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낮없는 돌보심
출 13: 20-22
20절 에담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드디어 출애굽. 430년만의 외출. 그리고 그 영화롭고 감격스러운 '여호와의 밤'. 모여드는 사람들. 아침해돋는 동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장엄한 행렬. 이렇게 라암셋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숙곳에 도착해서 (출 12:37), 그곳에서 유월절을 지킨다(출 12:39-13:16). 그리고 다시 그곳을 떠나서 에담에 장막을 쳤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담에 장막을 쳤기 때문에, 우리도 에담에서 잠시 머문다.
그러면서 '에담이 과연 어디일까?' 생각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애를 써보지만, 우리는 에담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성경기자가 '광야 끝'이라고만 밝혀놓았지만, 우리는 에담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한다. 이처럼 성경기자는 에담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 밝히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에담이란 곳이 중요치 않아서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다음 구절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에담은 출애굽에서 상당히 중요한 곳이고, 또 이스라엘 사람들이 쉽게 잊을 수 있는 그런 장소가 아니다. 21절과 22절을 보면, 이 에담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로 하여금 에담을 결코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건은 과연 무엇인가?
21절 우리를 앞서시는 하나님
성경기자는 그 사건을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셨다"는 말로 표현한다. 여기서 '행하셨다'(히브리어 본문대로 직역하면 '걸으셨다')는 일회적인 사건을 뜻하는 단순과거형이 아니고, 지속적인 동작을 뜻하는 '현재분사능동형'이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한번 행하시고 끝내신 것이 아니고, 어떤 일을 '여호와께서 계속 행하시고 계셨다'는 진행의미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기자는 그것을 바로 이어서 설명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서서 행하셨다(걸으셨다)는 것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비춰주셔서 그들이 주야로 이동할 수 있게 해주셨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 유명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결코 잊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누가 그 놀라운 하나님 역사를 잊을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든 '구름기둥과 불기둥'하면, 두말할 필요없이 에담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처럼 이곳에서 유명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성경기자는 왜 에담의 위치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을까?
첫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사람들은 에담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에 굳이 정확한 위치를 밝힐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에담이라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또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들을 밤낮없이 보살펴주셨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장소를 정확히 밝히는 데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았고, 구름기둥과 불기둥도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에담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머물 때에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계속 나타났다.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서니 저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편이 이 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출 14:19-20).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출 14:24)
이곳에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비추고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 뒤로 간다. 그렇게 하면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군대를 갈라놓고,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한다.
그런데 도대체 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은 시내산(출 19:16,18) 장면을 화산폭발로 보는데, 구름기둥과 불기둥도 이 화산폭발과 연결해서 보기도 한다. 자연현상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추측일 뿐이다.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도, 우리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구름'과 '불'은 알겠는데, 여기에 '기둥'이라는 단어가 붙으면서 아주 모호하고 신비로운 것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백성들 앞서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백성들 뒤에서 백성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며, 결국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하나님을 가리키는 상징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무엇이냐?' 보다 그것들을 하나님 상징으로 받아들이면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본문에는 몇가지 불분명함이 나타나는데, 이런 불분명함은 우리를 의혹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명약관화한 하나님체험으로 나아가게 한다. 에담이라는 장소의 불분명함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강조하는데, 성경기자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그 신비로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넘어서 하나님을 보게 한다. 그리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불분명함은 상황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 하나님은 언제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라는 것들로 우리를 보살피고 인도해주시고, 길을 밝혀주신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까지 이야기했으니, 이쯤해서 다시 조금 앞으로 가보자. 성경기자는 '하나님이 그들보다 앞서 행하셨다'고 말한다. 이것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나타났는데, 하나님이 그들보다 앞서 행하셨다는 말에는 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가? '하나님의 앞섬'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보다 앞서 나가시면서 그들을 보호하셨다. 이것은 '장소적인 앞섬'이다. 오랜 세월동안 출애굽을 예고해오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습을 그려오셨을 하나님은 심정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먼저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고 계셨다. 그래서 백성들보다 앞서서 가나안을 향하시는 하나님. 출애굽은 이러한 하나님의 간절함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심리적인 앞섬'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섰다.
