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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준하와 돌베게친구들 원문보기 글쓴이: 민주화운동가
5. 조사증거 서류
1) 김용환에 대한 진술내용 및 녹음테이프 2개
2) 김용덕에 대한 진술내용 및 녹음테이프 2개
3) 송석형에 대한 녹음테이프 1개
4) 사고현장 비디오테이프 1개
6) 김용환씨 증언 녹취요약 : 녹음상태가 테이프 교체 미비로 중복되어 있어서, 이를 시간대별로 재편집함
일시 : 1993년 4월 17일 오후 6시
장소 : 구의동 민주당 성동(병)지구당 위원장실
면담자 : 강수림 의원
1967년 7대 국회 때 장준하선생이 신민당후보로 동대문(을)구에 출마하였을 때 청량리에 거주하고 있었기에『思想界』를 통해 알고 있던 장선생(지구당)을 찾아갔다. 그 전에는 장선생을 전혀 몰랐다. 김용덕씨(당시 상무위원장) 등과 선생님을 모시고 선거운동을 했다. 선전부라고 하여 선거운동시 연설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당선된 후 인간관계가 계속되고 지구당 운영에 관여했다. 상무위원의 직책을 맡고 그 후 총무와 지구당 간사를 겸임하면서 장선생을 여러 가지로 도왔다. 그 후 삼선개헌 등 정치적 격동기가 있었는데 장선생을 모시면서 일했다.
1975년에 낙향했다. (고향은 당진) 당시에 지구당 일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선생은 청량리에서 제기동으로 이사해서 거주하고 있었다. 낙향한 후 기반도 잡아야 하고(당시 아버님은 병환중이었음) 생계문제도 있어서 당진중학교 강사로 취직했다.
낙향한 이후에 첫 여름방학이었던 때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에 동생이 이문동에 거주하고 있었고, 선생님은 상봉동에 거주하고 있었다. 8월 16일 저녁 때 인간적으로 가까웠던 김용덕씨를 산악회 사무실로 찾아갔다. 선생님댁에 같이 가자고 찾아갔는데, 김용덕씨 얘기가 내일 산에 간다고 해서 그러면 산에 가서 뵙겠다고 생각했다. 그 날 '산에 간다' 고 하지 않았다면, 그 날 찾아 뵙고 다시 내려갔을 것이다.
산악회의 출발은 지구당 조직활동의 일환으로 선생님을 돕기 위한 모임으로 주로 당원이 중심이 되고 당원들과 가까운 일일회원도 있었다. 목적이 지구당 당원들이 산에 감으로써 가까이 지낼 계기로 한 것이다. 약사봉은 그 전에 가본 적이 없었으며, 처음 가는 곳이었다.
산을 가다보면 벌판이 나오는 곳이 있었다. 거기서 회원들이 같이들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선생님보다 몇 발짝 떨어져서 갔던 모양이다. 쳐졌던 것 같다. 식사하는 지점에서 선생님 어디로 가셨냐고 물었다. 김양이 얘기했다고 하는데 저 위에 갔다고도 그러는데 제 생각에는 김용덕씨가 그랬던 것 같가. 기억이 확실치 않다. 누가 그랬는지 상관없다. 선생님을 모시고 갔는데 선생님이 보이지 않으니까 찾은 건 당연하다. 저쪽으로 갔다고 해서 찾아 올라갔다. 그 때 누구누가 갔냐 하면 김용덕씨도 갔고, 백범사상연구소 일을 처음부터 보았던 김희로씨, 핵심적인 사람은 이 세상이라고 본다. 김희로씨는 그 때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난 그 때 혼자서 갔다.
산굽으로 찾아 올라갔다. 선생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몰랐던 것이다. 왼쪽으로 잡아 올라가니까 산 입구에 다다른 것이다. 조금 더 산으로 들어가니까 선생님이 거기에 계셨다. 혼자 계신 것이 아니라 군인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자꾸 이상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병으로 이등병이었는데 아주 촌애들 같았다. 일요일이니까 놀러온 것으로 알고 있다. 선생님은 차를 들고 계셨다. 난 혼자 가시면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선생님이 같이 산에 오르자고 해서 같이 차를 먹고, 사병들은 우리와 관계없는 사람이니까 떨어지고, 나하고 단둘이서 올라갔다. 선생님은 긴팔을 입고 계셨고, 난 산을 잘 몰랐으니까 반팔과 반잠바를 입고 있었다. 선생님이 내가 앞에 서야 한다고 해서, 난 그러면 선생님 배낭을 내가 메겠다고 해서 배낭은 내가 메고, 선생님을 뒤따라서 산에 올라갔다.
