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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징"하고 "울컥"한다는 것에 대한 다른 의견들도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법화경을 믿는 우리들의 세계와 다른 후진 종교와 비교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안지만요
우리들은 우리들의 종교의 세계의 자존심이 있고 힘도 있습니다.
오해없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오만 불손하게 어디 여기다가 비교하는 가 할수 있지만
절대로 비교하는 것 아니니 인간의 심리성만 가지고
생각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다음 글들은 인간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심리적인 원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눈물짓기에 대한 어떤분의 분석이고 하나는 체험수기입니다.
기분 나쁘더라도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진전해 왔는데
이것 하나 소화하시지 못하겠습니까?
눈물을 펑펑 쏟으며 JMS정명석의 설교에 감동 받으신 분들에게
JMS정명석의 교리를 듣고 울고불며 자신도
모르게 괴성을 지르며 실로 가슴이 터질 듯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은 그 감동적인 설교 장면이 뇌리에
꽉 박혀 하나님을 배신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JMS교회를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곧 지옥을 의미하기에 실로 괴롭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JMS 목사의 설교를 듣고 울고불고한 원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아 슬프다]를 열 번만 반복하세요. 처음 아 슬프다고 말할 땐
맹송맹송한 아 슬프다입니다.
그러나 계속 반복하여 아 슬프다를 열 번 정도
반복할 때 쯤 되면 진짜로 닭똥 같은 눈물이
펑펑 쏟을 정도로 슬퍼집니다.
그게 바로 감정의 증폭효과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능은 감정의 증폭효과에 매우 나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저처럼 시나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 원리를 이용하여
독자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기도 합니다.
JMS 목사라는 분이 행한 설교의 글 구성을 잘 살펴보세요.
그리고 분석해 보세요. 제가 말씀 드린 원리가
설교 내용에 들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회계하라, 죄를 빌어라, 구원을 받으라는 등의
온갖 선동적인 문구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문구로 열변을 토하며 연설하면 누구나
눈물을 펑펑 쏟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증폭효과는 가장 큰 호소력을 지니고 있기에
노래 가사나 시인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괴지나 칭칭 나네 괴지나칭칭나네 아무런 의미도 없는
괴지나칭칭나네라는 그 재미있는 말이
처음엔 맹송맹송한 괴지나칭칭나네지만 자꾸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어깨춤이 절로 나는 신나는 노래로
뒤바뀌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설명 드렸다시피 증폭효과입니다.
증폭효과는 최면술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죽고 싶다고 자꾸만 되뇌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죽음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동시에 나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현명한 사람이다라고
계속 반복적으로 외치면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현명한 사람이 되는 것이죠.
스스로 최면을 걸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생각해도 신통할 정도로 가공할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말 잘 듣고 착하기만 한 JMS님들!
언어 마술사 JMS정명석의 최면술에서 하루
빨리 깨어 나오시기 바랍니다.
< 체험수기 펌 >
“jms 체험수기”
고 당시에서 고1때 내짝이 전교1등이었어
중학교때두 동창이었는데 그땐 성적이 좋지 않은걸로 기억돼
그녀석이 학교마치고 교회에간다는거야 무작정 달라붙어봤지
성격이 내성적이었지만 쾌활했던 사춘기에 갓접어든
나는 교회에서 건전한 사교를 꿈꾸며 다니고 싶었지.
친구는 좀 불편해 하는듯했지만 이내 교회의 일원으로 된거야.
교회를 다녀 본적은 없지만 여느 교회나 그럴법한 수준이었어
결코 사이비 필은 아니었어
좀 다를거 같다고 느낀점은 얼짱 수준의 여자들이 많다는 거 지금 두
있는진 모르겠지만 대구대응원부 SUN영대응원부 불티나
거기 거의 모든 인원이 교회원이었으니
완젼 치어리더 뺨치는 출중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
그 누나들 보는 것만으로도 교회다닐 이유는 충분한 나이었지
농구도하고 라면도 끓여먹고 학교에 있으면 교회생각 밖에 안났어
나중일이지만 거기서 첫사랑도 첫뽀뽀도 격었지..