이제는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사용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21절에서 특이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주야로 진행하게 하셨다'(히브리어 본문에는 '걷게 하셨다'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주야로 걷게 하셨다는 것이다. 낮에 걷고 밤에는 장막을 치고 거기서 거하고 다음날 또 걷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걸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조급함이다. 여유로움이 아니고 조급함이다. 이 조급함은 할 일이 많아서 기한 내에 도저히 그 일을 끝낼 수 없을 때, 일맡은 사람들이 불을 밝히고 불철주야로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밤낮없이 걷게 하셨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왜 그들을 이렇게 재촉하시면서 밤낮없이 걷게 하셨을까? 숨돌릴 겨를도 없이 밤낮 앞으로 나아가게 하셨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에도 한시라도 빨리 가나안으로 가려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나타난다. 약속의 땅을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발걸음. 그들을 주야로 지켜주시면서 걷게 하시고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는 하나님. 그러면서 그들보다 앞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시는 하나님. 앞서시는 하나님. 앞섬의 신학.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서둘렀던 또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서두르며 백성들을 밤낮없이 걷게 하셨을까? 그것은 14장에 들어가면 드러난다. 애굽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붙잡아 오기 위해서 군대를 이끌고 추적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이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한시라도 빨리 밟아보고 싶었을 것이고, 그래서 발걸음을 밤낮없이 재촉했을 것이다. 이것을 돕기 위해서 하나님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을 것이다. 이뿐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조급하게 서두른 것은 바로가 언제 마음을 바꿔서 그들을 추적해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바로에게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을 것이다.
22절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
22절에서 성경기자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결코 백성을 떠나지 않는 구름기둥과 불기둥.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백성들을 결코 떠나지 않고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그분의 그 깊고 끈질긴 사랑. 항상 함께하시는 그 사랑을 만난다.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 결코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 그분은 지난 일년 동안 낮의 상황에서는 구름기둥(같은 것)으로 밤의 상황에서는 불기둥(같은 것)으로 우리와 함께 하셨다.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기에 밤낮없으셨던 하나님.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하나님. 지난 일년 살아온 모든 것이 바로 밤낮없으신 하나님의 돌보심 덕분이었다.
2. 오늘의 상황과 본문 적용(김호식 목사, 예닮교회)
1. 설교 구성
본문은 3절로 구성되어 있다. 한 절을 한 대지로 삼으면 대지는 셋이 나오게 된다. 대지 앞에서 '서론'을 두고, 대지 뒤에는 '결론'을 붙인다.
1대지---20절(에담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본다. IMF 터널을 지나 오늘까지 급속히 발전하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생각한다.
2대지---21절(우리를 앞서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두시어 백성을 앞서가시면서 보호하셨다. 그와 같이 우리가 가게 될 2001년의 여정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앞서가시면서 인도해 주실 것이다.
3대지---22절(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상징하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내내 떠나지 않고 항상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주셨다고 본문은 말한다. 하나님의 보호는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지난해에도 우리와 함께 하셨고 새해에도 함께 하실 것이다.(미래에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내용은 새해 첫 주일예배 때 사용할 내용을 남겨 두어야 할 것이다.)
2. 설교초록
1)서 론
우리는 지금 제야의 밤에 '낡은 것은 보내고 새 것을 맞아들이는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인간은 '역사음미'의 동물이다. 시간에 의미를 주고 역사에 해석을 내린다. 하나님은 연속적인 시간을 창조해 주셨는데 사람이 마치 5선지 위에 소절을 매기듯이, 시간에 구획을 만들고 선을 그어 세모니 새해니 하면서 송구영신의 세리머니를 가진다.
인간에게는 심기일전이 필요하다. 심기일전을 위해서는 ① 회개와 ② 새 출발이 필요하다.
회개는 주신 한 해 동안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이고, 새 출발은 새해에는 더욱 충성스럽게 살아보겠다는 다짐이요 각오이다. 올해 초 우리는 새로운 한 해를 맞는다고, 새로운 밀레니움을 맞는다고 요란하게 떠들어댔지만, 지금 와서 계산해 보니 그저 그러한 여느 해나 별다름이 없었다. 뛰는 노루를 잡으려고 출발했다가 토끼 한 마리 잡은 격이다.
