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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교회를 걱정하고, 불신자들이 신자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시대
“교회를 걱정하는 사회”라는 화두가 유행처럼, 설교화 한 지가 오래 전의 일처럼 되어 오고 있다. 솔직히 부끄러워 말을 꺼내기 어려워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할 문제이다. 이는 교회가 최악의 상태로 떨어져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우리 사회 회자되는 이런 말을 교회가 가벼이 강단에서 농담처럼 사용하여 유행처럼 되어 오고 있다. 교회는 이를 심각하게 받고, 자체적으로 변화에 몸부림 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인데, 너무 덤덤해하며 그 말을 자신은 관계가 없는 것처럼 설교언어로 삼을 뿐이다.
이런 경향성은 보편화 된 현실의 가벼움이다. 분명히 잘못되었는데 교회가 안으로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지 않고 오히려 무슨 재미 삼을 꺼리를 찾아서 설교의 반찬 정도로 활용하며 교회 분위기를 조성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완전히 지나고 난다면,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교회 핍박시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이때는 이런 교회적 분위기를 추구해 온 이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물론 복음을 위해서 고난당하는 우리 사회 초기적 현상이라면, 얼마든지 감사함으로 감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인간의 타락성에서 비롯되는 현상이기에 어리석고 교만함의 인간적 의지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1장에서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듯이 인간의 간사함과 사악함이 신앙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여 하나님의 진노아래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거짓된 신앙 몰이이다.
이러한 교회적 환경을 방임적으로 용인하거나 묵인하는 무리들이 세속과 공통적으로 유행화시키며 재미삼아 설교 재료로 활용해 오는 교회적 분위기를 주도하던 부류들이 코로나 이후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교회의 변질은 어느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당대 사회적 정황이 교회를 어떻게 내모는가? 그때마다 주요한 시점에서 그 당대의 교회적 반응이 어떻게 반영되는가? 교회적 변질은 이와 직결되는 것이다. 코로나는 전세계 교회는 물론 우리 한국 교회의 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때 교회와 세상을 하나로 몰아오면서 유행화하며 세속화하여 자신들의 성공동력으로 삼아 왔던 무리들, 교회적 환경을 유행화로 몰고 재미삼아 설교재료로 희화화(戲畫化) 삼기를 즐겼던 이들은 어떻게 변화를 도모 할 것인가?
코로나는 세계 교회 배척 공간이 더욱 구체화되어 작용될 것이다. 이때 또 다시 이들은 이런 세상의 변화와 하나 되어 교회를 핍박하는데 앞장서는 무리들이 될지도 모른다.
항상 교회 변천은 그래 왔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교회사의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종교개혁과 회심으로 신앙을 실천하는 겸손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종교개혁 이후부터 점점 드러나기 시작하는 현실주의 신앙 논리는, 휴머니즘으로 둔갑 되는 교회 시대 공간을 열어오면서 점진적으로 교회 본연의 성경적 교회 실체를 거두어내며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시대적 환경에 점차 함몰되어 오면서 이러한 시대적 정황으로부터 종말의 최종종결시간대로 가까워질수록 드러나는 인간 타락의 경향성의 결정체가 교회 시대 타락을 몰아오는 계시록 현상의 시작이 되어진 것이다.
이러한 교회적 정황은 1달란트 종과 같이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하는 거짓 된 변증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지키는데 급급하고, 자신 존재를 변호하는 현실의 교회적 괴물들로 변모를 해오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는 이런 한국교회 기반을 더욱 공고히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고 있다. 이들은 바로 배도자들로 드러나는 과도기적 현상이다. 세상에서 안정 된 삶을 추구하고자 교회 기반을 정치화하고, 나라 밖에서 침략을 도모하는 다른 힘을 받들어 섬기는 극단적인 환경을 추구하는 자들이 한국교회를 유린하는 것이다.
이들이 하나님과 성령의 이름, 즉 자신들의 목적을 도모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신비주의적 종교 형태로 편향적이고 선동적인 신앙몰이로 변질되어 온 초대교회 사단의 회와 같은 현상이 자기 사회와 정부를 향하여 폭력적이고 난폭한 언행으로 악을 도모하고 있다.