사춘기 도입기였던 민감한 시기
그곳이 나에겐 보호막 같은 안정되고 건전한 장소였다고 생각해
교리나 섭리를 가르치는데 물론 관심이없었어.
호응하는듯 의사표명은 했지만 마음은 그저 친구들이
좋아서 가는거 였으니까.
겨울이 오니 불우이웃을 할기회가 생긴거야
카드를 몇 박스나 가져오더니
고딩들인 우리들 보러 버스에서 팔래
카드는 필요없다며 만원짜리 오천원짜리 주시는
훈훈한분들이 아직두 선해
하지만 훗날 그게 다 정명석이 독식한 걸 알고 꽁기꽁기했지
봄인가 가을인가
그리구 대전에 예전이름 달박골 지금이름
월명동이란 동네를 단체로 가게되었는데
전국에 퍼진 줄기교회들이 모조리 모인다는거야
도착하자마자 눈이 휘둥그래 졋어 그놀라운 규모에..
여의도 광장만큼은 아닐테지만 시시한 골프장보단 컷어
바위로 조경이 엄청나게 꾸며져 있엇구 인공폭포엔
수십명의 여자들이 수영복을 입고 놀고있었지
물놀이하긴 상당히 추운날씨였는데두 ...
그 JMS(정명석)는 십여명이상의 여자들과 수행원격인
남자들을 동반하며 움직이던데
여자들이다 비키니에 수건을 둘르고있었던 기억이나
몇명은 정장차림의 비서느낌이었고
비키니입은 여자는 파라솔만한 우산으로
그늘을 만들어주며 졸졸 따라다니더 군..
늘 듣던 말론 JMS은 나는 하나님과 애인이다
애인이 날 다 보고있는데 다른 사람을 사랑할수있느냐?
난 고자는 아니다 허허허 이런 류로
자기는 금욕주의란걸 강조했지만.
물고기자리의 예리한 느낌엔 “저사람 밤꽃향 바디크림을 발랐나
수십키로 불쾌한 냄새가나“ 라고생각했다
어린나이었지만 느낌은 영능력자 뺨쳤거든
그리구 축구시합 실제축구장의 60%정도크기였을거야
그래두 꽤나 큰 축구장이었는데.
그때 내가 여길 잘못왔구나느꼈어.
첨부터 장난이라면 웃고 말겠지만 그 분위기들은 정말 말두 안되는
신격화 였던거야
공을 잡으면 선생님~~ 사랑합니다~~
선생님 패스하겠습니다~~ 류의 아부성 고함소리를 지르며
정명석에게 패스되고 그 볼을 받은 정명석은 아무도 막지 않는
드리블구간에서도 발기술로 샥샥하면서 개인기를
보여주었지 3천명정도의 관중이
(아 관중석은 따로없어 한쪽은 넓은 잔디밭 한쪽은
바위위 조경들위에서 다들자리잡고 바글바글 앉아있었지)
사랑해요~~~ 멋지십니다~
따위를 외치더군
골키퍼에 상대방선수들 모두 수비진이되서
일렬로 서있더라
어설픈 골을 넣는거야 킥~~데구르르
막고있던 상대편선수들 그머냐 바이오맨이나 후뢰시맨에 적군들
뒷돌기하면서 오버액션으로 덤블링하던
넘어지는것들을 하는거야 겨우 골까지 기어갈법한 공에말야..
아나운서왈 ㄲ ㅑ~~ 선생님이 선생님이 꼴~~을 넣으셨습니다.
이로서 스코어는 36대 0 그중 36골을 선생님께서 넣으셨습니
다.~~~~~
어린나이에 옆에 교회친구에게 피식거리며 비웃으며
이야기하려 옆을 봤는데.....
나빼고 수천명이 다 울고있는거야.......
난 쇼킹했지... 친구들두 분위기에 못이겨
우는 척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놈은 보니까
아주 고조할아버지까지 쥐어짜서
슬픈생각 몰입해가는 표정이 역력하데...
감정 이빠이 잡아서 눈물들을 쥐어짜더라..
반면 골수파들은 진짜로 감정에 버거워
눈물을 주체를 못하는거야...