바위가 있는 밑에서 선생님이 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래서 식사준비가 저 밑에 준비되어 있다고 하자, 선생님은 샌드위치를 2인분 해왔기 때문에 같이 먹으면 된다고 해서,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시국관계 이야기를 했다. 일어나면서 아이쿠 빨리 내려가야 하지 않겠느냐, 저기서 기다리지 않겠느냐고 선생님이 그러셨다.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거기는 더 내려온 곳이었는데, 내려가야 한다고 해서 난 이쪽으로 내려가서 돌아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지형적으로 보면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곳이니까, 돌아서 그 전에 왔던 길로 다시 올라가면 좋을 것으로 난 알았다. 선생님은 사람들이 기다린다고 빨리 가야한다고 하셨다. 바로 가자고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극구 말릴 수가 없었다. 지형이 그렇게 나쁜 줄 알았다면 내가 끝까지 막았을 것이다. 결국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가고 있었으며, 등성이도 넘었다.
그런데 등성이로 넘어가니까 상당히 험했다. 그래서 그 곳은 갈 수 없는 곳이며, 등성이에서 벼랑으로는 절벽이라서 정말 여기는 못 가겠고, 돌아가셔야 한다고 내가 막았다. 거기는 이렇게 내려다보니까 그 계곡인데, 상당히 천야만야 떨어지면 위험한 곳이다. 그런데 선생님은 펄쩍펄쩔 뛰어 넘으면서 나보고 오라고 하셨다. 선생님이 건너가셨는데 내가 안 넘을 수 없었다. 그거 보면 운명적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넘은 뒤에 돌아보니까 매우 험했다. 산에 대한 경험이 없는 나는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그때부터 난 경직되고 얼었다. 길을 찾아서 안전하게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길을 찾아서 내려갔다. 상당히 경사가 지고, 아주 위험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위험한 곳이었다. 돌사이에 나무들이 있고 해서 이렇게 비스듬히 내려갔다.
거기서 얼마를 내려가지고 그 지점에 다다랐다. 내가 먼저 내려갔다. 그 지점에, 그 지점이 어떻게 되었으냐 하면 바위가 쭉 펼쳐지고 저만한 정도(캐비넷을 가리키며)의 바위인데, 바위 밑에 소나무가 나 있었다. 몇 개가 나 있는지 모르겠는데, 소나무를 잡고 뛰어내려 길을 개척해 내려갔다. 조금, 내가 선생님과 불과 몇 미터 차이가 아니었으니까, 내려가다가 무슨 소리가 나는 것을 내가 들었다는 거다 거기서. 그런데 선생님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는 거다. 막 내려와 가지고 선생님 간다고 아까 말씀드렸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 때는 상당히 심호흡을 하고 계셨다. 거기는 돌무덤이 아니었고, 잔잔한 모래가 있는 곳이었다고 그렇게 말씀드렸다. 그 양반이 그런 얘기를 했다. 그래서 이렇게 누이고 인공호흡을 시키고 그래도 안되어서 입으로 인공호흡을 하고, 거의 운명하실 때 내가 입회했다. 그래서 회생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 때 천상 연락할 수 밖에 없어서 달려간 거다. 김용덕씨 하고 나, 김희로씨 하고 김용덕씨 동생 그렇게 너댓명인가가 선생님한테 갔다. 가서 또 김희로씨가 다시 인공호흡을 시켰다. 그래가지도 인제 안되겠다. 그래서 내 잠바를 벗어서 들 것을 만들고 선생님을 모셨다.
거기서 산악회원들은 미리 내려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제 더 이상 산행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고,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길거리 옆에 보이지 않는 곳에, 산악회원들이 보고 자극을 주면 안된다는 차원에서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선생님을 모셔놓고, 산악회원들을 내려보내고, 또 김희로씨를 그 아마(지서)로 내려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김희로씨는 총무도 보고, 이 인근부대 의무병인가 누군가 와서 보고 사망하셨다. 그러고 내려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이 전부다.