코로나는 정부가 몰아가는 정치적 배경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신앙의 이름으로 정부를 굳이 코로나 주범으로 몰아가며 정부 전복(顚覆)을 노린다. 코로나는 명백하게 세계적인 현상이고 이를 통해서 무언가 지구를 어떤 방향으로 몰아가는 집단들로 따로 있다.
정부는 이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켜내고, 국민들의 생명과 삶을 보호하려고 방역에 애쓰는 것이다. 그런데 애써 이를 부정하고, 공산주의, 주사파, 등으로 몰면서 정부와 대통령을 그렇게 취급하여 정부 전복, 문재인을 끌어내라! 나라 망치고 무너트리는 저 문재앙을 청와대에서 몰아내고 대통령에서 끌어내리자!
이런 막말을 일삼는 이들이 진정 성도들이고 목회자라고 할 수 있는가? 진정 하나님의 종들이요 백성들이라고 하는 이들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가? 말로 악을 행하고 불의를 조성하는 무리들이 아닌가?
“하나님,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죽어!”, “아웃이야!”, “자신은 성령을 받아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알게 돼”, “지금 자신이 기도하면 코로나든 모든 질병에서 나음을 입어, 할렐루야!” 앞으로 100년 후면 모든 것은 다 사라지고 끝나지만 오로지 한 사람만 인정되는데 그가 누군지 알어? 바로 나 전광훈이야? 아멘! 모인 무리들의 아멘 함성!
이 사람이 과연 신앙적으로 정상인가? 이 사람의 이런 교주 놀음에 화답하는 무리들이 과연 진정한 교인들이라 할 수 있는가? 제대로 된 목회자며 신앙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 한국교회는 이런 정치 놀음에 대해서 정상적인 신앙 노선에서 반응해야 할 것이다.
이 전광훈 목사 옆에는 또 누가 붙어 있는가? 모교회 권사라는 여성이다. 엄마부대, 엄마방송의 대표로 활동하며 작년 위안부상 앞에서 한일 간 무역전쟁이 시작될 때, 엄마부대 집회를 주도하면서 어떻게 외쳤던가?
방송을 타면서 온 나라사회 앞에서 어떻게 외쳤더란 말인가? “아메 총리님, 정말 죄송하고 잘못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문재인이 건방지게 일본과 무역전쟁을 한다니! 우리가 잘못했고 자신이 대신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이런 논조로 섬김의 예를 다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금번 광복 집회를 광화문에서 개최를 하는데 전국 30만 장로들이 각 주요 교회별로 참여를 독려하고 이런 세력들과 연합집회로 진행을 했다는 것이다. 순복음을 비롯해서 각 교회별로 동원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일부 목회자들도 자신들 교회 성도들을 독려하여 이 집회에 참여를 했다고 한다. 도대체 왜, 주님 이름으로 정치적 행보들을 하면서 교회적 공공성을 경시하는 어리석은 자리로 들어가는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불법자들이 되고자 하는가?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행하는 행위들이 아닌가?
그런데 이 집회에서 뭔 짓을 했는가? 대놓고 정부 방역을 부정하고 방해하는 집회로 몰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 상황은 정부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국민들을 선동했다는 것이다.
별것도 아닌데, 정부가 엄중한 상황으로 몰면서 코로나에 걸려도 상관 없다는 식으로 선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는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전국몰이로 코로나를 확산시키라는 밀명을 내리는 집회였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교회가 지금 코로나 대 확산의 중심에 섰고, 한 주간이 지나면서 500명 대로 확산되는데 주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정치적으로 코로나 정국의 정부와 대립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중대한 사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다 정부 전복, 대통령을 그 위치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등의 정치적 선언들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 줄 아는가? 바로 내란 음모에 속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끌어내려라! 이 정부를 몰아내고 전복시켜야 한다. 이렇게 대중적으로 방송을 타면서 선동을 하고 국민몰이를 한 것이다.
