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대연각 사무실에서 보훈 병원으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았다.
단체보험 때문에 주민등록 등본이 필요하고 또 서류에 사인을 해야 한다며.
이번 주와 다음 주는 보훈 병원에는 일이 없으니 화요일 아침 보통 출근시간보다 느긋하게 집을 나간다.
잠실 셔틀버스 정류장 길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편하게 마시고는 보훈병원에 도착,
우리 사무실에서 일을 처리하고 믹스 커피 한잔까지 마시고는 시원한 내방에서 신문을 보고 인터넷을 확인한다.
오늘 연구실에서 만날 두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한 사람은 내가 병원에 있을 때 몇 년간이나 내 환자는 아니면서 돌보아 준 신경외과 어린 환자의 오빠.
사진 왼쪽 위의 누워있는 환자로 내가 '한국인의 밥상'에서 복어중독에 나왔을 때이다.
공대를 마치고 의학 전문대학원에 가겠다는 걸 내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재수를 하여 충남대학 의학전문대학원 1학년 학생. 방학이 되어 서울에 온 걸 내가 불렀고,
또 한사람은 서울의대 산악반 반장이 하계 원정을 간다며 보고 차 동계등반 보고서도 가져 오겠다 하여.
이 둘은 나이가 거의 같을 것이라 같이 점심을 사주어도 좋을 것이다.
보훈 병원에서 흑석동 나의 연구실에 가기는 편하다.
병원-천호역 셔틀을 타고, 5호선 동대문 역사공원에서 4호선을 환승하여 동작에서 내려 9번 출구로 정확하게 나와야 한다.
여기를 걸어 가다보면 과연 이렇게 승객도 몇 다니지 않는 커다란 정류장 통로가 필요할까?
대리석 바닥에 휘황한 조명, 군데군데 설치된 돌로 만든 쉼터,
피서 삼아 이곳에서 정좌로 책을 보는 노인, 아예 등을 대고 이 시간에 잠을 자는 사람도.
저 한쪽 구석에는 젊은 남녀가 서로 몸을 부비며 진한 무엇(?)을 하고도 있다.
그래도 지하철 안에서 그러는 것 보다 낫다.
연구실에 들어가자 말자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어 놓고는 불 켜진 앞 화실의 아가씨 방을 노크한다.
에어컨도 안 되는 더운 방에서 오늘 오후에 출품할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다.
아까 전화에서 산악반장은 점심 약속이 있다하니 이 아가씨랑, 의전원 학생이랑 같이 식사하자.
점심같이 하기로 한 의전원학생한테 전화가 온다.
구로역화재로 모든 지하철이 늦어지고 있다 하면서.
둘을 데리고 연구실 건너 길에 있는 ‘카사 디 엘레나’로 간다.
큰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를 잡았다.
‘엄마가 교수님에게 맛있는 걸 사드리라고 했어요.
‘내가 살터이니 내가 시킨다.’ 점심이라 에딩거 맥주 두병을 시키고
피자가 되느냐고 물었더니 아래층 ‘Wien’에서 시켜 드릴 터이니 계산은 거기서 하면 된다고.
푸짐한 샐러드에 갓 구운 피자 안주삼아 맥주는 괜찮은 조합이다.
여기에 파스타 하나 주문하여 나누어 먹으니 배부르고 남은 피자는 사서 가져간다.
참, 맥주를 홀수로 끝내느라 결국은 작은 것으로 다섯 병을 마셨네.
커피는 내 연구실에서 캡슐 커피로 하자. 다시 연구실로 돌아온다.
화가는 오후 작품으로 바삐 화실로 들어가고.
캡슐 커피는 원가가 조금 비싸나 게으른 사람에겐 너무나 편하다.
맛도 그런대로 괜찮고.
내 전화가 오늘은 바쁘다.
오후에 내 연구실로 모녀가 찾아오기로 한 여자 환자한테 온 전화는 입원해있다고.
어제 저녁 나에게 맛있는 빵 한 박스를 보내어 냉동 칸을 가득 채워 두었는데.
