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떠 테라스에 나가 풍경을 보니 유럽 어디 시골구석에 와있는 느낌도 듭니다. 북미나 호주, 뉴질랜드 풍경과는 거리가 먼, 유럽 쪽 분위기 그것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잔재인지 본질인지 아직 그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분명 혁신적인 변환시대의 국면에서, 한국이 그랬듯, 국가 전체를 뒤흔든 분위기 개혁은 있었으리라 봅니다.
혼자 앉아있기 심심해서 진이녀석이라도 같이 앉혀놓고 이것저것 설명해주니 대답은 잘합니다. 사진 속 분위기에서 느낄 수 없는 사방의 벼논과 새벽 일찍부터 시끄럽게 울어댄 방생닭들의 천박지축 몰려다님은 전형적인 베트남 시골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아침식사하러 갔더니 유럽 중장년들이 식당 가득입니다. 서로 거리낌없이 대화하는 것보니 단체 유럽관광객인 듯 한데 대화하는 것을 보니 독일말입니다. 그 사이를 비집고 세 녀석 자리앉히고, 다 큰 녀석들 일일이 먹을 것 챙겨주는 모습이 좀 의아할 수도 있으나 사실 그들은 절대의 무관심! 그러던 말던 괜히 의식하는 것은 나 뿐! 그들도 동시에 몰려나가자 우리만의 식당으로 급변화합니다. 이런 분위기 대환영입니다.
아침식사 후 계획은 호텔에서 자전거빌려 1시간 동안 투본강변 달려보는 것! 재미있는 사실 하나, 호이안의 상당수 호텔은 공짜로 자전거를 빌려줍니다. 공짜라서가 아니라 그 만큼 호이안을 제대로 느껴보려면 그 중심인 투본강가를 바람맞아가며 자전거로 달려보는 것이 제 격이긴 합니다. 올드타운 역시 자전거통행이 가능해서 상당수의 유럽인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닙니다. 이것도 유럽의 영향일까요?
호이안에 와보니 단체관광객들은 역시 여지없이 한국인들. 유럽사람들 다음으로 한국관광객들은 참으로 많고도 많습니다. 자전거를 호텔에서 빌리고 당연히 태균이와 진이랑 셋이서 탈 줄 알았는데 웬 일? 진이가 자전거를 못 탑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발달학교 다닐 때 분명 자전거를 엄청 잘 탔는데... 그 때 생각만 하고 당연히 셋이 달려보리라 예상한 것은 완전 오류!
아침 댓바람부터 진이 자전거가르치기 삼매경. 이 녀석 아예 균형을 잡질 못 합니다. 자전거나 수영은 몸에 익혀놓기만 하면 잊어버리기도 쉽지 않는데 어째 발달학교 그만둔 후 아예 자전거 감각을 잃어버릴만큼 놓아버린 모양입니다.
괜히 남의 동네에서 사고나겠다 싶어 진이는 수영하는 거로 하고 태균이하고만 타기로 했는데, 제가 잠시 동네 모퉁이길에서 돌아나가는 그 잠깐 아마도 논에 처박힌 듯. 옷이며 신발이 모두 진흙탕이고 자전거 바구니는 깨져버린데다 자전거도 진흙투성이. 분명 논 어딘가도 움푹 패였을 듯 한데 어딘지 알 수가 없으니 일단 진이가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다 싶습니다.
얼른 방으로 돌아와 살피니 다리에 생채기 하나만 있으니 열정의 부산물치고는 가볍습니다. 녀석 수영으로 바꾸어주니 신나라하고, 준이는 잠시 방에서 휴대폰 하는 것으로 합니다.
태균이와 신나는 투본강 강바람 가르며 달려보기! 간만의 자전거타기인데다가 오토바이와 차량이 뒤섞인 위험한 질주상황이라 안장을 되도록 낮추고 교차로에서는 무조건 내려서 끌고가는 방식으로 하니 별 탈없이 호이안 즐기기 완료! 내일 한번 더해보고 싶지만 호텔주인 눈치가 보여서... ㅎㅎ 바구니깨진 건 당연히 보상을 한다고 했으니 그렇게라도 마무리해야죠.
자전거 마치고 돌아와보니 진이는 미친듯이 수영삼매경, 어찌 그리 열심인지! 태균이 합류하니 더 신나서 열정지수를 더 높입니다. 태균이 여유작작 물즐기기, 준이는 그래도 휴대폰 내려두고 수영장 같이 간다하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 사실 준이 수영가르칠 생각으로 저도 수영복 차림으로 내려왔지만 준이 물엘 들어가질 않아 그것도 부질없는 짓이 되어버렸습니다.
참으로 알차게 보낸 오전입니다. 이제 탄허도자기마을 가야할 때인데, 가다가 동네시장에서 이것저것 먹어보려고 했더니 오늘은 상인회 송년회날인지 길가에 사탕들이 뿌려져있고 다들 모여 노느라고 공갈빵 장사도, 감자옹심이 할머니도 없습니다. 회식이나 단체행사 뒤끝은 항상 노래하는 거로 마무리되는 듯... 시장통이 마이크 노래소리로 너무 시끄럽습니다. 한국이랑 똑같습니다.