나는 거기 파출소로 가서 의정부경찰서로 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구치소에서 자고, 그래서 의정부지청인가 가서 오후인가 풀려난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그 때 현장에 검사되신 분이 오셔서 검증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기자들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사모님께서 이일은 식구들이 한 일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될 것이 아니다 하셔서 저를 확인해 주셔서 내가 풀려난 것으로 알고 있다. 의정부지청에서 나와 가지고 그 저녁인가 선생님댁을 갔다. 그 다음날인가 그 날인가, 그렇게 될 거다. 상봉동에 계실 때, 그 전에 제기동에 계시다가 상봉동에 가셨다. 그 때 누가 계셨냐면 내가 알기로는 계훈제선생님도 계셨고, 함선생님도 계셨고, 작은 아버님 되시는 분 등 몇 분인지 대여섯명이 계셨는데, 그 자리에서 계훈제선생님이 그 상황 좀 이야기 해달라고 해서 그 사실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래서 녹음된 것으로 알고 있고, 녹음됐다는 것은 당시에는 몰랐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까 녹음되었다고, 그래서 그렇게 알고 있고 그것이 대충 줄거리다.
그런데 이상다하는 게 군인이 있었다는 게 이상하다. 군인이 초입에 있었는데 신문 같은 데를 보면 등성이에서 내가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떨어지는 부분은, 거기 떨어지는 부분에서 떨어진 부분에는 거리가 있는데 그건 어디에서 보았느냐하면 동아일보의 장모 기자의 기사를 보았다. 봤는데 그럴 수가 없다. 부정적인 이야기고, 떨어졌는데 상처가 없었다. 그런 이야기고 그래서 그분이 긴급조친가 무얼로 당시 입건된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떨어진 장소에 대한 의문은 그것은 그 가능성은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람들이 떨어지는데 바로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옆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앞으로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떨어지는데 나무를 붙잡고 미끄러진다면, 떨어진다면 어떻게 그 밑에만 떨어질 수 있겠느냐 그런 이야기이다. 나무를 잡아서 잡고 떨어지면서 나무가 휘어지면서 떨어질 수도 있고, 또 이쪽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저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 않는가. 그래서 그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 가보면 있다.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십여 년 전의 그 기사를 보았으니까, 나는 목격자니까 추측기사로 알고 있다. 가능성은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계를 내가 가졌다는 것인데, 시계를 내가 어떻게 가졌는지 모르지만 김희로씨 이야기는 그 시계는 자기가 풀어서 나에게 주었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무엇이 의심스러운지 모르겠다.
선생님과 칠팔 년 동안 모든 어려운 면 그런 정치적 속에서 나는 가능한 한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지구당 간사로서, 총무로서 중앙당에서 상무위원, 그 당시 그 살벌한 속에서 누가 가려는 사람이 있느냐. 내가 거기 갔다. 지구당에서 중앙당에서 무슨 데모를 한다던가 무슨 전단을 돌린다던가 내가 직접 들고 다녔다. 동화백화점, 화신백화점 같은데...
ㅇ일시 : 1993년 8월 20일 오전 10시 30분
ㅇ장소 :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도평3리 약사봉 계곡, 약사봉 일대 및 사고현장
ㅇ참석자 : 기존 보고서 참조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계곡 끝 지점에 도착하여 약사봉 진입로를 찾는 중)
김용환(이하 '김') : (약사봉을 가리키며) 아니 이렇게 높지 않았고... 이렇게 높은 산으로 올라가지 않았어요. 여기 이 지역이 아니라... 하여튼 저렇게 높지 않았어요. 내가 초입 산으로 올라갈 때 저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이 지점 자체가 이상해요.
강수림(이하 '강') : 김용덕씨는 이 집 밑에 왔다는 거예요.
김 : 나는 이 집도 보지 못했어요. 판판하고... 저렇게 내가 높은 산을 올라간 게 아니에요. 저 넘어 산...
(지역주민 양정환씨가 다가옴)
강 : 이 지역에 얼마나 사셨습니까?
양정환 : 한 20년 됩니다.
김 : 저 산너머에 계곡이 있지요. 이보다 적게 올라가서 편편한 곳이 있는...
양정환 : 아니오. 약사봉 계곡은 여기밖에...
김 : 약사봉도 제1봉, 제2봉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 저 산너머에 계곡이 있고, 주위가 탁 트인... 상당히 넓게 터 있는데...
양정환 : 글쎄요. 없는데...
(점심먹은 장소를 찾고 있던 중)
강 : 여기 지형이 이상합니까? 갈대밭은 생각납니까?