은혜롭다나...
난 진짜 혼자 택시라도 타고 대구로 도망오고 싶더라..
이건 지옥이다 라고생각들었다.
그 집단속에 내가 왜있는지..
정말 너무나두 무서웠지 안 격어
본사람은 몰라
그 순간은 진짜 내가 정말 이상한건가...
나혼자... 정상이 아닌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고
그러다 저러다 교회엔 다녔지만
그 대전이란 곳은 머리두 안 두구 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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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들은 제가 지난번 2월에 절복을 한 대학교수에게 보여준 글들입니다.
기독교계통의 종교였는 데 그곳은 방배동인가 어디인가 하는데
토요일 마다 나가서 집회를 하고 옵니다.
이분도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 리더(80살정도되어보이는)를 어렵게시리 만난것 입니다.
그 리더의 성품 대학교수들이 따를 만 합니다.
우리나라 유명한 대학교수들이 그 밑에 전부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분을 만나는 순간 가슴에서 울컥하면서
눈물이 쏟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눈물의 의미를 깨고 절복을 하기위해서
정말 거의 두달은 소비를 하여 천신만고 끝에 절복을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자신의 감정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본유의 눈물이면 상관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주입된 프로그램들이 고이고 고여 에너지화되고 있을때
자극을 주면 바로 카타르시스로 올라오는 경우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뢰할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분을 절복할시 펑과 눈물짓기,
리더의 강력한 카리스마의 관계성 풀기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그 카리스마의 힘과 눈물 감정이 원천이 되어 주변으로 퍼져 가는 것입니다
이런 삼박자의 적절한 조합에 의해
신흥종교집단이 독버섯처럼 생겨난다고 보여지는 것입니다.
물론 대성인의 불법이 옆에서 지기키고 있는
우리하고는 다르지만 말입니다.
첫댓글 왠지 흐름님답지 못한 글이네요. 평범한 심리분석 글 한편과 철없는 고등학생의 체험담 한편.
이걸로 대학교수를 절복하시다니 ... 대단한 능력이 있으십니다. 결코 비아냥거리는 건 아닙니다.
절복 자료 치곤... 너무 황망한 자료를 들고 계셔서... 좀 어이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대학교수라고 별거 있습니까. 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평범한 진리이죠
그 리더 앞에서 흘린 눈물 충분히 이해한다.
회원들을 만났을 때에는 눈물이런 거 없었는데
리더를 만나면 눈물을 흘리는 것 그동안 당신에게
그에 대한 위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서 그렇다.
바로 감정의 증폭효과이다. 그 감정을 신뢰하지 마라.
스탈린이 죽었을 때 젊은 청년들이 울고 불고 붉은 광장으로 애도를 표하러 달려 갔다.
그러다가 밟혀서 죽은 자도 있었다.
김일성도 죽었을 때 그 수많은 북한 국민들이 땅을 치고 통곡을 하였다.
바로 위대하다고 매일 매일 마음속에 품고 다니다가 죽으니 바로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거다.
이런 심리적 메카니즘이 바로 감정의 증폭효과의 결과라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은 이렇게 약한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약하지 않을 것이 있다.
실상에 근접할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대성인님의 불법천리라는 것이다.
<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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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등학생의 체험담이 아닙니다. 성인이 다 되어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고등학생 때를 회상하고 쓰고 있습니다. 얼마나 호소력이 있습니까?
아무튼 저는 그 눈물이라는 것 리더를 보면 무언가 형용할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는 것
그것 신뢰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정도 되면 그 똑똑한 대학교수는 무너지지 않겠나요?
그런데 정명석교회만 집중 연구하셨습니까? 그쪽에만 초점을 맞추려는 의도가 엿보이는데요? ^^
아니면 기독교를 파절하기 위해 교리파절을 하신 체험은 없으신가요?
뭐 예를 들면 예수는 신화일뿐이다든지, 성경은 모두 오류투성이라고 하든지
그런 내용의 절복은 없었습니까? 단지 종교 지도자격의 사람이 잘못되어서 그렇다로 결론나면...
흐름님이 주장하시는 '법중심'과 맞지 않는거 같은데요?
