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속을 파내고 그 안에 불상을 새겨 감실부처다.
상시 불상이 얼굴이 그늘 아래 묻혀있는데, 일 년에 오직 동지 무렵 해 뜨는 순간에만 빛을 받는다.
한없이 순후한 표정을 드러낸다.
경주남산 골짜기 아래 있으며, '불골 석굴 여래좌상'이 정식 이름이다.
7세기 경에 조성된 우리나라 석굴 사원의 시원이라 하니, 1400여 년 동안 오직 1400여 번 저리 환히 빛났으리라 .
사진은 강운구가 1984년 동짓날인 12월 22일 새벽, 그 순간을 사진으로 붙잡았다.
문학평론가 김현이 '부처 얼굴이라기보다 숱한 역경 속에서 끈기 있게 버티어 온 할머니의 얼굴'이라고 한 그 얼굴이다.
강운구는 1980년대 초 부터 여러 해동안 골 기피고 능선 가파른 경주남산 곳곳을 발로 길을 내며 찾아다녔다.
감실부처 외에도 아침 해에 얼글을 드러내는 동남산의 불상들을 찍기 위해서는 서남산이 불상들을 찍기 위해서는
산에서 밤들기를 기다렸다.
사진 속 꽃 피고 눈 쌓인 자연과의 조화까지 살피면, 사진가의 행보가 가늠하기 어렵다.
농담을 달리하며 아스라히 멀어지는 능선들을 뒤로 한 채 나무인양 바위인양 삼층석을 세운 용장골능선,
헌화인 듯 발치에 진달래꽃을 피운 삼릉골 관음보살입상, 바위에 상반신만 드러난 탑골의 승상은 미처 땅속에서 거두어
올리지 못한 장삼자락을 흙 위에 김 빛 자락으로 드리우고 있다.
경주남산 석불과 석탑들의 공통적 특징이 자연과의 조화에서 오는 부드럽고 따듯한 친밀감이라 했으니,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이 그득히도 담아내고 있다.
1987년에 처음 책으로 출판되었고, 2016년 전시와 흑백사진으로 선보였다.
한마디로 '누가 다시 경주남산을 이와 같이 찍을 수 있으랴'가 '강운구의 경주남산'에 대한 일관된 평이다.
이전에도 없던 사진이지만, 신라 이래 천년 세월보다 최근 십 수년 새 더 큰 변화를 맞고 있는 경주남산이고 보면
이후에도 다시없을 사진이다.
이렇게 남겨진 '강운구의 경주남산'은 강운구가 찍었으되 강운구의 것만도 아닌, '우리의 경주남산'이다.
박미경 류가헌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