한국 병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고, 총선도 여느 총선과 비교하여 더 나아진 것이 없었다. 새해에는 새로운 각오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서 발전을 기해야 하겠다. 사람들은 세모를 맞을 때마다 양극 적인 정서를 동시에 가지는 ambivalent 한 존재이다. 그것은 회개와 감사이다. 회개는 못다 부른 노래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이고, 감사는 어려운 일년 동안 도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정서이다.
2)본 론
① 에담까지 인도하신 하나님(20절)---노예 생활 430년을 청산하고 출애굽 하여 홍해를 건너 숙곳까지 와서 첫 유월절을 지킨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의 덕분이다. 에담에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셨다. 때로는 불기둥이 백성 뒤로 이동하여와서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 군대를 차단해 주신 적도 있다. 2년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IMF의 구제금융으로 나라를 운영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 후 홍해를 마른땅같이 건너게 해 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도 IMF터널을 무사히 통과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무사안일하게 인도하지는 않으셨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출애굽한 무리를 북으로 향하게 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가나안 복지와는 반대 방향인 남쪽 시나이반도 쪽으로 인도하셨다. 그 곳은 물도 풀도 없는 사막인데 어찌하여 그리로 인도하셨을까? 소견이 좁고 하나님의 섭리에 백성들은 그래서 하나님과 지도자를 원망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노예근성이 몸과 사고방식에 밴 백성을 바로 가나안으로 인도해서는 안되겠기에 시내산에 이르게 한 것이다. '시내산 사건'은 하나님의 계명으로 백성을 거듭나게 하는 사건이요 종교개혁으로 민족을 개조하는 대 사건이다. 시내산 사건 없는 가나안 복지를 상상할 수도 없다. (여기서 2000년 한 해 동안 국내외 일어났던 사건을 신앙적 시각에서 조명해 본다.)
사 43:1∼3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는 내 것이다"(1절)라고 선언하셨다. 그러나 2절에 보면 주의 것이기에 "물 가운데로 지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든지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은 '내 것'일지라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해 놓고 단지 그때 죽게는 하지 않겠다고 하셨고, 물 가운데로 지나가게 해 놓고 단지 물에 빠져 침몰하지 않게 해주겠다고 만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일수록 단련을 시키신다. (히 12:6)
② 우리를 앞서시는 하나님(21절)--중세에는 하나님을 '공간적으로 초월하신 분'으로 이해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인간은 땅에 있다.'(K. Barth) 이렇게 되면 '역사의 하나님', '시간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개념이 약화된다. 현대적 이해는 인간이 제아무리 힘껏 달려가도 그보다도 더 앞에 가시는 하나님, 즉 '시간적으로 초월하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Moltmann) 하나님은 초자연적일 뿐 아니라 초역사적이시다. 2001년에도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과 같은 기적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이다. 미래는 불가예측적인 국면을 가지고 있다. 미래학이 추측하지 못하는 국면이 있다. 인간은 미래치(未來痴)이다. 단지 우리가 믿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 시점에서 새해를 바라보면 그것은 마치 높은 산꼭대기에서 해돋이를 바라보듯, 산봉우리만 군데군데 보이고 깊은 계곡은 운해에 덮여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1년을 살아가는데 개인이나 국민이나 어떤 험한 계곡을 봉착하게 될지 모른다. 다만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우리의 앞 길이 안일한 길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언제나 앞장서서 인도해 주시리라는 믿음이다.
③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22절)---에담에서 보이기 시작한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제는 안심이다 하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는 시점까지 내내 이스라엘과 함께 했다. 신앙인은 미래를 낙관적인 시각으로 조망한다. 가나안 복지를 차지할 사람은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열 사람이 아니라, 긍정적인 시각을 가진 두 사람이다. (민 13:25∼33)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펼치실 새 역사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그들 앞에서 메뚜기 같다"(민 13:13)고 하는 자는 죽고,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14:19)라고 말하는 자는 승리한다.
3)결 론
하나님은 인간에게 두 가지 축복을 주셨다. 하나는 과거를 잊게 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미래를 모르도록 하신 것이다. 과거의 일이 잊혀지지 않고 다 기억된다면 사람의 머리는 터질 것이다. 또 불쾌했던 일 다툰 일 죄책같은 것이 전부 기억된다면 병에 걸릴 것이다. 또 하나님은 인간에게 미래를 모르도록 축복해 주셨다. 사람들은 미래를 알고 싶어서 점도 치고 토정비결도 보지만, 사실은 미래를 모르도록 한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이다. 10년 후에 교통사고로 죽을 것을 미리 안다면 누가 고시공부를 할 것이며, 3년 후 이혼할 것을 안다면 누가 결혼하겠는가? 미래를 모르기에 우리는 계획도 세우고 모험도 하는 것이다.