명백히 내란음모죄이다. 교회가 순수한 복음 전파와 신앙을 세우기 위해서 집회로 은혜를 받고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들로 무장하는 과정만을 추구해야 하는데 정치화되어 선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정부와 전쟁을 벌이는 짓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반교회, 비신앙적이고 이단적인 요소가 강하게 형성된 중세 로마 천주교의 길을 걷는 것이고, 구약 악한 길로 걸어간 왕들의 모습이다. 이는 오래 전부터 기독교당을 추구해 오던 전광훈의 발람의 교훈을 쫓는 길로 이와 합세하여 정부 전복을 노리는 정치 참여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초대 일곱 집사 중의 니골라가 있다. 일곱 집사 중 마지막에 기록되고 안디옥에서 올라온 니골라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 중 가롯유다와 같은 이들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서는 “화인 맞은 자들”이요, “사단의 회”로 말한다. 그런데 좀 더 구체화 하자면, 이들을 계시록에서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라 했고, 이를 구약의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과 동의적으로 말한다는 점이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직계 제자들이 계승하여 지키는 강렬한 신앙기반 위에 세워진 7곱 집사들의 직임이 파생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롯유다의 배반이 교회 안에 심어졌다. 이는 창조 직후, 뱀의 유혹과 인간 타락이 들어 온 것과 같은 이치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앙의 원리는 초대교회 일곱 집사 문제도 조명된다.
아무리 신앙심이 깊었던 직계제자들이 세웠다 할지라도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물며 오늘 ‘종말의최종종결시간대’의 신자들이나 목회자들은 오죽하겠는가?
그러므로 겸손하여 은혜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다가 그 누구라도 시험에 들고 교만에 걸려 넘어 질 수 있음이다. 무엇보다도 그 심지가 지식의 교만이나 속임수의 술수를 부리는 사울 왕과 같은 심성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음이다.
이는 일곱집사 중, 한 사람이었던 니골라가 은혜받아 신령한 일을 행사하다가 자신이 행하는 능력에 심취되다보니 신비주의자처럼 스스로 높아짐으로 당을 만들어 주님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이 니골라 당으로 니골라의 교훈을 따른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러니까 일곱 집사에는 스데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니골라도 있다는 것이다. 바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주의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인간 세상이든, 교회 안이든,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지상의 인간 삶에는 둘이 공전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바알의 문제이다. 어떤 기독교적 낙천주의 신앙인들은, 영지주의 영향이니 뭐니 해서는 선과 악의 문제를 분리하지 않고, 해석의 논리, 즉 인간이 느끼고 분별하는 이성적 잣대로 하나의 문제로 보고자 하는, 여기서 신앙과 세상을 혼합되는 합리성과 정당성을 부여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의 기준은 낮과 밤이 결국 하루로 하나이듯이 현실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기준으로 연계시키는 문을 열고 넓히는 우를 범해버린 것이다. 이를 좀 더 정당화 시키는 논리는 예수만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낙천적인 신앙 원리를 자신들을 위해서 넓혀 놓아버린 것이다. 이런 휴머니즘적인 논리로 현실주의를 논하면서 애매모호하게 하나로 보고, 혼합과 세속화의 교회 환경을 가져 온 것이다. 이것이 지금의 한국교회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부류들이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선교 3세대로 들어 온 한국교회는 세상의 정치권과 하나가 되어졌다는 의미이다. 군목, 경목 등의 세속 권력의 주요 위치로 목회자 직임을 동시에 가지면서 혼합의 신앙의 문을 열어 온 것이다.
