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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창조
성경 말씀: 창세기 1:1-8; 골로새서 1:9-23
요약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분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서사합니다. 단순히 신이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하면, 창조하는 신의 권능을 사람이 상상하니 신화적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하면, 하나님의 권능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부각됩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니,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라보아집니다.
말씀의 창조
성경 맨 처음에 나오는 창조의 기술은 언약의 시각으로 보아져야 합니다. 언약의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창조 기술은 하나님, 말씀, 그리고 세상으로 엮여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함은 하나님과 세상의 직접적 내용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창조된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매개됩니다.
성경의 창조 기술은 일반적 창조 신화 가운데 하나로 접근되지 말아야합니다. 혹은 지금 성행하는 일종의 과학적 이론으로 여겨지지 말아야합니다. 우선 거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신화적 신이 아닙니다. 신화적 신은 막강한 힘을 구사하지만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신화의 신은 사람의 초자연적 힘의 상상으로 도입됩니다.
성경의 창조 기술이 보이는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언약의 기본 설정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이루어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짐은 하나님의 말씀의 우선성을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우선성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분명합니다. 창조의 기술도 그분 말씀의 우선성을 보임으로, 언약의 내용으로 보아집니다. 창조도 그분 말씀의 이루어짐입니다.
창조 기술은 먼저 말씀의 하나님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직접적으로 세상의 하나님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다루어지는 창조는 그냥 처음 생긴 것에 대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입니다.
현대 과학이론은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집니다. 창조 이론은 그들이 사는 세상이 어떻게 생성되게 되었는지 설명합니다. 빅뱅이론은 그중 하나입니다. 창조는 인과관계를 따라 일어난 현상으로 설명됩니다. 원인과 결과가 명시적으로 엮여 이론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의 창조 기술은 인과율로 엮어지지 않습니다. 창조의 단계는 매번 하나님 말씀의 이루어짐으로 보입니다. 창조되는 것은 이전에 창조된 것으로부터 인과율로 파생되지 않습니다. 매번 하나님은 그분 말씀으로 이루십니다. 모든 것은 그분 말씀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현상으로부터 현상에로 엮는 것은 인과적 설명입니다. 그러나 매 현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이면,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분 말씀은 인과적으로 엮어지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이렇게 창조 기술은 모든 현상이 그분 말씀으로 보아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분 백성에게 주어집니다. 사람의 말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통용됩니다. 그 말로 그들은 사는 일을 기술하고 설명합니다. 지금 학교에서 가르치는 말은 사람들이 세상의 변화를 따라 익힌 현상에 근거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분 백성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언약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할 때 창조된 세상은 언약의 세상입니다. 언약의 세상은 언약의 백성에게 보이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창조 기술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닌 언약의 백성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시각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세상을 보게 합니다. 창조된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삶의 근거지입니다. 즉 창조로 볼 때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삶의 터전입니다.
말씀의 세상
창조 기술은 자체로 언약의 기술입니다. 총체적 언약의 말, 곧 성경에 내포됩니다. 서사, 율법, 지혜, 예언, 시편과 같이 창조 기술도 일종의 언약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창조 기술을 지금 과학 이론 같이 이해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것은 언약의 틀에서 보아집니다. 과학적 틀에서 보아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창조 기술은 다른 언약의 말과 더불어 그 뜻이 묵상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화나 과학으로 접근되면, 언약의 맥락을 벗어나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창조 기술이 아닌 성경에서 창조 기술입니다.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읽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으로부터 보아집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접해집니다. 사실로 접해지지 않습니다. 즉 성경은 우선 사실로 접해지지 않고 말로 접해집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사실을 머리에 그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사실인가 아닌가 하는 관점으로 접근되지 않습니다.
창조 기술도 사실로 접해지지 않고 말로 접해져야 합니다. 그것은 우선 하나님의 말씀으로 접해져야 합니다. 즉 그것의 사실성에 구애받지 않고 그분 말씀으로 의식됩니다. 사실이 아닌 사람의 말은 거짓이라고 하지만, 그분 말씀은 그렇게 말해질 수 없습니다. 그분 말씀은 약속으로 이루어집니다. 세상에 있거나 있을 수 있는 것을 표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창조 기술은 잠언이나 시편 같이 우선 말로 접해져야 합니다. 그러면서 창조 말씀이 지닌 뜻이 묵상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출애굽이나 열왕기의 서사에서 반영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일어난 사실로부터 성경의 말이 생성되었다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 곧 그분 함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근거한 말이 아닌 그분에 근거한 말입니다. 사람이 말에 대해선, 누구의 말이든, 그 뜻은 세상을 근거로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그분 말씀에 대해선, 그 뜻이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말은 세상의 진행을 따라 참과 거짓이 가려지면서 정리됩니다. 거짓의 말은 도태되어 더 이상 들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발설된 것 자체로 기억됩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은 변하는 세상에 적용되지 않은 말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분 말씀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그분 말씀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분 말씀은 그분 말씀으로 간직됩니다. 그러나 그분 말씀은 불변이거나 문자적으로 고정된다고 주장되지 않습니다.
