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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인 이 출애굽기 3장을 흔히 모세의 소명장, 하나님이 모세를 홀딩하신 장이라고 말합니다. 모세를 향한 이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구원하기 위함이 첫 번째 이유라면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삼는 일은 목적이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부르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첫째는 구원하여 하늘 백성을 삼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누미노제를 경험합니다. 이 누미노제가 무엇인가 하면 일상적인 사건이 아닌 초월적인 사건을 말합니다. 즉 인간에게 신이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 개입하시는 어떤 특별한 현상을 경험을 할 때 이것을 심리학에서 누미노젠 신비 현상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신비주의는 배격하지만 신비한 사건들과 많은 기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님을 체험했던 특별한 경험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 특별한 경험을 루미노제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먼저 알기를 원하는 것은 모세의 누미노제예요. 특별한 경험 이전의 삶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기 전에 이 40년 광야의 삶은 어떠했을까입니다.
애굽 왕자의 화려한 삶을 살던 이 모세가 하루아침에 살인자가 되어 지명수배를 당하고 살기 위하여 위대한 강야로 도망가게 됩니다. 마침 미대한 제사장의 딸을 만나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둡니다. 첫째 아들 게르솜은 미디안에서 피난 생활을 하던 시기에 태어났고, 둘째 아들 엘리에셀은 출애굽 후에 태어납니다. 한편 모세는 위대한 광야에서 매일 양을 치는 일을 하고 삽니다. 하루 이틀이 아닌 40년 동안이나 단순 노무자로 이 일을 반복합니다. 과연 그에게 꿈이나 희망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관계가 단절된 철저한 고독과 단조로운 삶을 모세는 어떻게 인내하며 견뎠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 복잡한 모세의 마음을 그의 첫 번째 아들인 게르섬의 이름의 뜻을 통해 엿볼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이 게르솜의 뜻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다입니다. 마치 자신의 신세를 자신의 복잡한 마음을 아들의 이름을 통해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삶을 살던 모세에게 어느 날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양을 치고 있던 모세에게 하나님은 떨기나무 불꽃의 환상으로 나타나십니다.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이 불꽃은 계속 타오르는데 나무가 타지도 꺼지지도 않는 신기하고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 신비한 경험 앞에 서 있는 모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모세야 내가 서 있는 것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으라.
그 긴 세월 40년 동안 침묵하셨던 하나님께서 드디어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첫 번째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 광경에 많이 놀라고 두려웠을 것이지만, 이 모세 역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해서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면 이 모세는 얼마든지 애굽에서 평생을 안락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유모이자 어머니인 요게에서로부터의 이 체질화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그로 하여금 동족의 고난과 함께하는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그 결과 동족을 살리려다가 살인죄를 짓고 광야로 도망가게 되고, 하루아침에 왕자에서 수배자 신분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환경이 바뀌어도 이렇게 바뀔 수가 있겠습니까?
원래 평민 신분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왕자에서 신분이 수직 하강하였으니 참으로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이 모세를 힘들게 한 것은 그 긴 세월 40년 동안 침묵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모세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자신을 낳자마자 아무 소식 없이 사라져 버린 딸이 있었습니다. 이 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고 아예 한 날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고 이렇게 모녀가 힘들게 사는데, 딸이 20살이 되던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난 곳입니다.
아이가 20살이 되어서 아가씨가 되었고, 죽은 줄 알고 제사까지 지내고 있었는데 20년 만에 갑자기 남편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아내가 뭐라고 반응을 했겠습니까?
소리를 한 번 크게 지른 다음에 위 아래를 보더니 남편인 것이 확인이 되니까 있는 물건을 다 집어던지면서 이 나쁜 인간아 니가 인간이냐 사람이냐 살아있었으면 살아있다고 연락 한 번이라도 하지 니가 사람이냐 하니 맺힌 것입니다. 이제야 도랄까 저지야 도랄까 기다리다가 나중에는 아예 죽은 줄 알고 포기하고 온갖 막노동을 다해 가면서 그렇게 힘들게 딸 아이 하나 데리고 산 것입니다.
이 남편이 밖에서 일주일 동안 석고대죄합니다. 밥 먹고 가서 무릎 꿇고, 또 밥 먹고 가서 무릎 꿇고, 나중에는 딸이 엄마 용서하세요라고 해서 화해를 했답니다. 20년 만에 와도 이러는데 무려 40년 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모세가 뭐라고 했겠습니까? 여러분이 모세라면 뭐라고 질문을 하시겠습니까?
