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바닥 속 추전역 / 김분홍
혼자 여행을 떠났다
분명 기차가 달리는데
풍경이 달린다는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직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는 좌석
다른 사람이 앉았던 좌석에 앉아
나는 모르는 사람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만 같다
손바닥을 펼쳐 본다
어디선가 발원한 길은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고
손바닥엔 길의 흔적이 선명한데
지금 탑승한 기차는 감정선일까 운명선일까 아니면 생명선일까
손바닥에 새겨진 손금은
앞서 살다간 사람이 지우지 못한
길의 노선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 손바닥에 새겨진 운명선을 나 아닌 누군가가 대신 살고 있다는 착각
나는 너를 번복하기 위해
잠시 이곳에 정차했을 뿐이고
종착역에 도착하기 전
내가 갈아타야 할 간이역
추전역을 향해
기차는 침묵의 침목을 밟고
손금을 따라 달리고 있다
- 시집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 (파란, 2020)
* 김분홍 시인
충청남도 천안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과,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 및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에창자과 전문가 과정 수료
201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눈 속에 꽃나무를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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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을 떠난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호기롭게 홀로 여행을 떠났던 젊은 날을 기억해 봅니다. 멀리 떠났던 것은 아니고, 국내의 지역 몇 군데를 다녔을 뿐입니다. 낭만보다는 비용을 아끼려 불편한 차박을 하기도 했고, 잘 챙겨 먹지 못해 산속에서 위험한 순간을 마주한 적도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바다가 좋아져, 훌쩍 바다를 보러 홀로 떠났던 날들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같이 살림을 꾸린 후부터는 아내와 함께 여행을 다닙니다. 생각해보니 많은 곳을 다녔네요. 해외여행도 다녀왔고요, 최근에는 무박으로 강릉을 다녀오는 일이 잦습니다. 새벽에 출발해 바다를 보고, 커피 마시고 되돌아오면, 저녁 무렵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떠나면, 말이 없어도 좋습니다. ‘같이 있다’라는 느낌만으로도 편안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한 몸이라는 말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모습을 통해서 나를 느끼는 것이죠. 거울 속의 나는 내내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지만, 그는 웃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삶이 항상 위태하게 보였는데, 그래도 잘 살아 내고 있음을,
진부한 비유이지만, 삶이 여행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서울역에서 출발해 종착역인 부산역에 도착하는 완행열차를 탄. 간이역에 설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죠. 단 한 정거장만을 가는 사람, 부산역까지 표를 산 사람. 어떤 사람들은 내 옆에 앉아 졸기도 하고 말을 걸기도 하죠. 마음에 들어 조금 더 오래 얘기하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끝끝내 그를 붙잡을 수 없습니다. 내려야 할 역이 있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는 어디쯤 지나가고 있나요. 저는 대구쯤 온 것 같습니다. 한참을 달렸습니다. 기차에 앉아 있는 것이 힘듭니다. 허리도 엉덩이도 아픕니다. 완행을 탄 것이 슬슬 후회됩니다. 직행 열차를 보내기 위해 10여 분 이상을 억지로 역에 서야 할 때면. 은근히 오기가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렇게 급한 것도 없는데 빨리 달려가려고만 했던 삶의 관성 때문인지 빨리 달려가는 것들만 보면, 부럽기까지 합니다. 빠른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닌데요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 하나를 손꼽으라면, 여유가 아닐까 합니다. 삶을 여행처럼 살지 못했던 여유. 우리는 삶을 투쟁으로만 생각해서, 마음 편해야 하는 여행도 투쟁처럼 다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요즘은 삶이든 여행이든 투쟁에서 한 발자국 떨어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여럿 있지만, 제가 좋으면 그만이지요. 인생을 절반 넘게 살아보니 알겠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 시 읽는 아침, 주영헌 시인(평론가)
첫댓글 시 쓰는 주영헌입니다. 제가 오타를 냈어요. 지금 탑승한 가치는 -> '지금 탑승한 기차는'으로 바꿔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주영헌 시인님, 반갑고 고맙습니다.
시인님의 좋은 시 좋은 감상에 빠져 우리 카페에 자주 스크랩합니다.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