안에는 푸짐한 팥앙금, 종종 씹히는 견과류, 하나만 먹어도 나의 아침이 된다.
서울의대 산악반 후배가 찾아온다.
시간이 없어 약간의 현금을 찬조하고 좋은 술 한 잔도 못 먹이고 보내는 구나.
버스를 타고 병원을 간다. 환자는 다정관 특실병동 9층이라
찾아 갔더니 아는 간호사들이 모두 인사를 한다.
신참은 특실병동에 배치를 하지 않으니.
담도결석이라 방사선과에 내시경적 역행성 담낭조영술(ERCP)받으러 내려갔다 한다.
방사선과 조영실에 들어가려고 하니까 나 모르는 신참기사가 제지.
이를 보고있었던 제자 교수가 실실 웃으며 '교수님이야'
환자의 딸과 며느리가 지키고 있는데 환자는 괜히 입원시켰다고 성화가 대단하다.
이럴 때 얼른 보호자 편을 들어 바로 입원하였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시간 끌다가는 담낭 염증이 심해지면 응급 수술도 받아야 한다고 겁을 주고.
인공신장실에 들러 수간호사이하 간호사들을 만나고
재작년 결혼한 간호사가 오늘까지 근무하고 산전휴가에 들어간다며 신고를 한다.
금년 송년회 때는 같이 술한잔 못마시겠네.
로비에서 막내동생을 만나 '왜 왔지?'
제수가 어깨 인대가 끊어져 수술 예정이란다.
나한테 안 알리고 왔다가 들킨 셈.
병원에서 마지막 일은 나의 오랜 환자가 지난 금요일 우연찮게 그 남편을 응급실에서 보았는데
'교수님'이라 반색을 하여 연유인즉.
그날 새벽에 갑작스럽게 발생한 심한 두통으로 응급실로 와서
뇌 동맥류 파열에 의한 지주막하 출혈로 부인이 누어있었다.
응급수술 후 외과계 중환자실로 이실하여 웒래는 병실로 옮겨 갈때라
박수경을 찾으니 환자가 없다고 한다. 아니 그럴 리가?
하도 유병언 아들 호위무사 박수경, 박수경하다 보니 그냥 입에서 나온 것.
환자는 박숙경이었고 외과계 중환자실에서 아직 병실로 이실 못한 이유를 물었더니
다른 건 회복이 잘 되고 있는데 아직 혼돈상태이고 큰 소리를 쳐서 두고 있다는 것.
환자는 나를 알아보고도 헛소리를 한다.
'이 밤에 어떻게 오셨어요'
중환자실 밖에서 보호자를 찾으니 남편과 아들, 딸 모두 비상대기라 일단 안심을 시켜준다.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다.
책 몇권을 찾고 자료를 출력하고는 내가 위원장으로 있는 의협 의료배상 공제조합회의를 주제하러
버스를 타고 이수역에서 지하철을 바꾸어 타고 신풍역에 내려 저녁회의 장소에 왔다.
회의 시작하기 전 오늘 처음 참석하는 심사위원 소개는
나의 애제자로 우리 병원 성형외과에 남기기를 원하였으나
지금은 성애병원에서 일하고 있어 이사장님 안부를 묻는다.
회의 끝날 때 인사차 가져온 곳은 괜찮은 와인 한병.
오늘 하루는 버스-지하철-셔틀버스, 셔틀버스-지하철환승, 버스, 또 버스, 버스-지하철, 지하철-버스로
무려 12번이나 바꾸어 타고 다녔으나 교통비로는 버스비 겨우 오천원.
이걸 차를 가지고 다녔더라면 더 힘들고 택시는 돈이 제법 나왔고 시간도 별로 단축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침 아홉시에 집을 나와 밤 열시에 귀가 한다.
'어이 피곤해'
첫댓글 정말 바쁘십니다.
유박, 자네는 성애병원에 동기가 근무하는 것도 모르는가? 높은 이사장 안부만 묻게...
당신은 여기서나 저기서나 자주 볼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