사람은 과거 지향적으로 살 것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으로 살아야 한다. 지난해는 이미 하나님의 결재가 난 것이다. 지금 지난해는 영원한 망각의 세계로 흘려 보내면서 미련없이 아듀를 고하자. 그리고 가능성을 꿈꾸면서 새해의 문턱을 용기 있게 성큼 내어 딛자.
3. 보조 자료
1) 찬 송 가---297장 460장, 382장
2) 참조성구---전 3:1∼6, 엡 5:15∼19, 엡 4:22∼24, 시 102:24∼27, 계 22:12∼15,
갈 6:15, 고후 4:16, 5:17, 살전 5장
3) 공동기도문
【자정 전에 읽을 기도문(교독하거나 한 사람이 읽는다)】
인 도: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제야의 종소리를 기다리며
주님께 예배 드리려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회 중:금년에 우리가 받은 은총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과
아무래도 미흡했던 우리 생의 성실성에 대한 아쉬움이
심장 깊은 곳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인 도:왜 더 겸손하지 못했던가 안타깝고
좀 더 오래 참지 못했는지 후회스럽습니다.
회 중:무심한 말 한 마디로 이웃을 울린 일도 있었고
좌절된 욕심 때문에 스스로 상처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인 도:성경 읽는 일에도 소홀했고
기도하는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에도 게을렀고
회 중:예수께서 위임하신 선교의 사명을
어느 것 하나 시원히 수행하지 못했음도 고백합니다.
인 도:이토록 우리는 게으른 종이요, 무능한 제자들이지만
주님은 무한히 참아 주셨고
오래도록 기다려 주셨습니다.
회 중:유혹에 빠지지 않게 지켜주셨고
시련도 주셨지만, 생각하면 견딜만 한 것이었습니다.
인 도: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험난한 한 해였지만
돌보시는 주님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회 중:모든 것을 용서하게 해 주옵소서.
모든 것을 용서받게 해 주옵소서.
인 도:새해에도 우리를 지켜 주옵소서.
새해에도 우리를 인도해 주옵소서.
회 중:우리 영성의 뿌리에 은혜의 밑거름을 공급해 주시고
부단한 성장을 촉구해 주옵소서.
다함께:풍성한 수확을 기대해 주옵소서.
새 소망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게 하옵소서. 아멘.
※ 자정 후에 읽을 기도문도 작성하면 더욱 좋다
함께하시는 하나님
출 13: 20-22
역사를 주관하시고 시간 속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보호 하심 속에 대망의 2000년도의 새 시간 새 날 새 아침이 밝아 왔습니다.
밝아오는 새해의 첫 시간에 생각코저 하는 하나님의 맗씀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 입니다.
오늘 본문 출13:20이하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모세의 영도하에 애급에서 해방을 얻어 광야 길에 접어들게 되었는데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비취게 하시고 한 순간도 떠나지 않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 께서 그들 앞에서 행하사 ----인도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의 행로의 여정은 광야였습니다.
광야는 사막이다. 물도 없고 곡식도 없고 낮엔 섭씨 50도를 넘는 뜨거운 열기가 불어오고, 밤에는 세찬 차거운 바람과 함께 추위가 엄습하여오는 고통스러운 곳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광야의 생활을 아직 경험하지를 못했다. 때문에 불안과 초조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모르실 리가 없으신 것이다, 그래서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친히 인도하시는 은혜를 베푸신것이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역할
1) 인도(출 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하시니(출13:22) 낮에는 구름 기둥,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2) 방어(출 14:19)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3) 규제(민 9:15)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민 9:16)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민 9:17)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민 9:18)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유진하였고(민 9:19)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지켜 진행치 아니하였으며(민 9:20) 혹시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을 좇아 유진하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으며(민 9:21)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진행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진행하였으며(민 9:22)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진행하였으니(민 9: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고 또 모세로 전하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4) 하나님의 영광의 표현(출 24:16-18)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 칠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모세를 부르시니라(출 24: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출 24: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일 사십야를 산에 있으니라
5)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출 34:5-9)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실새 (출34: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출34: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사대까지 보응하리라(출34:8)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리어 경배하며(출34:9) 가로되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컨대 주는 우리 중에 서 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로 주의 기업을 삼으소서
6) 의사 소통의 방법(출 33:9-11)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출33:10)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경배하며(출33:11)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이제 하나님이 인도하시니 낯설고 황량한 사막 길 이라도 근심 할것이 없고 염려 걱정 두려울 것이 없게 된 것이다. 할렐루야!
