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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에 덜어놓은 도치알탕. 한 마리의 살도 다 들어갔지만 알이 많아 알만 넣은 것처럼 보인다.
멍텅구리·뚝지·도치·심퉁이·심퉁어·씬퉁이·싱튀·씽티. 이 여러 단어는 한 물고기의 이름이다. 따지면 두 가지 물고기이지만 어민도 소비자도 구분해 쓰지 않는다. ‘도치’를 제외한 나머지는 우리가 ‘도치’라고 부르는 바닷물고기를 부르는 말이다. 그 ‘도치’의 본래 이름은 ‘뚝지’다. 또 다른 이름은 ‘멍텅구리’다. 못생기고 동작이 굼뜨고 느린 이 물고기 습성에서 유래했다.
그 말이 사람을 놀리는 말로도 쓰이게 됐는데, 점차 물고기는 잊혀지고 사람에게만 쓰는 말처럼 변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뽑아버린 형국이다. 동해·남해에서 잡히는 이 물고기를 지역에 따라 ‘심퉁이·심퉁어·씬퉁이·싱튀·씽티’ 등으로도 부른다.
완성된 도치알탕 한 냄비. 도치 1마리의 살과 알이 다 들어간 4~5인분이다.
쏨뱅이목 도칫과로 족보가 가까운 두 물고기의 차이는 덩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도치는 6.5cm, 뚝지는 25cm 내외라고 설명하고 있다. 두산백과는 각각 13cm, 27cm라고 설명한다. 어류도감은 뚝지의 몸 길이는 35㎝, 몸무게는 1㎏ 내외라고 했다.
이를 근거로 보면 우리가 아는 도치는 뚝지가 분명하다. 사전적으로 도치에 해당하는 물고기는 꼬마도치·엄지도치·우릉성치 같은 이름이 있으나 알아듣는 사람이 많지 않으므로 쓰기 어렵다. ‘뚝지’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사람들 쓰는 대로 ‘도치’로 표기한다. 이런 게 그야말로 중구난방(衆口難防; 여러 사람 입은 막기 어렵다)이다.
암도치는 알도치라고 부른다. 산란 철인 12월 무렵에는 몸피의 절반가량이 알이다. 한 마리에서 나온 알 두 덩이가 안주 접시에 가득하다.
도치는 강원도 동해안에서 많이 잡히고 음식으로 많이 해 먹는다. 휴전선~양양 사이 해역에서 주로 잡힌다고 한다. 도치는 산란기인 12월~다음해 2월까지가 제 철이다. 이 시기엔 뼈가 연해 버릴 것 없이 통째로 다 먹을 수 있고, 암컷은 커다란 알을 품고 있다. 설~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뼈가 억세져 어민들도 잘 먹지 않는다.
겨울철에 강릉·속초에 가야 먹을 수 있던 향토음식 도치 탕이나 숙회를 내는 음식점이 서울에도 하나 둘 생기고 있다.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역 9번 출구 근처에 있는 ‘수산항’(서울 마포구 성암로15길 8/전화 02-372-3300)도 그런 집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6월 11일 문을 연 ‘동해안 해산물 요리 전문점’이다. 언론사가 많은 DMC에서 개업 1년 반 만에 술꾼들 발길이 이어지는 해물음식 명소가 됐다.
도치알탕을 끓일 때는 먼저 김치를 냄비 바닥에 깔고 살짝 볶는다.
주요 메뉴는 ▷도치알탕·도루묵조림·생선조림·생대구탕·곰치국 각 4만/3만원 ▷동해안 산 문어 7만/4만원 ▷문어+골뱅이 3만5000원 ▷가자미·가오리막회, 동해안 참골뱅이 각 3만원 ▷가오리조림 4만원 ▷간장전복장 5만원 ▷섭국 8000원 ▷생대구탕 1만원 등이다.
볶은 김치에 문어 삶은 물을 붓는다. ‘수산항’ 도치알탕 맛의 비밀이다.
