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잡상인들
고린도후서 2:17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우리」와「수다한 사람」?
우리와 수다한 사람은 같지 않다. 어떻게 같지 않은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는 것과 혼잡하게 하는 것이 다르다.
그러면「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이다.
오늘날도 그러한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이다.
더욱 큰 문제는「수다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혼잡」(?)하게 하고 있는데도
그「수다한 사람들」의「수다한 사람들이」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다한 사람들이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요, 듣는 사람도 분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혼잡(混雜)!
무슨 뜻인가?
원문은 χαπηλεύω(카패류오)이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는 본문에서 단 1회 사용되었고
구약에서는 LXX역 이사야 1:22절에서 단 1회
곧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희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에서
번역이 안된 χαπηλοι(카페로이)가 나타난다.
이 단어는 χαπηλοs(카페로스)라는 명사에서 유래된 파생어로,
영어로는 huckster로,
사전들은 "행상인, 보부장수, 광고쟁이, 선전원",
비유적으로는 돈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사람,
동사로는 '소리치며 팔다', '에누리하다'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요사이 세태로 말한다면
버스 안에서 질 나쁜 상품을 값싸게 파는 잡상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적으로 번역 성경들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공동번역이 "하나님의 말씀을 파는 잡상인들..."
새 번역이 "하나님의 말씀에 잡것을 섞어 장사하는 사람..."
현대인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을 장사꾼처럼 팔지...”
KJV가 corrupt the word of God
로더 헴이 driving a petty trade...
웨이 마우스 역이 "adulterate God's word...
GSPD가 peddler of God's message,
몽고메리 역이 trafficking
바클리 역이 peddle an adulterated...
베크 역이 peddle an impure
예루살렘 역은 ...go around offering the word of God for sale,
하나님 말씀의 잡상인들!?
그들의 수가 수다(數多)하다?
이런 말이 성경에 있다니...
아니 성경에 있는 그런 자들이 오늘날도 존재한다니 이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게 뭐 어제오늘의 문젠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떠들어대는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당신은 어떤가?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인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는 자인가?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당신은 참으로 아무렇지 않은가?
그러면서 부정 축재하는 기업인들이나 욕하고 독재정권이나 질타하는가?
본론은 어디 가고 흥분부터 하는가?
그렇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하나님 말씀의 잡상인들을 노출시키려면,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1. 섞지 말라!
땅에 것과 하늘의 것을 섞지 말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1 이하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에 것을 찾으라...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 고 권면하고 있다.
주님께서도 산상보훈에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너희는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셨다.
하늘의 양식으로 먹고(요6: ),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으며(고후 5:2),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행17:28)여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떤가?
하나님의 말씀의 질을 타락(?)시켜 버렸다.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인가? '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도 되고 육신의 양식도 되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마4:4)인가? 0표를 해 보시라!
육신의 양식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던가?
아니면 누가 느닷없이(?) 쌀자루나 돈 봉투를 주었던가?
이런 일은 구청장도 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구청장이나 동장의 직급으로 하락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기적적인 구제물자(?)가 생겼다 해도
그것을 하나님이 기도 응답으로 주셨다고 나팔불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창피하니까... 누가?
그렇게 해준 분이.... 사람이든 하나님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의 5계명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마 23:9)를 어떻게 보시는지...?
우리가 5계명을 잘못 풀었는지?
아니면 5계명은 5계명이요 주님 말씀은 주님 말씀이니...
아니면 주님의 말씀이 극단적인지...
주기도문 서두가 무엇인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육신의 아버지에게 어린아이가 무엇을 달라고 하는가?
"너희가 약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줄줄 알거든 하물며...천부께서..."
그래. 그 천부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가 "육신의 양식도 되고" 인가?
이것이 "하나님 말씀의 잡상인" χαπηλοs(카페로스)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따위 잡상인이 오늘날 한 둘인가?
아니 한 둘이 아니라, 많은 것이 아니라, 허다한 것도 아니고 거의 99% 아닌가?
잡상인 출입금지!
2. 사랑치 말라.
요한 사도는 요일 2:15 이하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 것을 구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사랑치 말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인간은 세상 것을 구하는 것이 타고난 본성이다.
바로 그 본성이 죄악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것을 사랑하는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자기 본성을 거스려야 한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죽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현실 신앙」은 어떤가?
그 죄악의 본성을 더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어떤 목사는 세상 것을 구할 때 구체적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몇 층집에 방이 몇 칸, 대지는 몇 평, 건평은 얼마... 식으로.
이것이 잡상인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가르침이 한 두 목사인가?
"다 아버지께로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세상으로 좇아 왔다"는 말이 무슨 말인 줄 아는가?
세상 임금(요 14:30)으로 좇아온 것이란 말이다.
주님을 시험한 마귀를 보라. 또한 요 8:44에서 주님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하셨다.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살아 있는 마귀의 자식!
그러면서 "돈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huckster의 χαπηλος(카페로스),
즉 하나님의 말씀 잡상인, 연중 천국 티켓 바겐세일하는 집단이요,
이들이 바로 주님이 그렇게도 지탄하신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不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라가라 하리라"(마 7:22-23)
"세상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을 계속 사랑치 말라"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네가 이것들 보다(난하주를 보라) 나를 더 사랑하라"는 말씀이다(요 21:15).
"나를 더 사랑"의「더」는 51%:49%가 아니라「전부」다.
"네 마음을 다(전부)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27)이다.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 하셨다.
여기「강령」이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성구를 옷술에 다는 것인데
목사 가운 위에 목에 걸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요사이 말로는 좌우명「左右銘」이다.
오늘날 현실신앙의 좌우명은 무엇인가?
하나님 사랑, 세상 사랑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는 사람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보이는 이웃은 사랑하려고 애쓰면서도
진정 보이지 않는 이웃은 있는지 조차도 모른다(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참조).
복수「이웃들」만 알지 단수「이웃」을 알 리 없고,
그러므로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복수 형제들」만 알지 단수「형제」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복수 이웃들이나 형제들을 나 자신처럼 사랑할 자신이 있는가?
만약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못하기 때문에 회개하는가?
또 회개하면 되는 문젠가?
그것이 새 계명인가?
"살인하지 말라"는 옛 계명이고 더 적극적으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인가?
계명은 계명인데 다만 새로운 계명인가?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못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 6:47)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요 8:43)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 하신지라
그가 준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는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계18:4-7)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3:16)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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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귀한 말씀 항상 감사합니다. 신약 이후로 12제자들이나 그 이후의 사도들이 부자가 되거나 세상에서 유명한 설교자가 되어 궁전 같은 예배당을 지어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았던가요? 그런데 어찌 지금의 한국 교회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는 것인지 너무 안타깝군요. "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 (마 6:31,32)
일부목회자들이 주님의말씀을 자기들유리한데로 말씀을만들어설교하니 순진한성도들은 헷갈리게되지요...