점심먹일 곳을 찾지 못한 채 탄허 도자기마을에 들어서고 관람하기도 전에 도자기체험부터 시작하는데 성의도 없고 급무기력한 준이 태도에 다시 화가 솟고... 어찌 이 상황에서 이럴 수 있는지 눈감고 자기까지...
만든 도자기그릇은 10분만에 구워져서 나오고 다시 채색작업을 하는데 아예 눈감고 자는 준이. 답답해서 저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집니다. 그제서야 잠시 저를 처다보지만 이미 뭔가할 의지나 열정 따위는 어찌 그리 멀리보냈는지... 저의 채근에 눈에는 가득 반항기만 넘쳐나고... 예전 도예선생님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결국 태균이가 나서 준이것까지 다 채색하는 것으로 마무리. 엄마가 준이를 혼내는 게 너무 싫은 태균이는 이런 상황이 되면 준이를 쉴드쳐주려 꽤 신경씁니다. 정말 이 세상에서 준이를 진정으로 감싸는 사람은 태균이 밖에 없습니다. 도자기마을에서 계속 준이 손을 잡고 다니며 준이를 다독입니다. 물론 준이는 그러거나 말거나지만 그건 제 생각일 뿐이길 바래봅니다.
도저히 배가 고파 더이상 둘러보는 것은 힘들어서 매표소에 양해를 구하고 박물관 입장권은 내일 사용하기로 합니다. 참으로 이런 부탁이 다 통하니 베트남답습니다. 그러고는 올드타운으로 택시타고 내달려서 신나는 늦은 점심파티!
어저께의 실패를 교훈삼아 제대로 된 식당찾기 성공! 실력이 뛰어난 주방장이 틀림없습니다. 준이, 먹는 일에는 그나마 약간의 열정이 발동되니 다행일까요? 어떤 소스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고구마 구이가 너무 맛있어서 미친 듯 먹었다는... 준이까지 이걸 엄청 먹었으니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맛있는 고구마요리였습니다.
그렇게 부른 배를 두드리며 걷다가 태균이표 도장 하나 만들고... 사실 이건 미술과 도예작품에 찍어보려 시도해보았는데 많이 실망! 태균이의 주요 캐리커처 캣치가 거의 반영되지 못한 졸작! 그래도 작은 나무판에 이렇게 새겨넣은 실력이 어디인가! 정도로 대체만족!
그리곤 호객당한 척 해보고 싶었던 코코넛 배타기 도전! 여기서도 점심 때 먹은 고구마가 다 일어나 아우성을 칠 수준의 준이의 무성의, 무감각, 무열정, 무시선의 연속이라 계속 답답합니다. 이제는 안구좌우 기능 불능을 넘어 상도 안되는지 계속 하향! 제가 준이를 자꾸 언급하는 것은 눈문제를 외면하려는 부모님들에게 꼭 필요한 경고를 주기 위함입니다. 타고난 잠재력은 정말 우수한 녀석인데...
그나마 태균이와 진이의 반짝이는 눈길과 호기심 가득 기대감의 표정들이 있어 제 마음을 녹여주지요. 코코넛 배타기 전문가가 찍은 기념사진은 A4 사이즈 크기인데 진이의 선물로 챙겨줄 예정입니다. 집에 돌아가면 방에 걸어놓고 보라했으니 진이 꼭 그렇게 할 듯!
그래도 두드리고 또 두드려가며, 마치 아이스크림 먹을 때의 열정이 다른 일에도 발휘가 되도록, 그 범위의 확대를 계속 공략하는 수 밖에 없겠지요. 저와 태균이의 공략이 더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포기를 할 때, 준이는 어딘가에 갇혀 그저 주는 밥만 먹어야하는 동물적 삶의 쳇바퀴에 놓여짐을 빨리 깨닫기를 오늘도 바래봅니다. 그런 점에서야 태균이도 큰 예외는 아니겠지만 분명 그 안에서도 질적인 차이는 발생할 겁니다.
여행다니면서 준이에 대한 걱정이 자꾸 늘어나지만 그래도 혼자 소외될까 열심히 따라나서는 것만으로도 우선은 저의 화를 삭힐 일입니다. 맛있다고 열심히 먹었던 고구마가 지금까지 얹혀있지만 (이래서 사실 저는 고구마를 생 것 이외에는 먹질 않는데요) 준이가 시사해주는 바는 여러가지 면에서 부모님들에게 꼭 새겨야하는 참조가 될 것으로 봅니다.
어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렸던 올드타운과 투본강변. 호이안 야시장도 근처라서 더 북적이지만 올드타운을 따라 흐르는 투본강 위로 더이상 공간이 있을까싶게 수많은 등불보트들이 오가는데 물 위가 되었던 길 위가 되었던, 미어질 듯 꽉꽉 들어찬 호이안 밤거리는 오늘도 성업 중! 우리의 제주도가 너무 뒤처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 가득합니다.
베트남 여행하면서 준이 걱정 외에 제주도 걱정까지 하나 더 추가! 올드타운에서 호텔까지 또 걸어서 왔으니 오늘도 13000보 가뿐히 찍고 다시 내일을 기약해 봅니다.
첫댓글 준이 시각문제를 보면서, 어떻게 고치지?
독자로서도 난감합니다.
식탐과 발끈하는 두 개의 요소, 그리고 혼자 있는것 보다는 풀장까지 따라 오는 자세에서 (수영을 싫어함서도) 혹시 쫍쌀만한 가능성이라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