김 : 생각나요. 집은 못 봤고, 하나도 못 봤고, 저런 집은 더더욱 못 봤고... 식사지점이 여기라고 한다면... 정확히 하려면 김용덕씨와 함께 오십시오.
(산 정상에 오른 후 내려오면서)
강 : 길은 하나밖에 없어요. 능선 타고 내려오는 길은 이 하나 뿐이오.
김 : 바위도 옛날 바위 같은 것이 없고...
강 : 설명하신 지형지물이 하나도 없어요. 김선생님 말씀하신 것 못 찾았지요?
김 : 못 찾았지요.
강 : 우리가 몇 번을 헤매고 다닙니까. 어디 한 군데도 부합하는 곳이 없잖아요.
김 : 못 찾은 것만은 사실이니까요.
(등산과 하산 후 다시 현장까지 찾아 올라가던 중)
강 : 현장입니다. 올라가시지요. 여기가 맞습니까?
김 : 고운 모래였는데...
강 : 현장과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까?
김 : 돌이 없었습니다.
강 : 장선생이 떨어지신 곳은 저 위입니다. 김선생님은 어디로 내려오셨습니까?
김 : 올라가 봐야 알겠습니다. 이렇지 않았었는데...
강 : 어디로 내려오시다 추락했습니까?
김 : 저 윌로 올라가 봐야 알겠습니다. 내려왔던 길이니까. 여기서 저 위가 아닌지... 위에서는 알지만 여기서는 추락지점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강 : 그 때 이 현장은 어땠습니까?
김 : 고운 모래로 되어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 : 그 다음 날에도 왔고, 한 달 뒤에도 왔다. 고운 모래가 어디 있어?
강 : 이런 현장에서 떨어졌다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안되겠어요. (시신의 상태를 이야기함)
김 : 이런 현장에서야 안되겠지요.
강 : 형편없겠지요?
김 : 그렇게 봐야겠지요. 그런데 나한테 그것을 물어봅니까? 여기 같기는 같은데...
강 : 인공호흡을 시키셨지요?
김 : 추락지점이라면 확실합니다.
강 : 장선생님의 얼굴표정이 좋았죠?
김 : 좋았죠.
강 : 저 위에서 떨어졌다면 상태가 좋을 수 있습니까?
김 : 저의 견해도 어려운 건데...
강 : 그 때 소나무는 어느 것입니까?
김 : 여기서는 안보이지요. 저기 위에...
강 : 안 보이는 곳에서 떨어졌습니까?
김 : 저 위에 올라가 봐야죠.
강 : 내려오다가 그랬습니까?
김 : 저는 이쪽으로 내려오고... (바닥을 헤치며) 김용덕씨한테 물어보세요. 아닌 것은 아니라 그러지. 이런 돌이 없었어요.
강 : 시신은 어땠습니까?
김 : 이런 상태로 누워있었고 인공호흡을 시켰습니다.
(계곡을 내려오며 김용환씨가 절벽을 타고 내려온 길로 이동중)
강 : 김선생이 온 길로 갑시다.
김 : 김용덕씨가 거기 갔다면... 세월이 많이 흘러서...
주위 사람들 : 무슨 모래가 있다고... 웅성 웅성
김 : (화를 내며) 그러면 내가 한 얘기가 거짓말이란 얘기요? 그러니까 김용덕씨한테 물어보라는 얘기요.
김삼웅 : 한 달 뒤에도 왔고, 그 다음 날도 왔어.
김 : 그러면 내가 거짓말이란 거요? 어째 당신 말만 주장해? ...
(김용환씨가 지목한 장소에서)
강 : 보이지 안잖소. 밑이. 여기서 떨어졌다면 사람이 형체도 없겠어. 안돼, 말이 안돼.
(산행을 정리하며)
김 : 내려오는 길은 없습니다. 단애에서 떨어졌어요.
강 : 떨어지는 것은 보셨습니까?
김 : 떨어지는 것은 못 봤습니다. 내가 왜 괜히 없는 걸 찾겠습니까?
강 : 떨어지는 지점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김 : 그 쪽으로 떨어지는 것은 봤으니까. 그리고 내려와서 계곡으로 올라갔지요. 얼마나 어떤 정신으로 내려왔겠습니까. 선생님이 떨어지셨는데... 정신없이 미끄러지면서 어떻게 내려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강 : 그 지점이 맞는 것 같으세요?
김 : 단애가 있고 나무가 있으니 분명히...