시편 23편에"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다윗은 외쳤는데 마치 목자가 양떼를 인도하듯이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인도하시는 것이다. 아멘!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선한 목자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따른다고 했다.
목자의 음성을 잘 듣고 따르는 양들은 쉼을 얻고 배부름을 얻고 목이 축축함을 얻는다.
2001년 신년 한해에도 우리가 참 목자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따르게 될 때에 우리는 결코 길을 잃고 방황치 않을 것이요, 위험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환난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다.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며 맑은 시냇가로 인도하실 것이다. 할렐루야!
2.주야로 비추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출 13:20후)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되 구체적으로 지시하시고 간섭하시고 동참하심을 말한다.
하나님은 낱낱이 사사건건 하나에 세심한 관심을 보이고 살펴보신다. 그래서 무엇이 어떻게 필요한 가를 아시고 적절하게 그 필요에 따라 도와 주시고 인도하신다.
낮에는 뜨거운 열기를 구름기둥으로 대지를 식혀 주시고
밤에는 빛과 열이 있는 불기둥을 세우셔서 추위에 고통받고 있는 백성들을 보호하신다.
금년 한 해에도
우리들의 삶의 그 구체적 현장 속에 주님 오셔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주야로 지켜주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따르기만 하면 직장,생업, 사업, 가정, 여타한 문제라도 주님께서 세심하게 살펴주시고 복을 내려 주실 줄 믿고 축원 합니다.
3.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 하니라(출 13:22)
이 말은 계속성 연속성을 뜻한다.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히 13:8절의 말씀처럼 늘 계신다는 의미이다.
(마 28:20)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께서 항상 함께 하실 때에 우리의 삶에는 승리가 있다
승리의 새해 축복의 새해 건강의 새해 행복한 새에가 나와 여러분 개인에게 그리고 가정에 넘치시길 축원합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출 13:20~22
이창훈은 523대 1이란 경쟁을 뚫고 한국방송 사상 최초의 지상파 장애인 앵커로 합격한 사람입니다. 그는 태어나서 한번도 TV를 본적이 없기에 아나운서의 모습이 어떤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점자 단말기를 통해 뉴스를 정확하고 빠르게 읽었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읽는데 마치 누군가 뒤에서 등을 받쳐주는 듯 든든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이지만 그는 청년부 회장과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또 찬양을 인도하며 피아노 반주도 합니다. 봉사를 하는 그를 보면 1급 시각장애인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는 생후 7개월 만에 뇌수막염 후유중으로 시신경이 완전히 손상되어 더 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형체는 물론 빛과 어둠조차 구분할 수 없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예수를 영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아들아, 너는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자녀란다. 사람들은 볼 수 없기 때문에 도전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도전하지 못하는 것이란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두려움이야. 용기를 가진 사람에게 꿈은 가까이 있단다.” 어머니와 아들은 빛을 향해 한 발씩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8세에 서울 한빛맹학교에 입학하여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다 활용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2007년 시각장애인 인터넷 방송에서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KBS 장애인 뉴스 앵커 선발 공모를 본 그는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지 않을까의 기대감에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평소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던 그는 기도하면서 준비했고 원하던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한 발짝 앞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움직이고 도전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만나주십니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느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에담에 장막을 치고 있을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나타났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별개의 기둥이 아니라 한 기둥의 이중적인 현상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보였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인 것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고 처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랐지만 구름기둥과 불기둥 속에 담긴 메시지를 바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광야를 통과해야 하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동행하여 주셨습니다. 이를 가시적으로 보여준 상징적 도구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었습니다. 우리도 광야 같은 인생길을 걸어갈 때 필히 하나님과의 동행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으며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과연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로 나와 함께하시니