창조 기술은 우선 그것의 사실성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어져야 합니다. 그분 말씀의 읽음은 사실성을 따른 사람의 말의 읽음과 다릅니다. 이 점에서 창조 기술은 과학이나 신화로 읽어지지 않습니다. 도큐먼트의 영상으로 읽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창조 기술은 출애굽 서사와는 다른 하나님 함께에 대해 들려줍니다. 즉 창조의 시각으로 하나님께서 그분 백성과 함께하심을 보여줍니다. 창조 기술로 바라보는 세상은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그들의 삶은 그분 말씀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들은 그분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에서 그분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의 총체성
하나님 말씀의 터전은 언약의 삶입니다. 언약의 삶은 그분 말씀으로 펼쳐집니다. 그러므로 창조 기술은 언약의 삶에 자리잡아 그 뜻을 보입니다. 세상은 창조된 뜻으로 언약의 삶에 의식됩니다. 그리고 그 뜻이 보임으로 언약의 삶은 펼쳐집니다.
창조 기술은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의 기반에서 나오지 않음을 분명하게 합니다. 그분 말씀은 세상에 의하지 않고, 세상이 그분 말씀에 의합니다. 세상은 그분 말씀 이루어지는 점에서 창조됩니다. 언약에서 세상은 창조됩니다. 자연적 세상이 아닙니다.
창조 기술 자체는 말입니다. 그 말은 창조된 언약의 세상을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말은 세상에 있는 것으로 나온 존재론적 말입니다. 세상에서 사람은 세상에 있는 것을 의식하며 그것을 말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언약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을 봅니다. 창조 기술은 이것을 들려줍니다.
세상에 있는 것으로 세상 삶이 형성되니, 세상에 있는 조건에 의해 세상 삶은 갈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으로 언약의 삶은 있는 조건에 의해 갈라지지 않습니다. 세상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의 말에 대해선, 그 타당성은 세상에 있는 것에 의해 판단될 수 없습니다.
언약의 말은 세상을 이루니, 세상에 의해 조건 되지 않습니다. 세상에 위해 조건 되지 않음으로 파급적입니다. 창조 기술은 파급적 면을 잘 보입니다. 우선 언약의 하나님은 지역적 수호신이 아닌 창조주이십니다. 창조 기술은 이 점을 확언합니다.
언약의 말은 하나님의 창조를 다룸으로, 세상에서 부분의 말이 아닙니다. 온 세상은 창조 기술로 언약의 말에 내포됩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말은 세상에서 지역적 삶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언약의 삶은 온 세상에 파급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삶은 어느 지역에서도 지혜롭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과 가나안 땅으로 설정된 옛 언약의 삶은 지역성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종족적이고 가나안 땅은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옛 언약은 출애굽을 포함하더라도, 지역적 이동만 보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이 창조 기술을 내포하지 않으면, 지역성에 갇혀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나라가 망한 후 이방 지역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 경우 그들은 단지 가나안 지역성에 머문 언약의 말로 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언약의 말은 온 세상을 포괄해야 했습니다. 즉 그들의 언약 내용은 어느 지역에서도 타당성을 보여야 했습니다.
언약의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시면, 언약의 백성은 그분 언약의 말씀으로 어디서든 살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언약의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언약의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고백은 언약의 말로 명시적으로 기술됩니다. 이것이 창조 기술입니다.
언약의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 고백됩니다. 이 고백은 신약에서 언약의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고백에 비추어집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구약은 신약으로부터 읽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은 구약으로부터 읽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사는 세상은 아버지 말씀으로 지어진 세상입니다.
아버지 말씀에 근거한 세상입니다.
세상을 사는 저희 삶이 아버지 말씀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세상 속성을 파악하며 세상 변화를 따라 살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의 변화를 따라 세상에 속하여 살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에 속함을 의식하며 살지 않게 하옵소서.
세상의 부분으로 살지 않게 하옵소서.
아버지 말씀이 이루어지는 저희 삶으로 세상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