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한 대학생들
"한 사람의 정의로운 행동이 수많은 이 변화시킴을 체감"
지난 16일 오후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다롄(大連)시 뤼순(旅順)구의 한 목조건물 안. 한국 대학생 29명이 덩그러니 놓인 의자 앞에 서서 고개 숙여 묵념했다. 이곳은 100년 전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순국한 뤼순감옥의 사형 집행장이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전국에서 모인 대학생 30여명이 지난 8일부터 8박9일간 안 의사의 독립운동 사적지들을 탐방했다. 안중근 의사숭모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와 롯데백화점(사장 이철우)이 후원한 행사다. 대학생들은 안 의사가 하얼빈에서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뤼순감옥에서 순국할 때까지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탐방단은 먼저 안 의사의 의거 현장인 하얼빈(哈爾濱)역을 찾았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곳이다. 탐방단은 중국 당국이 혼잡을 이유로 출입을 막아 하얼빈역 의거 현장을 볼 수는 없었다. 대신 하얼빈역 옆 제홍교(霽虹橋)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 의사는 의거 이틀 전 이곳에서 하얼빈역 승강장을 내려다보며 거사를 계획했다. 이다은(21·부산대 행정3)씨는 "이렇게 현장을 내려다보니 조국 독립을 위한 안 의사의 굳은 의지가 느껴져 숙연해진다"고 했다.
탐방단은 안 의사가 거사 직후 체포돼 옮겨진 옛 일본총영사관, 안 의사가 죽은 뒤 묻어 달라던 옛 하얼빈공원 등을 둘러봤다. 거사 하루 전 들렀다는 차이자거우(蔡家溝)역에는 100년이 훨씬 넘었다는 버드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안중근의사숭모회 최명수(56) 과장이 "이 두 그루 나무는 안 의사를 직접 봤을 거예요"라고 말하자, 대학생들은 한동안 버드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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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6일 뤼순의 옛 일본 관동지방법원 법정에서 대학생 탐방단원들이 방청석에 앉아 설명을 듣고 있다. 안 의사는 학생들이 앉은 방청석 바로 앞 피고인석에 앉아 재판을 받았었다. /석남준 기자
마지막 날인 16일 뤼순의 옛 일본 관동지방법원 법정 방청석에 앉은 탐방단원들은 안 의사가 100년 전 재판받던 피고인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곳에서 안 의사 의거의 역사적 의미를 강연한 다롄대학 역사학과 리우빙후(49) 교수는 "안 의사는 중국에서도 가장 인정받는 정치가이자 사상가"라고 했다. 탐방단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뤼순감옥에 간 탐방단은 안 의사가 수많은 붓글씨를 남기고, 책도 썼던 독방을 쇠창살 너머로 보았다. 오연제(21·이화여대 경영 2)씨는 "죽는 순간까지 당당하고 결연했던 안 의사의 모습에 존경심이 우러나온다"고 했다.
탐방단장인 황필홍(56) 단국대 교수는 "학생들이 안중근 의사의 족적을 밟으며 한 사람의 정의로운 생각과 행동이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체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안 의사는 순국을 앞두고 "국권이 회복되거든 나를 고국 땅에 묻어 달라"고 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안 의사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