예수가 왜 신화입니까. 왜 성경이 오류투성이 입니까? 티벳에 선교사가
오지에 들어가서 포교를 하러 들어 갔습니다.
드디어 티벳주민들을 모아 놓고 장시간에 걸쳐서 설교를 진지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민들이 서로 손벽을 치고 환희하고 선교사를 예수를 찬탄 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들이 여기는 안되겠구나 하고 바로 물러나왔습니다.
다시는 티벳에 가지 않았습니다.
왜냐 주민들의 왈! 맞다 예수야 말로 부처의 제자인 보살이라고
보살은 그래야 된다고 말이지요.
이것이 라마불교의 정체성입니다. 불교가 하도 깊이 있게 뿌리를 내려서
그 시골의 무지렁이 아저씨 아줌마들이 기독교를 불교로
완전히 흡수 수렴시켜서 단번에 꿀걱 흔적도 없이 먹어치운 것입니다.
문화란 정체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타문화를 내부로 흡수 통합하고 바로
외부로 보편화를 시키면서 건강한 힘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시골주민들이 금방 꿀꺽했는 데도 상하지도 체하지도 않고
외부로는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불교진리의 보편성을 드러냅니다.
수백년동안 선조대대로 내려온 진리의 흐름이 시골구석까지 촉촉히 젹셔저서
불교의 지류가 기독교 본류를 먹어치우는 강력한 힘!
불변진여의 리의 깊이성이 바로 그런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성인님의 불법에 대한 그 원리성을
스스로 또는 타인에 의해서 해득해 가는 곳에서 불교문화의 정체성을
확보할수 있습니다. 포교할때 남의 종교가지고 예수가 신화적인 존재였니
아니면 성경에는 오류투성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바로 거부입니다.
이런 방식은 바로 수연진여의 지에 의해서 니니 내니 하는
종교쟁이 방식입니다.
성경은 어느 목동이 양을 몰다가 한마리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그양을 찾으러 갔는데 절벽으로 간 것입니다.
절벽에 동굴이 하나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절벽이라서 누구도 가지않는곳입니다.
그동굴속에서 바로 인류문화사에 빛나는 두루마리로 된 성경이 항아리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위서가 없습니다. 그것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언제 기독교를 "법"으로 분석하여 정리할 수 도 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이케다 선생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평소에 전혀 없다면... 눈물이 한 방울이라도 나겠습니까?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이 확대되고 커지면 인간이라면 보고싶고... 눈물도 나고 하지 않습니까?
예 맞습니다. 그런데 눈물이 나오고 안나오고 하기때문에 그 대상이 진실이다 아니다 라고 판단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신사도님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정의 법칙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가슴에 넣으면 쌓여서 반응이 나온다라는 것 바로 감정의 증폭효과를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감정의 증폭효과가 진실(실상)이냐 아니냐 하면서 절복을 전개한 것이구요
정명석에 대한 관심은 10년전 불교회사태가 났을때 불교회 관련 사건 인터넷을 출입하다가
인터넷에 빠지게 되어 시작된 것입니다.
도대체 이 시대의 신흥교주의 심리상태가 어떤지 알아보다가 대표인물로 샘플링 한 것입니다.
<이런 삼박자의 적절한 조합에 의해 신흥종교집단이 독버섯처럼 생겨난다고 보여지는 것입니다. 물론 대성인의 불법이 옆에서 지기키고 있는 우리하고는 다르지만 말입니다. >>>
별반 다를 것 같지 않는데요. jms에게 흘리는 눈물이나, 이께다에게 흘리는 눈물이나, 그게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눈물의 삼천세간은 좀 따져 보아야 겠지요.
그 눈물속에 어떤 삼천세간이 움직였는지 말이지요.
저는 학회회원으로써 그속에 "중생본유의 묘리" 가 숨어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런데 토라님은 언제나 명쾌하시고 보편성을 확보하시고 계십니다.
제가 바래는 점도 토라님과 다르지 않습니다.
불교가 확실하게 왜색이 아니라 동점서환의 불교로써 이땅에 뿌리를 밖으려면 토라님처럼 생각하는
세계관으로 분석하여도 하나도 흠잡을 때가 없어야 합니다.
