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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무 글동무
오종락
지난 토요일 아내와 나는 일일 길동무가 되어 모처럼 시내 외출을 했다. 내가 운전기사가 되어 해묵은 승용차에 아내를 태우고 길을 나선 것이다. 나는 지인 결혼식 참석차 N웨딩으로, 아내는 MBC 방송국 사진전 참석차였다. MBC 방송국 주차장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면서 아내는 “대구에 오래 살아도 MBC 방송국도 한번 와본 기억이 없네”라고 했다. “그렇지! 여기 올 기회도 별로 없었고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하며 대답했다. 헤어지며 생각해 보니 대구 땅에 예순이 넘도록 살아왔지만 꼭 가볼만한 곳도 한번 가보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맘이 허했다.
나는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수성못 옆에 있는 N웨딩으로 향했다. 수성못 주변은 나들이 차량과 인파로 인해 도로는 몹시 정체를 빚고 있었다. 한가로이 호수에 떠다니는 오리배를 바라보면서 급한 마음을 달래는 순간, 아까 아내가 했던 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참! “저 오리배도 한번 타보지 못하고 살아왔구나.”“살아오면서 못해 본 게 왜 이렇게 많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35년이란 세월을 동행하면서, “뭘 하면서 그렇게 바쁘게 살아왔던가?”“함께 동행한 인생길은 알차게 보냈는지, 허투루 시간을 낭비하며 좋은 시간들을 놓쳐 버리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등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생각하면서 예식장에 도착했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오늘 출발점에 선 신랑 신부가 인생길의 좋은 길동무가 되기를 기원하며 축하인사를 전했다.
식장 밖으로 나와 보니 저 멀리 수성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모처럼 맞이하는 나 홀로만의 여유롭고 아름다운 봄날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호수가 주는 마력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상춘객들의 발길을 따라 호수 주변을 한참 동안 거닐면서 사진을 몇 컷 찍다가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호숫가에는 수초가 바람결에 일렁일렁 춤을 추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모두 다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운 풍광과 사람들의 모습을 글로 한번 표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글동무(글쓰기)’를 불렀다. 최근에 글동무와 조금 친해지고부터는 예전과는 달리 순간의 느낌을 글로 표현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호주머니에서 볼펜과 축의금 빈봉투를 끄집어내어 느낀 점을 글동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생길을 걸어오면서 가족과 지인 등 여러 동행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길동무를 만났다. 특히 어릴 적 나에게 영향을 준 암소, 강아지, 은행나무, 감나무, 소꼴 같은 각종 동식물을 비롯하여 독서, 음악, 미술 등과 같은 취미활동은 삶에 활력소가 되어준 소중한 길동무였다. 그 많은 길동무 중에서도 내가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은 동무가 하나 있었다. 옛날에 얼마 동안 친하게 지내다가 헤어진 동무로 작년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동무는 바로 다름 아닌 인생 제2모작을 떠나는 길에서 만난 ‘글동무’이다. 그 글동무는 요즘 공부를 강요하며 힘들게도 하지만,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해 주는 고마운 존재다.
십여 년 전 겨울철 혹한에 청송 오지 관사에서 홀아비로 거주하면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그 당시 고달픈 심정을 시로 한번 표현하여 직장 월간지에 투고를 했다. 동료 직원들은 자신들의 심정을 잘 대변하고 있다며 내용이 참 좋은 시라고 추천해 주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제출하게 되었지만 결과는 본부에서 채택되지 못했다. 여러 원인을 분석해 보니 아마 글쓰기에 숙맥인 내가 표현이 미숙한 탓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 글을 한 소절 소개하면 “반변천도 꽁꽁, 내 마음도 꽁꽁, 위층 홀아비 밥하는 소리는 쿵쿵...” 이하 생략, 그 시가 당시 상황을 아무리 잘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어려운 환경을 너무 부각한 점이 직장 월간지의 콘셉트에 맞지 않아 심사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 생각한다. 그 후부터는 글동무와 차츰 멀어지게 되었다.
글동무와 다시 친해지기 시작한 것은 작년 상록아카데미 수필창작반에 입문하고부터다. 퇴임 후 처음 도전해 보는 일이라 부담도 되었고 새롭게 많은 공부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글동무와 여행을 떠나는 길에는 ‘훈장님과 문우’라는 가이드가 있어서 용기와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일 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은 수성못 벤치에 앉아서 내 스스로 글동무를 불러내어 함께 하는 용기도 생겼다.
