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난제는
성서 자체의 모순, 그 문제의 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서의 난제 앞에 서면
성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성서의 난제를 무시하면
성서의 모순에 대한 방치된 믿음일 것입니다.
성서의 모순은 곧 성서의 오류인가에 대한 성찰은
성서에 대한 깊은 이해의 첫관문일 것입니다.
성서에 대한 믿음은
성서의 주장에 대한 신뢰, 그 자체입니다.
성서의 내적 충돌에 대한 인식은
성서를 이해하는 깊은 믿음의 사랑, 그 결과입니다.
성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면서부터
성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싹틀 것입니다.
성서의 배경은 곧 성서의 역사요,
그 진실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성서에 대한 믿음이 될 것입니다.
성서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눈 것이 성경공부요,
하나님을 아는 충만한 지식과 그 지혜를 얻을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깊은 고민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 그 본질에 대한 영감적 성찰의 조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대한 지력은
성서의 난제에 대한 성숙한 이해와 비례할 것입니다.
성서에 대한 연구를 하다보면
필수적으로 성서학자들의 연구를 고찰하게 됩니다.
성서학자들의 연구 가운데
출애굽의 역사는 설정된 역사라는 장벽을 만나게 됩니다.
설정된 역사에 대한 성서적 이해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믿음의 파괴, 그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출애굽, 그 설정된 역사에 대한 성서적 이해는
성서의 초보가 아닌 성서학자들의 깊은 연구의 결실이라는 사실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주장일 뿐이지만 성서에 대한 완전한 믿음은
성서에 대한 오해된 진실에 대한 주장을 극복할 때 비로소 믿음의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면서
모세의 출생과 애굽의 연대기에 대한 장벽을 다시한번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누구인가?
여호수아의 출생에 대한 문제는
에브라임 지파의 눈의 아들 이라는 것 밖에 없습니다.
역대기에 기록된 눈의 아들 여호수아의 족보에 대한 기록은
관점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많고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모세의 4대에 비하면 9대의 기록입니다.
모세의 족보는 레위,고핫, 아므람, 모세의 4대요
여호수아의 족보는 에브라임, 레셉, 델라, 다한, 라단, 암미훗, 엘리사마, 눈, 여호수아의 9대입니다.
민수기 1장은 인구를 계수하면서 각 지파의 우두머리를 기록하였는데
에브라임 자파의 수장은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라고 하였는데 그의 아들은 눈이요,
눈의 아들은 여호수아입니다.
☞ 브리아의 아들들은 레바와 레셉이요 레셉의 아들은 델라요 그의 아들은 다한이요
그의 아들은 라단이요 그의 아들은 암미훗이요 그의 아들은 엘리사마요
그의 아들은 눈이요 그의 아들은 여호수아더라(대상7:25-27)
이렇게 볼 때 광야의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할아버지 엘리사마가 에브라임 지파의 수장이요,
그의 아들 눈과 여호수아의 3대가 출애굽하였습니다.
여호수아의 가정과 비교해 볼 때 모세의 가정은
레위의 아들이 고핫이요, 고핫의 아들이 아므람이며 아므람의 아들이 모세요,
모세는 레위가 애굽에서 낳은 딸 요게벳과 아므람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 아므람이 그 아비의 누이 요게벳을 아내로 취하였고
그가 아론과 모세를 낳았으며 아므람의 수는 일백삼십칠 세이었으며(출6:20)
☞ 아므람의 처의 이름은 요게벳이니 레위의 딸이요 애굽에서 레위에게서 난 자라
그가 아므람에게서 아론과 모세와 그의 누이 미리암을 낳았고( 민26:59)
모세의 모친이 레위의 딸이요,
고핫의 아들 아므람은 아비의 누이 곧 레위의 딸 요게벳과 결혼하여 미라암과 아론과 모세를 낳았습니다.
그냥 읽어서는 아무런 느낌이 없겠지만
시선을 고정시키면 성서의 난제라는 불가항력의 벽인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성서는 그 자체의 주장으로
애굽의 연대기를 사백삼십년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삼십 년이라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출12:40-42)
여기서 사백삼십년의 기간은
레위가 애굽에서 낳은 딸 요게벳과 요게벳이 출애굽하기 팔십년전에 낳은 모세의 출생을 포함합니다.
출애굽의 역사는 설정된 역사라는 주장을 듣지 않더라도
요게벳과 모세의 연대기에 대한 성서 자체의 모순이라는 의혹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애굽에 거주한 사백삼십년의 연대는
출애굽할 때 모세의 나이가 80세니까 80을 빼면 350년입니다.
레위의 연수는 137세요, 밧단아람에서 태어났으므로
야곱이 밧단아람에 거주한지 7년 후 레아와 합방하였고 77세에 브엘세바를 떠났기 때문에
적어도 84세에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를 낳았습니다.
연연생으로 낳았다고 해도 적어도 86세에 레위를 낳았다고 하면
레위가 애굽에 내려갔을 때 나이는 야곱의 나이로 환산하면 44세요 향년 137세니까
93년 동안 애굽에서 살았습니다.
350년에서 93년을 빼도 257년이요,
요게벳이 모세를 낳았을 때는 적어도 257년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았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후 이삭의 향년 180세요 야곱은 147세요, 레위는 137세요,
고핫은 133세요, 아므람은 137세입니다.
모세가 출생한 연대는 애굽에 거주한지 350년이요,
부친 아므람의 연대를 빼면 213년이요, 아므람의 출생 연대입니다.
그렇다면 아므람의 출생 연대에 요게벳의 연대는 44세요,
레위가 100세에 낳았다면 112세요, 60에 낳았다면 152입니다.
