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 버림 오늘 복음에서 당신을 찾아온 젊은이에게 하신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계명을 충실히 지킴으로 충분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지금 우리가 아는 십계명과 이웃 사랑 계명까지 잘 지키며 살았다. 그는 참 착실한 청년이었던 거 같다. 그런데도 그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나 보다. 아마 참된 거에 대한 갈증이었을 거 같다.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마태 19,20)”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완전한 사람이 되는 건 다른가 보다. 같은 내용을 전하는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그런 질문을 하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그에게 그렇게 대답하셨다고 하는데(마르 10,21), 요즘 말로 하면 좋은 성소자가 왔다고 반가워하셨던 거 같다.
예수님도 당신이 선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마태 19,17).” 사람이 악해서 선하지 않은 게 아니라 완전하지 않아서 언제든지 악으로 기울어질 수 있어서 그런 말씀을 했을 거다. 규칙이든 계명이든 제 멋대로 살고 싶어 하는 우리에게 그런 것들은 반갑지 않다. 나는 선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잊지 않는다. 그러려고 기억하고 외우고 계명을 지키도록 애써 노력한다. 저절로 그냥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
그 착실한 청년이 느꼈던 그 갈증은 또 다른 부르심이었던 거 같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처럼 말이다. 예수님이 제시하신 그 거룩한 갈증을 해소하는 길은 완전한 버림과 추종이었다. 그러나 가진 재산이 많았던 그는 그 말씀에 슬퍼하며 되돌아갔다. 예나 지금이나 버리는 건 정말 큰 도전이고 어려운 일이다. 가진 게 많을수록 더 그렇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따르려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 제자들이 그랬고 그 이후 수도자들이 그렇게 한다. 완전해지고 예수님을 더 가까이 따르고 싶은 거룩한 욕망 때문이다. 그런 부르심을 받지 않은 교우들도 재물에 대한 집착과 자신의 안위에 대한 불필요한 걱정을 버려야 한다. 재물은 물론이고 자기 생명까지도 자기 소유가 아니라 잠시 맡아 관리하는 중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죽음은 이 세상 모든 것과 완전히 단절되는 것이다. 죽음 이후에도 내 소유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선하고 의로운 행위들이고 하느님을 사랑했던 마음뿐이다. 그런데 하느님 홀로 선하시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그조차도 없다. 예수님 마지막 외침처럼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라고 늘 기도하며 살아야 할 거다.
예수님, 소금인형이 바다와 하나가 되기 위해 그곳으로 걸어들어간 거처럼, 완전해지려면 하느님께 제 영혼을 남김없이 맡겨야 하는 줄 압니다. 제 안위와 미래에 대한 걱정 같은 쓸데없는 작은 집착도 버리겠습니다. 주님이 부르셨으니 주님이 다 책임지실 줄 믿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콘을 바라보며 기도하면 주님의 길을 발견하고 영원한 도움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