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배설물(똥)이 왜 꼭 배설되어야만 하는 배설물이겠습니까? 조금이라는 성경 해
석이 도움이 되고 쓸모짝이 있었으면 배설물이라고 극단적인 표현까지 했겠습니까? 여러
분, 성도와 그리스도는 십자가 안에 함께 들어있기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은 무조건 죽
임을 당하고, 정죄당하고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인간들이 지니고 있는 시간관, 철학관, 인
생관, 우주관, 과학관, 교회관, 기독교관, 심지어 믿음, 소망, 사랑까지도 말입니다. 모두가
배설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사라지고 나면 십자가 안에서는 주님의 십자가를 지
향하는 믿음, 십자가를 지향하는 소망, 사랑, 우주관, 인생관, 철학관, 학문관, 십자가만을
지향하는 성경해석관 등 모든 것을 새로이 선물로 공급받게 됩니다. 제가 외국에 나가 그
어려운 학문을 하고 온 것은 바로 그런 학문들이 십자가 앞에 배설물에 불과함을 여러분
앞에 바로 증거 하기 위함이요 그래서 참된 형제만을 찾아 나서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
분, 철학에서 시작된 해석학이란, 일단 성령님과 주님을 빼놓고 작업을 시작하자는 주의입
니다. 인간들인 우리끼리만 성경책 주위에 돋보기 들고 둘러 모여 서로의 아이디어를 끄
집어내어 해석 보자는 식입니다. 그러니 살아 계신 주님과 성령님의 활동을 무시해도 완
전히 무시하는 행태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주님은 그런 자들은 때마다 심판하지
않으시고 성도 앞에서 강렬하게 활동 전개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참 의
미를 그 상황에서 성도에게 체험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둘
러싸인 채 복음을 외롭게 전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어린 아이라 할지라도 성령 받
은 자만이 아는 진리는 바로, 십자가 앞에서 모든 것은 배설물이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
니다. 아, 인간의 교만성은 자칭 거듭난 성령의 사람 안에서도 피어나는 것이라면, 그 사
람이 거듭났다는 이유만으로 교만성을 도리어 긍정해 줄 수 있는 그 어떤 복음가 있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 차라리 그 사람보다 날마다 죽어라고 권고해 주는 것이 참된 사랑의
태도라고 여겨집니다.(상대방을 도리어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고 여기겠지만)"
과연 예수님이 해석해서 성령을 통해서 알게 하시는 십자가 진리 이외에 과연 다른 해석
이 가능할까? 또한 다른 결론이 구원에 의의가 있을까? 정말 참 신자로서 신학교 강단
을 지킬 수 있는 자라면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
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하지만 예수도 죽이고 성령마저 질식시켜 놓고 자기들끼리 언어 유희로 희희덕거리면서,
애초로울 정도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신학생들의 영혼에다 더러운 지식으로 여유만만하게
페인트칠하고 있는 자들에게 과연 총신이 아직도 그들의 놀이터의 제물이 되어야 하는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