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술과 전투기술로 여겨진 활쏘기
고구려시대 무덤인 덕흥리 고분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사희(馬射戱)’ 장면이 있다. 마사희란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화살을 쏘아 과녁을 맞히는 마상 궁술 놀이로 이 벽화 에는 말을 타고 나무 기둥 위에 설치된 5개의 과녁을 향해 활을 쏘는 두 사람과 대기조 두 사람, 이를 기록하는 세 사람이 그려져 있다. 벽화에 나타나 있는 마사희는 훗날 조선시대 말을 타고 활 쏘는 무과 과목인 ‘기사(騎射)’ 또는 ‘기추(騎芻)’로 이어졌고 일본에까지 전파되었다.
삼국시대 이전의 고조선, 부여, 읍루, 옥저, 예와 마한, 진한, 변한 등 부족 국가시대는 물론이고 이를 통합 계승하 면서 발전해 나간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이 활동하던 시대에도 활쏘기는 수렵과 전쟁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고조선시대부터 우리 민족의 활동지역에서는 주변국에서도 인정할 만큼 품질 좋은 활과 화살을 생산했고 기사에 능한 민족으로 알려졌다.
고구려의 전설적인 명궁수인 주몽(朱蒙)도 활을 잘 쏘는 사람 즉, 선사자(善射者)를 뜻하는 부여의 말이다. 주몽을 비롯해 우리나라 역사 속 왕 대부분은 명궁수였다. 고려시대에도 무신은 물론이고 문신과 일반 백성들에게도 활쏘기 훈련을 수시로 강조했다. 개경과 각 주진(州鎭)에서는 활쏘기 성적에 따라 녹봉을 올리거나 승진을 시키며 활쏘기 장려책을 제도화했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는데 궁궐 내에도 관덕정, 춘당대, 오운정 등 관설 활터가 여럿 있었고 그 전통을 이어 민간 활터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오늘날 전통활터는 400여 곳에 이른다. 활쏘기는 무과시험의 대표 종목으로 목전(木箭), 철전(鐵箭), 편전(片箭), 유엽전(柳葉箭) 등 다양한 형태의 활쏘기 종목이 있었고 또한 두 팀으로 나뉘어 활쏘기를 겨루는 편사(便射)를 열기도 했다. 활터인 사정(射亭)을 만들고 활터 운영을 위한 각종 제도와 회비 등에 관한 규례를 정해 사계(射契)를 조직하는 등 오늘날 스포츠클럽의 원형을 활쏘기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러 문화재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활쏘기 흔적
성리학을 숭상하던 조선시대에 활쏘기는 『논어(論語)』와『맹자(孟子)』에서 말하는 ‘군자(君子)가 되기 위한 교양과목’이었다. 임금부터 서민들까지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고 살펴볼 수 있는 관덕(觀德)의 척도임과 동시에 여가 놀이의 대명사로 여겨진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중 「유예지(遊藝志)」, 장언식(張彦植)의 『정사론(正射論)』 등 활쏘기 관련 전문 서적이 간행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기록화와 풍속화 속에서 활터와 과녁, 선비들의 활쏘기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활쏘기는 임금이 참여하는 대사례(大射禮)1), 민관에서 실시하는 지방 향사례(鄕射禮)2)등 하나의 제도로 이어져 내려왔다.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빈인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 왕자가 ‘북궐(北闕, 왕이 머무는 곳)’이라 불리던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서 직접 활을 쏘기도 했다. 당시 1894년 무과시험이 폐지되면서 활쏘기가 명목을 잃어가던 때였는데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 왕자의 방문으로 전통 활쏘기가 부활하면서 일제강점기에도 민족전통놀이로 시행되었다.
생존의 수단에서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은 활쏘기는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그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과 시험의 활쏘기 종목 중 하나였던 유엽전(柳葉箭)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궁도 경기로 발전했고 현재 전국체전의 한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또 1960년대 서양의 양궁이 국내에 유입된 후, 1984년까지 대한궁도협회 산하에서 함께 발전했는데 그 결과 한국은 올림픽 금메달 27개를 획득하고 여자 단체전 종목 9연패의 영광을 이어가고 있다.
단군보다 오래된 역사를 지닌 활쏘기는 우리 민족의 가치 있는 문화유산인 동시에 스포츠 역사가 담긴 문화재로 필자는 활쏘기가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넘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길 바란다. 또한 생존과 국방, 그리고 의례와 놀이 성격을 모두 갖춘 활쏘기가 앞으로도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놀이로 전승되길 바란다.
1) 대사례: 왕과 신하가 함께 활쏘기를 함으로써 군신(君臣) 간의 의리를 밝히고 화합을 도모하는 의식
2) 향사례: 전국 지방에서 성부 및 각 주부군현(州府郡縣)의 수령이 참여하는 활쏘기 의식. 단순히 활을 쏘는 기예를 뽐내는 것을 넘어 향촌의 질서와 안정을 이루기 위한 교화 의식으로 여겨짐
글, 사진. 나영일(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명예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사랑. 2022-7월 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