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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2 | 3 | 4 | 5 | 6 | 7 | 8 | 9 |
2 | 4 | 6 | 8 | 10 | 12 | 14 | 16 | 18 |
3 | 6 | 9 | 12 | 15 | 18 | 21 | 24 | 27 |
4 | 8 | 12 | 16 | 20 | 24 | 28 | 32 | 36 |
5 | 10 | 15 | 20 | 25 | 30 | 35 | 40 | 45 |
6 | 12 | 18 | 24 | 30 | 36 | 42 | 48 | 54 |
7 | 14 | 21 | 28 | 35 | 42 | 49 | 56 | 63 |
8 | 16 | 24 | 32 | 40 | 48 | 56 | 64 | 72 |
9 | 18 | 27 | 36 | 45 | 54 | 63 | 72 | 81 |
(그림1)
구구표는 그림1과 같이 9x9=81방(方:□)에 1,2,3,4,5,6,7,8,9 낙서(洛書)아홉수 1단이 피승수(被乘數)가 되고 여기에 1,2,3,4,5,6,7,8,9 아홉수가 승수(乘數)가 된 곱셈을 순서대로 나열 한 것이다(피승수x승수=곱).
그림1의 고딕글자 1,4,9,16,25,36,49,64,81아홉4각수는 중심수가 되어 좌우(左右) 같은 수끼리 대칭이 되기 때문에 중심수로부터 좌우측 어느 한쪽 사용이 가능하다. 따라서 구구표는 1,2,3,4,5,6,7,8,9 낙서아홉수를 피승수와 승수의 곱으로 하여 9x9=81이기 때문에 구구표라 한 것이다.
서점에서 나와 있는 수학책을 접하다 보면 구구법을 일부 귀족사회에서 독점하기 위하여 어렵게 구구 팔십일(9x9=81)부터 암송 했다는 글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속설일 뿐이다.
지금 까지 나와 있는 대성괘(大成卦=64괘)의 조견표(早見表)나 소성괘(小成卦=八卦)에서 천지인(天地人)삼재(三才)의 생성(生成)과 현상의 변화 순서 등을 이해하면 왜 구구표가 9단부터 기록된 것이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구구표는 원래부터 2단이 아닌 1단부터 암송을 해왔는데 언제부터 인가 1단을 빼놓고 2단부터 가르쳤다. 처음 수 하나(1)가 빠진 2가 어디 있는가. 구구표81방에 담긴 뜻도 모르고 암송에만 급급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지금은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19단표가 벽에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이 어는 시대인데 공연히 쓸데없는 것을 가지고 아이들 고생시키는 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을 보니 2011년 백제 사비성터인 충청남도 부여읍에서 한반도 최초의 구구단이 적힌 백제시대 목간(木簡·종이가 발명되기 전 문자 기록을 위해 사용하던 나무 판재)을 발견했다는 기사를 볼 수 있다.
천4백 년 전에 백제인 들이 구구단을 적어 사용했다는 목간은 길이 30.1cm, 너비 5.5cm, 두께 1.4cm로 소나무를 얇게 가공한 판재 형태라 한다.
한쪽 면에서만 붓글씨로 '三(삼)四(사)十二(십이)' 등의 구구단 공식을 9단을 가장 상단으로 하여 배치했고 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하여 인터넷에 ‘구구법은 언제부터 사용했나’를 검색 했더니 맨 위에 뜨는 것이 필자의 글이었다. 그래서 이 번에는 인터넷으로 질문을 했더니 친절하게 이렇게 문자로 답이 왔다.
‘구구법은 중국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2000여 년 전 중국 한나라 시대에 이미 구구단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1299년에 중국 원나라 주세걸이 지은 산학계몽(算學啟蒙)이라는 고대 수학책에는 석구수법(釋九數法)이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석구수법은 오늘날의 구굿셈을 말합니다’
구구법을 알려면 구구법의 1단이 무엇인가부터 알아야한다. 1,2,3,4,5,6,7,8,9가 1단이다. 그 1단이 바로 낙서수(洛書數)이다. 이 말은 낙서가 나오면서부터 구구법이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그 때는 9x9=81이 아닌 九九라는 한문숫자로 썼다. 아라비아 숫자는 그 이후에 나왔기 때문에 9x9=81이 아닌 九九란 한문숫자를 썼다.(상세한 내용은 인터넷에서 ‘구구법은 언제부터 사용했나’의 필자의 글을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