첫 번째 질문입니다.
하나님 살아계셨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셨다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어서 두 번째 질문입니다.
살아계셨다면 왜 저를 그 오랜 세월 동안 외면하셨습니까?
이 40년 동안 제가 절망으로 울고 있을 때, 철저하게 버림받고 뼈를 깎는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 저를 한 번이라도 기억을 하셨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 처절한 외마디가 나올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저렇게 강에다가 남자 아이를 버릴 때, 그 부모가 자식을 잃은 아픔 가운데 아고밥이 되고 방물에 죽어가는 그 아이들을 볼 때 느꼈던 그 처절한 절망, 그 눈물의 세월들을 하나님은 보고 계셨습니까?
그때 도대체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런 절규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믿음의 사람이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40년 동안 침묵하신 하나님 제일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의 침묵 앞에 반응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 계신다. 그리고는 교회를 떠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아예 포기하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은혜의 갈망, 은혜 체험에 별 관심 없이 그냥 종교인으로 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를 통해 작품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작업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하고 기도하는 것은 이 하나님의 작업 시간을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모세의 처절한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하나님이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떨기나무 불꽃 환상입니다. 떨기나무에 이 불이 타오르는데, 그런데 그 떨기나무가 타지 않는 것입니다. 불이 꺼지는 것도 아니고 나무가 타는 것도 아니고 불이 타오르는데 나무는 그대로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떨기나무 불꽃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요?
아마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려는 것이 아닐까요?
모세야 그 끔찍한 고난을 당하면서도 이스라엘이 탔느냐?
내가 40년의 절망 속에서 죽을 고통을 당했다지만 그렇다고 너의 인생이 끝났느냐 세상의 고난의 불길이 너희를 태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희가 타지도 못하도록 내가 너의 곁에 있었고 보고 있었다. 타야 하는데 타지 않지 아니하더냐 내가 절망 가운데 고통 가운데 울고 있을 때 너는 물었다. 하나님 어디에 계시냐고 그때도 나는 너와 함께 있었고, 한 번도 너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더 절망하고 더 고통스러워하고 더 울 일들이 너를 엄습하지 못하도록 너를 지켜보며 보호하고 있었다.
이런 하나님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본문의 말씀이 이사야 43장 1절에서 3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내가 물 가운데로 건너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하고, 내가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너를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다. 내가 불속을 걸어가도 그을리지 않을 것이며,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할 것이다.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다. 너의 구원자다.
무슨 말씀입니까?
물 가운데로, 강물 가운데로, 불 가운데로 지나지 않게 하신다가 아닙니다.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강을 건널 때에,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침몰치 않게 타지도 사르지도 못하게 너를 지켜 보호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고난을 허락하시나 그 고난 중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련을 허락하시나 그 시련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 고난을 허락하시고 시현을 허락하실까요? 고난에는 뜻이 있고 실현에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 시련의 때에 광야를 걷고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합니까?
부르짖어야 합니다. 고난의 때에는 부르짖어야 합니다. 시련의 때에는 부르짖어야 합니다. 광야의 때에는 부르짖어야 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후회하고 핫할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부르짖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알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강심장이 누구입니까?
문제가 있는데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소망의 가족 여러분 지금의 시련과 고난만을 쳐다보지 말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부르짖어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사시기를 소원합니다.
세 번째 질문입니다.
하나님 무엇을 위해 이 긴 세월 동안 침묵하시고 왜 이제 나타나셨습니까?
무엇을 기대하신 것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5절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내가 서 있는 것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
하나님은 지금 무엇에게 무엇을 벗으라 하십니까?
신입니다. 신이 무엇입니까?
