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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냉막걸리집 3번째이야기 ] 새끼손가락마디가 유난히 길었던 그 여자 - 11
송민수는 집으로 향하는 발길을 서두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분명이 가고 있는 곳은 자신의 집이 있는 중곡동이었다.
하늘에는 달이 저만치 기울고 있었고 5월 중순의 날씨는
싱그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시간은 벌써 새벽 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저께 한 정치지도자가 그런 말을 남기고 갔다.
삶고 죽음이 자연의 한조각이 아니겠는가....하고 말이다.
그 정치인의 억양이 센 경상도 사투리가 들리는 듯했다.
왠일인지 마냥 슬프고 마음을 둘곳이 없는 느낌이 들었다.
마냥 울고싶은 마음뿐이었다.
이렇게 그가 아침이 다가오는 이 시간까지 집으로 걸어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송민수는 오늘 덕수궁 분향소를
다녀오고 있었다. 잠시 다녀온다고 나온 것이 이렇게 늦은 것이다.
분향소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온통 세상의 슬픔은 모두
여기에 모인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실 어제 오후 6시에 집에서 나왔다.
1~2시간 줄을 서거나 기다리면 애틋한 마음을 전할 분향절차를
마치고 송민수 자신의 냉막걸리집으로 가서 장사를 할 수있다고
생각을 하고 나왔는데 실제로 나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덕수궁 담벽을 따라서 길다랗게 늘어선 인파의 줄선 길이는
2km쯤은 족히 되는 것같았고 분향을 마치고 보니 광화문쪽의
길에도 장사진을 치고 있는 것이 엄청난 인파가
그 정치지도자의 가는 서거를 애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송민수는 평소 그를 지지하지도 않았고 그에 대한 어떤 애증도
없었고 무덤덤하기까지 했는데 그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가슴이 아파왔던 것이다.
적어도 지금 송민수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사는 것이 무엇인지....참으로 모를 일이었고 허무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밤 1시에 분향을 마친 송민수는 터벅터벅 걸어서
집에 도착하니 무려 밤 3시를 넘는 시간이었다.
택시비가 없었거나 그 돈이 아까와서 아니라
오늘 분향한 그 정치지도자의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싶어서 지금까지 걸어온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허무한 생각에 잠이 오지를 않았다.
그렇다고 피곤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서울시청앞 덕수궁에 설치된 분향소를 떠나서
종로를 거쳐서 동대문을 거쳐서 군자교를 지나는
길에 있는 가로수와 화단에는 신록이 무성하게 우거지고
있었고 밤공기임에도 차지가 않았다.
집에 도착하여 간단한 세면을 마치고 나니
잠은 오지않고 새록새록 지나온 삶에 대한 생각이
반추되어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그는 생각했다.
인생은 참 덧없는 것이라고.....
하기는 인생을 어떻게 살더라도 후회와 회한은
남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1000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한나라를 창업하고
25년간이나 임금의 지위에 있었고 29명의 마누라와
34명의 자녀(25남9녀)를 두었던 고려 태조 왕건은
그가 죽음을 앞두고 슬퍼하는 신하와 가족들에게
빙긋이 웃으면서 그런 말을 했다는 생각이 났다.
“인생이란 원래 이렇게 덧없는 것이야.....”
라는 말을 했다는 생각이 났다.
오늘 분향소를 다녀온 그 정치인도 만인지상의 높은
지위와 권좌에서 어쩌면 더 없는 영광을 누렸을 것지만
오늘은 이렇게 송민수같은 보통사람들의 애도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인생은 참 덧없는 것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송민수는 잠이 오지 않아서 방에서 나와서 마당에 내려섰다.
벌써 시간은 새벽 4시를 넘어서고 있었고 조간신문이
대문 안에 떨어져있었다.
쌉쌀한 인쇄잉크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신문을 펴자 온통 정치인 서거에 관한 이야기로
장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문을 접어서 마루에 던져놓고
방으로 가서 뜨거운 커피를 한잔 타서 마셨다.
신문을 던져놓고 보니 왠 화분이 하나 놓여있었고
화분 위에는 조그만 쪽지가 있었다.
반유란이 송민수를 위하여 저녁에 두고 갔던 것이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자기야 나 왔다가 간다우.....