이불교도 1990년대 이전에는 토라님이 아무리 이리 쑤시고 저리 쑤셔도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거의 완벽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종교형질이 엄청나게 변화되고 나서 이리쳐도 구멍 저리쳐도 구멍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불교의 깊이성 불가사의성과 그리고 토라님과 같은 불교의 보편성이 서로 잘 이어져서 있을 때
그 불교는 건강한 불교입니다. 지금은 깊이도 약해져 있고 도가 심한 체제에 의해서 보편성도 약해져 있습니다.
그러니 토라님과 같은 두루 생각할줄 아는 분이 답답해 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말씀 드린대로 이 약한 보편성을 뛰어넘어 지금은 잘드러나지 않지만
깊이성인 불교의 원리를 통해서 그 불가사의 한 경계, 묘의 경계, 인류가 개발해낸 내적인 보고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불교는 원래 법에 대한 눈물은 있을지 언정 사람에 대한 눈물이 있다는 것이 격에 안맞습니다.
우주의 진리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어본존님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이건 법앞에서의 눈물입니다.
법열(참된 이치를 깨달았을 때 느끼는 황홀한 기쁨)입니다. 법의 희열입니다. 그런데 자기 스승을 보고
그 스승이 서거한 것도 아니고 그냥 거기에 있었는데 눈물이 흘렀다. 불교 이러면 안됩니다.
이런 것 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집단화 현상에 가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리더는 불교인이라면 그렇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 즐기고 하면 책임감이 없는 사람입니다.
흐름님이나 토라님은 누구를 생각하며 눈물을 단 한 번도 흘려본적이 없는 분처럼 말씀하시네요. ^^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게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 분별해 대답할 수 있나요?
너무나 미워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너무나 고마워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너무나 그리워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너무나 미안해서 눈물이 나기도 하는데...
그런데... 저는 한국에 있지만 스승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 적은 없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죄송한 것은 느끼지요. 아마 그것의 논리적인 설명은 안 될겁니다.
신사도님 정도에서만 끝내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불교회 스승을 보면 눈물이 난다.
그냥 눈물이 난다지 그렇니까 그것이 진실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교의 목적은
제법실상을 추구하는 데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법앞에서 희열의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진실과 맛닿은 눈물입니다. 본유의 눈물입니다. 그런데 이변이 없는 자기 스승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이런 것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BBC방송에서 보여준 북한의 마스게임 소녀의 말...
저는 그날 장군님께서 나오시기로 약속한 날 바빠서 나오지 못한다고 하였드랬습니다.
6개월간 맬맬 피나게 노력한 것을 장군님 앞에서 보여주고
싶었는 데 못보여준다고 생각하니 우리장군님께서는 얼마나 바쁘시길래
6개월전에 약속한 것을 못지기키나 너무나 가엽고 그리워서
눈물이 왈칵 솟아졌드랬습니다.
정말 가관이지 않습니까? 6개월 전에 분명 거짓으로 약속 해놓은 것일 겁니다.
열심히 훈련을 쌓게 하고 한사람에게 몰아가기위해서 그런 전략을 쓴 것입니다.
정말 장군님 모시기가 실패를 본것입니다. " 장군님모시기"는
아마도 북한의 각학교나 집단에서 써먹는 신격화 프로그램일 것입니다.
이때의 눈물도 눈물입니다. 그러나 진실한 눈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장군님모시기" 참 북한 주민들 여러모로 달달 볶입니다.
법열이란 참된 이치를 깨달았을 때 느끼는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흐름님은 그런 참된 이치를 득(得)하신 것이 있으신가요?
그게 자신 안의 기쁨인가요? 타인과 교감을 나누는 기쁨인가요?
어떨 때 희열을 느꼈다고 할 수 있나요?
신심을 통한 내면의 기쁨은 흐름님뿐 아니라 신심을 하는 분 모두 느낀적이 있지 않을까요?
법을 대경으로 한 희열은 보편의 희열입니다. 어본존님에게 기원을 해나가다 보면 종국에 가서는 한번쯤은
눈물이 납니다. 회원님들도 그런 희열은 전부 느꼈을 것입니다.