그러다보니 세상의 권력가들이 교회 목회자들의 언어가 너무 성경적이고 신학적이니 거리가 머니, 세속의 언어로 문을 열어서 자신들이 알아 듣게 쉽게 하자는 속삭임에 점점 문을 열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세속의 힘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러한 휴머니즘적 인간 언어를 교회 중심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은 자신들 중심의 교회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자기의 사람들을 교회 안으로 들여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순수한 성경적인 신앙관으로 무장했던 목회자들은 자신들과 언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들여보내 세워놓은 자들이 교회 기반을 장악하고 세속의 언어가 소통되는 교회 기반이 되니 세상과 교회가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런 교회 기반이 지금 어떻게 하는가? 전광훈은 세상의 권력자들과 잘 통하는 세속의 성향에 능숙한 자였다. 그런데 그가 작은 정치적 파이에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큰 정치적 파이를 노리겠다고 교회 기반을 이용하여 정부와 정치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세속의 무리가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성직의 위치를 꿰차고 않게 되면, 교회도 사회도 정치기반도 어렵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욕심 그대로 교회 기반을 장악하여 세상을 손에 거머쥐고자 하는 탐욕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150년 정도 흐른 지금의 우리 한국교회 현실이다. 그래서 당나라의 경교는 이 정도 기반에서 무너지기 시작했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그처럼 우리 한국교회도 교회 안에 들어 온 변질 된 인간들의 사악한 거짓의 무리들에 의해서 무너지려 하는 시류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주님 제자들이 세운 7곱 집사들이라 할지라도 자칭 신령하게 자신을 간주하게 되는 교만으로 이단에 빠졌던 것이다. 계시록 2장에서 밝히고 있듯이 교회 안에 니골라 당을 조직하여 니골라의 교훈을 따르는 무리들로 묘사하고 있다.
이들은 구약 발람의 길을 걷는 무리들과도 연관이 있었던 것 같다. 발악의 2번의 초정과 3번의 이스라엘 저주 요청을 받았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막으심으로 저주가 아니라 축복으로 기도하도록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발락이 가지고 온 물질의 무게 앞에 흔들린 양심이 문제였다. 그래서 3번까지 계속 하나님께 물으러 갔던 것이다. 재물의 힘 앞에 무릎 꿇는 목회자들의 모습이다. 재물의 신에 무릎 꿇은 목회자는 도적으로 목양의 무늬를 만들어가는데 천재가 된다. 다만 안 그러는 척, 거룩한 척 위선을 잘 부리는 것이 거룩을 이용하는 도적이라고 주님께서 못박는다.
재물의 힘은 결국 발람으로 하여금 살짝 발락의 귀에 이스라엘이 망하는 길을 제시하고 말았다. 은밀한 범죄는 항상 이런식으로 진행된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망하는 길로 빠지게 하는 방법이었다. 우리에게 항상 이런 길로 몰아가는 유혹은 어떤 형태로든 항상 다가온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행음, 즉 간음에 빠지게 했다. 발락 왕국의 여인들과 교합하게 하여 교류가 시작되게 한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항상 이런 길을 제시하는 이방인들의 유혹이 펼쳐진다.
재물로 한국교회가 망하는 길을 은밀하게 제시해온 검은 자들이 누구인가? 이것을 우리 한국교회는 이제라도 영적 각성이 일어나서 분별하고 진리를 사수하는 교회 본연의 길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자,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거짓 선지자의 문제이다. 주님 재림의 시기가 임박하면 더러운 자들이 거룩한 곳에 서게 되고, 능력을 부려서 성도들을 미혹하고, 말과 행위가 화려하다고 성경은 일직이 우리에게 교훈을 해 주지 않았는가?
거짓의 선지자들은 말과 행실이 화려하지만 회중들을 바르게 인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은 능력을 부리고, 말이 화려한데 세월이 흐르면 영적으로 교회와 신자들이 병들고, 영적으로 잠자게 된다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르게 말씀으로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청중들이 되도록 잘 인도해 가지 않고, 오히려 망하는 길로 인도하는 거짓의 지도자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현재, 전광훈목사 사태는 한국 교회를 향해서 이 점을 부각시키는 문제이다. 검은 사제단 같은 무리들이 장악을 해서는 점점 한국 교회를 구렁텅이로 내몰아가고 성도들을 영적으로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눈을 가리고 영혼들을 죽이는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 상황을 보라! 하지만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더욱더 빠져 들어간다. 그런데도 교회와 목회자들이 이를 방임하고 어떤 무리들은 오히려 적극 가담하여 자신 정부를 향해서 공격하여 부정하며 막말로 국가 전복을 도모하는 일에 동참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회가 역사상 자기 정부와 대립을 한 예가 있는가? 우리 신앙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가? 당대 이스라엘이 로마 속박 가운데 있었고, 악이 성행하는 법도 진리도 없던 때가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그런 세상 정부를 향해서 폭력으로 항거하라고 교훈을 펼친 것이 아니다. 세상의 죄인들, 소외당하는 무리들, 병든자들을 찾아가셔서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시며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도록 깨우치시고 용기를 주시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제자들이 자신의 정부를 향해서 이런 괴악을 행한다? 온 나라가 세계 특수한 무리들이 몰아오고 있는 코로나의 엄중한 상황이 아닌가? 온 나라가 힘들어지고, 경제는 물론 온 사회가 흔들리고, 정치적으로 반대자들이 계속 막무가내로 정부를 흔들어 대는 때가 아닌가?