2차 대전이 치열할 때, 군사업무를 띤 영국 기선 한 척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선장에게 비밀 메시지가 전달되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항로를 벗어나지 말고 똑바로 항해할 것, 유사시에 즉시 비밀부호로 타전할 것’ 그런데 항해 도중 적함으로 보이는 군함을 발견하고 선장은 급하게 무전을 쳤습니다. ‘적함으로 보이는 군함이 보인다.’ 그러자 바로 회신이 왔습니다. ‘계속 똑바로 담대하게 항진하라. 우리가 지키고 있으니 안심하라’선장은 이상했습니다. 바다에는 영국 전함도, 비행기도 아무도 없는데 누가 나를 지켜 준단 말인가? 무사히 항해 끝에 도착하여 입항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각 잠수함 한 척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잠수함이 같은 항로를 따라 그 기선과 함께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은 때로는 드러날 때도 있지만, 모르게 임할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다고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잠수함보다 더 힘 있게, 더 강하게 보이지 않는 손으로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22절입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백성들과 함께 했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함께 했습니다. 밤에도 낮에도 변함없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고 계심을 가시적으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행위이었습니다. 구원받은 자에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증거(Sign)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 믿음으로 여호수아는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함락시켰습니다. 그 믿음으로 기드온의 삼 백 용사는 메뚜기 떼처럼 많은 미디안 족속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리고성과 같은 장애물이 있다 해도 미디안족속 같은 방해꾼이 있다 해도 골리앗과 같은 악한 세력이 진을 치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만 있으면 해결해 주십니다. 부디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바라보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나로 인도하시니
노스웨스트 대학 창설자 버터필드(Herbert Butterfield) 박사의 간증입니다. 그가 대학을 세우기 전에 목회자로서 복음을 전할 때였습니다. 부흥집회를 인도하려는 교회의 노부부 집에 숙소를 정하였습니다. 그런데 노부부가 음식솜씨도 신통치 않고 집도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침대도 낡았습니다. 그래서 교회 직분자들은 집도 크고 넓은 정원에 부유하게 사는 젊은 부부의 집으로 옮길 것을 그에게 권유하였습니다. 그러자 버터필드는 숙소를 옮기는 일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며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교회 직분자들이 말합니다. “이런 일까지 기도하십니까? 그냥 옮기시지요?” 그러나 버터필드는 잠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젊은 부부가 사는 집으로 옮겨도 됩니까? 아니면 이 집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합니까?” 기도하던 중에 마음속에 누가복음 10장 7절이 떠올랐습니다.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버터필드는 “이곳에서 여장을 풀었으므로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집회가 끝날 때까지 머물겠습니다” 라며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집회가 계속되는 동안 젊은 부부의 집에 장티푸스가 발생하였습니다. 그 집이 1개월 동안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만약 버터필드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았더라면 부흥회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금족령이 해제될 때까지 갇혀 돌아갈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집회를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인도를 받는 가운데 위대한 일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 2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여기의 ‘가시며’ 의 ‘홀레크’ 는 ‘걷다’ 인 ‘할라크’의 분사형입니다. 즉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인도하며 계속 걷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행진할 때마다 그들 앞에서 인도하셨고 이스라엘은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동행의 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구름기둥과 불기둥보다 앞서지 않았습니다. 뒤처지지도 않았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과 다른 방향으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는 방향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아닐지라도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기도 가운데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철저히 따라야 합니다. 감정이나 기분에 따라 변해서는 안됩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책임을 지는 하나님의 징표이기에 하나님의 인도를 믿고 끝까지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나를 보호하시니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이 설교 부탁을 받고 낯선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길을 모르는 그는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뒤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내자를 따라 나선 그들은 길을 잘못 들어 다른 곳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안내자가 어이 없어 합니다. 그들은 당황했습니다. 목적지가 아닌 곳에 이미 와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거스틴은 그 날 설교를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후에 알고 보니 그가 목적했던 곳에 갔더라면 죽임을 당할 뻔했다는 사실입니다. 어거스틴을 반대하는 대적들이 이미 숲속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칼을 들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내자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여 그 길을 못 가게 하시고 어거스틴을 보호하여 주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20절입니다.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구름기둥이 이스라엘과 애굽 진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애굽 군대가 접근조차 할 수 없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내밀자 홍해가 갈라지고 이스라엘이 건넙니다. 나중에 애굽 군사들이 따라 들어갔지만 물이 합쳐지면서 수장됩니다. 19절에 구름기둥이 앞에서 뒤로 이동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배후가 되어 보호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배후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 하셨듯이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눈동자처럼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처럼 보이지 않지만 사랑으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험한 광야에서도 하나님이 친히 보호하심을 믿었습니다.
