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기도 103.6 계시종교(啓示宗敎)와 자연종교(自然宗敎)(240517)
요세비
본능은 영원히 살고 싶은데 유한한 생명임을 인식하는 순간 인간은 슬프다.
그래서 지구를 감옥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지구 위의 모든 생명은 사형수처럼 집행 일을 기다리는 존재이고 인력과 중력은 울타리이다.
이를 벗어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을 것이다. 인력을 거슬러 지구를 탈출하거나,
죽어서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거나
잘 생각해 보면 두가지 다 현실이면서도 알 수 없는 미래이다.
영원히 살고픈 욕구는 인간만의 욕구는 아닐 것이지만 유독 인간의 죽음에 대한 사유는 깊다.
죽음이 존재는 하는데 그 이후의 상태는 아무도 모른다. 인간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신과 인간을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생명에 대한 주관성이다.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존재가 신이고 주어진 생명을 관리하는 존재가 피조물이다.
아무리 과학이나 의학이 발달해도 세포 하나를 만들 수는 없다. 만들어진 이미 있는 세포를 변형시키거나 분열시키고 키울 수는 있어도 없는 세포를 만들 수는 없다. 세포가 바로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과 죽음을 한 선상에 놓고 볼 때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가 인간의 영역일 뿐 그 이전과 이후의 존재는 미지의 세계이다. 아니 존재여부조차 불확실하다.
태어나기 전과 죽은 다음의 문제는 모든 학문이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결론이다.
예를 들어 만약 죽음이 없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태어나기만 하고 죽지 않는다면, 과학이 의학이 철학이 종교와 문학이 모든 학문이 발달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 지구상에서 태어난 모든 생명들이 죽지 않고 모두가 살아 있다면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그 윗대의 모든 조상이 살아 있고, 아무리 아파도, 힘들어도 못 먹고 병들어도 고통중이라도 죽지 않는다고 할 때 세상은 아마도 아비규환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학문이 발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인간의 행위는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목적, 동일한 결과인 죽음을 향하여 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그러지만 인간은 죽음의 이후의 세상을 알 수가 없다. 어떤 학문도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사유하면서 창조자의 신비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분야가 종교이다. 신의 섭리를 신을 통해 전수 받아 깨우쳐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계시(啓示)이며 우리가 믿는 종교가 계시 종교인 것이다. 즉 죽은 다음의 문제를 가르치고 따르는 것이다.
계시 종교의 반대는 자연 종교(自然宗敎)이다. 자연 종교는 살아 있을 때의 복을 비는 행위를 말한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위 두가지 종교, 신앙이 내재되어 있다. 살아서 복을 빌고 싶음과 죽어서 천당 가고픈 욕심이 다 있다. 그러나 영원에 대한 추구가 진정한 계시 종교의 가르침인 것이고 살아서의 복을 비는 행위는 차선이고 영원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기성 종교들이 이 부분을 외면하고 자연종교적인 부분만 강조하면 미신이고 사이비이고 토테미즘인 것이다. 계시 종교 안에서도 이런 현상이 지나치게 많거나 개인의 신앙 모습에서도 마찬가지라면 형식만 계시종교이지 미신이나 다를 바 없는 신앙생활인 것이다.
우리의 신앙에 대해 반성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