그것은 논리적인 깨달음이전에 몸전체(색심)으로 깨닫는 희열이고 법열입니다.
이전경에서는 논리가 뒷받침 되어야 겠지만 우리는 일승법이기때문에 무분별(쪼갤필요없이)로
걍 법열입니다. 본유의 십계(일승)와 하나되는 희열은 법열입니다.
그런데 타인과의 교감을 통한 희열 그가 본존도 아니고
인법일개도 아니고 불법승 삼보도 아니고 주사친삼덕도 아닌데 그와의 교감의 기쁨은
걍 감정일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북한이야기는 예전에 토라님이 써 먹던 건데... 두 분 친구사이인가요? ^^
그런데 흐름님.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경험을 한 사람은
쉽게 마음의 문을 열기가 어렵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 압니다.
종교와 정치의 혼돈. 제가 느끼기에는 흐름님의 이 말씀은 종교가 아니라
정치적 해석일 거 같습니다. (이건 예전의 토라님 주장과 일치하구요^^)
신사도님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종교는 종교다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냥 종교인이어야 합니다.
저도 학회가 그래야 된다고 봅니다.
종교를 정치적인 잣대로 들이대고 십지 않습니다
그런데 헷갈리게 패권다툼이니,누구라인이니, 실질적으로는 정교의 일치니, 권력승계니 하여
종교와 정치가 혼재하는 부족국가시대를 방불케하니 문제이지요
그리고 토라님이 친구니 아니니 하기 이전에 제눈에는 회우(불교를 믿을수 있는)로 비추어지는 데요.
북한이야기는 저와 토라님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의 저널리스트들이 분석할때 그렇게 활용하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읽고 참 공감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러시아의 실정으로 끌어들여 폭력혁명으로 이끌고 간 사람이 레닌이지요.
그의 폭력의존성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고 해도 레닌의 순수한 열정은
스탈린이란 희대의 독재자에 의해 또 다시 완전히 왜곡된 것이
역사적 사실이구요. 생산력은 세계 2위로 끌어 올렸지만 ... 스탈린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이가 1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또 개인적으로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읽고 한 인간의 광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명을
해칠 수 있는지 절실히 느꼈습니다. 약 600만명에 이르는 유럽 유대인이 수용소에서
체계적으로 살해를 당했던 것에 무감각한 인간의 광기...
그런 광기가 나타나지 못하도록 싸우는 평화의 전사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런 전사를 키우려면 ... 어떤 것을 배우고 가르쳐야 할까요?
평화를 위하여 전쟁을 준비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평화는 오직 평화를 위한 투쟁을 필요로 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악과 싸워라라고 강조하여 가르치지 말아야 합니다.
내면의 악과 싸우는 것은 몰라도 전쟁은 악과싸워라의 확대된 결과입니다.
불법의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의 하나는 생명의 소중함을 서로가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학회내에서든, 자기가 속한 사회조직 구석 구석에서든
타인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이용하는 세력을 없애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철저히 불법 본래의 방식에 맞아야 합니다.
그 방식을 석가 부처님, 니치렌 대성인, 학회의 세 분의 회장선생님이
말과 글로 가르쳐 주고 계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간의 저널리스트의 평론은 참고만 할 뿐
그렇게 관심을 두고 싶지 않습니다.
사회의 동향을 그 문화적 맥락을 잘 읽어내는 자들이 바로 저널리시트들입니다.
사회는 조직의 거울입니다. 관심을 두고 싶지 않다는 것은
스피치 말씀대로 세간의 평판에 일희일비하지 말아라
자신은 자기답게 당당하게 나가면 된다라는 가름침이군요
그런데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 지 전혀 신경안쓰고 살면
어떻게 될까여 바로 폐쇄적인 사람, 전혀 사회와의 소통을 꺼려하는
답답한 종문과 같은 아니면 남들이 볼때 이상한 집단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일방적으로 "목적적홍보"만 하고 이것은 소통이 아니라
아주 일방적인 것이지요 개인의 수행은 자기답게 그러나 조직운영은 주변도 살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