‘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할 때 하나님과 가까워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그의 손길을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수록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동행하여 주십니다.
인생길을 가는 동안 반드시 동행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람과의 동행은 불완전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동행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가는 동안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이 동행하여 주시는 증거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나와 함께하시고, 나의 길을 인도하시고, 나를 보호해 주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역사하시는 은혜를 얻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글쓴이: 엘리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출 13장 21-22절
어느 두 남녀가 서로 사랑하고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다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여 약혼한 남자가 전쟁터에 나갔는데 어느 날 전사통지가 날라 왔습니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기다리고 있던 여인에게 캄캄한 밤이 왔습니다. 여인은 너무나 고독하고 아픈 마음을 몇 날 밤 새우다 약혼자를 따라 죽기로 결심했습니다. 비가 몹시 내리는 어느 날 밤, 여인은 바바리 코트를 걸치고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다리를 걷다가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강물로 뛰어 내리려는 순간 누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플래시를 든 다리를 지키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렇게 비를 맞으면 춥지 않습니까? 다리 끝에 사무실이 있으니 거기 가서 차를 들면서 몸을 녹이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할 수 없이 그를 따라 갔습니다. 여인의 자초지종을 다 들은 후에 다리지기는 여인의 손을 잡고 기도하기를 '하나님 아버지, 여기 길 잃은 주님의 어린양이 있나이다. 이 마음을 위로해 주시고 평강을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여인은 자기 마음속에 있던 고통과 절망의 먹구름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여인은 집에 돌아와서 옛날의 믿음을 되찾고 저절로 찬송과 기도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에 이 여인은 그 다리지기에게 감사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때 그 여인은 그 분이 다른 분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셨음을 깨닫게 되었고 더욱더 신앙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환경에 처해 있습니까? 비바람이 몰아치는 환난의 밤에 처해 있습니까? 앞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낙심의 눈으로 땅만 보지 마시고 믿음의 눈을 들어 주의 인도하심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을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백성을 인도하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상징이었습니다.
토마스 왓슨이란 설교가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인도하실 때 우선 자신에게로 인도하신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통해 우리가 누리는 최고의 복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경험이나 수많은 정보들이 있어도 그것들은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지 못합니다. 오직 구름기둥과 불기둥만이 하나님께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를 인도하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말씀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시편기자는 119: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이 우리 인생의 불기둥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중요한 인생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갈 길을 인도해주는 이정표가 됩니다.
어떤 사람이 집을 팔아서 생긴 목돈으로 더 많은 목돈을 손에 쥐고 싶었습니다. 주택복권을 사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봅니다. 성경은 밝히 대답합니다. "아니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졸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진실을 말하고 창피를 당할 것인가 아니면 거짓말을 하여 위기를 모면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있을 때 성경은 정직하라고 말씀합니다.
아프리카에 모펫 선교사가 계셨습니다. 어느 날 마을의 어린아이 하나가 모펫 선교사의 옷자락을 부둥켜 잡고 엉엉 우는 것입니다. "선교사님, 동네 개가 내 성경책을 찢어 먹었어요." "그래. 하나님께서 새 성경책을 주실 때까지 기도하고 기다려보자" "아니에요. 선교사님. 저는 친구들 가운데서 아주 나쁜 아이였어요. 그런데 성경책을 읽고 좋은 아이가 되었단 말이예요. 그 성경책은 보물가운데 보물이예요. 어쩌면 좋아요" 모펫 선교사님은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 성경책이 너를 좋은 아이로 만들어 주었던 것처럼 그 성경책을 찢어 먹은 그 개도 좋은 개가 될꺼야" 이 아이는 밝게 웃으며 선교사곁을 떠났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안내서입니다. 매뉴얼입니다.