강 : 보이지 않죠? 굉장히 높죠? 모든 조사한 사람들이 12m라고 하는데 그것이 틀렸습니다.
김 : 선생님도 아시죠. 몇십 층 높이에서 떨어지고 툭툭 털고 걸어갔다는 해외토픽도 있지 않습니까.
김 : 계곡이 많이 틀립니다. 그렇게 높은 산이 아니었어요. 직각으로 생각했는데, 바위에 기대서 샌드위치를 먹었어요.
강 : 내려오면서 능선길도 못 찾았지 않습니까. 소감은 어떻습니까? 그전에 말씀하신 것은 거의 못찾지 않았습니까.
김 : 밑에 지점(현장)은 맞지 않습니까. 확실히 찾지는 못했지요. 물은 없었고, 고운 모래가 있었는데...
강 : 안 그렇잖아요.
김 : 나한테 묻지 마세요. 현장에 간 사람이 여럿 있었으니까. 그분들한테 물어보세요. 돌이 떨어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나는 그 때 분명히 얘기했고...
강 : 단애서 떨어진 것은 분명하지요?
김 : 그렇지요.
강 : 산은...
김 : 급작스럽게 높이 올라가지 않고 편편하게 올라 갔지요.
강 : 발견할 수 없었지요.
김 : 못 찾았지요.
강 : 추락해 떨어져서 장준하씨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합니까?
김 : 제가 같이 갔으니까...
강 : 김선생님이 이야기한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거요. 하나도 입증을 못해 주셨잖아요.
김 :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되는...
7) 김용덕씨 증언 녹취요약 : 녹음상태가 테이프 교체 미비로 중복되어 있어서, 이를 시간대별로 재편집함
일시 : 1993년 4월 30일 오후 6시
장소 : 구의동 강수림 변호사 사무실
면담자 : 강수림 의원
배석자 : 안도현 비서
※ 주요 진술내용만 요약
1. 일설에 의하면 김용환씨에게 전화를 했다고 하는데...
- 전화한 사실은 없다.
2. 약사봉 신문광고는 어떻게 냈나?
- 월요일, 화요일 떠나면 금요일날 낸 것 같다.
3. 광고를 보고 온 사람은 얼마나 되나?
- 초면이라 잘 익히지 않고 항상 온 사람이 온다. 임원이 체크하고 40여명을 태우고 왔으며, 하여간 전체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20% 정도가 새로운 사람이었다.
4. 장선생은 어디서 떠났는가?
- 운동장에서 탄 걸로 아는데 나중에 보니 상봉동이라 한다.
5. 어디 앉았나?
- 중앙에 앉았고, 김희로씨가 어린 애를 데리고 와서 같이 앉았다.
6. 도착해서는?
- 오전 11시 전후에 도착했고, 장선생과 중간에 같이 갔다. 끝말에 가니 동네가 있었고, 집은 몇 채 안되었다. 어떻게 된 건지 올라가 봤다. 내려갔더니 장선생 어디 가셨냐. 미스 리가 산에 갔다 오신다고 가셨다고 하고, 김용환씨가 어디 가셨냐고 묻더니 따라 올라갔다고 했다. 점심 준비하고 1시가 조금 넘었던 것 같다. 밑에서 김용환씨가 땀이 범벅이 되어 울상을 짓고, 신을 신었는지 모르겠지만... 장선생이 추락했는데... 신발들은 못신고 뛰어갔다. 두 번 골짜기를 헤매고 현장에 갔다.
7. 현장상황은?
- 이상하리만큼 깨끗했다. 흙 같은 산모래, 돌도 있었다. 고운 모래는 아니었다.
8. 즉사의 경우는 머리가 깨지고 그랬어야 한다. 상처가 없는데, 죽었다는 판단을 어떻게 했는가?
- 전혀 숨을 안쉬고...
9. 떨어졌다는 것을 믿었는가?
- 나도 믿지 못하겠다. 군의관이 한참 있다 왔다. 김희로가 데리러 가서 위생병 2명이 왔다. 직접 같이 왔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현장에는 나와 내 아우가 있었다. 거의 다 있었을 것 같다. 5명 정도 있었다. 김응식은 사람들과 같이 내려가 지서에 신고했다. 김희숙 여사가 왔을 때 김희로, 나, 김덕희가 있었고, 박사범은 계곡에 있다가 내려갔고 김용환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나는 후레쉬, 건빵을 사러 내려갔다.
10. 다른 일행은?