글동무의 마력은 참으로 놀라웠다. 잠자고 있는 나의 영혼을 깨어 주기도 하며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곧잘 시켜 주기도 한다. 나 혼자만이 떠나는 여행은 깊이 있고 폭넓은 여행이 되지 않았다. 글동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평소에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세세히 느끼게 해 주었다. 글동무와의 동행은 궁극적으로 나를 발견하는 여행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타임머신 같은 글동무는 시공을 곧잘 넘나들며 나를 태워 유년시절로 되돌려 보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젊은 감성을 지닌 오빠로 만들어 주는 등 만능 요술쟁이 재주꾼이다.
나이가 들면 친한 친구뿐만 아니라, 좋은 취미 동무를 한 가지씩 사귀는 게 좋다고들 한다. 가령 악기, 사진, 그림, 글쓰기 등의 동무들 중 자신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것을 선택하여 함께 동행하면 자신의 인생이 즐거워지지 않을까 한다. 글동무는 지난날 청송에서의 아쉬움 때문에 새로 선택한 인생길 동무의 하나다. 나는 글동무를 통하여 지나온 나의 인생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며, 보다 참된 삶을 살기 위한 깨달음도 얻게 된다.
글동무는 때론 길동무가 되기도 한다. ‘법정스님과 이해인 수녀님’은 자신의 종교와 성별을 초월하여 상대방을 존중하며 편지 글로써 서로 교감한 ‘길동무 글동무’의 좋은 표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아내는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길동무이며 글동무이기도 하다. 늘 함께하는 인생길의 동무이고 내가 쓴 글의 첫 번째 독자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아내의 생일선물로 수성 호수의 오리배를 태워주며 호수가 주는 낭만을 마음껏 한번 누려 보게 할 생각이다. 또 호수 저편에 있는 이태리 레스토랑 산따마르게르따 옥상의 호수정원에서 별미 음식도 함께 맛볼 작정이다. 그런 후 글동무를 초청하여 아름다운 여름날의 추억을 노래할 생각이다. (2016.5.8.)
첫댓글 어제 오후부터 고장난 컴을 기사가 와서 방금 고치고 오교수님 글 읽었습니다. 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술술 풀려나온 듯 합니다. 동감입니다. 가장 잘해 주어야할 가족은 항상 뒤로 미루게 되니...아이들 키울 때도 외식이나 야외에 함께 나간 기억이 희미하고 그저 공부해라 닥달만 하다보니 아이들은 다 커서 취직하더니 결혼해서 분가해버리고.ㅎㅎ 오교수님의 이제부터 삶은 여유롭고 사색하는 즐거움을 누리시고, 그 삶을 글로 옮겨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삶이 시작되겠습니다.
길동무 글동무 글 잘 읽었습니다. 가족외 나의 길동무 글동무 손을 꼽아 봅니다. 내가 힘들때 다가온 친구가 힘들때 진심으로 내가 다가갈친구 다가간 친구 그 수가 많지 않네요. 남을 위해 내가 헌신한 친구 부끄럽게도 꼽을 손가락이 없네요. . 평생의 진정한 친구 셋만 있으면 잘 살았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며칠전 암 투병중인 초등학교 남자친구를 찾아가 야겠습니다. 오지마르라고 당부하지만 마지막일줄도 모르는 그를 찾아 가야겠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어찌보면 글동무가 우리 삶에서 가장 친한 길동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선생님의 글동무는 선생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길동무 가 되기도 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선생님 가슴속에만 담아 두었던 글동무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훈풍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동무" 잘 안쓰는 말이지만 "글동무" "길동무"라는 말은 친근감이 가는것 같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쌓아가지만 현재의 가까운 사람이 중요합니다.글동무는 말하지 않아도 처지와 환경을 이심전심으로 알수있어 편안하고 통하는 무엇이 있습니다. 좋은인연으로 이어갑시다. 잘읽었습니다.
좋은 길동무에 글동무 까지 되셨으니. 정말 멋진 인연인것 같읍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한 삶 되십시요.
"길동무 글동무" 제목부터 친밀감이 느껴집니다. 아내가 길동무는 되어도 글동무가 되기는 쉽지 않은데 함께하고 있으니 부부간에 따뜻한 정을 느끼게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