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7월 스위스 로잔에서 세계복음화대회(World Evangelization Congress)가 열리던 당시 한국 사회는 유신정권에 의해서 긴급조치 1호~4호가 속속 공표되던 엄혹한 시절을 겪고 있었다. 복음주의 선교역사에 분수령이 되는 이 대회에 한국에서도 70명의 대표자들이 참석하였다. 보수적 기독교인들이 복음화를 위해서 모이는 세계적인 대회였지만, 한국의 참석자들은 귀국 후에도 한동안 로잔대회에 대해서 언급하지 못했다. 1차 로잔대회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의제가 바로 복음 전도와 사회참여의 관계라는 당시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전통적 선교 개념에 거센 도전이 가해졌다. 식민지 시대가 끝나고 세계 곳곳에서 민주화와 인권운동이 일어나고 에큐메니컬 진영에서는 사회정의와 인간화로서의 선교를 내세우며 영혼 구원을 목표로 하는 전도와 개종 유예의 주장까지 나왔다. 이에 대응하여 복음주의자들은 시카고 휘튼 선언과 베를린 전도대회를 통해 복음 사역의 공동전선을 모색하며 1974년의 스위스 로잔대회로 총집결하기에 이른다. 로잔대회의 셋째 날 저녁, 라틴 아메리카의 복음주의자들인 르네 파디야(René Padilla), 사무엘 에스코바(Samuel Escobar), 올란도 코스타스(Orlando Costas)와 같은 이들이 주축인 ‘급진적 제자도 그룹’은 비상 모임을 가져 최종 선언문에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문구가 들어가야 함을 주장했다. 로잔선언문 작성 책임자인 존 스토트(John Stott)는 이들에 공감하며 대회 마지막 날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공히 강조하는 역사적 로잔 언약의 합의에 이르게 한다.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의 상황에서 사회적 행동이 곧 복음 전도여야 한다는 더욱 강력한 제안도 있었지만, 로잔의 합의는 복음 전도의 논리적 우위성(primacy)을 유지하되 억압받고 헐벗는 이들의 현실에서는 먼저 그들의 긴급한 필요에 응답해야 함을 인정했다. 전도와 사회적 책임은 서로 반대되지 않는 총체적 복음 사역의 두 가지 부분이기 때문이다.
로잔 언약을 위한 토론과 합의는 복음주의 신학 지형에 또 다른 이정표를 제시했다. 그것은 더 이상 서구의 신학과 선교에 종속되지 않는 자민족 신학화의 과제였다. 분과발표에서 당시 이화여대 총장인 김옥길은 “제3세계의 사람들은 서구의 경제, 정치, 문화가 침투하는 동안에 잃어버렸던 민족적 정체성을 발견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급진적 제자도 그룹이 강력하게 제안했던 복음의 사회적 차원에 대한 각성은 비서구권 복음주의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경험과 상황에서 복음을 통찰할 수 있는 지평을 연 것이다.
로잔 운동의 핵심 취지는 우리 시대가 당면한 선교의 과제와 전략 방향을 정립하는 것이었다. 1차 대회는 그 기간 동안 불신자 200만 명이 늘어나는 통계를 대회장에 전시하며 영혼 구원의 소명을 상기시켰다. 도널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과 피터 와그너(Charles Wagner)는 문화에 따른 E-3 선교 전략을, 랄프 윈터는 ‘미전도종족’(unreached people)이라는 개념을 로잔대회에서 발표했다. 이는 대륙이나 국가의 단위로 선교에 접근하던 방식에서 약 16,000개의 숨겨진 종족들을 대상으로 선교의 초점이 바뀌어야 한다는 획기적 발상이었다. 물론 오늘과 같은 글로벌, 다문화 교류 시대는 20세기 후반의 종족 개념이라는 개념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혼재된 미전도인들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이후로도 로잔은 난민, 다문화, 이슬람, 일터, 명목상 기독교, 디지털 문화, 다음 세대 등의 부상하는 쟁점들에 대한 선교적 관심을 제기해왔다.
1989년 2차 마닐라 대회는 개인 구원으로 회귀했고, 2010년 3차 케이프타운 대회는 사회 구원에 치중되었다는 상반된 평가들이 있다. 허나, 2차 대회에서 복음 전도와 사회참여의 균형 잡힌 관점이 오히려 더욱 정착되었고, 3차 대회는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주도로 전도의 궁극성(ultimacy)이라는 완숙된 개념과 더불어 복음의 중심성을 재확인했다.** 한때 사회적 문제에 대한 강조가 복음의 약화를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빌리 그래함은 급진적 제자도 그룹의 주장은 오늘날 복음 전도의 과제를 분석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평했다. 이후 그의 사역은 국제평화, 핵무기 감축, 공산권과의 관계회복까지 포함하였다. 로잔대회에서 전통적 복음 전도의 입장을 강경하게 고수했던 와그너 또한 급진적 제자도 그룹과의 논쟁을 거쳐, 가난과 억압, 정의와 평화의 문제는 모든 성경적 그리스도인들이 관심 가져야 할 사명임을 천명했다.
로잔 운동에는 이러한 치열하고 풍성하며, 그리고 상호 존중과 배움의 복음주의적 대화의 DNA가 흐르고 있다. 해묵은 대립 구도로 서로를 ‘전도주의자’로, 혹은 ‘사회구원주의자’로 규정짓는 자세는 로잔의 전통과 어긋난다. 로잔은 복음주의자들 안에 다름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함께 대화와 토론을 통해 협력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