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장애는 무관한 일일까요,
🙏🎋幸福한 삶🎋🎎🎋梁南石印🎋🙏
나도 당신도 내 가족 중에도 불시에
불편한 장애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결같이
장애를 남의 일처럼 생각할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나와 다른 조건을 가진
특별한 누군가의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선천적 장애는 전체 중 일부에 불과한 통계가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19세 이상 장애인 중 선천적 장애가 11.9%로였습니다.
다만 선천적 장애의 정의·범위(유전·임신·출산 과정 등)와
조사 대상(19세 이상)으로 한정되어, 전체 인구 대비
선천적 장애인 비율에는 한계가 있으나
후천적 장애인이 88.1%, 장애는 남 이야기가 아닌
나도 내 가족도 예비 장애인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삶에서 다양한 루트를 통해 불시에 당하는
산업재해, 교통사고, 질병, 노화 같은
후천적 요인으로 생기는 경우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사실.
이 말은 곧,
지금 건강하게 걷고, 보고, 듣고, 말하는 우리 역시
어느 날 갑자기 장애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장애는 특별한 존재가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동안 자유로웠던 몸의 조건 일부가 제한되어
달라질 뿐입니다.
불편함은 특별한 누군가에게만 해당하는 유형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는 불확실한 삶의 조건이 됩니다.
다리가 불편해질 수 있고,
시력이 극히 제한될 수 있고,
불편 없던 청력이 손상될 수 있고,
몸의 영양 섭취에 절대적인 자작 기능의 불편,
몸 안의 오장육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심뇌혈관 성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침대 생활도
사고나 질병으로 인지와 사고에 어려움을 겪는,
한 번의 사고로 일상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일까요,
아니죠, 그저 다른 조건에서 살아갈 뿐입니다.
많은 장애인은
매일 불편을 뛰어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합니다.
계단이 가로막아도 멈추지 않고 넘으려고,
편견의 눈빛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으려고,
차별의 시선을 견디기 위해 이를 악물고.
생계를 위한 고용의 문턱을 넘기 위해,
그들의 하루는 안타까운 동정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존중받길 원하듯 존중받기 위한 분투입니다.
쯧쯧 안 됐다는 눈빛과 말은
위로가 아닌 선을 긋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편,
저들은 도움받아야 할 편.
하지만 사실은 모두 같은 편입니다.
나는 이미 겪는 중이며,
쟤는 아직 겪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차별이 잘못된 이유는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 파고들면 그 차별은 언젠가
나의 미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턱이 높은 건물이나 화장실, 승강장,
점자 없는 보도블록과 안내판, 키오스크,
자막이 없는 스크린, 방송,
차별이 깔린 채용 공고.
그 모든 장벽은
누군가에게는 현재의 벽이나
누군가에게는 내일의 철벽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극명한 차이는
사람의 차이가 아닌 편견의 차별입니다.
조건의 차이, 환경의 차이,
접근성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러나 제한적인 접근성과 환경은
우리가 조금만 배려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존중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
말을 걸 때 보호자를 통하지 않는 것,
배려와 편의를 특혜라 부르지 않는 것,
능력을 먼저 보고 한계를 단정 짓지 않는 것.
이 작은 행위들이 쌓일 때 세상을 달라집니다.
우리 모두는 완전치 않은 몸으로 살아갑니다.
길을 건널 때 멈추지 않은 차에 부딪히고
개인의 불만에 건물 위에서 아래로 던진 것에
늘 걷던 거리의 건물 벽 돌출 간판이 떨어져서
울퉁불퉁한 보도블록 움푹 팬 곳에 걸려 넘어져
다치고, 병들고, 늙고, 약해지는 과정을 밟습니다.
그러니 차별은 결국 스스로를 향한 차별일 뿐입니다.
연민이 아니라 이해로,
시혜가 아니라 동등함으로,
구분을 지을 것이 아니라 연대로.
장애는 넘지 말라는 경계선이 될 수 없습니다.
불편한 몸은 뛰어넘을 수 있는 각종 보장구로
어려움을 해결 가능하며 국가 보조금도 있습니다.
삶의 과정에서 겪다 보면 한 조건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래서 나와 당신을 넘어 우리 모두는
그 조건을 나누어 가진 같은 사람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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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사전적·법률적 의미는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로 인해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을 뜻합니다. 장애는 크게 외부 신체 기능이나 내부 기관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신체적 장애와 발달장애·정신질환 등에 따른 정신적 장애로 구분됩니다.
2026년 5월부터는 췌장 장애가 새롭게 포함되며 장애 유형은 총 16개로 확대됩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 유형에는 지체, 시각, 청각, 언어, 지적, 뇌병변, 자폐성, 정신, 신장, 심장, 호흡기, 간, 안면, 장루·요루, 뇌전증 등이 포함됩니다. 사회가 변화하고 의료적 기준이 세분화되면서 장애 역시 더욱 다양한 형태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5년 12월 기준 국내 등록 장애인은 총 2,627,761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5.1%를 차지합니다. 결코 적지 않은 규모입니다. 특히 2025년 한 해에만 82,900명이 새롭게 등록 장애인이 되었으며, 이 가운데 56.9%는 65세 이상 고령층이었습니다.
이는 노화와 질환, 사고 등 후천적 요인으로 장애를 겪게 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고혈압, 당뇨, 관절염, 뇌혈관 질환 같은 만성질환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며, 의료기술의 발달로 과거에는 생명을 잃었을 사고나 질환이 이제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형태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산업재해와 교통사고 역시 장애를 남기는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전문가들은 장애를 특정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삶의 과정에서 마주할 수 있는 “생애 위험” 중 하나라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장애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현재이자 미래와 연결된 현실인 셈입니다.
이러한 인식 변화 속에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 역시 장애인을 단순한 복지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권리의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는 방향을 담고 있습니다. 아직 사회 곳곳에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많지만, 장애를 특별한 구분이 아닌 삶의 한 조건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장애인의 권리와 평범한 일상을 온전히 보장하려는 우리의 인식과 태도에서 비롯될 것입니다.
첫댓글 장애인에 대한 글귀에 동감 함니다 저도 장애인이니까 ㅎ
행복한 삶 시인님 건강은 필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