자기가 보고싶어서 왔더니 가게에도 없고
해서 내가 평소에 아끼던 화분을 놓고 가니 집에
도착하면 전화를 주면 좋겠네....라는 쪽지가 있었다.
그래서 송민수는 바로 전화를 걸어서 그간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었다. 오늘 분향소를 다녀온 이야기며
새벽에 집으로 3시간을 걸어서 온 이야기와 사람이 사는
것이 참 허무하고 덧없는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덧붙여서
이야기를 했고 반유란은 사랑하는 송민수의 이야기를
여과없이 들어주면서 맞장구를 쳐주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대화는 논리적인 쳬계나 의미를
담지 않아도 공감할 수있는 것이었다.
송민수는 반유란에게 자기가 잠자는데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반유란은 그랬다.
자기야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누가 들어주겠어.
난 당신의 이야기를 기쁜 마음으로 접수했어...하고 말했다.
송민수는 고맙다고 이야기를 하고 이따가 낮에 송민수가
운영하는 냉막걸리집으로 오면 같이 나가서 중곡동에서
제일 맛있는 설렁탕집으로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용마산 밑에 대원외국어고등학교 근방에 가면 유일설렁탕이라고
하는 제법 맛있는 곳이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반유란은 송민수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다 맞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약속을 마치고 송민수는 곤한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한편 지난 번에 아파트경비원일을 마치고 퇴근하던
M의 남편 예비역 박대령은 건널목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근처에 있는 녹색병원에서 중환자 신세가 되어있었다.
박대령은 아니 박경비원은 의식은 있었지만 눈도 깜빡거릴
수가 없고 몸도 뒤척일수가 없는 신세가 되었다.
호주 동생집에 가서 머물던 아내 M이 간호를 하고 있었지만
차도가 없었다.세수는 물론 대소변도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아이들 아버지인 박대령의 간호나 대우를 소홀히
하기도 어렵고 인간적인 도리도 아니어서 참 괴롭고
힘든 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 M이 볼때
박대령은 말은 물론 몸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눈빛으로
보아서는 말을 알아듣는 것도 같았지만 확신은 없었다.
그런 식물인간상태의 남편을 나무라거나 짜증을 낼수는
더욱 없었다.
M은 그런 고통스러운 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일을 딸인 은실에게 대신 시키기는 어려웠다.
딸이 중앙대학교 법학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그런 일을 시킬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도 했다.
그러나 딸은 아버지에 대한 정성이 지극하여 항상
하루도 빠짐없이 병원을 드나들었고 아들도
아버지 박대령의 병세를 점검하고 어머니에게
수고가 많으시다고 어머니를 위로하고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모두가 참 착한 자식들이었다.
이런 착하고 성실한 남편이나 자녀들에게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M은 지난번 호주에서 귀국한 이후에 송민수와 아직
만나지 못했다. 남편의 교통사고라는 악재를 만나서
그럴만한 시간도 없었고 연락하여 한가한 이야기를
나눌 수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런데 M은 병원에서 주는 아침밥을 먹고 나서 잠시
쉬는 시간에 불현듯 송민수가 생각났고 송민수가 갑자기
보고 싶었다. 그래서 M은 송민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병원으로 한번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민수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면서 송민수는 오늘 반유란과 설렁탕을 함께 먹고
반유란을 보내고 병원으로 문병을 가리라고 생각했다.
송민수가 잠자리에서 일어난 시간은 오전 10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는 주섬주섬 옷가지를 대충 입고서 우선 자신의 냉막걸리집으로
가서 어제 분향으로 인하여 자리를 비웠던 시간을 보충이라도 하듯이
청소도 하고 금자엄마에게 영업상황도 물어보고 대충 가게를 정리했다.
처음에 반유란에게 냉막걸리집으로 와서 같이 가자고 했으나
반유란이 설렁탕집으로 바로 온다고 해서 송민수는
설렁탕집으로 바로 갔다.
12시가 가까와진 시간인지라 손님이 여럿이 앉아있었다.
반유란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이라서 송민수는 청주에서
음대를 다니는 딸에게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물었다.
이윽고 반유란이 설렁탕집에 도착했다.
반유란은 오늘 기분이 좋은 것같았다.
청바지와 짧은 반팔 등산복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볼륨있는 젖무덤이 유난히 크게
들어왔다.
