아졌다.
먼저 가족 단위 합창단 ‘참꽃 가족합창단’을 조직했다. 초등생부터 할머니까지 단원으로 참가한 이 합창단은 지역축제, 행사마다 불려 다닐 정도로 지금도 인기가 좋다.
가창면에서 정화, 청소 활동을 펼쳤던 ‘마을 청소년 환경지킴이’ 캠페인도 진행했다. 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에 참가 하면서 분리수거, 일회용품 사용 않기, 텀블러 사용, 비누로 목욕하기 등 친환경, 그린 캠페인을 스스로 실천했다.
지역의 역사 유적, 문화 명소를 돌아보는 ‘동네 한바퀴’ 도 아이들, 주민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행사다. 지역의 어르신을 강사로 모시고 동네 고찰, 서원, 유적을 돌아보는 행사로 주민들이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가족 캠프’도 마을공동체 문화를 펼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자녀들이 수확철에 옥수수 따기, 감자 캐기, 블루베리 수확 등 체험 활동을 하면서 환경의 중요성, 가족 간 사랑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 밖에 어버이날, 추석이나 명절 때 전통음식을 만들어 홀몸 어르신이나 소외 가족과 음식을 나누는 행사도 호평을 받았다.
지금은 코로나-19로 대부분 활동이 중지되고 일부 행사만 비대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김 대표는 “교육 나눔 활동은 지역 학교, 행정기관, 자영업자들이 협업해 풀뿌리 교육자 치를 실천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고 “이를 통해 마을공동체의 건전한 육성과 청소년들의 올바른 인성 함양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 2020년 김 대표는 가창면에 ‘해늘공방’이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우리마을 교육나눔’ 활동도 계속하고 있지만 교육 활동 외 지역 봉사를 강화하기 위해 학부모와 지인들이 뜻을 모아 설립했다.
사업체 등록까지 마친 자영업 형태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영리’(營利)단체가 아니라 ‘영리’(0利)단체임을 알 수 있다. 수익은 전혀 나지 않고 모든 비용은 약간의 정부보조금과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한다. 시민주도형 문화 봉사 활동을 콘셉트로 주로 아이들 예술교육, 마을 어르신돌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자기 희생을 전제로 한 봉사는 웬만한 인격자라도 실천하기 어려운 덕목이다. 헌신의 길은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회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자기 의지에 의한 자기 참여 행위이기 때문이다.
중고교-대학시절-사회생활에서 봉사로 일관 해왔던 김 대표가 결혼 후 아이 교육, 육아를 핑계로 봉사를 잠시 접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바쁜 살림, 육아 과정에서 ‘교육 나눔’이란 틈새시장을 찾아내고 이를 자신의 봉사 활동으로 연결했다.
축복처럼 태어난 늦둥이도 김 대표의 봉사 활동의 동력(動力)이 되고 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마을 교육봉사’ ‘해늘공방’도 육아, 아이 교육의 연결 선상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도(大道)에 문(門)이 없을 듯 봉사에도 정해진 길이 없으니 김 대표의 봉사 영역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모른다. 그러나 어디든, 언제든 늘 깨어있는 그녀의 봉사 DNA가 그녀를 그곳으로 안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