주인 겸 주방 책임자 강원남(56)씨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요리하고는 전혀 인연이 없는 일을 했다. 중·고·대학생 시절과 실업팀까지 사이클 선수로 활동했다. 선수로 밟을 과정은 다 밟았고 지도자까지 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팀 소속 회사에서 일반 직원으로 과장까지 직장생활을 했다. 연봉 5500만원이던 1999년 뭔가 내 일을 해보고 싶어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나왔다.
그때부터 2014년까지 15년간 유명 프랜차이즈 주점을 운영했다. 처음엔 벌이가 좋았다. 한 달에 700만~800만원은 남았다. 점차 수지가 나빠졌다. 그 사이 부인이 2005년부터 음식점을 따로 운영했다. 방이동 ‘수산항’(서울 송파구 오금로11길 30-7/전화 02-413-7777)이다. 운영은 부인이 했지만 조리법은 온전히 남편 ‘작품’이다.
손질해 놓은 도치 살을 탕에 넣는 강원남 사장.
“아내도 속초 사람이지만 생선을 잘 몰라요. 처가에 갔더니 생선요리를 비늘도 안 벗기고 해 주더라고요. 회는 오징어회만 해줘요. 생선을 아는 게 없는 거예요. 처가 고향이 울진인데 바닷가가 아니고 산골 쪽이었어요. 처가에 가면 생선요리는 내가 해 드립니다.”
도치알탕 맛의 두 번째 비밀은 애를 손으로 으깨서 국물에 푸는 것이다. 산지에선 다 이렇게 조리한다.
강 사장은 음식에 대해 따로 배우지 않았다. 남의 음식점에서 일을 해본 적도 없다. 맛을 내는 솜씨의 뿌리는 어머니다. 어깨너머로 배운 대로 해도 손님들이 맛있다고 한다. 아버지는 고향 수산항(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수산리)에서 배를 부리던 어부였다. 수산항은 국가어항으로 요트 계류장까지 갖춘 양양지역 거점 어항이다.
집에는 동해안 해산물이 떨어지지 않았고, 어머니는 날마다 여러 가지 음식으로 만들어 밥상을 차렸다. 강 사장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로 오기 전까지 부모님 슬하에서 살았다. 어머니 음식을 먹으면서 요리를 익힌 셈이다. 집안 내력도 있는 듯하다. 함께 자란 누님도 그렇게 배워 속초 구도심 바닷가에서 생선조림 집(후포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맛집이다.
도치알탕에 밥을 한 술 말면 국물 맛이 확 달라진다. 안주 겸 식사로 좋다.
어머니에게서 배운 대로 상암동 ‘수산항’에서 조리하는 대표 음식은 도치알탕과 도루묵조림이다.
도치 수컷은 숫도치라 하지만 암컷은 알도치라고 부른다. 알이 몸피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크기 때문이다. 산지에서는 알을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해서 먹었다. 가장 흔한 게 도치알탕이다. 알과 살이 모두 재료로 들어가지만 끓여 놓으면 알만 보이기 때문에 그러는지 이름이 ‘알탕’이다. 조리 과정을 물어보았다. 감추고 싶을 법한 내용까지 시원시원하게 얘기해줬다. 도치 1마리(4~5인분) 기준.
①도치는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낸다. 알과 애만 담고 남기고 버린다. ②몸통은 끓는 물에 잠깐 담갔다 꺼내 껍질에서 일어나는 부착물들을 벗겨낸 다음 새끼손가락 크기로 자른다. ③잘 익은 배추김치를 썰어 냄비 바닥에 깔고 살짝 볶는다. ④문어 삶은 물과 생수를 적당량 붓고(살아있는 문어 숙회를 팔기 때문에 문어 삶은 물이 늘 있다) 다진 마늘을 넣는다. ⑤끓이다가 도치 알과 살, 양파와 고춧가루를 넣는다. ⑥다시 끓으면 도치 애를 손으로 주물러 으깨서 풀고 파를 넣는다. ⑦마지막으로 두 가지 화학조미료(각 2분의 1 작은술)와 들기름(1큰술)을 쳐서 마무리한다.