송민수는 웃으면서 말했다.
자기야 이곳은 설렁탕집이니까 설렁탕 이외에는
다른 메뉴는 없어....하고 말했다.
반유란은 알았다고 상냥하게 말하면서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하얗게 드러낸 이빨에는
녹색향기가 묻어나는 것같았다.
반유란의 숨결조차 싱그러운 나뭇잎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고 있는 송민수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반유란과 송민수는 맛있게 설렁탕을 먹었다.
설렁탕을 먹고 나서 반유란은 송민수에게 말했다.
여보 , 우리 시원하게 용마산 중턱까지만 오르자고 했다.
송민수는 흔쾌히 수락하고 둘은 다정하게 용마산을
오르고 있었다.
용마산을 오르다가 보니 이곳 문인들이 짓고 중랑구청에서
세운 시비가 어렷이 줄지어서 등산로를 지키고 있었다.
송민수는 이 시비를 읽으면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하면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반유란은 송민수에게 마믐 속에 넣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야 이제 우리가 조금 늦었지만 둘이서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것이 어떤지 생각해보면 안될까....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송민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말했다.
다만 자기는 유일한 혈육인 딸에게 묵시적인 동의 정도는
얻고 싶다고 말했고 반유란은 맞는 말이라고 동조했다.
송민수는 반유란과 산에서 내려오면서 반유란에게
말했다. 자기야 나 오늘 친구가 병원에 입원을 해서
이곳에세 가까운 곳인 녹색병원에 병문안을 가야한다고 했다.
반유란은 자기도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송민수는 혼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반유란은 같이 있고 싶은 눈치였지만 송민수의 의견을
존중하여 아쉽지만 자기집으로 귀가를 서둘러서 돌아갔다.
송민수는 반유란과 헤어지고 서둘러 인근에 있는
녹색병원으로 가서 M의 남편 박대령을 문병했다.
박대령은 눈만 껌뻑거릴뿐 반응이 없었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처지라서 그런지 역한 냄새가
병실에 가득했다.
참 안된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가지고 간 음료수를 두고 나왔다.
송민수를 따라나온 M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풀기없는 머리결이 흐트러진 모습에서 안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병석에 있는 M의 남편
박대령이나 M에게 해줄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송민수는 여기에서도 또 한번 인생의 의미를 느끼고 있었다.
인생은 참으로 덧없는 일이라고.....
송민수를 뒤따라 나온 M은 송민수에게 말했다.
자기의 남편 박대령 아니 경비원 박씨는 지금으로서는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이병원 주치의가 어제 회진 시에 말해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이제는 의학적인 노력은 다했으나 차도가 없었다고 했다.
이제는 사후 준비를 해야 하는 모양이라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M의 모습에서 인생이라는 것이
사람의 앞날에는 어떤 것이 기다리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M은 궁금한 것 한가지를 송민수에게 물었다.
내가 호주여행을 가기 전에 당신에게 나와 당신 둘만이
알고 오피스텔을 얻으라고 준 돈은 어떻게 했느냐고
물어왔다. 송민수는 지금 구리시에 있는 오피스텔을 얻어
놓았다고 말하면서 주소가 적힌 메모지와 오피스텔 열쇠를
M의 손에 쥐어주고 있었다.
M은 남편 박대령(경비원) 병실을 오랫동안
비워둘 수도 없었고 그곳 사정이 궁금하여 병실에
돌아가야한다고 하면서 서로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송민수는 M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향하다가 병실쪽으로 눈길을 돌리는데
갑자기 하얀 까운을 입은 의료진들이 급히
M의 남편 박대령의 입원실로 달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송민수는 눈앞이 아득하고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그냥 모르는 척하고 발길을 돌리는 수밖에.....
그렇게 송민수는 자신이 운영하는 냉막걸리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M이 너무나 가엽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냉막걸집으로 돌아온 송민수는
M의 남편 박대령(경비원)에 대한 연민의 마음만으로
갇혀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지금 사랑하고 있고
자기와 인생을 함께 할것같은 반유란에게 문자를
보내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송민수는 반유란에게 다음과 같은 핸드폰 문자를 보냈다.
자기야 살아온 세월은 추억이요
살아갈 날은 희망이니 내일을 위하여
우리의 사랑을 키우고 물주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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