이런 때 교회가 중심이 되어 정부 방역을 돕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오히려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도망다니고, 보건소 방역을 부정하고, 막대 먹은 말로 고함지르고, 전국적으로 환산시키라는 깜깜이 역할 환경 조성이라니!
그런데 더욱 기가 찬 것은, 이런 사악한 무리들의 반정부 운동에 교회 장로들과 목회자들, 유수의 교회들이 동참한다? 한국 교회 역사상 이 같은 일이 없었는데 일부 한국교회와 실무자들이 이런 반정부 운동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예배를 영구적으로 드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신앙생활을 하지말고 정부 지시를 따르라는 것도 아니다. 로마 가이사 황제처럼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이 신이니 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나를 믿으라! 이렇게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너무 심각 단계로 들어가니 3단계로 올려야 할 상황처럼 우리 사회가 너무 어려워진 상황이니 2 주간만 대면 예배를 중단하고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지금 세계적 코로나 상황은, 우리 정부가 연구하여 퍼트려서 정치적인 환경으로 내몰아가는 성질이 아니다. 이는 세계를 하나의 국가 체계로 내몰아가는 유대인들이 이미 일직이 연구를 해 온 인공적인 바이러스 문제라고 단정 된다.
그러니 유대인인 빌 게이츠나 짐 로저스 같은 세계 유명인사들이 예언 제스쳐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복잡함이 도사리고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왜, 자기 정부를 무조건 공격하고 전복시키려 하는 것인가?
어떻게 전 국민들의 생명이 걸리 문제인데, 이런 국민들을 대상으로 이 같은 짓들을 벌인단 말인가? 그렇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이들이 어떻게 교회 기반을 이런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
본인은 이들 무리들과 일본을 연결하여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제언한다. 이미 요 몇 년 동안 우리 사회 일본 관련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해저면에서 움직이던 일본 조류(潮流)가 이제는 우리 사회 해면(海面) 위로 부상(浮上)하여 우리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우리사회 극우보수, 기득권자들, 한국화 된 일본인들, 통일교 합동 결혼식의 과정을 통해서 한국 사회로 진출한 일본 여성들의 한국 생활 4, 50년 역사의 2, 3세의 일본인들, 일본인 한국 공장 시대를 통한 현지처 2, 3세 한국 내 일본인 자녀들 배양(培養), 이들 그룹들이 우리사회 보수지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들이 교회 기반까지 장악하고서 안착(安着)의 과도기를 거친 다음, 대한민국의 권력 기반을 잃게 되자 운동권자들이 된 것이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 상류층과 일본으로 하나가 되어 있고, 지금처럼 극단적인 극우 보수주의자들로 행동하는 투쟁가들이 되는 것이다.
한국 내 자신들의 기반과 정체성, 즉 일본을 환영하고 섬기고자 하는 나라적 의미를 말함이다. 이것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정부 전복(顚覆)을 목적으로 한 운동권자들로 변신(變身)을 도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 이들이 강조하고 외치는 나라 개념은 확실히 우리와 다름이 드러난다. 이들이 품고서 외치는 나라는 일본과 내선일체(內鮮一體)의 나라이다. 지금의 한국이란 나라는 자신들의 종의 나라인 조선이란 저급한 나라일 뿐이다.
