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죽어도 좋아!’를 계기로 노인의 성(性)이 주목받고 있다. 얼마전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마련한 ‘노인과 성’ 강좌에도 노인 수백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그동안 늙으면 성욕도 사그라지는 줄로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성은 아름답고 필요한 것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나마 남성 노인의 성은 각종 약물과 수술법까지 선보이고 있는 반면 여성 노인들은 여전히 터부시당한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 노인의 바람직한 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직 ‘펄펄한’ 할아버지=내년이면 75세가 되는 김모씨는 연세가 무색할 만큼 건강을 자랑한다. 무뚝뚝한 성격에 전형적인 한국 남성인 김노인은 혈기가 왕성하다. 요즘도 밤이면 종종 조할머니(69)에게 잠자리를 제의한다. 그러나 할머니는 “나이 들어서 무슨 주책이냐”며 할아버지의 요구를 번번이 거절하기 일쑤다. “젊은 때만 해도 내가 원하면 잠자코 따르더니 서운하기도 해. 어떻게든 관심을 되돌리려고 하는데 좀처럼 잘 안되네. 허…”
김노인처럼 70대에도 중년 못지 않게 정력을 자랑하는 할아버지들이 적잖다. 직장에서 일과 스트레스로 시달리던 40·50대에 비해 어르신들의 몸과 마음이 예상밖에 뜨겁다.
한 조사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양대 대학원 간호학과 이창은씨가 서울의 65세 이상 노인 113명에게 물어본 결과 19.5%(22명)가 “현재 성생활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달에 한번이 10명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남자 노인의 84.0%, 여자 노인의 14.3%가 “멋있는 이성을 보면 여전히 좋고 흥분된다”고 대답, 남녀간 차이가 컸다.
남성의 발기와 사정 능력은 10대 후반에 최고조에 달한 뒤 30대 이후에는 점차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그러나 70∼80세까지도 정상적인 성생활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비아그라·유프리마·누에그라 등 발기부전 치료제들이 속속 선보이면서 발기 자체는 별문제가 안된다. 물론 영화의 주인공 할아버지가 국민체조를 하듯 꾸준한 운동은 기본이다.
◇밤이 두려운 할머니=남자 노인의 갑작스런 성기능 회복은 준비 안된 여성 노인에게 적잖은 부담감을 준다. 결국 무뚝뚝한 할머니를 버리고 젊은 여성을 찾아 밖으로만 나돌거나, 아예 새 장가를 드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앞서 얘기한 조할머니는 “결혼해 자녀 4명이나 낳고 살았으면 됐지 다 늙어서 새삼스럽다”는 반응이다. 올해 67세의 이모씨는 아예 밤마다 혼자 잔다. 건넌방에 멀쩡한 남편(71)이 있지만 각 방을 쓴지 어느덧 10년이 다돼 간다. 할아버지의 간청에 못 이겨 허락하더라도 “좋기는커녕 힘들고 아프기만 하다”며 불평한다.
수동적인 성 행태를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여성 노인들의 잘못된 성 인식과 사회적 억압 탓이다.
따라서 노년 여성의 성에 관계되는 문제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 주책맞은 것으로 무조건 치부하는 편견을 바로잡는 것이 시급하다. 성기능 장애는 정신적 요소 이외에 여성호르몬 결핍을 비롯한 음부의 혈류 감소, 감각신경계·자율신경계 이상, 남성 호르몬 결핍 등이 원인이다.
미국 NIH에 따르면 성생활을 하는 전체 미 여성의 43%가 성기능 장애를 호소한다. 성에 대한 흥미 결핍(33.4%), 극치감 도달 불능(24.1%), 불쾌한 성생활(21.2%), 질내 윤활부족(18.8%), 성교통(14.4%)의 순서였다. 그밖에 요실금 등 배뇨장애도 성생활을 꺼리게 만든다. 전문의들은 “할머니들도 노년의 성을 긍정적으로 여기고, 적절히 치료받으면 평생 건강한 성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행복은 함께 찾는 것=노인이 되면 으레 성생활을 터부시하고 포기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규칙적인 성생활이야말로 황혼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보내는 활력소다. 할아버지는 전립선 질환, 할머니는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 또한 건망증이나 치매도 억제한다는 보고도 있다.
여성호르몬 투여는 유방암 유발 논란에도 폐경기 여성의 성교통 등을 치료하기 위한 치료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성욕구 자체가 감소한 여성들에게는 남성호르몬을 투여해 욕구를 증진시키기도 한다. 성기능 장애는 단순히 호르몬제 등 약물을 투여한다고 풀리는 것이 아니다. 성교육과 성에 대한 인식 전환, 생활방식 변화 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부부간에 솔직한 성상담을 통한 성교육이 절실하다.
또 무리를 해서라도 반드시 삽입한다거나 사정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도록 한다. 무엇보다 노년의 성생활에 대해 ‘주책없는 짓’으로 비하시키지 말고 긍정적 사고와 적절한 성적 공상이 필요하다. 성행위는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뇌로 하는 것이란 뜻을 되새기자.
할머니 ㅎ씨(70)는 43세에 남편을 사별한 뒤 줄곧 독신으로 지내왔다. 주위에서 새 살림을 꾸려보라고 했지만 손사래만 치곤 했다. 자식들 보기도 민망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서울시내 어느 복지관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할머니보다 3살 연상의 ㅂ씨. “처음 복지관에 가서 아무 것도 모를 때 할아버지가 이것저것 가르쳐줬어요. 훤칠한 키에 자상해서 첫눈에 반했어요”
이들은 데이트를 하며 잠자리도 가졌다. 할머니는 ‘관계’ 자체보다도 할아버지의 따뜻한 배려에 더 큰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지금 할머니는 영화 주인공 못지 않게 행복하다고 했다.
◇노인들의 성생활시 유의할 점
1내용이 중요할 뿐, 성행위 시간은 길게 잡지 않는다.
2전희를 최소한 15분 이상 한다.
3심한 운동 직후나 극도의 흥분상태에서는 관계를 피하라.
4시각은 밤이나 저녁보다 이른 아침이 더 좋다.
5성행위 후보다 전의 휴식이 더 중요하다.
6식사나 목욕 후에는 30분이 지난 뒤 하는 것이 좋다.
7성교중단법이나 사정지연법 같은 것은 하지 말라.
8낯선 주위환경에서는 가능한 한 성관계를 피하는 것이 좋다.
9과도한 강장·강정제의 섭취를 피한다.
10타인의 과장된 얘기를 듣고 자신과 비교하지 않는다.
11절정감을 느낄 때 갑자기 어지러워지거나, 가슴이 답답해지거나, 심장이 심하게 뛰거나, 얼굴이 창백해지면 충분한 안정을 취하며 심장 전문의의 진찰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