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최초로 부처님 사리를 가져와서
신라에 황룡사, 통도사, 태화사 이렇게 세곳에 먼저 안치를 했습니다.
황룡사에도 가보고
통도사에도 가보았지만
그져 의미없이 문화재이니까~~라는 의식으로
별~~의미가 없이 다녔는데....
어느날~~
그 귀중한 부처님 사리를 왜 이곳 세곳에 먼저 모셨을까?
라는 의문이 들면서
나름은 이유와 뜻이 있었다는것 알게 되었지만
울산에 태화사라는 사찰이 있었다는 것과
울산이라는 지명이 그 당시 신라시대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역이였다는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래서 꼭~~한번 가보리라~
그리고 그곳에서 느껴보리라~
자장율사님이 이곳에 까지 태화사라는 사찰을 짖고
부처님 사리를 모셨는지를~~~
아~~
그런데 직접 와 보니.....
자장율사의 그 깊은뜻은 느낄수 없었고,
현대식 누각에 현란한 단청이 시린 가슴을 눌렀습니다.
신라라는 나라가 불교을 국교로 정하면서
부처님 사리를 모실정도로 정성과 정념을 다했거늘~~~
그 흔적은 찾을려야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안내판에 한줄의 안내가 전부인것이 너무도 씁쓸했습니다.
그 시대 화려했던 신라시대에
이곳에 태화사라는 사찰이 있었다면,
폐사지라는 의미의 복원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을 가져봅니다.
그래도 잠시 누각에 올라가 그때~~그시절을 상상해보며,
시름에 잠시 적어봅니다.
울산박물관 해설사님과 동행하면서 박물관을 관람하고
그렇게 보고싶고
보고싶었던 사리탑 앞에 서니....
왜 진작 오지 않고 이제사 왔을까?
그렇게도 삶이 고단했던가......
그나마 지금이라도 이곳에 오니~
안도의 호흡이 저를 진정 시켰습니다.
해설사님의 해설은
세계 유일하게 사리탑에 12지상을 새긴 사리탑은 유일하다고 하시면서
태화사에 대한 해설은 간단하게 하셨습니다.
더 많은 자장율사에 대한 그리고 신라 불교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지만
그 부분은 제가 따로 공부해 보리라의 다짐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알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며
참으로 보게 되면
이를 소중히 지켜내니~~~
그것은 단순히 형태를 지키는일,
그 이상이 될것이다.
김광국 "석농화원 "발문 유한준 작중 일부 재구성
반딧불을 밝히며 붓을 잡던 선비들이
밤낮으로 마음을 모아
역사를 기록하고 임금은 친히 그 노고를 위로하여
지극한 은혜와 기쁨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거울삼아 나라를 다스리려
소중한 과거의 기록을 깊이 생각하고 아끼기를 이와 같이 하였으니
그 지극한 정성이 후세에 까지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국가유산은 오랜 시간을 이어온 우리문화와 자연을 뿌리로 하며
정체성과 독창성, 아름다움이 깃든 소중한 자산입니다.
문화유산을 아는것은 그 가치를 이해하는시작이지만
좋아하는것은 그 수많은 세월의 흔적에 애정을 품게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삶에서 문화유산을 즐기며 누리는것은
오래된 유산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문화속에서 살아 숨쉬고
그것이 온전하게 미래로 이어지게 하는 아름다운 힘입니다.
이런 문화재를 접하고 나면
새삼 살아있는것에 감사하고
이런 문화재를 보는 눈을 가진것에도 감사를 하게 됩니다.
함월루~~~
달을 품은 누각이라는 이곳
저 멀리 희미하나마 달님이 보이네요
글을 읽는 것은
산을 유람하는것과 같다.
글 읽는것이 산을 유람하는것과 비숫하다고 하는데
지금 보니 산을 유람하는것이 글 읽는것과 비숫하네
정성과 힘을 다 기울일때는
제일 낮은데서 시작하는것
깨닫는 바가 깊은지 얕은지는
모두 거기에 달려있네
쉬면서 구름이는것을
바라보다 그 신묘함을 알았고
끝난곳에 이르러서 비로서 시작임을 깨달았네
그대들에게 권면하노니
정상 높은곳을 찾아가라
노쇠한 이 사람~
중도에 포기하니 부끄럽기만 하구나 / 퇴계 이항
작은 악이라고 가벼이 여기지 말라
비록 방울 물이 적으나
큰 그릇을 채우나니
이 세상의 큰 죄악도 작은 악이 쌓여서 되는 것이다.
조그만 선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비록 방울물이 적으나 큰그릇을 채우나니
이 세상 어떤 행복도 작은 선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법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