- 관광차가 3대인가 4대 왔다. 다른 일행과 섞여 있었는데 3시 30분, 4시 출발로 얘기해줬다. 김응식씨가 내려보냈다. 3시 30분쯤 철수를 시작했고, 발설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집에 알리는 것 정도만 생각하고 차타고 출발했다.
11. 그런 위급사태를 풀어나가는데 상식에 맞지 않다. 일찍 뛰어엎고 내려가야 하고, 계곡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알만한 상황이 아닌가?
- 내가 말씀드린게 전부다.
12. 김용환씨에 대해...
- 너 어디에 관련된 것 아니냐고 추궁도 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누가 봐도 타살이다. 그러나 인간관계를 살펴보고 김용환씨를 보면 추락사다.
13. 식사한 장소에는 누가 있었나?
- 임원진 외에 여자를 포함해서 5∼6명 정도 더 있었다. 임원진 외에는 현장을 본 사람이 없다. 나중에 가보니 산도 변한 거 같고, 여기가 아닌 것 같더라. 다른 사람은 계곡에 있으면서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몰랐을 것이다.
14. 도저히 다른 사람들이 몰랐다는 것은 이해가 안되고, 그런 위급사태시 같이 철수했어야 하지 않은가?
- 우리 얘기가 그렇다. 그대로 말씀드리고 있다. 만들거나 보태고 빼지 않는다.
15. 군부대에 신고한 이유는?
- 마을은 상당히 멀고 없었다. 부대가 많으니까 군부대를 생각했다.
16. 점심 먹었다는 장소는?
- 임원진만 계곡 끝에 모여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흩어져 있었다. 임원진이 9명인데 참가는 6명이 했다. 그 당시 나머지 사람들은 자기 파트끼리 계곡에서 놀았다.
17. 인원통제는 어떻게 했나?
- 하산시간만 얘기하면 다 내려가서 차에 타니까 간섭할 것 하나도 없다. 자기끼리 휴식이니까. 식사장소는 맨 마지막이다. 더 이상 올라가지 말라고 커트라인을 친 것이다. 답사는 필요 없었다. 그 이전에도 다녔다. 군사훈련만 없다면 통제되지 않는다. 벙커가 있는 곳은 못 올라간다. 그러나 내 고향이니까 여러 등산코스를 개발했다.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오셔서 올라가셨다. 산에 올라가는 길은 없었다. 지금도 어느 길로 갔는지 모른다. 올라갈 데가 없다. 아무리 봐도 이리 갔다니까 그도 떠날 수밖에... 지금 가도 기억 못하겠다. 자기도 짐작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18. 마을에 간 것은?
- 마을에 들어간지 10분 정도 걸렸다. 10분 이상 더 걸렸겠는가. 김용환씨 온 것은 상당한 시간으로 1시간은 넘었다. 밥은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이 없다.
19. 현장처리를 하면서 이견이 없었는가?
- 그 때는 그렇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3시쯤 내려왔다. 길 옆에 안치했는데, 잘 모르지만 다른 사람은 모두 내려간 것으로 안다. 프로그램은 따로 없고, 한국일보의 한영화(?)씨, 박사범에게 지휘를 대신 얘기해 놓았다.
20. 그 때 간 사람 중에 젊은 사람은 없었나?
- 40대가 주축이고 젊은 사람은 없었다.
21. 장선생 시신을 보고 떨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가?
- 몸이 깨끗하고 상처가 없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후에도 그런 얘기를 했고...
22. 군인을 만난 장소에서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는데...
- 나에겐 그런 얘기 안했다.
23. 김용환씨를 의심해 본 적은 없었나?
- 옛날에 야당을 같이 하던 사람이 작년인가 동대문구청에서 이희성(?) 국장으로 있는 사람을 만났더니, 김용환씨가 정보원들과 손을 댔더만 하는... 정보원들이 그러더라면서... (테이프 종료)
24. 지금 소감은?
- 돌이켜 생각하기도 싫다. 방송에서도 만들어서 언론플레이하고... 이런 얘기해야 하느냐. 벌써 시효가 지났는데, 무엇 때문에. 그 때는 가만히 있더니 지금 와서... 그 때 국회의원들은 뭐했는가? 긴급조치 때는 말도 못하고... 지금 와서 이게 무엇인가. 지금 심정이 좋지 않다. 이제 와서 법석떠는 것 마땅치 않다. 꼭 밝혀야 한다. 더 이상 끌지 않도록 결판을 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