신은 주권을 상징합니다. 주권을 가진 자유자만이 신을 신을 수가 있습니다. 노예는 신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을 벗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종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신을 벗으라는 것은 내 앞에 종이 되겠느냐라는 것입니다. 결국 모세를 종으로 삼기 위해서 기나긴 세월을 하나님이 기다리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내 말에 복종하는 나의 종으로 세우려고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이스라엘을 내 앞에 세우기 위한 나의 종으로, 너를 세우기 위해서 나는 40년을 기다렸다. 이제는 내 말에 복종하는 사람이 되겠느냐 신을 벗어서 내 스스로가 나의 종임을 보여주지 않겠느냐. 모세야 팔십 년을 살아봤지만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더냐 이제 너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 말을 듣고 내 말에 복종하겠느냐 이제 내가 그만큼 시련을 당하고 고통을 당했다면 내 고집으로 살지 않고 내 말에 복종하는 사람이 되겠느냐 내 신을 벗어서 내 스스로가 나의 종임을 보여주지 않겠느냐 이것이 떨기나무, 불꽃 환상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모세가 너무나 똑똑하고 잘났기 때문에 오래 기다리신 것입니다. 자기가 주권을 가지고 자기 고집대로 살면 이 하나님은 쓰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무엇을 할 때까지요? 신을 벗을 때까지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종 된 삶을 살기까지 이것이 안 되니까 광야의 연속입니다. 문제의 연속입니다. 언제까지 고집, 아집, 교만, 모든 고상한 지식들이 깨어지고 하나님 앞에 종이 될 때까지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자아가 부서지지 않으면 자기 마음대로 살면 이 광야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여전히 고통과 문제 속에 사는 것입니다. 은혜는 임하지 않고 목마름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신을 벗는다라는 개념은 내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신을 벗은 사람의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주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을 벗은 사람의 특징은 주인이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기 위해서 주님께 자꾸 묻는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건강이 있습니다. 이 건강은 제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신을 벗으면 주인님 이 건강한 몸으로 제가 오늘 무엇을 할까요?
이렇게 묻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시간이 있습니다. 이 시간은 제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신을 벗으면 주인님 저의 시간을 어떻게 해드릴까요? 제가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묻는다라는 것입니다.
또한 저에게는 돈이 있습니다. 이 돈은 제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신을 벗으면 돈의 원래 소유주가 하나님이심을 알고 내 뜻대로 사용하기보다 주인의 뜻을 물을 것입니다. 주인님 저의 물질을 어디에 사용하면 좋을까요?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흘러가게 할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신 뜻이 무엇일까 날마다 순간마다 묻고 분별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성경의 아도나이 주라는 말에는 구원자라는 의미와 주인이라는 의미가 함께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신 구원자이심과 동시에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의 주인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들의 삶의 특징은 이 땅에서부터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섬깁니다. 즉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예수님을 섬기며 산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고 대행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이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르신 사람에게 신을 벗기는 작업을 하시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나입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오직 우리, 오직 우리 하나님만이 우리의 왕이시고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서 18절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진짜 주님의 종이라면 삶이 평온할 때나 힘들고 어려울 때나 평지를 걷거나 광야를 지날 때나 어떠해야 합니까?
여기 항상 끊임없이 모든 일에라는 말은 좋은 때나 그러지 못한 때, 순탄할 때나 환란의 때를 다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또는 내가 원하는 사항이나 원하지 않는 사항이나 모두를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진짜 주님의 종이라면 어떤 상황이든 어떠해야 합니까?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소망의 가족 여러분, 어떤 상황에도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셨습니까?
부부 문제로도 부족해서 아들 딸까지도 힘들게 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건강으로 물질로 힘들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까? 신을 벗기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신을 벗기기 위해 우리를 광야로 몰고 가시는 것입니다. 신을 벗기기 위해서 건강, 물질, 관계, 가정, 자녀, 그리고 주변에 끊임없는 문제를 배열하십니다.
당신은 너무나 어렵고 힘든 문제이지만 오히려 그 문제를 통해서 신을 벗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십니다. 고백하는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준비시키기 위해서 광야에서 훈련시키시고 자격을 갖추기까지 인내하시며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내가 신을 벗을 때 광야가 끝납니다. 신을 벗는 그날이 광야가 끝나는 날입니다.
이제 남은 인생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하나님만을 도움 삼고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영혼을 살리고 세우고 섬기라고 하나님은 우리를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대행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한 사람을 찾으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관심과는 달리 자신의 유익만을 쫓아 산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지 못하고 세상 사람과 동화되어서 되는 대로 살다가 주일날 교회에 나가서 위로나 받고 돌아가고, 가수는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에 세상 사람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소망의 가족 여러분 우리는 단순히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이 믿음의 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선한 목적과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소명을 가지고 응답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생애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릇으로 사용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