그 나라 정부요 대통령이니 막 함부로 이름을 부르고, 하인 대통령으로 여기니 경시하고 막말로 거침없이 해대는 것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라서 이들을 포용하는 것이 아니라 혹시 이런 배경을 수용하기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것이 지금 민주당에도 통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것 같다. 주옥순, 이 여성이 입에 개 버끔을 물면서 대통령의 이름을 함부로 질러대는데, 그 순간 20세도 채 되기 전의 10대나 3살 짜리가 주옥순, 옥순이 이년아! 하고 한 번 질러대는 것을 한 번 받아 보라는 것이다.
전광훈, 그리고 이들이 집회를 하는 그 강단에 서는 자들은 하나 같이 이 모양들이다. 이런 배경이 일본이 우리를 저급하게 취급하는 그 같은 배경에서부터 나오는 것이고, 이를 우리 사회가 은근히 수용하는 것이 아닌지, 그래서 공권력이든, 언론이든 하나 같이 이런 저급한 무식 몰이에 무슨 수준 높은 민주주의 사회임을 갖다 봍이는 것인가?
솔직히 우리사회가 이렇게도 무식한 사회인가? 이들의 행보들이 우리사회를 어떻게 몰아가고 있는가? 모든 세상 이치에는 흐르는 도가 있고 질서가 있다. 이를 세상은 상도가 있고, 예법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들은 아예 강그리 무시한다.
이것은 일본이 근본적으로 우리를 대하는 그 같은 저급하고 경시하는 태도가 이들을 통해서 공식화되고 방송을 타고서 우리 온 사회를 그렇게 몰아가는 것은, 너희는 우리 일본이 종들이니 그런 몰상식한 칭호로 납작 꼬를 박아라! 이런 인식을 깔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교인들과 목사의 입에서 그렇게도 저질스런 막말들로 폭력을 행사하고, 사람을 죽이는 말들을 할 수 있는가? 성경은 “라가라” 하는 욕을 사용할 때, 살인을 하는 것과 똑같은 짓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 과거 종교인들이 정치에 참여할 때를 상기해 보라! 군사독재로부터 민주주의를 위해서란 이유로 투사들이 되어 반정부 운동을 펼쳤다. 이것도 남미의 해방신학에 기인하여 자유주의 신학 노선들이 중점이 되어 민중해방이란 이름으로 반정부 노선을 펼친 것이다.
이도 그리스도의 신앙 정신에 입각한 제자들이라면, 바람직하지 못한 교회 노선이다. 이것을 따지고자 함이 아니다. 순전한 교회관에 비추어 볼 때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들은, 사회학적으로 볼 때, 억압 받는 민중을 위함이라는 민중신학이라는 건전성이라도 있었다. 이를 주도하던 문익환 목사, 그리고 이분과 함께 이들은 그래도 자신들 나라와 민중이라는 분명한 테마에서 사회 개혁을 부르짖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전광훈목사가 주도하는 정부 투쟁은 우리 사회 기득권자들이다. 그런데 너무 무식하고, 신학적으로도 신앙도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리스도, 성령의 이름으로 악을 행하고 망령되이 한다는 것이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들이다. 그런데 나라와 정부, 그리고 대통령 자체를 무조건 부정하고, 정부 전복을 목적으로 투쟁의 방향을 잡은 것이다. 전복의 이유가 무엇인가?
사회주이, 공산주의, 주사파, 즉 빨갱이 정부,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그럼 국민들이 이를 긍정하고 지지하는가? 대다수 국민들은 지금 정부를 지지한다. 그리고 나라의 긍지와 자부심을 조금씩 느끼고, 무엇보다 강력한 자주 국력, 국방으로 미래를 향하는 현실을 구현해 가는 것을 보면서 과거와 다름을 느낀다는 것이다.
정말 기가차지 않을 수 없다. 국민 대부분은 지금의 정부가 어디를 봐서도 공산주의 정부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갈수록 세계의 이상기류, 미국의 여러 압력, 특히 IMF 체제 시작 이후 계속되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 현실은 정부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힘없는 나라 환경의 한계라는 점이다.