이것은 레위가 죽었을 때 요게벳의 출생 연대의 추정이기 때문에 실제는 44세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며
만약 레위가 50세에 요게벳을 낳았다면 아므람 출생 때 요게벳은 162세일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거주한 430년의 연대는
모세와 모친의 출생 연대와 대충 비교해도 상식적으로 전혀 맞지 않습니다.
과연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레위의 딸이요 실존인물입니까?
성서의 난제, 모세의 출생과 애굽의 연대기는
불가항력의 난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의 할아버지 엘리사마가 출애굽 하였듯이
모세의 삼촌, 그 아들이 출애굽한 증거를 말씀하였습니다.
☞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모세가 아론의 삼촌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아와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진영 밖으로 메고 나가라 하매
그들이 나와 모세가 말한 대로 그들을 옷 입은 채 진영 밖으로 메어 내니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르되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가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하게 하라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은 여호와께서 치신 불로 말미암아 슬퍼할 것이니라(레10:1-6)
고핫의 아들들은 아므람과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이요,
웃시엘의 아들은 미사엘과 엘사반과 시드리입니다.
모세에게 제사장 직분을 요구하였던 고라는
아므람의 형제 이스힐의 아들로 모세와는 사촌지간입니다.
출애굽한 모세의 사촌, 곧 고라와 미사엘과 엘사반 등
레위의 3대손, 야곱의 4대손으로 족보에 기록되었습니다.
모세의 형 아론은 암미나답의 딸 나손의 누이 엘리세바를 아내로 맞이하였고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낳았습니다.
나손은 출애굽한 광야의 이스라엘 유대 지파의 족장이요,
유다지파의 계보를 살펴보면 유다는 베레스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습니다.
참고로 아론의 아내는 유다 지파 5대손 나손의 누이 엘리사바요,
모세의 아내는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였습니다.
모세 출생의 비화는
모친은 레위가 애굽에서 낳은 딸 요게벳이요, 아버지는 레위의 손자 아므람입니다.
레위의 딸과 레위의 손자가 결혼하여
모세와 아론을 낳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므람이 아비의 누이 고모 요게벳와 결혼하여
미리암과 아론과 모세를 낳았다는 것이 출애굽기와 민수기의 주장입니다.
모세 출생의 비화는
출애굽의 구원 역사, 그 위대한 사역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과 모세의 출생비화는
성서의 모순과 오류의 의혹을 낳은 그 갈등과 대립의 구조가 되었습니다.
성서의 난제에 대한 깊은 고민은 성서의 사랑과 믿음의 발로가 될 때
하나님의 구원역사, 그 동선 자락을 붙들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학자들 가운데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거주한 기간을 215년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215년의 체류 기간 상정은
갈라디아사 3장 17절의 430년에 대한 해석에 근거하였습니다.
☞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갈3:17)
여기에서 바울이 말한 430년은
아브라함의 언약, 곧 족장의 연대를 포함한 출애굽 연대라는 해석입니다.
아브라함의 가나안 여정은 75세부터시작 되었고 100세에 이삭을 낳았으며
이삭은 60세에 야곱을 낳았고 야곱이 애굽에 가기 전 가나안 땅의 체류 기간이 130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렁다면 아브라함의 25년과 이삭의 60년 야곱의 130년을 더하면 215년이요,
출12:40절의 430년과 갈3:17절의 430은 족장의 언약 기간인 215년을 뺀 215년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215년으로 요게벳의 연대를 추정하면
레위가 가나안 땅에 거주한 연대는 44세쯤이요, 137세를 살았으니까 93년 정도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애굽의 체류 기간 215년에서 93년을 빼면 122년이요,
모세의 80년을 빼면 42년이 됩니다.
이 42년은 레위가 죽은 후 요게뱃의 연대요,
레위가 50세에 요게뱃을 낳았다면 모세를 낳은 요게뱃의 나이는 85세요,
레이가 60세에 낳았다면 75세요, 70세에 낳았다면 요개벳이 모세를 낳았을 떄는 65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거주한 기간이 215년이라면
레위의 딸 요게벳이 모세의 모친이 되는 연대는 상식적으로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215년 동안 70명의 야곱 가족이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 남자만 60만 가량이 될 수있을까의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계수된 자가 이십 세 이상으로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라고 하였습니다.
민수기의 첫 계수자가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인데 출애굽한 20세이상 모두 죽고
두 번째 계수한 자가 38년만에 이스라엘 자손의 계수된 자가 육십만 천칠백삼십 명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38년만에 그 수가 채워졌다면
애굽에 거주한 기간 동안 생육하고 번성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 단어의 숫자 개념에 대한 의혹을 가진 많은 성경학자들은
실제 출애굽한 인구는 60만 가량이 아니라 600명 정도였다고 확신하였습니다.
히브리어의 숫자는 히브리 알파벳. 그 의미의 숫자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수치개념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의 수치개념과
오늘날 아라비아 숫자의 자리수와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성서의 난제를 만나 그 진실에 접근하는 노력의 결실은
고대와 현대의 차이, 그 시차에 대한 다른 이해일 것입니다.
고고학적 문화에 대한 다른 차이의 이해를 모순과 오류라고 보는 것은
어떤 고착화된 종교적 신념과 이데올로기의 편향적이고 편협한 시각일 것입니다.
참고로 맛소라 사본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이라고 하였고
사마리아 오경은 이스라엘 자손과 그 조상들이 가나안 땅과 애굽 땅에 거주한지 430이라고 하였으며
70인경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거주한지 430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해석된 고대 사본의 이해도
430년에 대한 깊은 고민의 흔적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