‘수산항’의 밑반찬은 늘 6찬이다. 아래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미역줄기볶음, 멸치볶음, 가자미식해, 양파장아찌, 꽃게장, 대구아가미깍두기. 밑반찬만 있어도 소주 1병은 거뜬하다.
생선요리에는 일반적으로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쓰지 않지만 도치는 들기름과 궁합이 맞아 꼭 넣는다고 한다. 들기름 넣기 전후 맛을 비교해보니 넣은 다음 맛이 확연히 달라졌다. 도치를 끓는 물에 데치지 않고 요리하면 껍질을 싸고 있는 막 같은 것이 엉겨 분리되면서 국물에 섞여 텁텁해진다. 화학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으면 도치알탕은 맛이 없다고 한다. 사실 도치 살은 대부분 젤라틴 덩어리처럼 돼있어 맛이 우러날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도치알탕은 국물이 시원하고 먹을 때마다 알이 톡톡 터지는 게 재미있다. 꼬들꼬들한 살은 김치와 어우러지면 씹는 느낌이 독특하고 비린내가 전혀 없어 바닷고기 싫어하는 사람도 거부감이 없을 맛이다. 덜어서 밥을 한 술 말면 또 새로운 맛이다. 해장으로 아주 좋을 듯하다. 소주 안주로도 맞춤하다.
도치 알을 빼고 몸통을 데쳐 1차 손질한 상태.
40~50년 전 어머니가 하던 그대로 한다는 도루묵 조림을 하는 과정은 너무나 간단하고 쉬워서 저래도 맛이 날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래도 ‘수산항’에서 손님들이 많이 찾는 대표 메뉴다.
①무(입맛에 따라 감자)를 두툼하게 잘라 냄비 바닥에 깐다. ②알배기 도루묵을 손질해 무 위에 나란히 펴 올린다. ③간이 맞을 정도의 진간장에 3배의 물을 섞어 끼얹는다. ④다진 마늘, 양파, 파, 고춧가루 적당량과 가장 흔한 화학조미료(반 작은술)를 넣는다. ⑤무가 무를 때까지(10~15분) 조린다.
어황에 따라 2~4가지 생선이 들어가는 ‘생선조림’을 할 때는 속초 음식점의 누님이 9가지 양념을 섞어 개발한 비법 소스를 쓴다.
손바닥 만한 도치 살을 한입 크기로 잘라 요리에 쓰도록 준비했다.
대충 만드는 듯 보여도 맛이 있는 비결을 묻자 타고난 손맛을 들었다. 내가 보기엔 그보다 중요한 요인이 있다. 좋은 생선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이다. 성장기 18년을 바닷가 어부의 아들로 살면서 몸으로 익힌 능력이다. 단기 학습으로는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강 사장은 매주 일·수요일 노량진수산시장에 장을 보러 간다. 경매가 열리는 새벽이 아닌 오후 11시에 간다.
경매를 기다리며 쌓아둔 물건들 살펴보면서 좋은 물건 골라 구입한다. 시장 규칙을 어기는 일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생선 빛깔만 봐도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좋은 생선이 맛을 내는 바탕인 것이다. 산 문어와 참골뱅이, 일부 조림용 생선은 속초에서 직송하지만 도치나 도루묵은 산지와 신선도는 같아도 값은 노량진이 싸다고 한다.
장을 보면서 철 따라 상태는 좋은데 물량이 많아 싼 횟감들도 사온다. 대개 활어다. 잘 갈무리해뒀다가 선어 상태로 손님들에게 서비스 안주로 낸다. 안주 한두 가지 시키면 보통 서비스가 2~3가지 나간다. ‘그러면 망하지 않겠냐’ 물으니 그래도 남는다고 한다.
“4만~5만원어치만 사면 하루 서비스 안주로 충분해요. 저는 손님들에게 서비스 안주 주는 게 좋아요. 한 번 줄 때도 좋아하는데 한 번 더 주면 더 좋아해요. 좋아하는 표정이 나를 행복하게 해요. 그래서 일이 재미있고 좋아요. 퍼주는 재미로 장사한다는 게 그런 뜻인가 봐요. 그래도 남을 건 남아요. 많이 드리니까 손님이 많이 오고…. 아마도 천성이 사업을 흥하게 해주는 요인 아닌가 생각해요. 여름 휴가철 빼고는 평일 매상이 100만원은 됩니다.”
