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6일 좋은 부모 되기 가톨릭교회 안에서 이혼은 없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마태 19,5). 단지 혼인무효 선언만 있다. 혼인은 남자와 여자가 하느님 안에서 결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과 당신 백성 사이 계약이 이 혼인에 비유된다. 그 계약은 우리가 파기하지 않는 한 절대로 해지되지 않는다.
혼인에 대한 교리는 매우 이상적이다. 실제 삶은 그 이상과 많이 다른 거 같다. 무엇보다도 먼저 두 사람은 결코 한 몸이 되지 않는다. 뜨겁던 남녀 사랑이 식는데 3, 4년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다음부터는 정으로 산다고 한다. 우정이다. 현재 교회법이 말하는 혼인의 목적은 자녀 출산과 부부 사랑이다. 그전에는 자녀 출산만이었다. 좀 동물적인 거 같지만 이런 현실을 보면 그전 교회법이 더 옳았던 거 같다. 창세기가 말하는 거처럼 남자와 여자는 자식을 많이 낳아 번성해서 땅을 가득 채우고 온갖 생물을 다스려야 한다(창세 1,28). 그리고 부부는 남녀의 사랑이 아니라 우정으로 사는 거 같다. 하느님이 당신 백성과 맺으신 계약은 파기되지 않고, 하느님 마음을 아는 우리는 예수님과 복음적인 우정으로 산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주었기 때문이다(요한 15,15).”
교회에서 독신을 성소라고 하지 않는다. 즉 하느님이 혼자 살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혼인하거나 스스로 고자가 돼서(마태 19,12) 수도자나 성직자로 살라는 거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1인 가구는 거의 35%로 세 집 중 한 집이 1인 가구인 셈이다. 그중 약 1/3이 혼인하지 않은 젊은이들이다. 미혼이 아니라 비혼이란 말도 생겼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거다. 유명한 생물학자의 말처럼 인간은 현재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하는 거 같다. 자식 낳아 살기 너무 힘드니까. 그렇기는 해도 개나 고양이를 자식으로 삼을 수는 없다. 옛날 사람이라서 그런가, 반려동물을 가족관계 호칭으로 부르는 걸 듣는 게 영 마음 불편하다. 하느님 뜻에 따라 동물도 잘 보살펴줘야 하지만 자신이 낳은 자식과 같을 수는 없다. 사정상 독신으로 살아도 사람은 또 다른 방식으로 부모가 돼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만들고, 자식은 사람을 부모가 되게 한다.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은 구원과 완성의 길과 아주 많이 닮았다.
하느님은 용서하신다. 하느님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인간 행위가 용서다. 지은 죄를 없애주고 잊어버리는 게 용서다. 하느님 사랑은 인간이 하는 용서 그 이상이다. 그런데 그 이상은 알아들을 수 없으니까 성경은 이렇게 설명하는 걸 거다. “이렇게 내가 너와 계약을 세우면, 그제야 너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네가 저지른 모든 일을 내가 용서할 때, 네가 지난 일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하며, 수치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에제 16,63).” 뉘우치고 청해서 용서받는 게 아니라, 용서하셔서 지난날을 부끄러워하며 뉘우치게 하신다. 일터에서는 그렇게 친절한데 부모에게는 제멋대로 못되게 군다. 부모는 그런 자신을 다 이해하고 또 그렇게 해도 나중에 복수하지 않는 줄 완전히 믿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 후회하고 괴로워하면서 감사한다. 하느님은 이보다 더 좋은 분이고 하느님과 하나가 되려면 좋은 부모가 돼야 한다. 말없이 용서하고, 용서하기 위해 인내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예수님, 주님도 독신이셨습니다. 그것은 하늘나라를 위한 독신이었고, 마지막 날 하느님 앞에 혼자 서게 된다고 알려주신 겁니다. 가족관계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 위에 주님과 우정이 있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사정상 독신으로 사는 이들이 아드님과 친해지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