그래도 과거와는 좀 달라지는 나라 현실을 경험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현재의 나라 환경으로부터 점점 나아지는 나라 미래로 탈출하자라는 차원에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현 정부를 지지한다.
통일을 지향하고, 싫든, 좋든 북한을 끌어안아야 한다. 물론 지금 북한은 여전히 믿을 수 없는 행보로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 준다. 그래도 기다리며 남북한은 하나 되어 강력한 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통일 한반도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우리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이자, 희망이다. 2천 조가 넘는 빚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이는 북한의 지하자원을 우리가 개발하여 남북한 동시 발전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북한과 함께 하나의 통일 국가로 나아갈 때, 그때 전세계로 뻗어 나갈 길이 열리고, 그 부대 효과는 너무 거대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일한반도를 일본이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한국이 자신들과 손 잡고 부산, 거제도, 일본으로 이어지는 해저 터널을 통해서 육지로의 길을 열고, 일본이 주도하는 세계의 경제적 효과를 올리는 길을 내고자 하는, 그래서 일본은 정복 욕구를 감추고서 남북한 대립구도를 어떻게 해서든 몰아가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통일교가 적극적으로 일본 중심 해저 터널 뚫기에 열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통일교와 한국교회가 은밀하게 결합(結合)되는 과도기를 펼친다는 것을 모르는가? 그래서 통일교를 통해서 우리 사회 안으로 들어 온 수 십만의 일본 여성들이 어마어마하게 한국 개신교 교회 안으로 들어 와 있을 것이다.
이를 우리 사회와 교회가 간과한다면, 이는 큰 재앙을 불러오는 날을 맞고야 말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주옥순과 같은 여성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하도록 하자! 며칠 내로 다음을 이어서 논술하도록 하자! 다만 우리 한국교회는 이 코로나가 지나면, 우리 사회가 너무나 싫어하고 교회를 핍박하는 환경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 한국 사회가 무조건 교회를 핍박하는 사회로 들어간다면, 이 또한 우리 사회가 불행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와 교회는 지혜롭게 이 문제를 바라보기를 제언하는 바이다. 잘못된 교회 현실 문제가 일본으로부터 시작된 것일 수 있음이다.
한국교회를 일본화해 왔거나 일제 강점기 때 강인한 신앙심으로 일본과 싸우던 교회를 병들게 해 놓음으로 한국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도록 해 놓았다는 논리적 근거 말이다. 그것은 제3차 침략을 단행하기 전의 어떤 종교도 한국 사회에 건강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일본이 침략 물결이 미연에 정지 작업을 해 온 것임을 말이다.
우리 사회 안에 그 역할을 해 온 친일본적인 비밀의 결사대가 움직였지 않는가? 이는 우리 사회 공권력이나 연구가들, 그리고 학자들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하게 통하고 쉬쉬하는 문제가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 정부와 한국교회는 이성과 신앙으로 자국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지혜와 힘을 모으는 공법(公法)이 살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공법은 본래 성경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의 법을 말함이지만 이는 교회가 취하여 나라 사랑에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정의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서 이물질적 힘과 영향력이 물처럼 스며드는, 이는 성경에서 가만히 들어오는 자들로 묘사하였다. 이런 나라적 배경을 막기 위해서 교회적 위치를 가벼이 다루지 않는 국가 공법에 교회적 역할을 존중하였으면 한다.
그것은 나라와 정부가 사회 안의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이단, 사이비적 종교 현상을 종교의 자유라는 이유로 결합되려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과거 지금의 야당이 바로 이런 종교적 배경들을 키움으로써 일본적인 종교 타락시키기가 들어 온 것이다.
가만히 들어 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단이나 사이비는 그 어떤 경우에도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종교성이 안 되기 때문이다. 마가 지배하는 기반이기에 결고 정부와 사회 안에 건강하고 강력한 국가 기반으로 도움이 안 되는 성질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교회를 바라보는 우리 정부의 공공의 판단과 눈으로 통치의 장을 열어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역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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