밑반찬은 늘 6찬을 챙겨준다. 그것만으로도 소주 1병은 거뜬하다. 조금씩 바뀌지만 취재하던 이틀엔 대구아가미깍두기, 가자미식해, 꽃게장, 멸치볶음, 미역줄기볶음, 양파초간장절임이 올라왔다. 가자미식해는 속초 전문점에서 사오지만 나머지는 손수 만든다.
작은 꽃게를 토막 쳐 간장에 담근 게장은 짜지도 않고 들큼하지도 않아 게 맛이 살아 있다. 껍데기도 연해 먹기 편하다. 대구아가미깍두기는 동해안에서는 겨울에 흔히 해먹던 향토미각이다. 생대구탕을 끓여 팔면서 나온 부산물로 훌륭한 맛을 냈다. 가자미식해는 나도 마니아인데 여태 먹어본 것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깊은 맛이었다.
산 문어 다리를 삶는 강원남 사장. 문어 숙회는 삶는 시간이 중요하다.
서울의 낯선 신흥 번화가에서 1년 반 만에 입지를 탄탄히 굳힌 이유를 알겠다. 어려움은 없었는지 물었더니 운칠기삼(運七氣三)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재미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개업 초 맛 내는 건 어느 정도 하는데 식당 요리를 처음 하다 보니 손이 느린 게 문제였어요. 그래서 주변 지인들 불러 신고식도 못하고 장사를 했어요. 그때 메르스 사태가 한창이었어요. 손님이 적었죠. 사태가 진정되자 바로 휴가철이 됐습니다. 손님이 또 뜸했죠. 그게 나에겐 기회가 됐습니다. 그 동안 연습을 충분히 했죠. 지난해 9월부터 손님이 많아졌는데 그럭저럭 응대를 할 솜씨가 됐습니다.“
동해안 산 문어 안주 한 접시(중/4만원).
도치는 겨울 생선인데 ‘수산항’에서는 한 여름에도 손님이 찾으면 도치알탕을 해준다.
“제 철에 급랭해서 뒀다가 1년 내내 도치알탕을 손님상에 냅니다. 대한민국에서 아마 저뿐일 거예요. 6년 전부터 겨울에 500마리쯤 사서 급속냉동 해두죠. 도치 1마리면 탕 4~5인분은 끓여요. 맛은 생물의 80%쯤 나옵니다. 속초 냉동창고에 보관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보내라고 해서 쓰죠. 그런데 여름에는 철이 아니니까 찾는 손님은 적어요.”
상암동 ‘수산항’의 외부 밤 모습. 요트가 떠다니는 양양 수산항 풍경을 간판에 담았다.
얘기를 마치면서 강 사장은 어머니의 레시피 하나를 덤으로 알려줬다. 누구나 집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물미역무침 방법이다. 들깨를 넣는 것이 특이하다.
①싱싱한 물미역을 살짝 데쳐서 5cm 길이로 자른다. ②다진 마늘, 살짝 빻은 들깨(온전한 것도 몇 개 섞여 있을 만큼 살짝 빻아야 한다)와 설탕을 조금씩 넣는다. ③들기름 치고 간을 봐가며 간장을 조금씩 쳐서 무친다.
좌석은 1층에 4인 식탁 5개와 식탁 2개씩 있는 룸 2개, 2층엔 분할이 가능한 40인용 방과 8인용 별실 등 총 84석.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11시. 토요일 점심까지만 하고 일요일은 쉰다.
필자 이택희
첫댓글 넘 맛보고 싶네요.
아들 직장과 가까우니 정보입력.
감사합니다~
토요일 아침에
얼큰한 알탕을 보니
입맛이 땡 깁니다~~
집에서 10여 분 발품
팔면 갈 수 있는 거리라
정감이 가는 곳이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