영국의 시인이며 소설가로 유명한 월터 스코트는 죽음 직전에 말하기를 '나를 위하여 책을 읽어 달라'고 하자 사위인 로커트가 묻기를 '장인님, 무슨 책을 읽어 드릴까요?'라고 하자 '책은 오직 하나밖에 없으니 곧 성경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경의 말씀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성경을 읽으실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안내서로 여기고 읽어보십시오. 큰 감동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눈으로만 읽지 마시고 순종의 행함으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더 큰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체험하게 됨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인도해 주십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바른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은 특별한 모습으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할 때 내 가운데 오셔서 나를 인도해주시고 계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이미 성령님이 오셔서 도와주시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빌 하이벨스 목사는 성령의 사역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성령님은 사역은 무대 위에서 대사를 잊어버리고 당황하고 있을 때 무대 뒤에서 대사를 읽어주는 프롬프터 같은 역할입니다. 영적으로 팔꿈치를 쿡쿡 찔러주는 것, 내가 다른 길로 가고자 할 때 내 옷소매 자락을 살짝 잡아 당겨주는 느낌.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초자연인 역사이기 때문에 때로 상식이나 성경의 가르침까지도 초월한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성령은 절대로 말씀을 거스리는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법이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매사를 소망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아픈 심령이 치료를 받습니다. 어두운 세상가운데 비전을 갖게 합니다. 절망과 좌절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영국의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중에 극도로 번민하여 좌절에 빠진 때가 있었습니다. 거룩해지려고 노력할수록 그 반대의 행동이 나오고, 믿어야 될 줄 알면서도 자꾸 의심이 생기고, 열매를 맺으려고 해도 열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실망과 좌절에 빠졌을 때, 그의 누이한테 편지가 왔습니다. 오빠는 포도나무 가지에 불과하니까 그분에게 맡기고 의지하면서 쉬라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포도나무가지는 영양분을 끌어올리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꽃을 피우려고, 열매를 맺으려고 힘쓸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원줄기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으면 저절로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테일러는 자신의 인간적인 노력을 포기하고 완전히 주님께 맡기고 쉴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그는 주님의 놀라운 능력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많은 열매를 거두고,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내 힘으로 노력해서 성취하려고 헛수고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힘입어 그리스도께서 이미 성취해 놓으신 것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힘을 빼고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며 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인도해 주십니다
인생의 갈림길에 서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주변의 지혜로운 사람들을 통해서 갈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그런 사람들을 멘토라고 말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멘토리라고 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을 멘토라고 합니다.
조그마한 섬유수출업을 하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이집사라는 분이 IMF가 터졌을 당시 부도로 회사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곁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영원하자던 사업파트너도, 명예도 신용도 집도 없어지고 심지어 문제를 상의할 친구도 모두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낙망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명료한 해답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아직 나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믿음으로 기도해주는 교우들이 있으며 가장 든든한 구원자이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해답입니다. 그후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사랑하는 성도들을 통하여 같이 사업을 의논하게 하시고 같이 간절히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역사가 이런 모든 멘토들과 함께 하지 안했다면 낙담하여 페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동전 한닢 없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사업장을 허락하셔서 이제 새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에게는 금전도 건강도 친구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만과 허영으로 가득 찬 지난날을 뉘우칠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하여 인도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주변에 많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멘토들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주위 성도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십시다. 그들이 당신에게 소중한 구름기둥이 되어 줄 것입니다. 가족의 얼굴을 살펴보십시오. 그들이 당신인생에 소중한 불기둥이 되어 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 안에, 우리 속회 안에, 우리 선교회 안에 많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멘토들을 이미 세워놓고 당신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제 믿음의 눈을 크게 뜨고 당신의 멘토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중세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성자로 불리운 성 어거스틴이 어느 날 설교를 하기 위하여 낯선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길을 잘 모르기 때문에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안내자의 뒤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안내자가 자신 있게 길을 인도한다고 해서 나섰는데 길을 잘못 들어 다른 곳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길을 다 온 후에 그 안내자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당황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목적지가 아닌 곳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그 날은 설교를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후일 알고 보니 그가 목적했던 곳에 갔더라면 죽임을 당할 뻔했던 것입니다. 어거스틴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어거스틴이 어느 길을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숲 속에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몽둥이와 칼을 들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내자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여 그 길을 못 가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들의 감정이나 기분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의 약속의 징표입니다. 책임을 지시는 징표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으로 그리고 사람들을 통하여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